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선생님이 밴드에 좋은 소식을 하나 올려주셨다.

도봉구청에서 고은 시인이 김수영 시인에 대한 강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도 괜찮고 해서 가겠다고 하였다. 독서 모임 선생님도 몇 분 오신다고 하여 강연 끝나고 번개 모임을 하자고 하였다.

방학 동안 뭐하고 지내시나 무슨 책 읽고 계시나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도봉구청은 구청장이 진보 성향이 강해서인지 실시하는 사업이 혁신적인 게 참 많다.

얼마 전에 "기적의 도서관"을 건립한 것도 그렇고

" 함석헌 기념관"을 만든 것도 그렇다.

이런 인문학 강의도 자주 하고, 모셔 오는 강사도 진보쪽이 많다. (다음 주에는 강신주 씨가 온다고 한다. )

세월호 유족을 모시고 하는 행사도 도봉구에서 진행된 걸로 알고 있다.

다른 구에서는 거절당했다고...

좋은 강연이 많은데 강연 시간대가 주로 근무 시간대라서 들을 수가 없었는데

마침 방학이라  청강할 수 있었다.

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지는 듯하다.


강연 날짜는 폭염이 가장 절정이었던 목요일 오후 2시였다.

한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서 중랑천을 가로질러 가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그렇게 많이 덥지는 않았다.

폭염인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많은 분이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머리가 희끗하신 분도 여러 명 계셨다.

시간대가 2시인데도 불구하고 남자들도 많았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대강당을 채운 덕분에

도봉구청장도, 고은 시인도 감동 받았을 듯하다.


솔직히 김수영 시인에 대해 안 지는 얼마 안 된다.

알라딘 서재 여기저기에서 김수영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관련 서적이 나오기 시작해서 궁금하여 시집을 구매하였으나

책꽃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읽어보진 않았다. 

유시민 씨가 쓴 책에도 김수영 시인이 등장해서 눈여겨 보니

말랑말랑한 시를 쓰는 분이 아니었다.

뜨거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래도 그렇지 이름 석 자만 알고 갈 순 없어서

강연에 가기 전 가장 익숙한(유시민 씨 책에 실려 있던) 시 한 편을 골라 읽어봤다.

제목도 몰라 한참을 헤맸다. 바로 이 시다.

제목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럴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1965. 11.4

       (김수영 시 전집, 민음사)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 그래, 나도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정작 중요하고 큰 일에는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작은 일에만 분개하고 있지. 어쩜 나랑 똑같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인도 그랬던가 보다. 동병상련이라고 할까.


고은 시인은 김수영 시인의 시는 누구의 아류가 절대 아니라 그 자체라고 하였다.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누구의 것을 모방, 표절한 것이 아니라

김수영 시 자체가 처음이라고 하였다.


김수영 시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였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도 가만히 읊조려 보면,  이야기가 있다.

그게 다른 시와 차별화된 점이라고 하였다.


김수영 시인이 추구한 것은 "자유"라고 하였다.

내가 배우던 국어 교과서에 김수영 시가 실리지 않았던 것은

아마 김수영 시인의 이런 현실 직시와 자유로운 사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후배들 교과서에는 그나마 김수영 시가 실려 있었다고 한다.


고은 시인과는 마치 피붙이처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살아 생전에 김수영 시인이 고은 시인를 보고 " 천재" 라고 칭찬을 하였다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도 고은 시인의 시를 보고 한번에 평가하지 않고

서울로 가져왔을 정도였다고 하니 

두 시인이 활동하던 그 시대는 시문학 전성 시대가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고은 시인이 김수영 시인이 지은 가장 마지막 시를 육성으로 들려줬다.

얼마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시던지 장내에 있던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

시도 좋고 들려주는 이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뭉클하였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5.29)

(김수영 시 전집, 민음사)


고은 시인은 늦었지만

김수영 문학관을 널리 알리고,

김수영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을 직시하며 지내고 싶다고 포부를 말하셨다.


김수영 시인의 부인도 오셔서 강단에 올라 인사를 하셨다.

참 미인이셨다.

고은 시인 말로는 김수영 부인이 아니었다면

본인이 문학을 하셨을 재능 있는 분이라고 하던데

본인은 김수영의 부인으로 시인의 고질병이었던 결핵성 치질 수발을 열심히 잘하셨다고 환하게 웃으셨다.


