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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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피를 파는 사나이가 있습니다. 

생사 공장에 다니는 허삼관, 그가 바로 주인공이죠.

물론 지금은 피를 판다고 돈이 생기는 시절이 아니지만

허삼관이 살던 그 당시에는 피를 팔면 돈이  생겼었나 봅니다. 

피를 팔면 얼마나 돈이 생기길래 피를 팔아 집안 대소사를 해결하였을까요?

생사 공장 다니는 허삼관의 몇 개월 월급 보다 훨씬 많은 돈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궁색할 때 피 팔아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허삼관이 피를 팔게 된 사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허삼관은 우연히 피를 팔면 많은 돈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이웃에게 전해 듣고

물 여덟 사발을 들이킨 후 오줌보가 터지기 일보 직전

병원에 가서 피를 뽑습니다.

약간 어질어질하지만 거액을 손에 쥐고

이웃과 함께 승리 반점에 가서 돼지 간볶음과  황주를 마셨죠.

월급 가지고는 상상도 못할 노릇이었죠. 

남은 돈으로 어여쁜 아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후, 10년 동안 허삼관은 피를 뽑지 않고 잘 지냅니다.

피를 안 팔아도 될 만큼 요순시절이었다는 셈이죠.

 

하지만

그가 9년 간 애지중지 키운 첫째 아들 일락이가 다른 남자의 아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허삼관 가정에는 평화가 깨집니다.

자신의 아들도 아닌 첫 아들 일락이가 친구 머리통을 깨부수는 사고를 쳐서 거액의 병원비를 물어야 할 상황이 된 거죠.

일락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닌 걸 알고, 일락이를 구박하는 것을 보면 참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먹을 것이 없어 몇 달 째 옥수수죽으로 지내던 때입니다.

세 아들이 점점 야위어 힘 없어 하자 피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일가족 모두 국수를 사 먹으러 가죠.

일락이만 빼고요.

일락이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서 피 판 돈으로는 국수를 사 줄 수 없다며 일락이는 약간의 돈을 줘 군고구마만 먹게 하죠.

혼자 남은 일락이는 군고구마만으로 배가 안 차 국수 먹고 싶다며 서럽게 울죠.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크다고 하는데 먹을 것 가지고 참 야박하다 싶었죠.

 

그러다 몇 년 후, 이와는 정반대의 일이 생깁니다.

일락이가 모 주석의 문화대혁명으로 젊은이들은 모두 농사를 지으러 시골로 갑니다.

일락이와 이락이도 차출되어 가게 되죠.

거기서 간염에 걸린 일락이가 생사를 헤맬 때 허삼관은 뜨거운 부정을 보여줍니다.

책 전체에서 가장 가슴 뭉클하면서도 조마조마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 번 피를 팔면 적어도 세 달은 쉬어야 한다는데

허삼관은 일락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연거푸 피를 팝니다.

피를 팔다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는데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뜨거운 부정은 계속 하여

물을 들이키고 주삿바늘을 혈관에 찔러 댑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위화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습니다.

2007년에 책이 나왔더군요. 하기사 그 때는 제가 책에 별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 것이 당연하죠.

근래 "허삼관 매혈기"라는 영화에 하정우, 하지원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 책이 제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죠.

영화 보기 전에 책부터 봐야겠다 싶어 읽었는데 손에서 떨어지지 않더라구요.

작가가 꽤 유명한가 봅니다. 공지영 작가하고도 친분이 있어 보이고.

책을 보고나서 든 느낌은 작가가 칙칙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작가의 다른 책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를 판다는 자체가 굉장히 슬프고 암울한 이야기인데

그 속에 해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허삼관의 아내가 문간에 앉아 읊어대는 이야기는 마치 판소리를 듣는 듯합니다.

가족을 위해 피를 판 남편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가 개봉하면 꼭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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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토끼 길들이기 대작전 라임 어린이 문학 3
창신강 지음, 전수정 옮김, 이형진 그림 / 라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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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신강"이란 글작가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이력을 보니 "파란 수염 생쥐 미라이"의 저자였다. 감동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내심 기대를 하고 이 책을 읽었다. 제목과 출판사 소개글에서 느껴지는 유쾌함 보다는 책 내용은 사뭇 철학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푸하하 웃고 책을 덮을 수도 있겠지만 모모의 이야기를 통해 " 자유 " 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음 하는 책이다.

