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그러니까 둘째가 여섯 살 때 가족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었는데 통 기억을 못 했다.

이래서 너무 어릴 때 여행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 듯하다.

금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여행 기간이었다.

가기 전 일기예보에서 4일 내내 제주도에 비가 온다고 해서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계획한 대로 다 해봤다.

우도도 가고 말이다. 마라도를 못 가서 좀 아쉽다. 


이번 여행은 각자의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남편은 싱싱한 회를 먹기 위해

난 수요미식회에서 극찬한 " 풍림 다방"의 융 드립 커피를 마시기 위해

딸은 영어 학원을 공식적으로 빠지기 위해

아들은 낚시 체험을 하기 위해.


각자 목적을 다 이루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부부는 목표 달성을 못 했고

수퍼남매는 성공했다.

부부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한 번 더 제주도를 방문해야 할 듯하다. ㅎㅎㅎ


셋째날 아침, 오픈 시간보다 일찍 풍림 다방에 당도했다.

전파를 타고부터 오랜 시간 대기를 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이다.

인척이 없길래

다방 앞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인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 당분간 개인 사정으로 쉰다"는 안내멘트가 나왔다.

그것 하나 보고 비행기 타고 왔는데.....

도대체 무슨 개인사정이 있을까.

다른 제주도 맛집은 유명세 타도 열심히 장사하더구만.

한창 휴가철이라 손님이 엄청 찾아올 시기인데

이런 때 임시휴업이라니?

주인장  목표가 " 돈 " 아니라 " 내 인생" 인 듯하다.

돈에 구애받지 않아 멋져 보이기도 하였지만

전국 각지에서 주인장의 커피 맛 보러 온 사람이 많은데 

메모 한 장, 멘트 하나로 먼 길 온 손님을 이리 돌려보내도 되나 싶어 내심 속상하기도 했다.

유명해지기 전에 왔더라면 주인장이 정성스레 내린 커피와 함께 이야기 한 자락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4일째 되는 날도 숙소와 가까와 한번 들러봤는데 역시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임시 휴업 중"이었다. 

하여튼 다방 앞 경치는 참 아름다웠다. 마을도 아기자기하고 말이다. 

모모(개 이름)와 눈인사 나누고 간판 배경으로 사진 찍고 아쉽게 돌아서야했다.

나처럼 수요미식회 보고, 커피 맛 보러 왔다가 허탕친 사람이 꽤 많은 듯하다.

근래 들어 풍림 다방 커피 맛을 본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당분간 풍림 다방의 커피는 맛보기 힘들 듯하다. 

꼭 전화로 영업 하는지 확인해 보고 가시길...


풍림 다방 커피 맛을 못 봐 내내 아쉬웠는데

"협재 해수욕장" 근처에서 딸의 뛰어난 눈썰미 덕분에 맛있고 색다른 핸드 드립 카페를 발견하였다.

커피 맛도 일품이었다.

이 곳을 적극 추천한다.

"최마담네 빵다방"이란 곳인데

주인장이 키크고 예쁜 여자분이다.

앞집은 카페고 뒷집은 안채가 있는 구조이다.

제주도 집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인데 아담하고 주인장이 직접 빵을 구워 판매한다.

일회용품은 절대 사용하지 않아 테이크 아웃이 안 되고,

대신 텀블러를 가져오면 할인을 해 준다고 한다.

화장실도 일회용 티슈 대신 1인용 핸드 타월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화장실 휴지도 재생 화장지였다.

여러 모로 주인장이 환경을 꽤 생각하는 분 같았다.

조금만 친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커피 잘 내리시는 사람은 어쩐지 도도함이 느껴진다. 예전 강릉에 갔을 때도 그랬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만큼 사람도 좋아했으면 하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커피 비경>이란 책에 나온 카페 주인장들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하더구만. 

이 책을 갖고 갔어야 하는 건데( 집에 와서 들춰보니 제주도 카페 2군데가 나와 있었다. )

풍림 다방만 생각하고 안 가져갔다가 맛있는 커피 한 잔 못 먹을 뻔 했다. 

하여튼 최마담이

핸드 드립하는 것을 유심히 봤는데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예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게 예사롭지 않았다.

커피 맛도 아주 좋았다.

남편과 내가 공동으로 가장 맛있던 커피로 꼽는 게 강릉의 "히피커피"인데 그것과 견줄 만한 맛이었다.

핸드 드립 솜씨가 아주 훌륭했다. 