김수영 시인이 돌아가신지 47년이 지났지만

그와 그의 시는 우리 곁에 늘 남아

식어버린 마음을 뜨겁게 달궈주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복 70주년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조선 독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건만

이 나라가 과연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백성의 삶은 그때보다 좀 나아졌는지 조상들이 물어본다면

자신있게 "네 " 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광복 70주년 즈음하여

때마침 개봉한 영화 <암살>이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어제 조사해 보니 관객수가 700만이 넘어섰다고 한다.

부디 가족이 함께 보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봤음 좋겠다.

어찌 보면 이 나라의 현재가

이렇게 아득한 것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지금껏 끌려오고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 때 반민특위가 성공하여 일제의 앞잡이, 밀정들을 발본색출하여 처단하였다면 

지금처럼 사회 전반에 썩은 내가 진동하진 않았을텐데.


수퍼남매와 함께 보러갔다.

둘째는 좀 어려울 수 있지만 같이 가겠다고 하여 함께했다.

(런닝 타임 139분이다)

오랜만에 셋이 간 듯 하다.

아이가 자라다보니 이런 재미도 생긴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는 법.


영화의 80% 이상을 전지현 씨가 주도한다고 하였는데

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정우 씨가 맡은 역할,  애들 말로 짱 멋지다!!!

여주인공의 여전히 딱딱 끊고 메마른 듯한 목소리는 귀에 거슬렸지만

액션신은 멋졌다. 연기력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고 말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암울했던 일제 시대여서 더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영화를 통해  "김원봉"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친절한 블로거가 올린 자료를 보니 

김구 선생과 더불어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지만

월북 이력 때문에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던 인물이란다.

조승우 씨가 그 역할을 해서 안성마춤이지 않았나 싶다.

목숨 걸고 독립 운동을 했지만

사상이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숨겨진 인물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간다.

제대로 된 국사 교과서가 있어야 할 이유이다.

내가 배웠던 국사 교과서에서도 "김원봉"이란 이름은 없었다.

반대로

영화 속 인물 강인국처럼 뼛속까지 친일이었으나

대대손손 부귀를 누리고

세월이 흘러 독립 투사로 둔갑한 인물도 있으니 말이 안 나온다. 

그때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게 정말 원통할 따름이다.

참 어처구니 없는 나라이다.

이점이 독일과 다른 점이다.

독일은 나치와 나치를 도와준 사람까지 처단한 결과

지금과 같이 정의롭고 깨끗한 나라가 되지 않았는가!


밀정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세 명의 암살자와

그들을 위험해 빠뜨리는 밀정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가 참 슬프면서도 흥미진진했다.

반전도 몇 군 데 있어서 흥미롭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 버리면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니 이 정도로만....

슬프다는 뜻은

이게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 역사적 사실이어서이다.

독립군을 몰래 일러바쳐 자신의 잇속을 차리던 이가 실재했으니 참 서글프다.

그것이 미개한 조선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까지 하니

오장 육부가 뒤틀린다.


영화를 보고난 딸이 그런다.

" 일본은 미안했다. 잘못했다, 사과하면 되지 왜 그걸 안하는 걸까?"

어디 일본 뿐인가!

친일파도 그렇고, 정치인도 그렇고, 기업인도 그렇고, 교장도 그렇고, 종교 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잘못은 저질러 놓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고,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 나라다.


폭염이 계속 되는데

들려오는 소식마다 열 받는 소식 뿐이다.

영화 보는 시간만큼은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초등 고학년 이상 자녀를 가진 분들은 온가족이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눴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8-07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8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 노무현 - 그의 마지막 하루
백무현 지음 / 이상미디어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전 대통령이 왜 그렇게 비극적인 최후를 선택했을까 이해하지 못 했다. 그저 눈물만 나올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그립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과 수하들은 아주 평안하게 잘 살고 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 후에도 이 나라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보여 답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딸 미술 영재 집중 수업이 이번 주 내내 잡혀 있다.
덕분에 방학이 아닌 듯하다.
모녀 모두 늘어지게 늦잠도 못 자고 학교 다닐 때처럼 바쁜 아침을 보내고 있다.
방학하자마자 휴가를 다녀온 것도 영재 수업 때문이었다.
미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영재원 가는 게 못마땅한 딸은
아침마다 갖은 인상을 쓰며 비틀대며 일어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영재원이 집에서 멀기 때문에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느라 나도 힘들다.

