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는 결국, 인간이어야만 한다.

 

 

  2012년 최고의 도서로 <피로 사회>를 꼽은 바 있다. 그 책의 저자 한병철은 현대 사회를 '피로 사회'로 규정하며 여러 이론들을 반박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단단하게 독자에게 입력시켰다. 이 책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 사회를 '유동하는 사회'라고  규정한다. 사실 우둔한 독자인 나는 두 사람이 말하는 근대와 현대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별하지는 못했지만 추측건대 지그문트바우만이 지칭하는 근대의 범위가 한병철이 말하는 현대 사회를 포함하는 말로 이해되었다.

  한병철의 이론을 접했을 때처럼 '유동하는(액체)근대 사회'라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규정을 들었을 때 역시 그의 이론에 공감했다. 급변하는 사회,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사회, 아주 작은 변수에도 모양이 달라지는 사회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이다. 이전의 사회를 견고한 (고체) 사회로 규정하여 비교하여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책은 총 44편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내용이 매우 구체적인 사례와 인용,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유동하는 근대 사회'의 특징이 어떤 것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저자가 1925년 생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가 부의 배분, 교육, 탈인간화 등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트위터와 인스턴트 섹스, Z세대까지 폭넓고도 시대에 맞게 '유동하는 근대 사회'의 특징을 짚어준 점이 신뢰감이 생겼다. 우리 나라로 치면 이어령 선생님 생각이 좀 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비판적으로 다룬 편지 내용들 중에서 세대 차이와 트위터, 프라이버시, 유행, 문화 엘리트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을 많이 했다. 이 이야기들을 공감하는 데에 있어 기본적으로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은 '인간성 상실'이었다. 35 번째 편지 중에서 원주민의 말처럼 "그게 바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인데 자꾸만 성과를 내게 하고, 스스로를 상품화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부인할 수 없지만 씁쓸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었다. 저자는 모두가 소비자이자 상품인 근대 사회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러한 비판의 끝에 왠지 모르게 희망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물론, 아주 조금의 희망이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은 가능한 희망만을 말할 뿐 헛된 과장된 희망을 품게 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을 옮겨 적고 생각도 짧게 짧게 적어보았다. 얼핏 보면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는 상태이다.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 사람은 사라지고 상품만 즐비하다.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만 보인다. 개성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는다.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제품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그것도 그저 그런 제품인 채로 더 나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더 비싼 제품이 되길 바라는 것인가 하는 자조적인 물음도 나온다. 43 번째 편지에서 저자가 말한 바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며, '인생이란 의지와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은 인간이 만든 예술 작품'이어야 한다는 의견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인간이어야만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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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이런 마음을 가졌던 적이 있다. 길거리에서 저 멀리 떨어져 보이는 엄마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싫어 빙빙 돌아서 갔던 경험이.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에서 아이의 죄책감을 나무라는 대신 엄마의 마음을 알려주고 엄마가 함께 노력한다는 과정이 좋았다. 읽어주는 내내 아이들은 흥미로워하면서도 위로받는 듯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한 아이가 책꽂이에 꽂혀 있던 <아빠! 학교에 오지 마세요>라는 책을 찾아내어 읽는다. 책이 책으로 이어지는 순간, 기분이 참 뿌듯하다.

 

 

독서 교육으로 유명한 분의 강연회에 갔다가 이 책을 추천받아서 얼른 구입해서 아이들에게 읽어줬다. 아이들이 흥미로워하는 부분은 단연 사탕가게 할머니를 골려주던 사건이었지만 아직 어린 2학년 아이들에게 읽어주기엔 가끔 흥미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내가 이 책을 다 읽지 않은 채 집에 가져갔을 때 이 책을 찾는 아이들이 몇 있었다. 얘들아, 궁금하니? 궁금하면.....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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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 책을 읽은 직후부터 이 책은 나를 묶어 놓았다. 지금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생각날 적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본다.

  철학서이고, 낙관적이 아닌 내용인데 난 이 책을 읽으면 위로가 된다. 최소한 스펙쌓기에 치중하지 않는다는 자기 위안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우리의 모습 그 안에 내가 살고 있다는 평범함에 대한 확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그가 지금 우리 사회를 '피로 사회'라고 규정지어주는 순간부터 맘이 편하다.

