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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소 소설 ㅣ 대환장 웃음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20년 5월
평점 :
나는 히가시노의 팬이기도 하고 안티팬이기도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어떤 소설은 무릎을 딱 치고 가슴을 탕 때리는데 또 어떤 소설은 굳이 이걸 책을 냈어야 하나 싶은 책들도 적지 않다. 내 경험치로는 5:5이다. 가가 형사 시리즈가 전자이고 <새벽 거리에서> 같은 작품이 후자라고 할 수 있겠다.
추리물이 아닌 작품들은 그 중간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따지자면 4:3:3정도로 정리하면 되겠다. 그 유명한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녹나무 파수꾼>은 따뜻하고 신선했다. 지금 읽은 <흑소 소설>은 시간 때우기 정도로 괜찮았다.
<독소 소설>과 <흑소 소설>이 세트로 있던데 전자는 안 읽어서 모르겠지만 후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흑소란 실소 아니면 썩소겠구나 싶다. 영어로 블랙유머라고 한다면 그에는 좀 못 미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체로 소설의 뒷맛이 물보다는 약간 진하지만 딱히 다른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맛은 아니랄까?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매력이 없지 않다. 문학계를 비꼬는 듯한 작품 4개를 맨앞에 연달아 배치하는 구성은 일단 이 책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했다.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 세계의 이면을 보는 건 씁쓸하지만 어느 사회나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하지만 블랙 유머라기엔 조롱이 더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내가 조롱하는 듯한 글을 별로 안 좋아한다.
<너무 잘 보여>라는 작품은 요즘 같이 지구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때에 읽으니 마치 요즘에 쓴 소설 같지만 이 소설이 10년도 더 된 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구 환경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구나 싶어 역시 쓴맛이 났다. 이 책에서 블랙 유머라고 칭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이 책에선 이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미세입자들이 눈에 보인다면, 그 미세입자들이 다양한 화학적 산물이라면 너무 끔찍할 것 같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모든 것이 내 주변에 맴돌고 있다니 쓴 맛이 강하다. 지금 내 옆의 물통 역시 플라스틱이니까....
그 외 작품들은 다 고만고만했다. 가벼운 유머 소설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잊을 만 하다. 위에서 거론한 ,너무 잘 보여>만 빼고. 하지만 히가시노게이고가 세상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구나 감탄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으니 읽어볼 만 하다. 하지만 동시에 히가시노게이고의 작품에서 심심찮게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부분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