남편은 인도네시아 만델링, 난 케냐 AA를 마셨는데 피곤이 쫙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딸이 최마담이 직접 구운 시나몬 빵을 먹고 싶어해서 먹었는데 이것도 아주 맛있었다고 한다.

커피와 함께 나온 후추 쿠키도 색다르고 맛있었다.


3박 4일간 제주도를 둘러봤어도 절반도 못 돌아본 듯하다.

제주도가 그렇게 넓은지 몰랐다.

1년만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제주도를 보지 못 했는데 겨울도 나름 괜찮다고 하니 이번 겨울에 한 번 더 와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제주도에서 아직도 가 보지 못한 곳이 여럿 있다.

송악산도 좋다는데 못 가 봤다. 

수퍼 남매 데리고

산굼부리도 못 가봤고, 한라산 백록담도 못 갔다. 

갈 때마다 새로와져서 둘러볼 때가 많아지는 듯하다.

이번에는 수퍼남매 체험 위주로 계획을 짰다.

다음에 또 제주도 갈 기회가 생긴다면

올레길도 한번 걸어보고 싶다.


15년 전 남편과 결혼 1주년으로 갔던 우도의 모습이

많이 훼손된 듯하여 너무 안타까웠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고

여러 가지 생겨난 이동 수단 때문에 정신 없었다.

사고도 많이 난다고 한다.

"서빈백사"도 예전의 그 바다가 아니었다.

두 번 가서도 이렇게 실망하는데

유홍준 교수가 매년 간다는 " 선암사"는 과연 어떤 멋을 간직하고 있길래 매년 가도 질리지 않는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하여튼 이번 제주도 여행을 가서 느낀 건데

두 번 가면 실망하게 되는 게 현실인 듯하다.

두 번 가서 실망하기 보다

한 번의 좋은 추억으로 남겨 놓는 게 더 나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우도가 나에게 그렇다.


그래도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게다가 솥뚜껑 운전에서 해방되어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는 즐거움도 크다. 

먹방이 대세이니 먹는 이야기를 다음 편에 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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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24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떡해요~~융 드립 커피맛에 대한 후기문을 못들어서 저도 아쉽네요ㅜ
그래도 멋진 제주도^^
저흰 제주도 댕겨온지가 7년이 지났는데 지금 간다면 그시절 아득하게 담았던 풍경들이 많이 변해있겠지요?
제주도 뿐만 아니라 다른곳도 예전의 멋진 기억을 좇아 다시 갔더니 많이 변한모습에 응??하고 어리둥절하더라구요.
님의 말씀처럼 두 번 가면 실망한다에 공감되네요~~그래도 여행은 즐거워요^^

수퍼남매맘 2015-07-25 11:39   좋아요 0 | URL
융 드립 하는 집이 거의 없어서 기대 엄청 했는데 실망했죠. ㅠㅠ
제주도는 사계절이 모두 느낌이 다르다고 해서 겨울도 한번 보고 싶어요.
7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니까요.
두 번 가서도 여전히 좋은 곳은 보기 드문 듯합니다.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는 말씀에 완전 공감합니다.

2015-07-25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6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좋지 않은 기억력으로 되짚어 보니

1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그림책 <아씨방 일곱 동무>가 나왔었어요.

3학년 개정 교과서 국어 활동-나 에도 이 그림책이 실려 있답니다.

똑같은 그림책이 2개 학년에 실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학습 소재가 된다는 의미일 겁니다.

좋은 책은 한결같이 사랑 받나 봅니다.

 

국어활동에 읽기 자료가 괜찮은 게 많이 실려 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는 원작과 달리 삽화가 다소 유치한데 국어활동에는 그림책 그대로 실려 있어서 좋아요.

평소에는 진도 나가기 바빠서 읽을 틈이 없답니다.

실제 교육과정에서 이 읽기 자료를 다 다루라는 게 아니기도 하고요.

 

방학이 금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국어 진도가 다 못 나가서 요즘 매일 2시간씩 국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오늘에서야 진도가 다 나갔어요. ㅎㅎㅎ)

국어 수업 빼 먹은 적이 없는데 참 희한한 일이지요.

학습량을 대폭 감소시켜야 해요.

특히 폭염기와 혹한기 때는 학습 능률도 안 오르고 말이죠.

그나마 다른 과목이라도 일찍 진도가 끝나서 다행이다 싶어요.

 

각설하고.

아이가 참 좋아합니다.

"모두 다 소중하다." 라는 주제도 아이가 금방 찾아내고 공감합니다.

잘난 척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도 깨닫고요.

