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잠과 싸우지 마라 - 불안한 마음까지 잠들게 하는 힐링 수면법
사샤 스티븐스 지음, 김수미 옮김 / 부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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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기 전까지 난 눕기만 하면 그곳이 어디이든 잠을 쉽게 들었고, 잠을 참 오래도 잤다. 그래서 학창 시절 별명이 '잠충'이었던 적도 있다. 그런 내가 성인이 되면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인이 되면서부터 잠을 자는 것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물론, 저자처럼 심각한 불면증은 아니었고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특별한 행사를 앞둔 불면증'에 해당된다.

 

나는 해야할 일을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나마 그 일이 끝나면 쉽게 잠을 드니 그것을 불면증이라고 명명한 적도 없고 수면제를 복용한 적은 더더욱 없지만 그 때문에 특별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경향은 이 책에서 소개한 증상과 유사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겐 특별한 일이 그다지 자주 있는 편이 아니고, 그로 인해 아주 다행스럽게도 수면제를 복용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책을 읽다보니 수면제의 악영향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책의 말미에 저자가 만들어 낸 태양광장공포증 이야기에서 밝힌 것처럼 불면증은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에 새삼 공감하게 되었는데 이는 아주 당연한 결론임에도 우리는 그동안 이것을 큰 병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처방을 받아왔다. 더구나 확실한 처방약이나 치료법도 없던 채로 말이다. 질환이 아니라면 치료나 처방이 필요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불면증이라는 이름부터 바꿔야하는 건 아닐까? 그 이름도 새롭게 명명해주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불면증은 마음의 병이다. 내 개인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책에 실린 많은 사례들을 보아도 그러하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마음을 고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약만 몸에 쏟아부으니 마음도 여전하고 몸만 고생하게 된다. 약은 누구나 알듯이 오래 먹으면 중독되어 내성이 생기니 더 센 것을 먹게 되어 결국 과다복용을 하게 되니 이로울 것이 없다. 더욱이 부작용만 그득하다니!!

 

불면증을 고치기 위한 일반적인 과정을 읽다보니 우리가 다이어트를 하기 위한 일반적인 과정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과가 좋다는 이 방법, 저 방법을 써 보고 실패자들만 모인 사이트에서 잘못된 정보만 받아들이는 그 과정이 정말 똑같지 않은가? 살을 빼기 위해서는 기초대사량을 높이고 스트레스도 덜 받게 하는 기본적인 행동 변화가 있어야 하듯이 불면증을 고치기 위해서도 마음을 편히 먹고 기본적인 생활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힐링 수면법이라고 하여 10가지를 조목조목 제안하는데 그것을 끈기 있게 지키되 그것에 강박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 10가지는 아직 내가 심각한 불면증이 아니라서 그런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지침들이어서 부담이 되지 않았다. 물론 경제적 부담도.

 

어찌 보면 불면증도 중독인 것 같다. 잠이 안 온다고 스스로를 생각해버리면 그 안에 갇혀 더더욱 잠을 이룰 수 없는. 책에서 말한 것처럼 삶의 즐거움을 불면증보다 우선 순위로 두고, 자연스럽게 잠을 받아들여야겠다.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의사도, 수면제도 아닌 우리 자신이니 스스로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다. 자신의 의지로 마음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무엇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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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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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

 

 

사랑의 기억은 왜 이렇게 단편적인지, 아니 기억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단편적인 것이겠지. 사랑할 즈음엔 그것에 몰입하느라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을테니 그 사랑이 끝난 후에야 주섬주섬 기억의 옷을 입으려해도 완전하지가 않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나'가 프란츠를 만나기 위한 운명적 계시였다. 그게 아마 오십 년 전 쯤인가, 아님 사십 년 전쯤인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과 프란츠르르 만났던 것의 전후관계도 확실하지 않지만  프란츠를 사랑했던 마음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딱히 인생에 풍랑이라곤 없었지만  죽기 전에 뜨거운 '사랑'만큼은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차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프란츠를 만났다. 젊지 않은 나이에 남은 생을 '사랑 이야기'로만 가득 채우려고 했던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무모해 보이지만 결국 그녀는 남은 생을 '사랑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사랑'이 아닌 '사랑의 이야기'로.