 

   방학 하기 전, 우리반 아이들에게 몇 꼭지 읽어줬는데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토끼인데다 아주 불량한 토끼 한 마리가 나온다. 아주 못된 토끼이다.  뚱보인데다 먹는 것만 밝히고 약자를 괴롭히고 게다가 생각도 없다. 민폐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드라마도 악역이 나와야 재미있듯이 동화책에도 악역이 나오면 흥미진진해진다. 아들 먼저 읽혔는데 아들 반응도 좋았던 지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추운 겨울 산 속, 올가미에 걸린 산토끼 한 마리가 피를 철철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이를 발견한 할머니 토끼가 자기 이가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입으로 올가미를 끊어내어 살려준다. 할머니 토끼는 다친 산토끼를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산토끼 이름은 모모이다. 산토끼를 처음 본 토끼들은 자신들과 생김새가 다른 모모를 구박하고 텃새를 부린다. 그 중 가장 심한 녀석이 빠로 뚱보 토끼이다. 먹는 것만 밝히는 뚱보 토끼는 다리가 다친 모모를 향해 선방을 날렸다고 오히려 산토끼의 강한 뒷발차기에 나가 떨어진다. 모모의 뒷발차기가 강한 것을 보고 앞에서는 괴롭히지 못하지만 사사건건 모모를 훼방 놓는 악역을 이 녀석이 담당한다.

 

   여전히 토끼들은 산토끼인 모모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모에게도 친구가 생긴다. 먼저 말을 걸어 온 바바라는 작은 토끼, 쥐약을 먹어 죽을 뻔 한 걸 할머니와 모모가 살려준 들쥐, 눈빛에 시력을 잃어 헤매다 사냥꾼에게 잡힐 뻔한 꿩, 그리고 모모를 살려주고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할머니 토끼가 모모의 친구다.

 

   다리가 어느 정도 나아 집 밖으로 나가본 모모는 커다란 벽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할머니에게 물어본다. 이 곳은 다름 아닌 양토장이었던 것이다. 양토장에서 사료만 먹고 자란 토끼들은 모모처럼 스스로 먹이를 구할 줄도 모르고, 뒷발차기의 본능도 잊어버렸다. 오직 사람들이 준 사료만 먹고, 춥다고 문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며, 할머니가 구해 온 도토리와 개암 열매를 언제 먹나 그 생각 뿐이다. 태어나자마자 양토장에 갇혀 지낸 토끼들은 이제는 자유가 뭔지조차 모른다. 할머니는 자유를 잃어버린 이 어린 토끼들에게 자유를 찾아주려고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할머니는 토끼들이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어느 시기가 되면 도살장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여 이 토끼들을 탈출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토끼들은 그런 할머니의 깊은 뜻도 모르고 나약하기만 하다. 할머니의 깊은 뜻을 안 모모, 바바, 들쥐, 꽁은 할머니의 계획을 도와주기로 한다. 도살장에 끌려 가기 전, 양토장에 있는 모든 토끼 양토장 밖으로 탈출시키는 것이다.  전혀 몸을 안 쓰는 이 불량한 토끼들을 어떻게 굴을 파서 탈출시킬까.

 

   "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라"고 했던가. 모모는 자신을 살려준 할머니를 위해, 그리고 먹고 싸고 자는 것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토끼들을 위해 정성을 다한다. 바바, 들쥐, 꿩이 모모를 도와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토끼들이 스스로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고 몸을 움직여 우리 밖을 나가야 한다는 것인데 토끼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까. 만약 토끼들이 마음이 변해 굴을 통과하더라도 뚱보 토끼가 문제다. 그 사이 더 살이 쪄서 도저히 굴을 통과할 수 없을 듯하니 말이다. 할머니는 모모에게 276마리 토끼 전부를 안전한 곳으로 탈출시키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모모와 친구들은 276마리 토끼들을 양토장에서 탈출시킬 수 있을 건가.