  특히 맘이 바쁠 때 이 책이 많이 떠오른다. 지금 읽고 있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라는책도 비슷한 느낌으로 좋은데, 개인적으로는 얇으면서 단단한 <피로 사회>가 더 좋았다. 말을 돌리지 않은 돌직구를 한 방 크게 먹었다.

 

 

<문학>

 

<노인과 바다>는 좀 묘한 느낌이었다. 얇은 두께에 비해 천천히 읽혔다. 빨리 읽으려고 하면 충분히 빨리 읽을 수 있었지만, 왠지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처음에 같이 준 영문판을 한 20페이지 읽었다. 애초의 다짐은 좀 무모했지만 의미있었다. 헤밍웨이의 뚝뚝 끊어치는 문체는 아주 조금이겠지만 느낄 수 있었다. 한국어 번역본은 그에 비하면 좀 부드러웠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작품도 꽤나 공들여 만들어진 작품이었고 보는 내내 원작의 느낌이 살아있어 기분이 좋았다. 

 

 

 

<어린이책>

  

  검은 색 만으로 이렇게 다채로울 수가. 색이 단순하기에 그림을 더 집중하여 보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생태계 순환에 대한 내용이지만 삶과 죽음의 이야기도 함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죽는 것은 잡혀 먹혔기 때문이 아니라, '늙었기'때문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이야기해 주는 점이 아이들에게 죽음을 자연의 일부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러스트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펜 하나로 묘사되는 그 넓이와 깊이에 감탄할 것이라 믿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이지만 정말 멋진 그림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권 넘게 책을 읽고 80여편이 넘게 리뷰를 썼기에 지금도 다른 책들을 더 추천 목록에 넣어야 하나 고민이 되지만, 과감히 이 세 편만으로 압축하기로 한다. 그 중 제일은 <피로 사회>였다. 내게 2012년 <피로 사회>를 만난 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니, 기억은 곧 사라질 것이므로 다만 기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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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거스트, 아름답다는 말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질되었을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중에 진정 아름다운 것은 얼마나 있을까? 너를 통해 새삼스럽게 난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느라, 아름다운 차를 만드느라,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꾸미느라 애쓰기 이전에 먼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어거스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솔직히 자신이 없어. 갑작스레 너를 만났을 때에도 환하게 웃으며 있을 자신이. 너를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알지? 그냥 안되었다는 마음이 안 들 자신이 없는거야. 어쩌면 네가 더 싫어할 마음이지만 말야. 참 못났지?

  그런데 말이야. 이미 난 네가 그것조차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마 이미 그런 지도 모르지만. 애써 아닌 척 참는 것이 아니라 그런 반응 쯤은 내가 받아들여줄 수 있다는 여유랄까 그런 것. 이를 테면 측은지심은 내가 갖는 게 아니라 네가 갖는 거지. '쯧쯧, 아직도 나를 보고 놀라는군. 마음이 아직 덜 컸네....' 이런 마음으로 나를 봐주면 안될까?

 

어거스트, 나도 장애인이라는 눈에 띄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아이와 반 년을 거의 매일 만난 적이 있어. 그 앞에선 웃으며 아닌 척 했지만, 그 아이의 뒤에서 얼마나 울었나 몰라.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고, 또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 아이를 위해 종교도 없는 내가 기도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 물론 그 중엔 놀랍고 두려운 마음도 들었었어. 그 아이와 더이상 만나게 되지 않게 되었을 때 많은 걱정도 되고 동시에 마음의 짐도 덜어지는 나를 느끼곤 내가 얼마나 놀랐나 몰라. 사랑하면서도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그런 비아 누날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런 점에선 서머가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지 몰라. 그런 아이, 아니 그런 사람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 서머는 정말 아름다운 아이야.