일곱 동무 중에 누구 하나 빠지면 바느질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도 알죠.

이처럼 교실에서도 모둠 생활에서도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고

서로 협력하였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아는 것과 실천 사이에 많은 간극이 있습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실천이 더 중요하겠지요.

 

진짜 그림책은 가로로 판형이 꽤 큰 편이지요.

국어활동에 원작이 그대로 실려 있어서 한쪽씩 모둠별로 돌아가며 음독하였지요.

그림책을 실제로 보면 더 좋겠지요.

 

다 읽고나서 독서 감상문을 동시로 써 봤답니다.

요즘 배우는 공부가 바로 독서 감상문 쓰기이거든요.

여러 가지 형식으로 써 보는 활동이 나오지요.

독서 일기는 여러 번 써봤는데

동시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처녀작 치고 괜찮은 작품이 몇 개 나와서 전체에게 읽어줬답니다.

잘된 작품을 들었으니 다음에는 다른 아이도 더 동시답게 잘할 거라 생각됩니다.

 

독서 감상문 지도를 할 때 일단 왜 독서 감상문을 써야 하는지 부터 아이들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무조건 써야 돼 라고 하기보다 써야 하는 이유를 함께 찾아보는 게 좋겠죠.

책 읽는 것까지는 어찌 되는데 요즘 아이들 쓰기를 너~~무 싫어하거든요.

담임과 부모의 채근 없이 스스로 독서 감상문을 쓰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요?

또 스스로 일기를 쓰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요?

작가가 되기를 꿈 꾸는 1% 정도?

책 읽기에 비해 독서 감상문 쓰기는 더 귀찮고 힘들고 고된 작업입니다. 

글쓰기는 고도의 사고력을 요하는 활동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인내력과 끈기까지 필요하지요.

 

수업 시간에

공책에 한 줄이라도 적을라 치면 싫은 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와요.

원~ 이렇게 쓰는 걸 싫어해서야.

앞으로 쓸 일이 점점 많아질 텐데 걱정입니다.

 

그런데  학교 정규 수업 시간에 그다지 쓸 일이 별로 없어요.

담임이 애써서 쓰기를 시키지 않는한 말이에요.

글쓰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렇게 저렇게 시키지 않으면

아이가 쓸 기회는 정말 현저히 줄어듭니다.

 

그러니 글발이 향상될 리가 없지요.

유시민 씨가 <글쓰기 특강>에서 말했던 것처럼

문학이 아닌 생활 글쓰기는 훈련에 의해 향상될 수 있는데

정작 학교에서 글쓰기를 정규적으로 안 하니 글쓰기 실력이 원천봉쇄된 거나 다름 없어요.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일기 쓰기와 독서 감상문 쓰기라고 생각합니다.

자발적으로 하는 아이 찾아보기 힘들고

부모가 시켜서 하는 아이 또한 드뭅니다.

수퍼남매도 제가 시키면 갖은 핑계를 찾아 밍기적거리고 안 하더라고요.

담임이 숙제로 내 주거나 수행 평가면 어쩔 수 없이 하고요.  

하여

담임이 정규 수업 시간 내지는 숙제로 내 주는 게 최선책이 아닌가 싶어요.

초등학교에서 일기나 독서 감상문만큼이라도 제대로 쓰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의 글발은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내일 여름 방학을 합니다. 모처럼 긴 여름 방학이에요.

이래저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방학이 더 바쁘다는 아이도 있어서

가급적 학교에서는 숙제를 내주지 않으려고 하지요.

그래도 기본으로 일기와 독서 감상문은 나갑니다.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숙제가 바로 일기와 독서 감상문이라고 하더군요. 둘 다 쓰기네요.

 

자주 써야 쓰기 실력이 향상되는데

갈수록 아이는 쓰기를 싫어하고...

둘째도 이제 일기를 슬슬 안 보여줍니다. 보여주면 엄마가 잔소리 할까 봐서죠.

담임이 세 번 일기 숙제를 내 주시는데

한 번은 독서일기로 쓰자고 제안했더니 지키기는 합니다. 

내용은 안 보여줘요. 방학에는 잘 꼬셔서 질 높은 독서 일기를 쓰도록 도와줘야겠어요.

저희 반 방학 숙제도 어차피 일기를 1주 3회 써야 하니 1회는 독서 일기로 쓰라고 하였어요.

그렇게라도 해서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아야 되겠지요. 

아이가 글쓰기를 싫어하지 않게 하는

해법이 뭐가 있을까요?

