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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류의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 책은 나름 특별한 위치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문체가 좀 촐랑댄다고 해야 하나? 도무지 '고전'이라는 묵직함이 보이지 않는다. 학창 시절 영어 공부할 때 단원 끝에 summary가  나왔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아주 수다스런 고전 소설의 summary.

 

저자가 여러 번 반복하여 읽은 결과 엄선한 50권의 책을 다 읽어본다면 좋겠지만, 저자가 꼭 그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소개한 책에서조차 건너뛸 부분을 정해주니 그런 얽매임은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역으로 각 소설의 작가의 입장이라면, 세상에 이런 꽤씸한 놈이 없을 것도 같다. 시각의 차이가 있을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엔 뭔가 색달랐는데  나중엔 이 책도 건너 뛰어도 되지 않나 싶은 부분이 들었다. 모든 책은 독자마다 몰입하는 부분과 건너뛰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잭 머니건식에 꼭 맞춰야 할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그가 매 책마다 뒤에 부록처럼 일정한 형식으로 책에 대한 소문,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최고의 구절, 성(性)스로운 부분, 기묘한 사실, 건너 뛸 부분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읽을 만 했다. 물론 시각차는 있지만. 촐랑대는 문체와 이런 부분들이 아마 이런 류의 책들 틈에서 이 책이 살아남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그 전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꼭 읽어 봐야겠싶은 책은

 

 

 

 

 

 

 

 

 

 

 

 

 

 

 

 

 

 

 

 

 

작가가 사랑해 마지 않지만 좀 내키지 않는 책으로는

 

이 있다^^

 

 

 

 

 

 

 

이 책 최고의 구절

버지니아 울프를 읽든 프루스트를 읽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읽든, 여러분은 인간이 그토록 섬세한 감각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미묘한 진폭과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하게 된다. 하물며 그것을 표현하기까지 하다니 무슨 말이 필요하랴. 우리가 그들의 책을 읽을 수 있고, 그들의 자아와 삶을 상상할 수 있고, 나아가 우리의 자아와 삶을 그들의 것과 더욱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p18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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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인문학 강의 - 전 세계 교양인이 100년간 읽어온 하버드 고전수업
윌리엄 앨런 닐슨 엮음, 김영범 옮김 / 유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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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십자군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나는 막막했다. 사건을 이해하였으되 그 사건의 앞뒤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스페인 무적함대를 보아도 멋있다는 것 이상을 보지 못했고,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오스칼과 마리 앙투아네트를 관계를 보기 위해 궁금해했다. 우리 나라의 역사를 이해해야만 사극도 더 재밌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많은 영역을 감히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해왔는데, 이 책 <열린 인문학 강의>가 무려 100년 전의 책이라는 것에 살짝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하버드 교수들의 강의 요약본인 이 책은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이 책이 나온 이후로 역사는 흘렀고, 세계는 여러 면으로 변화하였지만 철학의 발달이 미미하듯 시대의 차이를 느끼기가 어려웠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윌리엄 스콧 퍼거슨 교수의 '서양 고대사' 강의대로라면 네 번째 시대인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급변하면서도 정지한 시대라는 생각이 이 책의 나이와 이 책의 내용을 보면서 자연스레 들게 된다.

   우리가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문文사史철哲을 칭하는데 이 책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만 종교,정치경제학, 항해와 여행이 추가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목차의 처음은 역사이고, 역사 강의를 읽는 순간 이 책을 읽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짧은 요약본인데, 오히려 짧기 때문에 한 시야 안에 서양의 역사가 들어올 수 있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를 강의한 머레이 앤소니 포터 교수의 글이 이야기처럼 흥미롭게 잘  쓰여 있었다.

  이후 철학과 종교, 정치경제학 부분은 일목 요연하게 쉽게 설명이 되어 있음에도 기본적으로 쉬이 흥미로워지는 영역이 아니라 몇 번씩 되짚어 가면서 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학의 토머스 닉슨 카버 교수의 '들어가는 말' 강의는 인문학적으로 표현되어 감탄하기도 하였다.

