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쿼트호의 음울한 선장은 그렇게 천박한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선원에게 요구하는 것는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복종뿐이었다.....
그런 에이헤브 선장 조차도 바다의 가장 중요한 관행을 어기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선장이 때로는 그런 관행 뒤에 자신을 감췄다 해도 결국에는 드러날 수밖에없다.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정당한 용도가 아니라 어떤 개인적인 목적을위해 관행을 동원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 잠재된 폭군기질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배 위의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저항할 수 없는 절대권력으로 표출되었다.
한 사람의 지성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자체로는 하참고 비열한 장식과 장치의 도움 없이는 다른 사람에 대해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지배권을 절대 확보할 수 없다. 이런 장식과 장치 때문에 하나님께 선택받은 왕국의 진정한 왕자들은 세상의 정치 행위에 개입하지 않는다. 보잘것없는 일반 대중보다 결코 탁월해서가 아니라, ‘무위한 신성을 가진 소수의 선택받은자들보다 훨씬 열등하기 때문에 오히려 유명해진 자들에게 이 세상 최고의 영예가 돌아간다. 하찮은 장식과 장치라 할지라도 극단적인 정치적 미신이 부여되면 거기에 커다란 미덕이 생겨나고, 그리하여 어떤 왕실에서는 멍청한 얼간이 후계자에게 왕위가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경우처럼 지리적 제국의 왕관이 제왕의 머리에 씌워지면, 백성들은 그 막강한 중앙집권적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인간의 꺾이지 않는 정신을 극적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비극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지금 언급한 것과 같은 암시(장식과장치)를 무척 중요하게 여기며 잊지 않을 것이다. - P198
"말도 못하는 짐승한테 복수라니요!"스타벅이 소리쳤다. 그 고래는 맹목적인 본능으로 선장님을 공격했을 뿐입니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 말 못하는 짐승에게 격분하다니요, 선장님. 불경한 일입니다."
"다시 한번 설명할 테니 잘 듣게 이봐, 눈에 보이는 대상은 모두 판지로 만든가면 같은 거야. 하지만 어떤 경우든, 특히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정한 행위 속에서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비합리적인 가면 뒤에 있던 합리적인 것이 모습을 드러내지 무언가를 치려고 하면 바로 그 가면을 쳐야 하네. 죄수가 감방 벽을 부수지 않으면 어떻게 밖으로 나올 수 있겠나? 나에게는 흰 고래가 바로 그런 벽일세. 아주 가까이 다가선 벽 말이야. 때로는 벽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생각이 들기도 하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해. 놈은 나를 괴롭히고 있어. 못 견디게 부담을 주고 있단 말이야. 나는 놈에게서 잔인무도한 힘을 보았지. 헤아릴수 없는 악의가 원동력이야. 그 헤아릴 수 없는 것이야말로 내가 증오하는 것이고 흰 고래가 주동자는 앞잡이든 나는 놈에게 분풀이를 해야겠어. 내게 불경이니 어쩌니 하는 말은 하지 말게. 태양이 나를 모욕한다면 나는 태양도 공격할거야, 태양이 그런 짓을 한다면 나도 못하라는 법이 없지. 질투가 만물을 지배하는 이곳에서는 항상 공정한 시합이란 것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런 공정한 시합도 내 주인은 아닐세. 누가 나를 지배하겠나?
진리에는 한계가 없어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악마가 노려보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바로 그런 멍정한 눈길이야! 그래, 그래. 자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군. 내가 열을 내서 그런지 자네도 분노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어.
하지만 이보게 스타벅, 홧김에 하는 말에는 뒤끝이 없다네. 홧김에 하는 말은 모욕으로 치지 않는 경우도있지. 자네를 화나게 하려던 건 아니네. 이쯤에서 그만두세 보게! 저 터키 야만인의 뺨에 난 황갈색 얼룩을 말이야. 태양이 그려놓은 살아 숨 쉬는 그림이 아닌가 저 표범 같은 이교도들, 부주의하고 믿음도 없는 자들은 그저 살아갈 뿐이 각박한 삶에서 뭔가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고 부여하려 하지도 않아! 선원들, 그래, 선원들! 그들은 고래 문제에서 이 에이해브와 생각이 같지 않나? 스터브를 보게! 웃고 있잖아! 저기 칠레 선원을 보게! 고래를 생각하며 코웃음치고 있지 않나. 스타벅, 이런 허리케인 속에서 어린 나무처럼 굴면 어떻게 버될 수 있겠나. 대체 뭐가 문제인가? 생각좀 해보게. 그냥 지느러미 하나 찌르는걸 도와달라는 것 아닌가. 그게 자네한테 그렇게 경이로운 재주를 요구하는 건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사냥이라고 일반 선원들도 숫돌을 집어든 마당에 낸터킷 최고의 작살잡이인 자네가 망설이는 건가? 아아, 자네는 꼼짝 못하게 되었어. 그래, 파도에 떠밀린 신세나 마찬가지지 말해, 말해보라고! 그래, 그래! 그 침묵이 자네 대답이로군. (혼잣말로 내 콧구멍에서 빠져나온 것을 저녀석이 깊이 들이마셨어. 스타벅은 이제 내 편이야.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한나를 거스를 수 없을거야."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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