이번 방학을 수퍼남매와 보내면서 더 고민해야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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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7-16 16: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꼬마도 3학년 올라온 후론 글짓기가 부쩍 싫은티를 내요...

수퍼남매맘 2015-07-16 20:50   좋아요 2 | URL
1-2학년에 비해 공부가 어렵고 쓸 게 늘어서 그럴 거예요.

2015-07-17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4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찬샘 2015-07-22 16: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 학교는 책둥이 통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책을 읽고 간단한 느낌글을 적도록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알아서 척척 쓴답니다. 몇몇은 깨알같은 글씨로 감동을 붙잡아 두더라고요. 모든 것이 습관이 되도록 해 주기가 힘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착되어서 책둥이 통장 쓰기가 참 괜찮은 우리 학교 특색 사업이 되었답니다. ^^ 하기 싫어한다고 그냥 둘 것이 아니라 힘들지 않게 습관이 될 수 있도록 무언가 제공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냥 지나가는 일 인의 생각이었습니다. ^^

수퍼남매맘 2015-07-24 21:41   좋아요 2 | URL
하기 싫어한다고 그냥 내버려 두면 모두 하향평준화 되어 버리죠. ㅋㅋㅋ
공부, 독서, 글쓰기 모두 마찬가지인 듯해요.
상위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고
하위권 아이는 누가 시켜도 안 하고
중위권 아이들은 어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지는 듯해요.

님 학교는 책둥이 통장으로 간단히 소감을 적고 시상 없이 그냥 끝내시는 거죠?


희망찬샘 2015-07-24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상 잔뜩 있어요! 뭐라 하실지 모르지만... 당근이 필요합니다. 근데 거의 대부분 통과할 수 있는 미션이랍니다.

수퍼남매맘 2015-07-25 11:35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어디까지 당근을 써야 할지 항상 고민스럽습니다.
 
















며칠 전 강풀 작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봤다.

저렇게 사랑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남편이 다시 보였다.

잘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물론 작심삼일이지만서도...


강 작가는 자신의 할머니를 보고 노인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단다.

할머니와 함께 살다보니 할머니도 젊은이처럼 똑같다는 걸 깨달았단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여전히 여자였고, 귀여웠으며, 사랑스러웠단다.

노인들의 사랑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소나기>처럼 풋풋한 첫사랑도 아릅답지만

지고지순한 노인의 사랑 이야기도 정말 감동적이었다. 


작년 이탈리아 여행 갔을 때 

나폴리 근처 "피지요"라는 휴양지에서 묵은 적이 있다.

워낙 안전한 곳이라 하여 딸과 함께  화덕 피자를 사러 거리로 나왔다.

마침 축제 기간이라서 시끌 벅적하였고 사람이 꽤 많았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 중에 유독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많았다.

오래된 휴양지라서 노인이 많이 온다고 했다. 

숙소에도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카드 놀이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백발의 노부부가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정말 많이 보였다.

젊은 남녀가 손 잡고 가는 모습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드는데

허리 구부러진 노부부가 손 잡고 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예전부터 노부부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늙어가야지 생각하곤 했었다.


만화책에는  아름다운 두 쌍의 노인이 등장한다. 

한쌍은 오랜 시간 부부로 지낸 사이이고

다른 한쌍은 마지막 사랑이 될 지도 모르는 사랑을 시작한 남녀이다.

전자는 치매를 앓는 아내와 그녀를 극진히 보살피는 남편의 사랑 이야기이다.

후자는 젊을 때 가부장적인 모습만으로 일관하다 아내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후, 뒤늦게 후회하며 속죄하듯 사는 욕쟁이 할아버지와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단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이 고생만 하였고, 지금은 폐지를 주워 근근히 사는 송씨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이다.

각자 슬픈 사연을 안고 있고 팍팍한 삶은 마냥 고달프지만 

장마에 찾아온 한줄기 햇살처럼 어느 날 찾아온

 "사랑"과 "우정" 덕분에 인생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사는 네 노인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이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져 나왔을 때 인연이 닿지 않아 보지 못 했다.

안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 먼저 봤다면 감동이 줄었을 것 같다. 

네 명의 노인이 보여주는 사랑과 우정은 

살면서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끔 한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제목은 책 속에서 욕쟁이 김만석 할아버지가 송씨 할머니한테 고백하는 말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하늘나라에 먼저 간 아내에 대한 예절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김만석 할아버지의 마음 씀씀이에 고개가 숙여졌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오래 참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무엇보다 나보다 상대를 더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백년 가약을 맺은 옆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고

장점보다 단점이 많이 보이며

전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줄었다 싶은 분에게 권해 주고 싶다.

