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무더위가 찾아와서 적응이 안된다. 더울 때는 머리도 식힐 겸 그림책이 딱이다. 지난 주에 도서실에 신간이 들어왔다. 제일 먼저 책을 빌리는 기쁨을 맛보려고 3권의 그림책을 대출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라는 그림책 때문에 좋아하게된 강경수 작가의 신작이다. 책소개를 보니 작가로 유명해지기 전에 이 그림책을 먼저 구상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거짓말 같은 이야기>와 비교해 보면 엉성함과 억지스러움이 느껴진다. 이건 전작이 정말 뛰어나서 생기는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ㅋㅋㅋ 얼마 전에 읽었던 동화책 <바빠 가족>과 비교해도 흡인력이 덜하다. 이게 별1개를 깎는 이유이다.
늘상 바쁘게 사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다. 바쁘게 지내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거기에 대해 자문해보게 만든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는 마을 사람들 앞으로 느닷없이 괴물 하나가 지나가게 된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괴물을 뒤쫓아간다. 괴물 때문에 하나둘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고 드디어 괴물의 정체가 밝혀지는데....정작 괴물은 바쁘게 앞으로만 내달리는 "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번쩍 정신이 든다. 주변도 돌아보자.
단 3행만으로도 정말 멋진 시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나태주 시인의 <풀꽃>시가 그림책으로 재탄생했다.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시인도 말했지만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너도' 라는 말일 테다. 너도 그만큼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말에 잔뜩 가시가 돋혀 있던 내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느낌을 받는다. 참 짧지만 울림이 큰 시이다.
이 시가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림도 아름답고 내용 또한 감동적이다. 나태주 시인이 시인이기 전에 교육자란 사실도 이 그림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교육자 중에 좋은 시인이 꽤 있다. 안도현, 김용택 시인도 언뜻 떠오른다. 아이와 함께 지내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김용택 시인도 시골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주옥 같은 시를 많이 창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나태주 시인도 그런가 보다. 개인적으로 교장선생님이 무게만 잡지 마시고, 나태주 시인처럼 각 교실에 찾아와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심 좋겠다. 그럼 얼마나 멋지고 존경스러울까. 예전학교에서 교감님이 6학년 인성 교육 차원에서 교실에 오셔서 <삼국지>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아이들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 들려주는 교장님을 모시고 있음 참 행복할 듯하다. 도서실에 나태주 시집이 있나 찾아봐야쥐~~
수퍼남매 어릴 때, 책으로 집을 지으며 자주 놀았던 기억에 이 책을 덥석 잡았는데 완전 대박이다. 내용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보기 드문 이탈리아 책인데 20명의 형제자매 중 막내로 태어난 말리크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란하였던 가정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점점 먹구름이 끼게 된다. 엄마가 죽은 후 밖에서 자주 놀던 말리크는 2층 다락방에 자주 가게 된다. 그 곳에는 엄청 많은 책이 있었다. 이어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는데 막내인 말리크에게는 하나의 유산도 돌아오지 않고 책과 함께 집에서 내쫓긴다. 집에서 쫓겨난 말리크는 너무 추워서 책으로 집을 짓게 되고, 거기서 책과 더불어 생활하게 된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아무 것도 없이 쫓겨난 가여운 말리크에겐 " 책이 곧 집이고, 길이고, 산이고, 세상이었다."는 말이 이 그림책의 주제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다른 유산을 가져갔던 형제자매들보다 말리크가 가장 위대한 유산을 받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어린아이가 혼자 견디기엔 너무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 힘든 과정을 지나 결국 단단해졌으니 말이다. 말리크의 이야기를 보니,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돈을 물려줄 게 아니라 책을 물려주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는 시스템이다>연수에서 책벌레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주변에 독서광이 있었다는 점이란다. 어려서부터 누군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본인도 독서광이 된다는 것이다. 말리크의 엄마는 분명 독서광이었을 것이다. 그림책에서 보면 말리크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리 때 손에 책을 잡고 있기도 하다. 이를 보면 부모 모두 책을 좋아했던 듯하다. 하지만 밖에서 놀기 좋아하는 말리크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말리크에게 남은 것 책뿐이었다. 책만이 가족이고, 친구였으며, 유일하게 자신을 위로해주는 존재였다. 말리크 스스로 책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이 그림책이 그래서 참 좋다. 어른은 본을 보여주며 아이가 스스로 깨닫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어른은 강요하지 않는 법이다. 아는데 잘 안되어 그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