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이 길었던 탓에 유난히 길어진 2학기.

보통 11월 중순이 넘으면 올해를 마무리 하는 느낌이지만 여전히 한창인 2학기.

10월에 학예회를 끝내고 나니 이제야 조금씩 정상화 되는 교과 시간. 그 짬짬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학예회는 몰개성적이다.

 

지금은 아이들과 역사 공부를 하는 중이라 역사 동화 [마법의 두루마리]를 읽어주고 있지만 그래도 짬짬이 읽어주거나 교과에 활용하기엔 그림책만한 것이 없다.

 

1. 국어시간 우리말 표기법을 가르치면서 읽어준 책들.

 

  단원 도입을 위해 시작하며 읽어주고는 예고 없이 2인1조로 받아쓰기 시험을 보게 했더니 다 맞은 팀이 한 팀도 없더라는......덕분에 맞춤법 교육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었지만 요즘 아이들 참 맞춤법 많이 틀린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그와는 별도로 이 책에 등장하는 '엄마'가 우리 옛이야기속의 엄마의 모습과 많이 달라 신선하면서도 아이들의 공분을 샀다. 엄마는 왜 그랬을까????

 

 

  표지가 노래서 금방이 금은방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잠시'의 뜻이었다는^^;;

  이 책은 '안/ 않', '되/돼'를 배운 정리 단계에서 그 부분을 플래그잇으로 가리고 맞혀보게 하며 읽어줬는데, 여유가 생긴 토끼의 모습에 아이들도 잠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도. 너무 바쁜 일상이다.

 

 

2. 말 그대로 짬이 나서 읽어 준 그림책

 

 경상도 출신의 리얼 사투리를 백분 활용하여 읽어준 그림책 메리. 아이들은 동네 개들의 이름이 모두 '메리'라는 것에 자기 할머니댁 개 이름까지 그렇다며 공감을 했다. 메리 아니면 해피지....

 

 새끼 개 세 마리를 모두 주고 났을 때 아이들은 너무 속상해했다. 특히 동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들이 할머니를 원망하기도 하였다. 메리든 사람이든 대상에게 공감하는 것, 그게 내가 올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라 그 모습이 참 예뻤다.

 

 

3. 현장학습후에 읽어준 그림책들

현장학습 코스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다보니 역사 지식 그림책 몇 권을 읽어줬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기엔 [서울 이야기]가 좋았고 구체적 자료로 보기엔 [한양1770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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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을 살았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도 더 힘들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느낀다. 품성의 차이가 아니라 가치관의 차이. 10년 째 나도 독립을 꿈꾸며 남편과 아들들에게 늘 독립을 꿈꾼다고 이야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김숨의 소설집 [당신의 신]에 실린 <이혼>이라는 단편의 마지막 문장에 눈을 멈추고 자꾸만 되새긴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많은 여성들이 신이라는 표현대신 엄마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남편을 나무라곤 한다. "난 당신의 엄마가 아니야."라고 말이다. 많은 남편들은 아내를 자신의 엄마인 양 신인 양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많은 아내들은 공감할 것이다. 이 책, 너무 읽고 싶다.

 

 

 

 워낙에 중국사를 좋아하기에 구입했다만 다른 목적도 있다. 남편에게 권하기 위해. 남편은 자신의 말과는 달리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다행히 남편도 이 책을 보더니 읽어보겠다고 먼저 말한다. 중국사에 나온 여러 인물들을 보면서 그도 많은 생각을 하게될까? 책을 읽을 때 나와는 무척 다른 관점으로 읽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남편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연애할 때 그는 서점에 들르거나 책을 사서 오곤 했는데 그 이후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보았나 보다. 그는 참 행복한데, 나는 왜 점점 행복과 멀어지는지 모르겠다.

 

 

  어제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중 사람들은 어떤 즉흥적이고 천재적인 사람을 좋아한다는 내용(정확한 문구는 기억할 수 없다.)이 있었고 그것에 공감했다. 성실함이 훌륭한 가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나 역시 어떤 즉흥성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즉흥적인 것에서 발현되는 아름다움을.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라 이 점에서도 우린 많이 다르다. 피터 레이놀즈의 마리솔이 드디어 그림을 그리는구나! 싶어 반가웠고 그 그림이 마리솔만의 아름다움이라 더 좋았다. 피터레이놀즈의 창작 시리즈는 강추!