은애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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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월요일부터 딸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예전 울 엄마는 나 시험 본다고 옆에서 대기하고 있지 않았는데 요즘 시대는 아니다.

시험 공부하는 딸 옆에서 지켜보느라 나도 바쁘고 힘들다. 

물론 당사자가 제일 고되고 힘들지만서도.


엄마로서 딸 공부하는데 먼저 잘 수는 없는 일,

옆에서 그저 지켜보는 거(감시?)라도 해야 할 듯해서

졸립지 않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을 학교 도서실에서 빌려와 읽고 있다.


어제는 강 풀 작가의 <26년 > 3권을 빌려와 한달음에 읽었다.

내가 열심히 읽자 옆에 있던 초4 아들이 궁금해 하길래 읽어보라고 했더니

첫날에 1권 읽고, 다음 날에 2-3권을 다 읽었다.

 

읽는 내내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길 없었다.

아아아!!!

나도 이런데 5.18 당사자는 35년 내내

그 아픔과 절망, 분노, 복수심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인데

정작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자는 없다니.....

말이 되냔 말이다.

정의란 도대체 어디 있는 건가?

 

책에서도 여러 번 나온 말이다.

나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 착하게 사는 것보다 정의롭게 사는 게 더 어렵다"

착한 것,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노하고, 저항할 줄 알며,  옳은 길을 선택해서 가는 것이다..

교실이나 직장에서도 예스맨이 꼭 있다.

일의 옳고 그름 보다 일단 거절을 못 한다. 누가 부탁을 하거나, 명령을 하면 따른다.

그게 설사 나쁜 일이라도 시키는 대로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간다.

 

책에 나온 마실장은 상관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발사하였다고 한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어야 하는 군인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도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게 옳은 선택인가! 라고 할 때 문제는 다르다.

군인으로서 착한 일을 한 것일지는 몰라도

옳은 선택은 아니었다.

후에도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는 연희동 그 사람을 "역사"라 합리화하며 추종하였다.

그가 "역사" 여야만 자신이 했던 일이 정당화 되니깐 말이다.

 

김회장은 달랐다.

그도 마실장처럼 명령에 죽고사는 군인이라서 도청에 남아 있던 시민군 두 사람을 죽였다. 1980년 광주에서 말이다.

그는 그 죄책감 때문에 평생 행복하지 못 했다.

하지만 마실장과 달리 그는 그후 반대의 삶을 산다. 속죄하는 삶을 산다.

연희동 그를 역사라며 자신을 합리화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2년 만에 풀려난 그를 보며 분노하고, 스스로 단죄하려고 작전을 세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공 들여서 말이다.

김회장은 무엇보다

자신이 죽였던 그 무고한 시민과 그 자녀에게 사죄하며 용서를 구한다.

그 점이 마실장과 다르다.

 

5.18 문제는 김회장이나 5.18 희생자의 유가족이 나서서 단죄할 것이 아니다.

법치주의 국가이니 법으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게 안 되는 요상한 나라이니까

이런 만화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복수하러 나서는 내용으로 말이다.

어쩌다 보니 시험 기간 내내  "복수 "라는 주제의 책을 연속 읽게 되었다.

복수는 허망하다.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김회장을 비롯한 다른 광주의 자식들의 인생 또한 애달프다.

하지만 왜 그들이 직접 복수에 나설 수밖에 없었나 생각해 보면 그 마음에 공감이 간다.

법이 제 역할을 못 하니까.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회.

이 속에서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5.18 당시 김회장처럼 무고한 광주 시민을 향해 총을 들었던 공수부대의 양심 선언을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아니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나?

그들은 김회장 같이 평생 속죄하며 살고 있을지

마실장처럼 그를 "역사"라고  정당화하며 자신을 속이며 살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26년>이 특이했던 게 5.18 희생자 유가족이 아닌 그 당시 광주에 투입된 군인이었던 김회장이 주축이 된다는 점이었다.

작가는 나처럼 그들이 80년 그 후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했었나 보다.

이쪽이던지 저쪽이던지 모두 녹록한 삶을 살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이 만화책을 보며 더 강하게 든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 또한 희생자임에 분명하다.

