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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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몰아 읽는 중인데, 이 작가는 그렇게 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패턴이 너무 비슷해서 좀 지겹다. 처음엔 감탄했던 부분인데 이렇게 되어서 나도 안타깝다. 잘못된 독서법이었다. 가끔 생각날 때 작품을 돌아가며 읽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고양이]나 [문명]보다는 [기억]이 더 재밌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권을 다 읽었는데 책장을 덮으며 2권에 무슨 더 할 말이 남았나? 이런 의문이 든다. 보통은 기대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지...쏘리 베르나르, 이번 독서를 계기로 당신을 내 맘에서 좀 지워야겠어요. 그래도 당신이 하는 말은 틀리지 않았기에 가끔은 만나려고요^^;;

거짓을 듣는 데 익숙해진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진실을 의심하게 마련이지. 하지만 끈질기게 설득하면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들 수도 있을 거야. 나는 저 아이들이 생각에 게으른 사람이 되지 않게 스스로 생각해서 자기만의 의견을 갖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 - P266

나한테 111번의 전생이 있었다는 것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을 해결하고 내게 정신의 안식을 주는 111명의 동료가 있다는 의미예요. - P367

그들이 어떤 담론을 내세우든, 어떤 옷으로 자신을 위장하던, 그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근거로 판단을 내려야 해요.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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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1-26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 권 읽고 지웠는데요. 😅

그렇게혜윰 2022-01-26 16:37   좋아요 0 | URL
전 파피용 읽고 좋았거든요. 사람들이 싫어하는 지점이 인식되었지만 그래도...그런데 몰아서 읽으니 피로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2-01-26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오래 전에 <개미> 읽고서
와우 대다나다 싶었는데...

그후에 요상한 매너리즘에 빠
진 듯해서 끊었답니다.

그렇게혜윰 2022-01-26 17:56   좋아요 1 | URL
몇 년에 한 번은 읽을 만 한 거 같아요 ㅎㅎㅎ

singri 2022-01-26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문명도 기억도 읽기전이긴한데
무슨 이야기인지 확 오긴 하네요ㅋ

예전에 타나토노트때 이런책이 있다니 하다가 아버지들의 아버지때 막 집어던지고 싶고 그랬어서

이후에는 또 집어던지나 하며 읽긴합니다
이 마음은 뭘까요?ㅎ

그렇게혜윰 2022-01-26 21:27   좋아요 1 | URL
순서대로라면 문명보단 고양이가 먼저인데 전 고양이 세계에 공감을 못 해서 둘다 좌절요 ㅠㅠ 가끔 읽어야 좋은 작가인 걸로 ㅋ
 
고정욱 삼국지 3 : 원소의 참담한 몰락 - 주석으로 쉽게 읽는
고정욱 엮음 / 애플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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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어떤 사람일까?

책에 나온 것처럼 큰일을 이루고자 다방면으로 애썼고 그만큼 재능이 따라준 사람이었으리라.

작가 고정욱은 삼국지 인물 중 조조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유인 즉슨 책에 인용된 내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간언을 듣는 리더였다는 점 때문이다.

정관정요에 따르면 당태종 이세민은 간언을 들을 때 자신을 비우고 들었다하는데 나는 조조가 그 정도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조조는 인재를 아꼈고 그 인재를 곁에 두기 위해 그들의 말을 따랐다고도 여겨진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나의 평가이고, 그 점은 리더에게 중요한 요건이다.

고정욱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이끄는 리더‘로서 이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 원소는 몰락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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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1-2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세민은 위징 같은 신하의 직
간을 받아 들여 영명한 군주가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조조는 시대를 잘 만난 간웅
으로 인재 욕심이 대단했죠.

원소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데리고 있던 전풍이나 심배
같은 모사들도 제대로 활용을
못해 결국 망했다는...

그렇게혜윰 2022-01-26 17:57   좋아요 0 | URL
정관정요 읽다보면 이세민 참 괜츈해요 ㅎㅎㅎ ‘자신을 비울‘ 줄 아는 사람이라니 본받고도 싶고요.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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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이틀 째 독서모임. 이건 3년째 하는 모임이라 포기할 수 없다. 그런데 책이 쉽지 않아 고생을 했다. 읽으면서도 알았다, 이 글은 무척 아름다워, 이 책의 구성은 너무 매력있어.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이다. 문장은 아름답고 한 사람의 생을 다섯 번의 죽음으로 나누어 구성한 방식은 여전히 매력있었다. 문제는 5권+막간극으로 구성된 각각이 챕터들을 집중력있게 읽을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내가 일을 너무 많이 벌여놔서 그런건가 싶기도 했는데 오늘 모여 보니 다들 한 번에 쉽게 읽지는 못한 듯 하다. 