 

이번에 관심을 가진 신간 도서들이 자꾸만 남편과 나의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서로의 차이점에 주목하고 남편은 서로의 공통점에 주목한다. 그로 인해 나는 좀더 불행하고 남편은 좀더 행복하다. 이 간극을 무엇으로 메꿀 것인가? 나의 독립은 최소한 17년 후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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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1-0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김숨 인용하신 문장이 정말 ... 저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그렇게혜윰 2017-11-17 15:5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결혼하지 마소!!!!ㅋㅋㅋㅋ
 

5학년 아이들도 정말 그림책을 좋아한다. 아니, 읽어주는 책을 보고 듣는다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짜투리 시간에 읽어주기에 그림책이 참 좋은데 긴 책들의 경우 끊어서 읽어주곤 한다. 1학기 때 읽은 책들은 미처 기록할 겨를이 없었지만 2학기엔 가끔이나마 정리해서 기록해 두고자 한다. 책은 주로 학교 도서실에서 빌려 와서 읽는데 우리 학교 도서실은 사실 보유장서가 적어서 아쉽다.

 

 

#씨드북 그림책은 언제나 진리!

표지가 시원해 보이고 조용하기 그지 없어 보이는 물고기가 수다쟁이라는 설정이 재밌어 보여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이 작가가 유명한 그림작가인 듯 국내에도 세트로 구성된 책이 있을 정도였다.

 

이 책을 읽어주는 즈음 한 아이가 방학 과제로 한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강아지 언어'였다. 강아지가 내는 소리가 다 뜻이 있다는 것인데 이 책의 물고기(핀두스) 역시 내뿜는 거품 소리로 의사를 표현하고 또 그것을 레미가 분석하여 이해한다는 설정이다. 아, 한번 따라해보고픈 프로젝트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서문이 무척 인상적인데 때문인지 이러한 설정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이다움에 대한 그리움.

"어린 시절은 나의 고향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자주 들르곤 한다."

 

 

 

 이 책도 정말 재밌게 읽었다. 2014년 라가치 수상작이라는데 정말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지 가득 다양한 꼬리들이 독자를 꼬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 하고 다양한 일상적 장면의 사람들에게 각양각색의 꼬리들이 붙어있는 어쩌면 익숙하고 어쩌면 낯선 그림들이 이어진다. 처음엔 좀 어리둥절하지만 마지막을 읽을 즈음엔 사람에게 꼬리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서 더 좋은 점은 자신의 꼬리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혼자 읽기 보단 같이 읽어 더 좋은 그림책이었다.

 

 

 

 이 책은 지난 번에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좋아서 사야겠다 해놓고선 미루다가 이번엔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작가에 대한 믿음은 그가 쏟아내는 질문들을 통해 굳건해졌다. 결국 나답다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사소하고도 익숙한 질문들을 연이어 읽는 와중에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는 무척 다른 사람일 것이다."고. 아이들에게도 여운이 남았지만 자기 책으로 두고 여러 번 이 질문들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는 맘에 안들지만 <생각하는 숲> 시리즈는 참 좋다.

 

 

 

#노인경 작가의 그림책을 적잖이 봤었는데 이 책은 미처 알지 못했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이라 그런 모양이다. 내가 궁금해서 빌렸다가 짜투리 시간에 읽어주었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있다면 10분만 할애해서 읽어주는 것도 좋았겠지만 이날 우리반엔 생일은 없었다^^

 

 

 

 

요즘 우리 반은 온책 함께 읽기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있다. 독서 감상문도 쓰고 여러 가지 배움도 있었지만 이달부턴 월말에 북콘서트를 하려고 한다. 일단 퀴즈와 연기는 지원팀이 있어서 확보했다. 모든 아이들이 1가지 발표는 하려고 하는데 활동지나 배움 위주로 하는 것 보다는 이게 더 즐겁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대가 된다. 그놈의 학예회만 아니면 더 재밌게 할텐데 정말 적폐다! #학예회_젤_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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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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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신기하게도 늘 밝은 이야기는 아닌데도 무거운 느낌이 들진 않는다. 이번 소설 [느빌 백작의 범죄]도 마찬가지인데, 사실 이전에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다가 이 책을 통해 '아! 아멜리 노통브를 내가 이래서 좋아했구나!'하며 다시금 서가의 아멜리 노통브 책들을 보며 웃었더랬다. 다만 오스카와일드의 <아서 새빌경의 범죄>를 읽으려고 단편집을 챙겼는데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결국 그 작품은 읽어보지 못한 채 리뷰를 쓰는 점이 무척 아쉽다.

 

한때 골프클럽 라벤스타인을 화려하게 운영했으나 현재는 쇠락한 느빌 백작의 플뤼비에성에서의 마지막 파티를 준비하던 중 막내딸 세리외즈를 보호하던 점쟁이 포르탕뒤에르 부인은 느빌 백작에게 어마무시한 예언을 한다. "그 잔치에서 백작님은 초대된 손님 하나를 죽이게 될 겁니다." 이런 예언을 듣고 마음 편할 강심장이 어디 있을까?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느빌 백작 역시 그말을 믿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믿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인데 세리외즈마저 그 대상을 자기로 해달라는 요청을 하니 정말이지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마지막에 느빌 백작이 세리외즈에게 말하듯이 그는 정말 잘 준비하고 싶었던 파티를 그 생각으로 인해 심적으로 무척 괴로운 나날들을 보낸다. 비록 잔치는 여느 때보다 성대하고 손님들 역시 기쁘게 보낼 지라도.