 

언제쯤이면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강정마을도, 용산참사도, 세월호도, 메르스도 그렇고

사건은 벌어지고 피해자는 있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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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0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1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툭 그림책 보물창고 2
요쳅 빌콘 그림, 미샤 다미안 글,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아이를 가르치다 보면, 복수심에 부글부글 끓는 경우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죠. 누가 자기를 놀리면 꼭 되돌려 줘야 하고,  한 대 맞으면 꼭 두 대 이상 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가 교실에 있지요. 요즘 교사가 예전보다 두세 배  힘든 이유는 이런 아이가 많아졌다는 것 때문이지요. 한 마디로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는 아이이죠.

 

 예수는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놓으라고 하였건만 요즘 부모는 자녀가 한둘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안 가르치는 경우도 있어 보입니다. 왼쪽 뺨을 맞으면 너도 똑같이 때리라고 가르치는 듯합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맞고 오는 것보다는 차라리 때리고 오는 게 낫다는 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부모가 이런 어마어마한 말을 하게 된 것도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칙처럼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체험한 부모는 자녀에게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 " " 맞는 자가 되느니 차라리 때리는 자가 되어라" " 똑같이 해줘라" 이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런 식의 가르침이 과연 옳을까요?  친구한테 한 대 맞았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복수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행복해질까요?

 

  <아툭>은 그런 철학적인 명제에 대해 아이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이누이트인 아툭은 다섯 살 생일 선물로 갈색 개 한 마리를 받습니다. 이름은 타룩입니다. 장차 멋진 썰매개가 될 강아지이죠.  아툭과 타룩은 그 때부터 친구처럼 항상 붙어다녀요.  어느 날, 타룩은 다른 개들과 함께 눈썰매를 끌고 사냥을 나갑니다.

 

  매일 사냥을 떠난 타룩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아툭은 아빠로부터 타룩이 푸른 늑대개에게 물려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습니다. 너무 슬퍼 눈물도 나지 않습니다. 아툭은 "푸른 늑대를 죽이고 말 거야" 라며 복수심에 이글이글 불타오릅니다.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타룩을 죽인 푸른 늑대를 향한 복수심은 아툭으로 하여금 훌륭한 사냥꾼이 되게 만드는 견인차 역할을 합니다. 아툭은 마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냥꾼이 됩니다. 아툭을 보면 모든 동물이 무서워 멀리 도망갈 정도이지요.

 

 자신의 키가 자작나무보다 커진 날, 아툭은 푸른 늑대를 찾아 나섭니다. 고요한 툰드라 지역에 들어섰을 때 , 아툭은 푸른 여우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우는 아툭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 줍니다. 자신과 별이 친구라면서 말이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요? 여우와 별이 친구라니... 친구는 항상 붙어 살아야 하는데... 저렇게 멀리 떨어진 별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냔 말이에요?

 

  얼마의 시간이 흘러, 아툭은 더 강한 사냥꾼이 되었고, 다시 푸른 늑대를 사냥하러 툰드라 지대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푸른 늑대를 죽입니다. 자신의 친구였던 타룩을 죽인 푸른 늑대에게 복수한 겁니다. 그런데 전혀 기쁘지가 않아요. 아니 오히려 슬퍼요. 게다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푸른 늑대를 죽였다고 해서 타룩이 살아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복수는 이렇게 허망하지요. 복수만을 위해 달려온 아툭의 인생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아툭에 나온 푸른 여우는  결국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주제를 말해주고 있지요.  아툭은 그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 했죠. 오직 푸른 늑대를 죽이겠다는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으니까요. 푸른 늑대를 죽이고나서도 전혀 기쁘거나 행복하지 않자 그제서야 복수는 부질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푸른 여우가 말한 의미를 되새김질 해 봅니다. 복수에 이글거리는 눈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눈이 되자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에전 같으면 짓밟아버렸겠지만 아툭은 그 꽃과 친구가 됩니다. 푸른 여우가 별과 친구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아툭은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꽃에게 " 널 지켜줄 거야. 널 기다릴 거야"라고 말해 줍니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을 뿐, 행복도 평화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후련하지도 않습니다. <아툭>은 그걸 나즈막히 말해 줍니다. 가정과 교실에 평화가 깃들길 바란다면 조용히 이 그림책을 읽어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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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7-08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이야기네요, 그리고 어려운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수퍼남매맘님, 좋은하루되세요

수퍼남매맘 2015-07-08 20:13   좋아요 1 | URL
어머! 서니데이님, 오랜만이에요.
아이한테는 좀 어려울 수 있어요.
그래서 어른이 낮은 목소리로 읽어주면 좋을 듯해요.

2015-07-10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0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