오늘은 오토마타를 만들기 위해 과학 영재원이 있는 초등학교로 데려다줬다.
비오는 출근길이라 얼마나 차가 막히는지...
그제 설계도를 그리는데 딸이 뭐라 설명해주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일찍 일어나 가는 것은 싫은데 막상 활동을 하면 재밌다는 딸의 말에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어제 영재 수업 학부모 참관이 있어
엄마들이 모처럼 모여 참관은 제치고 수다를 떨었다.
미술 영재 엄마의 고민은 한결 같다.
일반 고등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예고에 보내야 하는지.
딸은 일찌감치 돈으로 차별하는 예고가 싫다고 하여 난 그 고민에선 벗어났지만서도..

예고에 보내야한다면 두 가지 문제가 따른다.
(일단 미술적 재능은 있다고 가정하고)
성적이 올 A가 되어야 하고, 재정적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이 두가지 문제 때문에 늘 고민이란다.
이건 아이 공부가 되건 안되건
재정적 여유가 있건 없건 마찬가지인 듯하다. 
미술 영재가 공부까지 잘해야 한다는 게 늘 불만인 나이지만
우리나라 대학에서 그런 인재를 뽑겠다는 데 힘 없는 을이 어쩌겠나!
그렇게 맞추든지 아님 이 나라를 떠나든지.

영재 담담 교사와 상담을 하고 온 엄마들 말을 들어보니
선생님 말씀이 
점점 더 미대 입시가 발상, 전환, 창의성을 위주로 뽑는 추세라고 한다.
현재도 상위권 미대는 실기보단 내신 위주로 뽑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공부를 끝까지 잡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영재원 아이들은 기본 재능은 갖추었으니 실기는 바짝 하면 따라갈 수 있단다. 
하지만
공부는 그렇지 못하니 공부 즉 내신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예고 나와도 상위권 아이들만 좋은 대학 가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란다.
이말은 예고에 너무 목 매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일반고 가서 차곡차곡 내신을 잘 쌓으라는 말.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ㅅ대, ㅎ대 미대 나와도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펼치고 창작 활동을 하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예전 우리 학교 공익이 그러는데
자기 동생이 선화예고 나와 피아노 전공했는데
들인 돈과 시간에 비해 정말 할 게 없다고....
엄마들 중에도 미대 나온 사람이 몇 있는데 그냥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며 한탄한다.
아니면 미술 학원 내지는 방문 교사를 하던가.
미대 나온 사람 대부분이 그렇다는 게 현실이란다.
미대 나와서 자신의 전공을 살리고 창의성을 발현하고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라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입시 상황에서
아이들은 미술에다 공부까지 해야 하는 2중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
공들인 거에 비하면 정말 그 효과는 현저히 낮을 뿐더러 아이의 미래 또한 불투명하다.
차라리 그럴 바엔 그 돈과 그 힘으로 공부에 전력을 기울이는 게 더 낫지 않냐란 말도 나오고...
미술 영재 엄마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미술을 좋아하고 재능 있는 아이가 미술이 아닌 다른 길로 가는 게 맞는 것일까?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 축복 받은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더 고민이 커지는 것을 보니 말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5-08-07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8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9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맛집 탐방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제주도 맛집을 여기저기 찾아 다녔다.

원래 우리 가족은 맛집 탐험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지난 담양 여행부터 맛집 탐험이 시작되었다.

보고 체험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먹는 즐거움도 크단 걸 깨달았기 때문이랄까.

특히 먹는 것을 좋아하는 누구 때문이기도 하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첫 날, 저녁 먹으러 간 곳은 "수요미식회" 제주도 편에 나온 "고객식당"이란 곳이다.

제주도 동문 시장에 위치한 곳인데 갈치조림이 유명한 곳이란다.

동문시장을 따라 걸으면서 수퍼남매는 생전 처음 재래 시장이란 곳을 구경하였다.