 

    희소성이란 사실상 자연이 자연스럽게 채워주지 못하는 욕구를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편 이것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가 부족하다는 뜻이고, 그래서 산업화된 생산의 목적은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지요. (175쪽)

 

또한 역사와 철학에서는 서양에 국한 된 점이 아쉬웠는데 종교 강의 부분에서는 동양의 종교가 좀더 큰 비중으로 다루어진 점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항해와 여행은 일면 역사 영역으로 볼 수 있어 나의 흥미는 다시금 커졌고 희곡과 시에 대한 강의도 무척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이 어떤 책을 즐겨 읽느냐는 질문에 나는 문학과 인문학이라고 대답을 하지만 정작 문학에 대해서도 인문학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오죽하면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도 아는 상식 선의 내용도 몰라 놀림을 받는 경우도 있다. 아마, 책을 읽되 조각으로만 읽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 나는 흡사 마을 우물을 항해한다고 말하는 독서가라는 생각이 든다. 항해를 하려거든 바다로 나갈진대 길을 모르니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그런 차에 '기초 강의'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 책이 내겐 큰 길잡이가 되었다. 비록 '기초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밑줄 긋고 메모하며 읽어야 했지만 바다로 나아갈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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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플까봐 꿈공작소 5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이승숙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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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마치 내 마음이 아닌 것처럼, 남의 이야기하듯 때때로 쿨하게 마음을 드러내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마음만은 꽁꽁 숨겨 놓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마, 들켜버린 모양이다.

 

  책의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상처받고 외로운 마음을 느끼는 것이 두려워 마음을 병에 담고 몸 밖에 걸어두고 살아간다. '마음의 병'이 우리말로는 이렇게 중의적으로 다가오니 새롭고 멋진 표현이라 어쩌면 이 책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더 풍성하게 이해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미지로 상징화되긴 했지만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마음의 병을 몸에 지니고 사는 사람도 분명 불행한 사람이지만 내 것이 아닌 양 모르는 척 하고 다니는 것은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렇게 밖으로 빼서 목에 걸고 다니니 남들은 내 마음 상태를 다 보는구만 나만 느끼지 못하는 것도 참 어리석은 일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내가 해결하기 위해 품고 살아야 하는 내 마음, 그것이 아파도 편해도 내 속에 있어야 내 마음이고, 마음이 속에 있어야 사람이라는 것을 이렇게 동화책 한 권이 알려준다.

 

  이 책에 알맞은 독자를 아이라거나 어른이라는 것으로 정하면 안될 것 같다. 나처럼 마음을 몸 밖에 빼둔 겁많은 어른이라거나 어느 새 마음의 문이 닫혀버린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 당신들 마음 다 보여요. 이제 그만 품고 가요.'라는 메시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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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소설 전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
이상 지음, 권영민 엮음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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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이상은 <오감도>보다는 <날개>가 익숙하다. '이상 문학상'에 대하여서도 소설가에게 주는 것만 익숙하여 시인 이상보다는 소설가 이상이 더 친근하다. 무식한가? 그렇다. 나는 그런 무지의 극치 상태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이 난해하다는 선입견만 머리와 마음에 가득 집어 넣은 채  그나마 가장 익숙하게 다가오는 <날개>를 펼쳐 들었다.

  <날개>를 읽으면서 가장 자주 느낀 점은 '어라? 이상은 재밌는데?'였다. 끊임없이 궁시렁거리는 듯도 하고 자기 비하도 끊어지지 않아 어둡기도 하였지만 그의 독특한 문체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머라는 요소가 있었다. 그 유머는 대체로 자기 학대적이고 냉소적이었지만 바로 그 점이 이상의 소설을 특별하고 흥미롭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요소였다.