 

   창신강은 토끼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토끼들의 이야기는 바로 사람의 이야기이다. 산토끼인 모모를 배척하는 토끼들의 모습이 나와 다른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와 닮았다. 편안한 것에만 안주하려는 토끼들의 모습 또한 진취적인 일에 도전하기 보다는 해오던 일을 계속 하는 것에 만족하는 우리와 닮았다. 뚱보 토끼가 바바를 행해 휘두르는 폭력 또한 사람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양토장에서 자란 토끼들은 어느새 본능도 잊은 채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 토끼는 자유가 무엇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자유를 찾아주겠다고 해도 언제 끌려가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이 양토장이 좋다고 남겠다고 한다. 사람이 주는 사료가 자신의 몸을 살찌워 잡아 먹으려한다는 것을 모른 채 열심히 맛있다고 먹는다. 진실을 아는 할머니와 모모만 안타까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도 할머니와 모모 같은 선각자들이 늘 있었다. 그들의 절규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어 외롭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할머니와 모모가 276마리 힘들다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토끼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사람 사회의 그들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2015년이 시작되었다. 새해에는 할머니, 모모처럼 소중한 가치를 우선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할머니 혼자일 때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모모가 오고, 바바, 들쥐, 꿩이 함께 도와줬을 때 할머니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꿈 꾸던 일이 실현되리라 믿게 되었을 것이다. "함께 걸으면 길이 된다"는 것처럼, 우리가 소중히 생각해야 할 가치에 함께 가는 사람이 많아지는 한 해였으면 한다. 함께 꾸는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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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지막날이었던 어제, 딸의 미술 영재원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1년 전에는 고배를 마셔서 연말연시 집안 분위기기 좀 어두웠었죠.

 

오후 5시 발표가 났다고 하였는데 자료가 올라오지 않아 조마조마했는데 20여 분이 지나자 합격자 명단이 올라왔더라구요. 휴대폰으로는 파일이 열리지 않아 얼른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어요. 지금까지 4번, 해마다 명단을 열어보는 것인데도 늘 마음이 조마조마 두근두근하더라구요. 이번에는 실기 시험을 잘 봐서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구요. 옆에 온 딸도 두근거린다고 하더군요. 그 때까지 합격자 발표날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놀더니만. 저만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 언제 공지가 떴나 살펴보고 있었죠. 딸이 " 엄마 ,눈 감고 있어. 내가 먼저 보고 알려줄게" 이러더군요. 눈을 감고 기다렸어요. 딸의 환호가 들리더군요. ' 아! 함격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딸에게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준 딸이 정말 대견하더라구요.

 

초등 영재 같이 다녔던 엄마와 카톡을 동시에 날려더랐구요. 둘 다 합격해서 정말 좋다구요. 물론 그 쪽은 4년 내내 영재원을 다니는 거지만. 그래도 합격자 발표마다 불안하고 떨린다고 하네요. 누구나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긴 하죠. 영재원 발표만 해도 이런데 대학 합격자 발표는 얼마나 떨릴까요? 아무튼 친한 친구랑 함께 다니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수다 떨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죠. 딸이 옆에서 그 친구의 열정을 좀 본받았으면 해요. 배울 게 있는 친구가 좋잖아요. 미술 영재원은 비싼 재료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어요. 거기다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해서 창의성이 좋아지는 걸 옆에서 느끼겠더라구요. 아이가 미술쪽에 재능이 있다 싶으면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아들도 내년에 한 번 도전해 보라고 하니 영 싫다고 하네요.

 

합격의 기쁨도 잠시, 저녁에 딸이 투덜대더군요. 이제 주말에도 늦잠 못 자고 영재원 가야 한다면서 말이죠.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합니다. 그래도 초등 영재원 다닐 때 한 번도 지각, 결석 안 하고 성실히 다녔더랬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영재원 생활하자고 딸과 다짐하였습니다. 초등 영재원보다 중등영재원이 훨씬 질이 낫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연초, 기쁜 소식 알려 드리게 되어 좋습니다.

 

2015년 새해에는 늘 건강하시고, 지금 누릴 것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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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1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2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5-01-0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좋은 소식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수퍼남매맘 2015-01-02 16:1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하시는 일도 잘 되시길 바라요.
서재에서 자주 만나요.

2015-01-01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2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2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마 전 영화 <역린>을 봤다. 정조 역을 맡은 현빈의 멋진 근육-난 별로 근육질을 좋아하진 않지만서도-이 처음부터 시선을 잡아 끌었다. 조선의 역사 중에서 사도세자의 죽음만큼 애절한 사연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하여 그 이야기는 늘 회자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역린>에서는 정조가 중심이 되어 정순왕후와의 대결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사도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회상신에 삽입되어 있다.