그래서 평균 별점은 4점이었고 토론이 끝나고 난 후에 0.2점 정도 올라갔다. 토론은 발제자의 제안에 따라 내용, 구성, 언어로 나눠서 진행되었다. 첫번째 죽음은 생후 여덟달의 돌연사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그녀의 부모와 모의 모, 모의 모의 부모는 삶이 달라졌다. 두번째 죽음은 그녀의 수동적 자살이다. 어머니의 긴급 행동으로 목숨을 건진 그녀가 사랑과 외로움 때문에 목숨을 스스로 끊다니 이때 이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그래도 둘째딸이 있어서 다행이었을까?

그녀는 첫째 아이를 한줌의 눈만으로 지옥에서 다시 데리고 나왔고, 일생동안 그것에 대한 보상을 치르며 살아왔는데, 이제 새삼 밝혀진 진실은, 인간의 대부분의 일에는 아예 가격이 없다는 것이다. (141)


세번째는 공산당에 입당한 그녀가 그녀의 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말을 바꿔가며 노력을 기울이지만 결국 그녀도 체포되어 죽게된다.  사실 내가 가장 집중하지 못한 챕터이기도 했는데 어떤 사람은 이 챕터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이 챕터는 사상의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건이 흥미롭지 않더라도 언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인간의 행동의 실제보다 그것을 담은 언어의 중요성이 더 크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네번째 죽음 실족사인데 그녀는 그런 죽음이 수치스럽다고 했다. 그래, 그녀답지 않다. 죽어서도 억울할 죽음이다. 다섯번째 죽음은 아흔을 갓 넘겨 자연사한 것이다. 아들의 시점에서 이제는 자신과 멀어진 전쟁의 시대, 종교의 탄압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들어있다. 

인간이 무엇으로 인간을 알아보는지, 난 잘 모르겠다. (285, 300) 이 문장을 읽으며, 인간이 인간을 무엇으로 알아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 


구성 면에서 이런 식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매우 매력을 크게 느꼈다. 화자가 이래저래 바뀌는 것이야 어려운 걸 내세우는 소설들의 특기이지만 한 사람의 생을 마감시키고 '만약에 그때 죽지 않았더라면'이라고 다시 생을 이어가는 다섯 번의 삶을 다룬 것이 내겐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분들도 대체로 큰 매력을 느꼈지만 더 흥미롭게 진행되는 소설도 있다고 추천을 받았다. 번역이 안 되어 못 읽을 뿐....각각의 생 사이에 '막간극'이라고 예고편처럼 들어가있는데 어떤 분들은 코스요리의 입가심이라고도 했고, 술을 바꿀 때 마시는 물이라고도 했다. 어떤 이름에서든 매력적인 구성인 것은 맞는데 분량 면에서 나는 좀 많게 느껴졌다. 문장은 간결했을지 모르나 문단은 결코 간결하지 않아서 읽기에 버거웠던 것 같다. 


소설에서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그녀도 '그녀'고,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고, 그녀의 증조 할머니도 '그녀'다.  '어머니'라고도 부른다. 물론 아버지 쪽은 '그'나 '아버지'이다. 그녀가 공산당에 입당하면서 겨우 H라는 이니셜이 붙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호프먼 부인이라 불린다. 아들은 이름이 있지만 자주 불리지는 않는다. 아들의 아버지 역시 이름이 없다. 김춘수의 '꽃'처럼 불려야 이름이 불려야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럼 이름이 없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름이나 언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저 누군가의 삶이 있었고 그 삶은 결코 어느 한 순간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아마도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막 지나온 그 순간이 아니라, 모든 순간일 것이다. (149)

라는 말처럼 우리는 어떤 세계를 특별한 사건으로 기억하고, 누군가의 삶 역시 타인에 의해 규정된 어떤 사건이나 기록으로 기억한다. 호프만 부인의 삶이 마지막 죽음을 제외하고도 네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 사이를 들여다 보면 어느 삶 하나 사연이 깊은데 그녀의 삶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소설에 대한 느낌을 한두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워 버벅거렸다. 누군가의 삶이 한 두 줄로 정리되지 않듯, 이 소설도 그랬다. 원제보다 뛰어난 제목이 여운이 남을 뿐이다.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결코 아니다. (24, 109)