가다보니 런닝맨 팀이 와서 먹었다는 유명한 분식집이 나왔다. 

너무 배가 고파 짜증 내는 아들 때문에 어묵과 튀김 1인분을 사서 걸으면서 먹었다.

김말이를 먹어본 딸이 맛이 아주 색다르다고 하였다.

바로 옆 분식집은 손님이 없는데 이 집은 바글바글한 걸 보니 유명세는 다른 듯하다.


고객 식당에 도착하니 아주 허름한 곳이었다. 고객 지원 센터에 맛집이 있다니 정말 특이했다.

들어 서니 대기를 하고 있는 여러 사람이 보였다.

카운터에 이름을 올리고 한 30분 기다리자 자리가 났다.

주인장이 참 친절하였다.

내가 앉은 자리가 일 주일 전에 "씨엔블루"의 강민혁이 앉았던 자리라고 알려주었다.

유명세를 알 수 있게 뒤에는 여러 유명인이 다녀갔다는 사인이 즐비하였다.

내 바로 뒤에 강용석 씨의 사인이 크게 보였다.

갈치조림 하나를 시켰다. 무를 큼직큼직하게 썰고 갈치를 조렸는데 매콤달콤한 맛이 입에 맞았다.

아이들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양이 모자라 고등어 구이 하나를 더 시켜 먹었는데 이것도 싹싹 다 발라먹었다.

비 오는 날과 딱 어울리는 메뉴가 아니었나 싶다.

8시까지만 손님을 받았다.

가게 운영을 가족이 함께하는 것 같아 보였다.

혹시 주차 도장 찍어주냐고 물어보자

주인장이

" 6시 30분까지만 돈 내고 그 후론 무료예요. 공무원들이라 퇴근해야 해서 돈 안 받아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아무리 맛집이라도 주인장이 불친절하면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는데

고객 식당은 맛도 좋은데다 주인장까지 친절하고 유머가 있으셔서 좋은 추억이 되었다.



동문시장을 지나 주차장까지 가는데

그렇게 먹고도 아직 배가 차지 않았다는 딸 때문에

귤 한 봉지를 샀다.

길을 걷다 보니 돌하루방 모양의 빵을 만들어 파는데 정말 앙증맞았다.

특허 받은 빵이라는 말에 또 한 봉지를 샀는데 한라봉 향기가 그윽하게 나는 맛있는 빵이었다.

딸은 여전히 배가 차지 않았다며 하루방 빵 2/3을 혼자 해치웠다. 한창 성장기 인 듯하다. 


둘째날은 날씨가 괜찮아서 우도에 갔다.

우도에서는 관광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다.

지리도 모르고 길도 좁아 운전하기가 무서워서 말이다.

어지간하면 버스 타고 다니는 게 낫다고 생각된다.

재미있고 우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기사님의 설명도 듣고 말이다.

아침을 먹었는데도 검멀래해수욕장 근처에 도착하니 걸을 힘도 없을만큼 배가 고파 아들과 난

"배 고파 배 고파"를 연발하였다.

남편은 아무데서나 먹을 수 없다며 폭풍 검색을 시작하고

우린 우도에서 유명한 땅콩 아이스크림과 한라봉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두번 째 코스인 하고수동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식당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까 검멀래에서 안 먹길 다행이다 싶었다.

이 곳에 맛집이 있었다.

보말(고동 종류)칼국수로 유명한 집이 있단다.

하고수동 해수욕장 즉 두번째 버스정류장 바로 뒤에 위치한 "해광 식당"이란 곳이다.

보말성게전복 칼국수 3인분을 시켰는데 아주 푸짐하고 보양식처럼 힘이 솟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에 공기밥2개를 시켜 볶아 먹었는데 이것 또한 아주 맛있었다.

해수욕장에서 놀아야 하는데 제대로 에너지 충전을 한 느낌이었다.


해수욕을 제대로 하고 "서빈백사"로 갔는데 이 곳에 또 맛집이 있었다.  

땅콩 아이스크림 원조 가게였다.

여기서 또 땅콩 아이스크림과 한라봉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날이 매우 더웠다. 

아까 검멀래 해수욕장과는 달리 땅콩 아이스크림을 예쁘게 문어처럼 장식해줬다.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예뻤다.