 

하지만 어거스트, 서머 같은 아이는 정말 드물단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사람이지.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아이거든. 첫 대면을 외모가 아닌 마음으로 하는 거잖아. 개인적으론 너희 아빠도 서머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더러웠던 데이지를 망설임 없이 데려오신 걸 보면 말이야. 너희 아빠와 서머처럼 두 말 할 것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희 엄마나 비아 누나 그리고 샬롯이나 잭처럼 어떤 이유로 인해서 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평범한 사람이 있고, 줄리안처럼 정말 아름답지 않은 사람도 있단다. 네 입장에선 상대가 평범한 사람이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로 나쁜 사람들도 많이 만났겠지. 그게 우리의 현실이니까. 우리의 숙제이기도 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숙제. 이 책을 읽으며 난 숙제를 조금은 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편하구나.

 

어거스트, 난 네가 참 좋다. 어느 틈엔가 불쑥 마음과 생각이 커버린 것이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또 너를 빛나게 해 주는 것 같아.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 그 자체가 참 아프지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야. 너를 성숙하게 하고, 빛나게 해 준 것이 너의 아픔과 시련의 역할이 컸을 테니까. 덕분에 넌 정말 유머있고 배려심 많은,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된 거니까. 서머처럼 혹독한 시련이 없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야 말로 신의 축복이겠지만 아픔과 시련을 겪은 후에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아이가 된 너 역시 이 세상에서 참으로 보석같은 존재란다. 아름답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그걸 넌 해낸 거지. 대단해.

 

어거스트, 이제부터 난 아름답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기로 했어.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 쓸모와 환경을 동시에 생각하는 물건에게만 까다롭게 쓸 거야. 밤하늘에 빛나는 아름다운 별, 아름다운 아이 어거스트, 공정무역과정을 거친 아름다운 커피 등등. 찾아보니 진정 아름다운 것도 적지 않구나. 그걸 찾는 눈이 적었을 뿐이구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이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나중엔 내 이름 앞에도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구나. 이 말을 쓰고보니 잘못한 일들이 너무 많아 불가능해 보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노력해 볼게.  네가 책에서나마 내게 존재해주어 정말 고맙다. 안녕, 꼭 안녕 어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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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알을 찾아 - 방글라데시 땅별그림책 8
비쁘러다스 버루아 글, 하솀 칸 그림, 로이 알록 꾸마르 옮김 / 보림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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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방글라데시의 그림책이라 반가웠다.  물론 아들은 지갑에 꽂혀 있는 꽃보다 예쁜 방글라데시 소년의 사진조차 질투할 정도여서 일부러 외면했지만 말이다. 표지에 호랑이 허리가 길어보여 책을 쫙 펴보았더니 과연 호랑이 허리가 참 길었다. 왜 이렇게 길까? 다리는 참 짧은데 말이야? 호랑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이런 저런 궁금증을 가지고 책장을 펼쳤다.

 

  신기한 것은 그림책에 나온 나무와 꽃의 그림에 방글라데시에 사는 아이로부터 처음 받은 지 속 그림의  색 참 닮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외국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한국의 느낌이 나게 될까?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아들의 떼에 못 이긴 아버지가 <말의 알>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읽다보면  왠지 언젠가 한 번 쯤 들었던 이야기들이 섞여 있는 느낌이 드는데 그건 마치 우리가 구전으로 이야기를 전해들었던 느낌과 닮았다. 가령, <호랑이와 곶감>으로 시작해서 <토끼의 재판>으로 이어질 것만 같은.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옛날 이야기보다는 덜 재밌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의 정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책을 읽기 전 궁금했던 호랑이를 타는 장면에 대한 부분도 내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말이 필요하다고 '말의 알'을 구하려고 시도하는 탄티의 바보같은 모습이 이상하게 내게는 바보같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 때에도 왠지 나 역시 탄티처럼 '말의 알'이 실제로 있을 것만 같았다. 거기에서 말이 태어나 아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기를 함께 바랐다. 아버지의 사랑은 없는 것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말을 얻거나 말의 알을 얻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긴 호랑이의 허리만큼이나 길게 말의 알을 찾아 해멘 탄티의 부정이 아니겠는가. 순박하고 진실된 그 마음이 참 좋다. '말의 알'이 있다고 아무 계산 없이 믿어버린 그 마음이 참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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