 

결국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아무 일도 없다면 소설에서 점쟁이는 필요조차 없는 인물이 될 테니 초대받은 손님들 중 한 사람은 느빌에 의해 죽게 된다. 그런데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 말은 점쟁이의 예언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하긴 그 말의 꼬투리를 세리외즈도 잡아 자기를 죽여달라고 한 것이니만치 아멜리노통브는 말의 예민함을 잘 아는 작가이다. 과연 느빌은 손님을 어떻게 죽이게 될까?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답게 이 작품의 결말 역시 유머로 마무리된다. 어찌 보면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만족할 만한 결론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무척이나 약한 것이라 누군가가 조금만 흔들어도 쉽게 무너지곤 한다. 느빌 백작의 입장이 되면 누구나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흔들리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자꾸만 세차게 흔들어대는 세리외즈라는 속삭임에 반응하는 느빌 백작의 심리 상태를 통해 내 마음의 두께도 그리 견고하지 못함을 깨닫는다. 느빌이 그렇게까지 몸부림치지 않았어도 일어날 일은 다 일어나고 그것에 대하여 그가 할 수 있는 결국 아무 것도 없음을 부정하고 싶으면서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없이 흔들린다. 매일 매일 그렇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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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오직 두 사람>)이란 건 뭘까? 남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는 둘만의 매커니즘으로 그 둘의 삶이 연명되는 것? 아니 그 둘조차도 서로의 언어를 불신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속되는 관계? 그게 뭘까? 그게 뭘까? 계속 생각해 보았다. 오직 이 소설집과 내가 느꼈을 어떤 어둠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읽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김영하의 소설을 만나는 것은 분진처럼 내 안에 가라앉아있는 어떤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렇게 이 소설들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오래 전 일이 생각이 났다. 아마, 나도 아주 찰나였지만 그런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던 것도 같다. 꼭 현주와 아빠의 관계처럼 고구마를 먹은 정도의 갑갑함은 아니었고 상대와 교감이 깊지 않아 금세 거기에서 빠져나왔었지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속한 관계 속에서는 그 관계의 어둠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소멸을 전제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가 되는. 우중충한데 왜 자꾸 여기에서 생각이 머무르는 건지 모르겠다. 그게 소설의 목적이라면 이 소설은 성공한 건가?

 

가장 묵직하게 읽은 소설은 [아이를 찾습니다]였다. 도대체 삶을 살게 하는 힘은 무엇에서 오는 것인지, 아이를 잃지 않고 아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윤석은 더 '잘' 살았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삶은 배신의 연속이고 그 배신이 대체로는 삶을 무너뜨리지만 때로는 그 삶을 지탱하게도 한다는 것을 윤석의 삶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한없이 무너지던 그때에도 죽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었구나. 지나간 남의 삶에서 이렇듯 나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삶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데 이토록 평범한 내가 그 삶에 일부 있다는 것, 소설을 읽을 때마다 신기하다. 어쩌면 모든 소설과 나는 '오직 두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옥수수와 나]를 읽으면서는 '내' 무엇이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란 본디 그런 것인데 무엇인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크게 중요할까, 혹은 내가 무엇이든 보는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의 본질일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왜 무엇을 어떻게 보려는 일 보다도 무엇이 되려는 데에 더 애를 쓰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런 생각은 [최은지와 박인수]에서도 들었고, 더 나아가 [신의 장난]에서는 제한이 없는 상황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저마다의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소모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한심함이 들었다.  우울만이 희망이라는 정은의 말에 백 프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살다보면 너무 밝음만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현듯 그것이 너무나 불균형하다고 느껴졌다.

 

김영하의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왠지 제일 처음 그의 소설집을 읽었을 때가 떠올랐다. 내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었을 때 당시의 남자친구는 몇 장 읽어보더니 작가더러 변태냐고 물었었다. 지금의 소설이 그때처럼 하드코어적이진 않지만 최근에 읽은 소설들보다는 초기에 읽었던 소설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20대의 나와 이제 막 40이 된 내가 다시 만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해맑았던 때는 30대인 것 같으니 아마 소설이 아니라 내가 변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20대 초반 사진으로나 보던 작가님을 TV에서도 수시로 보더니 급기야 얼마 전엔 게릴라 사인회와 강연에서 초근접으로 뵈었으니 20대의 팬심과 40의 팬심이 만난 건 확실하다. 사인받으러 챙겨가느라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그 책들이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초기작을 다시 읽어보자! 그때도 그랬듯 지금 이 소설들도 내 삶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으니. 그땐 큰 균열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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