여기도 여러 유명인이 다녀간 모양이다. 사진과 사인이 즐비하였다.

전에 왔을 때 서빈백사는 산호가 부서져 만들어진 해수욕장이라고 하였는데

연구 결과 산호가 부서진 게 아니라 빨간 조개가 부서진 것이라고 한다.

모래처럼 잘게 부서져서 겉으로 봐선 조개가 부서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15년 동안 파도에 의해 이렇게 잘게 부서질 수 있구나 싶었다.

우도에 가면 꼭 보말 칼국수와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길 추천한다.

보말 칼국수는 완전 보양식이다. 여행의 피로를 한방에 날려준다.


우도에서 실컷 놀고, 구경하고, 맛있는 것 먹다보니 벌써 저녁이었다.

숙소 가는 길에 요기도 할 겸 맛집 검색을 하였다.

블로거 덕분에 여기저기 맛집 찾기가 참 수월하다.

비가 와서 회는 안 된다고 내가 극구 반대하여 날씨에 어울리는 해물 라면을 먹기로 결정했다.

라면 맛집  "경미네 집"을 찾아갔다.

이 곳 역시 외관은 허름한데 문어와 각종 해물을 넣어 만든 라면 맛이 최고였다.

공기밥은 무료였다.

먼 길 온 손님들인데 돈을 안 받는다는 주인장의 말씀에 미소가 지어졌다.


셋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이 날 아침 ,일찍 서둘러 풍림 다방에 갔다가 허탕을 쳤다.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할 때는 날이 개어 있어 아름다운 에메랄드색 바다를 볼 수 있었다.

협재 해수욕장은 언제나 바다 색깔이 이쁘다. 마침 날이 개어 해수욕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린 어제 우도 하고수동 해수욕장에서 실컷 놀았기 때문에 이 곳은 눈으로만 감상.

게다가

어제 썬 크림을 바르지 않아 살갗이 익어버린 아들과 남편은 걷기도 힘들 정도로 여기저기 아프다고 난리가 났다.

덩달아

배꼽 시계까지 요란하게 울어대어 일단 먹어야했다.

얼른 맛집 검색에 들어가니 지척에 빅 버거 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진짜 고마운 블로거들이다. 

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붉은못 허프 팜" 이라는 프로방스 풍 건물에다 허브가 인상적인 가게가 보였다.

빅 버거와 음료 4잔을 주문했다.

빅 버거는 정말 컸다. 흑돼지로 만든 패티가 특색이란다. 다 못 먹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다 먹어치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 연해 먹은 것 같지 않아 커피가 땡겼다.


거기서 또 다시 검색 시작

가까운 곳에 "최마담네 빵다방"이란 핸드 드립 카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딸이 아까 오다가 간판을 봤다는 말에 무작정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하였다.

한 15분 정도 걸었을까. 점점 딸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하던 차에 빵마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딸은 어떻게 저런 눈에 잘 띄지 않는 간판을 봤던 걸까!

역시 미술 영재라며 엄청 칭찬을 해줬다.

제주 일반 가옥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는 아기자기 참 예뻤다.

주인장의 핸드 드립 솜씨는 1편에서 이미 말했고...

여기서 마신 커피 덕분에 운전한 피로가 말끔히 해소되었다. 

한 잔 더 먹고 싶었지만  운전 중에 화장실 가고 싶을까 봐 참았다. 

카페와 안채 사이에 잔디가 깔려 있고 그 곳에 개 한 마리가 느긋하게 자고 있었다.

안채에는 엉청 큰 고양이도 보였다.

최마담과 고양이라! 잘 어울리는 듯하다.


넷째 날,  느긋하게 체크 아웃을 하고 나와 선상 낚시를 하러 성산포항으로 갔다.

우리 가족 모두 선상 낚시는 처음이라 매우 떨렸다.

2시간 동안 꼼짝 없이 낚시를 하여야 하는데 바람도 불고 비도 내려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갯지렁이도 처음 끼어 보고(처음엔 징그러웠으나 하다 보니 괜찮아짐)

릴 낚씨도 생전 처음 해봤다.

낚시 시작하자마자 아들이 고기를 낚아 올렸다. 붉은 고기였는데 까먹었다.