세계 전체는, 그녀의 삶이 이제 종말을 맞게 되었으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녀가 살아 있을 수도 있고, 또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세계 전체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149)


그냥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 그 모든 순간이 세계를 만들어가는구나. 누군가의 삶은 더 크고, 누군가의 삶은 더 초라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누군가'로서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어떤 면으론 허무함을 어떤 면으로는 생의 의지를 느끼게 한다. 이야기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 어쩌다보니 유대인에 대한 리뷰가 거의 없는데 우리는 꽤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었다. 또한 심플한 원제에 '저물 때'라는 말을 붙인 제목은 무척 아름다운데 동시에 혹시 본문에도 의역이 많이 들어간 것은 아닌가 우리는 좀 의심하며 오늘 모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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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1-2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노우, 읽다만 책 ~!

그렇게혜윰 2022-01-26 17:57   좋아요 0 | URL
멋진 책인데 진도가 좀 안 나가긴 해요 ㅋㅋㅋㅋ
 
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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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 가난의 문법

제목이 좋았다. 구성도 좋았다. 학자의 눈길을 따라 읽으며 내 마음과 머리의 많은 부분을 건드렸다. 그 점이 좋았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이런 의문을 가지고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책을 선정할 때 관여한 이로서 이 책을 보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구성원들이 고마웠다. 대부분은 작가가 사각지대의 이야기를 눈에 잘 띄게 드러내어 준 것에 반가움을 표현했고, 어떤 분은 이 사람의 연구가 연구로서 좀 시대에 뒤떨어지고 부족하지 않나 의문을 품으셨다. 그건 그만큼 이 분야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라는 의견에 공감했다.

어느 세계의 삶이건 우리가 그들을 동정이나 연민, 폭력적 시선으로 볼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상이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폐지를 줍는 가난한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재정비해야했다. 가난이 곧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작가의 문법 재정비의 시각처럼 우리는 대상을 바라보는 문법 역시 고쳐먹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에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고 있으므로. 다만, 그들의 고됨을 개인의 삶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느꼈다. 어떤 분은 지금의 복지도 충분하다는 의견이었으나 나는 그것이 충분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내 부모를 보아도 그렇고 주변을 보아도 그렇다. 만일 그들에게 목돈이 필요한 병에 걸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들은 기댈 곳이 자식밖에 없다. 그렇게 가족 내에서 노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가난은 생존을 의미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점에서 우리의 미래는 풍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살자는 누군가의 말이 귀에 남아 있다. 그렇다. 지금의 노인들은 사회로부터 자식과 나라를 위해 자신을 갖다 바치면 그것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산 이들이다. 그런데 세상이 급변해 그들에게 갈 것이 별로 없으며 자식들은 그들의 삶만으로도 벅차다. 그건 자식들이 불효자여서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됐다. 그러니 이것이 가족 내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나라의 제도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염두에 두자. 우리는 우리와 함께 사는 이들이 가난을 벗어나도록 더불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내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내 부모에게 그다지 좋은 딸은 아닐 지라도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이고 싶다. 가족의 문제로 치부했을 때 좋은 딸이 아닌 나는 노인 부양에 충분하지 않지만 좋은 사람으로서 사회 제도를 마련하는 데에 동의한다면 내 부모의 삶은 지금보다 나을 것이다. 이건 개인도, 가족도 저들끼리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연대에 대하여도 생각해 본다. 노인이 인구의 절반이 되는 시대가 곧 올 텐데 지금의 노인들은 태극기를 들고 공주마마를 외치는 것 외에 어떤 어떤 연대를 하고 있을까? 그들에게 다양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로당마저도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면 그것은 연대가 아니다. 마을의 정자와 같은 연대,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이대로의 도시는 곤란하다. 더 화려한 도시로 이사를 왔는데 우리 엄마는 말 붙일사람이 더 없다. 아무도 내 아들이 돌아다녀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나에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이 도시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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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1-23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들 뭐 읽어? 다 읽었어요. 좋아요!! 다음에 보라색 표지로 2탄?