  <날개>를 읽은 후에 또 낯익은 제목이라는 이유로 <김유정>을 읽고 나니 이상의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책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와 제대로 읽어보리라는 마음으로 <지도의 암실>을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작품인 <십이월 십이 일>을 제외하고는 발표 시기에 따라 차례대로 구성된 터라 애초에 겁을 먹지 않은 사람이라면 <십이월 십이 일>을 먼저 읽은 후, 차례대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이월 십이 일>을 읽으며, 이상이 이 때만 하더라도 삶에 대한 의지가 있었던 것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대한 의지만 확고할 때에는 죽음이 불발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죽음이 이루어진다. 아마 그에겐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의 작품을 여러 편 내리 읽다보면 마치 내가 그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왠지 내 주변에 이상이나 보산이나 S같은 이가 매일 있을 것만 같다. 아마 그가 그의 작품 속에 그 자신을 많이 이입시킨 탓으로 추측되는데, 그에게 소설이란 제대로 살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해 쓰는 글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다중이처럼 소설 속에서 이 사람도 되었다가 저 사람도 되었다가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이가 되는 것이 자신이라며 스스로를 해치고 비웃는 것이 여러 작품들을 통해 반복된다. 그런 그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듯한 나는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T씨처럼 대면대면하게 지낼 수도 없고, 아내처럼 그를 농락할 수도, 윤 처럼 그를 비웃어줄 수도 없다. 아, 난 그가 그저 안됐다. 그를 보듬을 수 없는 것이 아프다.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의 너무나 예민했던 나이에 너무나 섬세했던 사람으로서 살아야했음이 절절하게 힘겹게 느껴졌다.

  <단발>에는 '소녀의 끝없는 고독이 소녀에게 1인 2역을 시킨 것에 틀림없었다.' 문장이 나오는데, 그의 모든 문제는 바로 이 고독에서 나온다. 그는 관계를 굳게 맺지 못하는 고독한 영혼이었다. <지도의 암실>에서 '그의 의미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은 것처럼 그는 고독의 상태에서 자신의 설 자리를 그 어느 곳에서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끊임없이 여인을 가지려하고, 그러면서도 확신하지 못하여 잡지 못한다. 또한 끊임없이 자살을 꿈꾸지만 결국 그는 그것마저도 실행하지 못하고 아마 누가 자신을 대신 죽여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여인의 다감함과 생의 종결 중 아마 그가 더 원한 것은 여인의 다감함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생을 마치는 것이 더 현실적이었던 모양이다. <종생기>를 유서로 삶을 마치니 그 딴에는 큰 결심을 한 모양이다.

   사랑이 필요했던 한 섬세한 사내에게는 사랑이 머물 곳이 없었다. 냉소적이긴 하나 그의 유머가 꽤나 매력적인 것을 보면 이상이라는 사람의 매력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모난 성격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의미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지금의 그의 의미는 그의 삶과 작품으로 그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크게 나오지만 그를 살리는 데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그의 삶이 그렇게 종결된 데에 마냥 안타깝지만은 않은 것은 나 뿐일까? 그가 생을 달리 어떻게 살아냈을지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이 어렵고 쉽고를 떠나 그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하지만 마음이 나약하고 예민한 때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든다. 앞서 말했 듯이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완전히 현대어로 번역된 것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지금의 이해는 그의 작품을 이해한다기 보다는 그를 이해하는 것에 더 가까우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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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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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평집의 경우에는 목차에 가득한 수많은 책의 제목을 읽고 나면 왠지 그 책 조차도 다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러한 목차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반면 그 책을 읽는 데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작년 한 해 그러한 책들을 적지 않게 읽은 터라 이 책이 그런 목차를 갖고 있었더라면 목차를 보는 것만으로 책 읽기를 마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목차가 매우 단순했고, 그것은 독자인 내가 이 책을 서평집으로 보기 이전에 책으로 보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게다가 각 장의 제목들도 명쾌하고, 감각적으로 배치된 모양새가 참 예쁘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중 가장 큰 것은 상쾌하다는 점이었다. 서평집을 읽다보면 어떤 작가들은 자신들이 책을 많이 읽고 썼다는 자만에 빠져 젠 체하는 경향이 있곤 하는데 이다혜 작가의 책에서는 그런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세어 보진 않았지만 100권이 넘는 서평들을 읽으면서도 뒤끝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게다가 책을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의 팁까지 주니 얼마나 고맙던지. 뭔가 욕심 내지 않고 진심으로 쓴 작가의 추천들은 신뢰감이 생겨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많이 늘어났다.