 

  동독에서의 삶은 어땠을까? 지금 북한의 삶보다는 나았을 테지만 무척이나 차가운 삶이었을 것 같다. 그런 삶을 뜨겁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중년의 여인에겐 '사랑'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행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는데, 이건 동독에 살던 사람이 통일된 독일에서 살게 될 경우의 심리와 유사할 것 같다. 뭔가 자신감이 없고, 피해자인 것 같고 위축되는 듯한 느낌을 그녀는 서독 출신의 프란츠를 만나는 내내 갖고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택했는데 상대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을 때의 상황에서 그녀는 절대적으로 열등하다. 그가 그녀에게 구체적 사랑을 주기까지의 시간이 그녀에겐 고통이었고, 그것을 돌이켜보는 수십 년 후의 지금도 그가 준 구체적 사랑의 결과물보다는 그 사이의 슬픔과 아픔이 더 큰 이야기가 된다. 결핍된 사람은 어느 한 순간도 구체적이지 않은 사랑에 배고픈 육식 동물이 된다는 것을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그녀 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랑에 미쳐 본 사람은 안다. 상대를 얻기 위해 나 자신도 납득이 안되는 행동들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당신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데 당신은 나를 추상적으로만 사랑한다는 느낌을 가질 때의 불안함이 불러온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말이다.  돌이켜 보면 결코 돌이키고 싶지 않은 명백한 장면들이 분명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매우 용감하다.  그 사랑의 이야기를 오십 년, 혹은 사십 년 혹은 삼십 년 동안 반복해서 되새김질하다니. 어쩌면 지독한 사람이다. 지독한 사랑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날, 그녀는 죽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녀는 죽음을 택하지도, 평온을 택하지도 않은 채 고통스럽게 과거를 되새김질한 것일까. 그렇게 확실하지도 않은 기억들을 부풀리고 변형시켜가면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라는 말을 그렇게까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확인시켜야 했을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이지만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프란츠가 되어 곁에서 안아주고 말을 걸어주고,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고 싶다. 그녀가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으로 남은 생을 다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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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막걸리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양재홍 지음, 김은정 그림 / 보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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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눈에 익다 했더니 채인선 작가의 <딸이 좋다>의 그림을 그린 그림 작가의 작품이었다.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표지에 실린 검은 안경의 소녀의 모습에서 한껏 사랑스러움을 느꼈었는데 이 책 <우리 집 막걸리>의 그림도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보림의 ‘솔거나라’는 우리 전통 문화를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데, 이번엔 내 나이에도 익숙하지 않은 시골의 새참 문화와 전통술인 막걸리 만드는 법에 대하여 알려주어 아이보다 내가 더 호기심을 갖고 보았다. 읽으면서 점점 잊혀지고 있는 우리 고유의 말들과 명칭들에 대하여 알게 된 점도 좋았다. 굳이 설명하듯 쓰지 않아도 그림만 보면 이것이 무엇이고, 저것이 무엇인지 척 알 수 있으니 몰입도 잘 되고 말이다.

 

 <자배기에 쳇다리를 걸치고 체를 얹었어요>

 

