하지만 나는 단지 알렉세이를 잃었다거나 한 사람을 구할 수도 있었던 유일한 기회를 잃어버린 것만이 아니었다. 오늘날 일)투찌감치 떨어져서 그 일을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검정 표지 동료들과의 연대 의식 또한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역시 상실한 것이었다. 우리는 오로지 상황의 압력과 자기 보존 본능 때문에 가축떼처럼 똘똘 뭉쳐 우글우글 몰려 있는 것일 뿐이며, 그런 식의 연대의식이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의심스러워졌다. 그리고 우리검정 표지 집단이 예전의 그 강당에 모여 있던 집단과 똑같이, 아니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집단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몰아낼 수 있다(유배 보내고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 P170
루드빅은 질주하는 말 같았다. 아니, 그로 하여금 그런 글을쓰게 했던 건 전적으로 그런 자만 때문만은 아니야. 약했던 거지.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타인들의 찬동도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과 대면한 채 홀로 고립되어 용감함을 고수한다는 일은 엄청난 자긍심과 힘을 요하는 것이거든.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말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허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응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은 잊혀질 것이다. - 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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