 

  영화를 보고나서 영조가 이해가 안 됐다. 분노가 일었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어찌 아들을 죽일 수 있지?  그냥 혼만 내주려고 했다손 치더라도 어찌 그 더운 여름 날,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좁은 뒤주에 갇아 놓을 수 있지? 설사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처럼 사도세자가 광기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 해도 그래도 자식인데 어찌 그럴 수 있지? 세력을 부리던 노론과의 정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도 해도 그게 말이 되냔 말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솔직히 이해가 안 갔다. 아무리 영조가 오랜 기간 동안 나라와 백성을 위해 선정을 하였다 해도 자식을 죽인 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 자식이 부모를 해하는 것도 당연히 천륜을 거스리는 일이지만 부모가 자식을 해하는 것은 그보다 더 천륜을 거스리는 일이 아니던가!  세계사에서 영조처럼 자식을 죽인 왕이 또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아무튼 부모가 되어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를 다시 보니 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보통의 부모라면 자식을 제 몸보다 더 아끼는 게 인지상정인데 어찌하여 영조는 자신의 아들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영조의 변을 듣고 싶다.

 

  영화에 나왔던 장면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영화에서는 사도세자가 죽고나서 영조가 세자의 저고리에 편지를 썼고 이걸 정조가 비밀리에 간직하고 있었다. 아마 사도세자가 허망하게 죽고나서 아비였던 영조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자식을 그렇게 죽게 놔뒀는데 마음이 안 아팠다면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였다. 왕이지만 정적이 매일밤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정조는 어떤 마음으로 이 엄청난 현실을 버티었을까. 이 영화는 거기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줬다. 바로 정조와 그를 평생 모신 내관이 외던 중용 23장이 답이다.

 

  중용과는 인연이 깊다. 고1 담임 선생님을 사모하고 존경하던 적이 있다. 지금도 물론 존경심은 그대로이다. 한문을 가르쳤던 선생님은 늘 한문책과 더불어 다른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셨다.  야자를 할 때도 본인은 늘 책을 읽으셨다. 책벌레셨던 것이다. 아마 내가 본 어른 중에서 가장 책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그래서 닮고 싶었던 분이셨다. 외모도 출중하셔서 손석희 앵커와 흡사했다. 그 분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고 했던 게 바로 " 중용" 이었다. 그 때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흔들림 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이라고 말이다. 그 말이 참 멋졌다. 치우지지 않고 흔들림 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그때부터 나의 좌우명도 당연히 "중용"이 되었다. 한문 선생님이었던 담임은 아마 책 <중용>을 읽으신 후 좌우명으로 삼으신 게 아니었던가 싶다. 아직까지 <중용>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역린>이란 영화를 보고나서 언젠가는 꼭 완독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에 의해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커다란 슬픔과 항상 자객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던 정조가 택한 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영조와 정조를 놓고 본다면 정조가 훨씬 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영조는 이유야 어찌 되었건 자신이 왕으로 있을 때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정조는 제 눈앞에서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이는 것을 목격하고, 늘 정적에 둘러싸여 지냈지만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화목하려고 애썼다. 노론을 싹 쓸어버리지 않은 것만 봐도 정조가 얼마나 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연산군은 자기 어미를 죽인 사람을 모조리 쓸어버지 않았던가. 나를 아프게 한 사람, 나를 욕보인 사람, 나를 대적하는 사람을 참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들을 한번에 휩쓸어버릴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걸 억누르고, 정적과 함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이것만 보더라도 정조가 영조보다 훨씬 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용 23장에 나온 것을 정조는 실천하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자신을 죽이려는 정적을 향해 복수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 굴복시킬 줄은 몰라도 근본적으로 내면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정조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정조가 중용의 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의 죽음이 커다란 슬픔,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노론에 대한 복수심도 물론 만들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정조는 그런 마음에 갇혀 있지 않았다. 정조는 아다시피 자객의 위험 때문에 밤새 잠도 안 자고 책을 읽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많은 책이 정조에게 "복수하라.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라. " 말하지는 않았을 성 싶다. <중용>처럼 정조에게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스리라고 했을 것이다. 좋은 책은 그렇게 정조의 슬픈 마음과 복수심을 다독여 줬을 거라 생각한다. 정조의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해 줬을 거라 생각된다. 결국 아버지의 죽음이 커다란 상처가 된 건 사실이나 그로 인해 정조가 더 넓고 깊은 사람이 된 것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이 정조를 더 단단하게 만든 셈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 시키고