막걸리 만드는 방법과 그것을 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해주는 문화,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새참을 먹는 정다운 풍경들이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어쩌면 막걸리를 생산하는 곳이 막걸리 제조 공장이라고만 알고 있는, 그리고 알고 있게 될 아이들에게 막걸리는 원래 집에서 우리 조상들이 두루 즐겨 마시던 술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욱이 요즘은 막걸리가 다시 음주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때가 아닌가. 그런 때에 막걸리의 정체성에 대하여 제대로 알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전반적으로 사실에 기반한 따스한 글도 물론 좋았지만 앞서 말했듯 시골의 따스한 풍경과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이 글과 잘 어우러진 책으로, 최근 읽은 전통 문화 관련 그림책 중에서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종이의 재질도 옛스러우면서도 소박한 막걸리를 닮아 사소한 부분까지도 독자를 만족시켜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보거나 만지고 있으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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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먹나 The Collection 4
알렉산드라 미지엘린스카 외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보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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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의 The collection 작품들은 볼 때마다 느끼지만 그림책 그 이상을 보여준다. 이번 작품 <누가 누구를 먹나>를 보고도 그 생각은 변함없었다. 낯선 이름의 작가와 뜻모를 알파벳들을 호기심을 갖고 책장을 펼치니 우리에겐 생소한 폴란드의 그림책이었다. 제목 역시 폴란드어일 터였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설레임은 나에게만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아들은 '폴란드'와 '바르샤바'라는 말만 듣고 이 책을 보는 자세를 달리 하였으니 말이다.

 

제목과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먹이사슬이다. 꽃을 진딧물이 먹고,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먹고, 할미새가 무당벌레를 먹고, 여우가 할미새를 먹는 등의 과정들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런 반복되는 먹이 사슬의 과정 중에서 적어도 내 눈에 가장 빛나 는 장면은 죽음에 대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아이는 아이답고 깔깔대며 웃었고, 나는 어른답게 죽음의 필연성에 대하여 생각에 잠겼다. 그 차이가 묘하게 좋았다.

 

생명의 죽음은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풀과 꽃과 미생물과 생물을 탄생하게 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그 당연한 순환의 과정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색깔하나 없이 검은 펜으로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도 좋았고, 그 단순한 그림들에게 어우러진 빨갛지만 명료하게 사실만을 드러낸 글도 좋았다. 그 둘 사이에서 느껴지는 생각의 공간도 정말 좋았다.

 

아이들에게 회화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기엔 명화보다도 그림책, 특히 이 책과 같이 그림의 아름다움이 뛰어나고 생각의 공간이 넓은 그림책이 가장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되었다. 아이답게 깔깔 거리던 내 아이의 웃음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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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닷가의 하루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김수연 지음 / 보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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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중에 유리 슐레빌츠와 테지마 케이자부로오가 떠올랐다. 유리 슐레빌츠의 느낌이 더 먼저 들었고 테지마 케이자부로오가 후에 떠올랐다. 굳이 노래를 떠올리면  '섬집 아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기도 엄마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유리슐레비츠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그림에 글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림을 아주 유심히 바라볼 수 밖에 없는데 이 책 역시 글은 첫 장면과 끝 장면에만 나올 뿐 그림으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그림을 유심히 볼 수 밖에 없다. 할머니와 강아지라는 다소 정적인 인물들의 느낌이 어느 바닷가의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면, 갈매기떼라던가 큰 물고기는 역동성과 변화를 느끼게 해 준다. 그로 인해 꿈의 세계로까지 연결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주된 분위기는 평온함인데 그 평온함이 도시에 살고 있는 내가 느끼기엔 참 좋았다.

 

테지마케이자부로오를 좋아하는 것은 역시 그의 판화 그림 때문이다. 얼마나 역동적인지 판화의 매력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작품도 판화 그림으로 되어 있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 평온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배경은 통일되고 여백의 미가 있되 인물에게만 역동성을 준 점 때문이다. 테지마케이자부로오의 판화 그림들이 웅장함과 비장함이 느껴진다면 김수연의 판화 그림들은 평온함과 아기자기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판화 그림의 또다른 면을 보게 되어 좋았다.

 

노래 '섬집 아기'가 떠오른 것은 이 그림책에 나오는 인물이라고는 할머니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눈이 먼 어부 할머니. 그러하기에 할머니와 강아지의 풍경이 평온하기는 하되,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그런 느낌이 이 노래를 떠올리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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