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44.
그래서 다시금 무위도식하며
영혼의 공허함에 시달리던 그는
타인의 생각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기특한 목표로 책상 앞에 앉았다.
책들을 분류하여 책장에 꽂은 다음
읽고 또 읽었으나 도대체가 모를 소리.
이건 따분하고, 이건 거짓말 혹은 헛소리,
이건 양심 없고, 이건 생각 없고,
모두가 나름대로 얽매여 있고,
옛것은 케케묵어 버렸는데,
새것은 또 옛것에 열광하다니.
여자를 떠나가듯 그는 책에서도 떠나갔고,
먼지 앉은 내용물의 책장에는
상복용 검은 천을 씌워 버렸다.
p.37~38 - P38
제1장.
55.
나로 말하자면, 평온한 삶과
시골의 정적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벽지에서 리라는 더 잘 울리고
창작의 몽상 또한 더더욱 생생한 법.
무구한 한가함에 몸을 맡긴 채
텅 빈 호숫가를 거닐곤 하는
나의 법칙은 far miente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달콤한 안일함과 자유를 위해매일 아침 눈을 뜨고,
책은 조금 읽고, 잠은 오래 자며,
허망한 명예 따윈 좋지 않는다.
과거에 난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늘 아래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지 않았던가? - 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