남을 감동 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역린> 중에서 중용 23장


  영화 <역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배우 현빈의 등근육과 식스팩이 아니라 중용23장이었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라는 그 말, 남을 감동시킬 때 결국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 말을 2015년 새해의 다짐으로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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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0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이의 비닐우산 우리시 그림책 6
윤동재 지음, 김재홍 그림 / 창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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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금요일, 방학식이 있던 날이다. 앞으로 30일 동안 떨어져 지낼 우리반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줄까 고민하던 끝에 고른 책은 " 나눔, 더불어 사는 삶"을 주제로 하는 <영이의  비닐 우산>이었다. 나눈다는 것이 나와 이웃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고,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지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림책은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화책과 소설은 솔직히 한 번 읽고 다시 안 읽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림책은 읽었지만 또 읽게 된다. 이 그림책도 여러 번 읽은 책인데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전에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와 기뻤다. 이런 게 바로 그림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김재홍 그림 작가는 좋아하는 그림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사실적이고 중후한 그림 스타일이 참 좋다. 이 그림책은 윤동재 시인의 이야기시를 김재홍 작가가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시를 배울 때 잠깐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읽어주지 못했다. 이야기 같은 이런 시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영이는 구멍 난 비닐 우산을 들고 학교로 향한다. 영이의 얼굴 표정은 아이 답지 않게 침울해 보인다. 학교 문방구 앞에 거지 아저씨가 상자를 뒤집어 쓴 채 구걸을 하고 있고 짖궂은 아이들은 거지 할아버지를 툭툭 건드린다. 할아버지 옆에 있는 깡통은 돈 대신 빗물만 찰랑찰랑 넘치고 있다.  남루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가엾다. 비까지 오는데 그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으니 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는 날엔 큰일인데....불쌍한 거지 할아버지와 아이들의 장난질을 영이는 묵묵히 지켜본다. 문방구 아줌마는 연신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그 놈의 영감태기, 뒈지지도 않고" 라고 성질을 내며 말한다. 요만큼의 동정심이나 친절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부분을 읽어주자 여기저기서 " 와~ 나쁘다." 라는 우리반 아이의 말소리가 들린다. 아침 자습을 마친 영이는 몰래 학교 밖을 빠져나와 슬며시 비닐 우산을 할아버지한테 씌워 준다. 거지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나 보다. 영이가 할아버지를 향해 갈 때, 운동장 빗물에 비친 영이의 비닐 우산, 그 초록색이 점점 번지는 장면은 영이의 작은 친절이 세상에 점점 퍼져나가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부디 그 패악스런 문방구 아줌마의 마음도 물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구멍 난 비닐 우산을 썼다는 것, 산동네에서 내려온다는 것, 영이의 표정이 밝지 않다는 것을 통해 영이 또한 가난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 영이가 자신보다 더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거지 할아버지에게 비닐 우산을 씌어준 것이다. 영이는 그 비닐 우산이 없으면 당분간은 비를 맞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이에 비하면 문방구 아줌마는 영이보다  훨씬 더 경제적 형편도 낫고, 게다가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손을 내밀기보다 오히려 재수 없다며 저주를 퍼붓는다. 영이와 문방구 아줌마의 극명한 대조를 보면서 사람이라고 해서 다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문방구 아줌마처럼 자신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 내밀고 위로하기는 커녕 오히려 내치고, 커다란 벽을 만들어 분리시키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가!  돈 좀 있다고 권력 좀 있다고 지위 좀 있다고 자신보다 약자를 짓밟는 경우를 보면 아직 우리나라 사회가 건강하지 않구나 절감할 때가 많다. 약자를 짓밟는 사회는 이미 썩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정화시킬 사람은 아직 때묻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다.  아까  책 읽어줄 때 문방구 아줌마의 욕설에 여기저기서 " 와 나쁘다. 너무 하다" 며 분노했던 순수의 결정체, 우리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문방구 아줌마처럼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앞만 보고 내달리는 사람은 안 되었으면 좋겠다.  영이처럼 자기보다 더 약자를 위해 먼저 손 내미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 이런 좋은 그림책을 늘 가까이 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예민함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럼 지금과 같은 고운 마음결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옳은 일을 했을 때 뇌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반면 문방구 아줌마처럼 사람 답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감정 뇌가 굉장히 불편해한다고 한다. 그러니 뇌 좋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가 먼저 도덕성을 지켜야 할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니까. 또 아이에게 작은 것이라도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주는 게 도덕성 좋은 아이로 키우는 방법임이 분명하다. 도덕성 좋은 사람이 많아질 때, 교실과 사회가 지금보다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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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0 0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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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1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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