그렇게혜윰 2022-01-23 16:32   좋아요 0 | URL
어머 감사해요♡ 둘째는 책을 멀리합니다 ㅋㅋㅋㅋ
 

최근에 만난 지인이 묻는다. "뭔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요?" 대한민국 평균으로 보자면 분명 많이 읽는 편이긴 하지만 출판업을 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많이 읽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저 질문이 좀 의아했다. "내가 너무 많이 읽나?" 그런데 알라디너나 책 관련 카페에 보면 한 달에 30권을 읽는 사람도 있기에 그런 생각은 넣어두었는데 이상했다.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SNS의 피드가 온통 책 이야기라 그런 거겠거니, 그래서 남들 눈에는 나도 매일 1권의 책을 읽는 사람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난 그냥 좀 많이 읽는 '편'인 사람일 뿐이다. 대한민국 평균을 알기에 적게 읽는다는 겸손은 떨지 않는다. 대신 책 피드도 너무 자주 올리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 눈을 크게 의식하는 편은 아니지만 또 내가 1일 1책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부담스러우니까. 그런 면에서 알라디너로서의 내 모습이 어쩌면 가장 나 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지만 읽는 모습이 잘 안 보이는^^ 


최근에도 그렇게 읽었다. 기억력이 점점 떨어져 책의 내용은 고사하고 책 제목도 며칠 지나면 까먹는 판이라 독서기록 앱을 들춰가며 간단히나마 정리해 본다. 썩 괜찮은 책들을 읽은 것 같은데 기억을 못해서야 원....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이 책의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을 봤을 땐 외국의 소설이나 외국 여성 작가의 삶을 다룬 책이겠거니 하고 단순하게 '궁금'해했다. 그러다 시사인 작년 마지막 호 <행복한 책꽂이>에서 이 책이 상위에 랭크된 것을 보고 그제야 알았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다룬 책이라는 점을. 작가 역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이 책은 처음 학술적 목적을 두었으며 수많은 인터뷰의 결과물이자 연대의 이야기라는 것을.


읽으면서 내내 미안했다. 농담삼아 칭했던 조울증이나 우울증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위협하는 문제일 수도 있었는데 그저 나의 감정기복을 설명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표현했었다. 그런데 범위를 넓게 보면 실제로 나는 가벼운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20대 내내는. 산후 우울증까지 합친다면 30대 내내도. 지금은 나를 향했던 화살을 남에게 던지는 중이다. 그렇다고 남을 해하는 건 아니니 놀라지 마시길. 하고 싶은 말을 원래도 잘 하는 편이었지만 가족에게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자꾸만 무너지게 하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내 경우는 그랬다. 그래서 이젠 가족들에게도 하고싶은 말을 그냥 한다. 심지어 연도 끊었다. 그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래도 남 살리자고 내가 죽을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내내 자신을 정당화한다. 언젠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이 어떤 때에는 나를 보호하는 칼이 되기도 한다. "나를 아프게 하는 건 나 자신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고 했던가.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자부심이 들었다. 나를 비롯해서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적극적으로 노오력한다. 그 점이 너무 대단하다. 그건 노년의 가난한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건 다음 책에서.





  [가난의 문법], 소준철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생각했다. 노인들은 차라리 시골에서의 삶이 더 편할 지도 모르겠다고. 우리 엄마는 딸내미의 독설과 사위의 눈칫밥을 먹으며 따신 곳에서 따신 물 쓰고 따신 밥 먹고 살고 있다. 돈은 벌지 않으며, 용돈을 자식에게 받아 아껴가며 산다. 행복하냐 물으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손주들이 어릴 땐 그들이 자신에게 기대는 모습에 행복했지만 이젠 자신의 몸이 노쇄하여 손주들이 기대기는 커녕 본인 몸 하나도 건사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애지중지 키운 손주놈은 사춘기라고 쌀쌀맞기가 그지없다. 그나마 둘째를 늦둥이로 낳아서 그 아이 보며 살고 계신다. 이 책에서 몇 번이고 이야기하는 '노인의 쓸모'에 대한 부분이다. 반면 시골서 농사를 지으시는 시어머니는 고된 농사일과 가사일을 하며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집에서 살면서도 자신이 자식들 쌀도 주고 고추가루도 준다는 데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동네에 나가면 몇 십 년간 알고 지낸 사람들과 말도 나누고 밥도 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도시의 노인은 돈이 없으면 다니기도 힘들다. 그래서 그 돈을 벌기 위해 폐지도 줍고 학교 앞에서 교통 봉사도 하고 그런다. 그것도 몸이 건강해야 하지 우리 엄마는 혼자 걷는 것도 힘든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일은 젊은 날 아빠 몫까지 쎄가 빠지게 했고 그 결과 걷기도 힘든 게 아닌가! 