나도 얼떨결에 알록달록한 예쁜 고기를 낚았다. 부녀는 소득이 없어 의기소침해졌다.

아들은 강태공도 힘들다는 멸치를 낚아 올렸다. 2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항구로 돌아오니 허기졌다.

근처에 먹을 곳이 없다 찾아보다

제주도에 왔으니 흑돼지 구이도 한번 먹어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 검색을 했다.

마침 딸이 우도 갔다 올 때 손님이 바글바글하던 곳을 기억해내서 갔더니 낮인데도 손님이 제법 있었다. 맛집이었다.

회는 못 멋었지만 가격이 좀 비쌌지만 흑돼지구이라도 먹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스테이크처럼 아주 두껍게 썰은 흑돼지를 연탄에 구웠다.

주인장이 전혀 뚱뚱하지 않고 오히려 말랐는데 가게 이름은 "뚱삼촌 연탄구이"였다.

주인장이 계속 왔다갔다 하시며 고기를 뒤집어 주셨다.

수퍼남매는 비계라며 먹지 않았는데 통째로 먹어보니 껍데기가 쫄깃한 게 색다른 맛이었다.

마지막날까지 맛집을 찾아내어 제주도 요리를 먹게 되어 기뻤다.

비록 날씨가 계속 흐리고 비가 와서 회를 먹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서도...


전에는 맛집 찾아다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더랬다.

심하게는 몇 시간씩 기다리고 그러는 게 시간 낭비다 싶었는데

이제 우리 가족도 맛집 탐험을 하게 되었다.

친절하고 부지런한 블로거들 덕분에

실망하는 경우가 훨씬 줄어들었다.

생각은 변하기 마련인 듯하다. 

여행의 즐거움은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일단 여행 가기 전, 설레임과 기대이다.

다음은 보는 재미,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먹는 재미도 크다는 걸 깨달았다.

다녀와서 사진을 들춰보며 되새김질해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갈치 조림 / 땅콩 아이스크림/ 한라봉 아이스크림

하루방빵/ 보말성게전복 칼국수/ 핸드드립 커피& 시나몬 빵

빅 버거/ 빅 버거 집 생과일쥬스/ 흑돼지 연탄구이


댓글(8)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15-07-26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재미난 여행페이퍼 덕분에 협재해수욕장과 우도 서빈백사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10년 전이네요. 한여름이었지요. 제주는 먹을거리도 풍부해 어느 계절에 가도 멋진 곳이에요. 작년에 혼자 갔던 제주여행도 떠올려보게 되네요^^

수퍼남매맘 2015-07-27 22:39   좋아요 0 | URL
혼자 다녀오셨군요. 아주 멋집니다.
전 아직 용기가 안 나서 가족과 함께 다니는 게 더 좋더라고요. ㅎㅎㅎ
머지 않아 혼자 다니는 여행이 더 좋아질 때가 오겠죠?
님 페이퍼 보니 다음 번엔 미술관 탐험도 괜찮을 듯해요.

세실 2015-07-26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말성게전복 칼국수 맛있죠~~~
맛집 탐방 재미 쏠쏠해요^^
정말 볼거리보다 먹거리에 포커스 맞추신듯?ㅎ

수퍼남매맘 2015-07-27 22:40   좋아요 0 | URL
드셔봤군요. 정말 에너지가 불끈불끈 솟더라고요.
맛집 탐방 재미에 입문했습니다. ㅋㅋㅋ

책읽는나무 2015-07-26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배가 넘 고파지는데요?
갈치조림이죠?밥이랑 마구 먹고 싶네용
아이스크림도 맛나겠고 칼국수도 맛나겠네요^^
저희도 언제부턴가?가족여행을 가면 맛집을 미친듯이 찾아다니는ㅋ
애들이 커가니까 그리되나봅니다

수퍼남매맘 2015-07-27 22:44   좋아요 0 | URL
애들이 커가니까 먹는 것에 치중하게 되는 건 저희 집만의 일은 아니었군요.
중딩과 초딩이라서 체험거리도 무시 못하겠더라고요.
좀더 크면 가족 여행 안 가려고 한다던데...
현재까지는 잘 따라나서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2015-08-07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8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