  가령,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에 대한 서평을 읽으면서 내심 '이건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따라한 거 아닌가?'하는 무식한 생각을 했는데 이내 그 전후 관계를 알려주었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도 정말 재미있게 읽은 터라 그 책에 영향으르 준 <잠자는 미녀>라는 책이 많이 궁금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다른 소설들 (이 책에서 언급된 <손바닥 소설>도 물론 포함하여)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코맥 매카시이 '국경 삼부작'을 다 읽지 못하겠다면 두 번째인 <국경을 넘어>만 읽으라는 팁이나, <뉴요커>의 '소설' 팟캐스트(아마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과 유사한 팟캐스트가 아닐까?)라는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한 고급 정보도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그런 정보를 주면서도 절대 젠 체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좋다.

  수많은 책들의 서평이 실린 책이지만 각각의 서평은 사적이면서 매우 짧고 어렵지 않다. 사적이고 어렵지 않다고 해서 혼잣말이라던가 가볍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현대의 독자는 그런 의미에서 불운하다. 작품을 작품으로 만나기 전에, 차고 넘치는 말의 홍수 속에서 그 작품에 대한 언어의 감옥에 갇히고 말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포함해 각종 리뷰나 평론들을 요행히 피한다 해도, 책 표지의 홍보문구에, 길거리 광고판에 노출되는 일마저 피할 도리는 없다. (28-29쪽)

 

어떤 말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무조건 따라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 이렇게 주장이 강한 책을 읽을 때 일수록 읽는 사람의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291-292쪽)

라던가

부모는 수만 가지 방식으로 아이들의 정신적 상처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부모가 보이는 숱한 변덕(일관성 없는 양육환경), 아이에게 신체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해도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는 가정폭력(때로 살인으로 이어지는), 양육상의 편의나 병적 무관심에 기인한 극한의 환경(벽장이나 개 우리에 갇혀 자라는 경우)이 그런 예다. (108-109쪽)

하는 부분들은 작가가 작가이기 이전에 이 그 자신이 독자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임을 말하여준다. 작가이되 독자인 독특한 위치를 가지는 서평인으로서 가지는 특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특히나 그녀의 문체가 독자에게 무엇을 알려주려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이야기를 해 주는 것 같아 뒤끝이 상쾌한 것 같다.

  작가와 나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독서 취향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유독 일본 작가의 책들이 많은데 나는 일본 작가의 이름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아주 유명한 작가의 책 밖에 읽은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독서 후 리뷰를 쓰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유독 관심을 가지며 책을 읽었다. 몇 몇 권들은 장의 제목에 좀 안어울리는 것 같아 빼거나 위치를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읽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것 같은 아주 사소한 의문 사항이었고,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책 한 권 나도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다.

  내 오래된 습관 중의 하나가 책을 읽으면 리뷰를 쓰는 것이다. 세어보자면 꽤 많은 리뷰들을 썼겠지만 그것의 독자를 '나'로 한정하여 썼기에 그것들을 꾸역꾸역 묶어 집에 보관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기존에 '나'로 독자를 한정한 것에서 벗어나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정하여두고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리뷰들이 태반이지만 2013년,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아직 정하지 못했던 때에 이 책을 만나 한 해의 독서 계획을 세워볼 수 있었다. 아, 책 읽기 좋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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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1 <<책 읽기 좋은 날>>을 통해 읽고 싶어진 책의 목록>

<잠자는 미녀> <좀비들>

<스타일 나라의 앨리스> <명탐정의 규칙> <손바닥 소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 송광사 새벽 예불을 엄마에게 선물해 주고 싶다.

       <아Q정전> <새엄마 찬양> <어젯밤> <달리기>

<전망 좋은 방> <이십 억 광년의 고독>

<옆 무덤의 남자>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

 

<붙임2 내가 2012년에 읽은 책을 이 책의 소제목에 따라 한 권씩만 추천한다면?>

 

당신 살아 있나요? - 삶은 가능성. <나는 가능성이다>

긍정이 뒤통수 칠 때 - 나도 이 책을 추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피로사회>

매끄러운 사회 생활을 위하여 - 호어스트의 유머를 배우자! <서두르지 말고 인생을 안단테>

슬픈 날에는 슬픈 음악을 - 가끔은 깊은 슬픔에 빠지는 것도 좋다. <고통>

누군가 내 삶에 끼어들었으면 - 난 우물 안 개구리일 뿐. <꿈꾸는 자 잡혀간다.>

오늘 밤도 분홍분홍해 - 이런 책을 별로 안읽어서 =^^= <막다른 골목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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