윤영자라는 가상의 인물, 그러나 도시의 여성 노인을 대표하는,을 통해 가난한 도시 노인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임을 드러내는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무척 설득력이 있다. 앞의 책과 마찬가지로 학술적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역시 노인에게는 돈 걱정 없이 자신의 쓸모를 생가할 수 있도록 사회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지금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의 문제이다. 내가 연금을 타박타박 받는다고 외면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더불어 살아야 할 사람들의 문제이다. 우울증에 걸린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같이 사는 남자가 신혼 때 차 앞을 가로막는 리어카에 대고 했던 말에 내 오만 정이 다 떨어졌던 것을 보면 세상에 당장의 이익이 보이지 않는 연대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제목이 또다시 떠오른다. <부끄러움을 가르칩시다>


                                   

[테레즈 데케루], 프랑수아 모리아크


이 책은 독서모임 덕분에 알게 된 책인데 소설을 먼저 읽으면 영화가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영화를 먼저 보았다. 오드리 토투, 너무 아름다운 배우다. 일단 영화에서 한 번 울었다. 인간굴레이자 새장이었던 시댁의 식구들에게 그래도 노오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피골이 상접한 얼굴 위에 하얗게 분칠을 하며 시누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테레즈의 심정을 느껴보았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처지를 생각하니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래도 영화에서는 테레즈를 사랑하는 베르나르가 느껴져 그에게 안쓰러움이 생겼지만 소설에서 테레즈는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 시대의 여성들은 다 그렇게 가족의 한 사람으로 채워지기 위해 선택되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삶을 견뎌오다 툭!하고 못 견딤 세포가 터져나오면 그때부턴 본인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외엔 다른 생각이 없는 걸... 내가 죽거나 그가 죽거나...


테레즈 주변에 하미나 작가 같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이 있었다면 그래도 테레즈는 멋진 다른 방법으로 굴레를 벗어났을 지도 모르겠다. 안은 그런 사람이 못 되었고 테레즈는 혼자였다. 파리에 간 테레즈는 자유롭겠지만 그래도 외로울 것이다. 그 점이 1920년대가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결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주어진 불합리한 삶에 적응이 아닌 진화를 시도한 여성들이 있어서 이 더딘 변화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남편을 독살하려는 시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방법이 아니라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나가고 싶다는 그 마음.


모임에 나온 한 회원이 이 소설 속 여주인공이 왜 저런 식으로밖에 행동하지 못하는지 답답했다고 후감을 말했는데 나는 그게 2022년이어도 저런 식이면 매우 적극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여자들의 삶은 아주 간혹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주 더디게 바뀌는 것이니까. 100년 동안 여자들의 삶은 얼마나 바뀌었을지 돌아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여자들이여, 미쳐도 똑똑하게 미치자! 내 처지가 곤란하다고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을 내뱉지 말자. 더 잘 살도록 서로가 잘 살피자. 우리 엄마를 딸인 나는 독설로 공격하지만 주변 손주 친 엄마들이 예뻐해주는 것처럼 주변의 여자들을 잘 살펴주자. 미안해 엄마, 나도 옆집 할머니를 잘 살펴줄게...




어쩌다보니 최근에 읽은 책 중 여성의 삶을 다룬 책이 많다. 내가 여성이기에 그건 어쩔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읽는 중인 책 중에 한국 남성 소설가의 소설집이 한 권 읽는데 작품의 재미나 기법 면에서는 썩 괜찮을 지도 모르지만 소설 안에 흐르는 여성을 묘사하거나 여성을 대상화하는 표현들과 생각들이 매우 거슬려서 억지로 읽는 중이다. 사실 집어던지고 말까 싶기도 한데 진짜 끝까지 그런가 보려고 읽는다. 10년 전의 소설이다. 지금 남성 작가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변화가 고맙다. 연대는 여자들끼리 하는 게 아니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하면 되는 거니까. 군대 문화에 대해서 남자들만 연대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도 같이 알고 공감해주면 서로 창을 겨누지 않을 텐데, 집안에 키우는 사춘기 녀석 하나도 요즘 친구들이랑 무슨 대화를 하는지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남자 셋에 여자 둘, 사는 집에서도 성별 및 연령 간 연대가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난 멋진 여성이니까 가랑비에 옷 젖듯 접속을 시도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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