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 - 때론 삶이 서툴고 버거운 당신을 위한 110가지 마음 연습
서천석 지음 / 김영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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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마음이 참 갑갑하다. 직장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어딜 보나 마음이 답답해질 뿐이다. 가끔은 전문가를 찾아가 속내를 몽땅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전문가는 이럴 때 어떤 조언을 해줄까 내심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오롯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아는 선배 한 분은 가정 문제 때문에 상담가를 찾기 시작하였다. 4년 내내 꾸준히 상담을 받고 있다. 1시간 상담을 하고 5만원을 주는 데 그 돈이 아깝지 않다고 하셨다.  처음엔 자기 못나고 모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마주 해야 해서 힏들었다고 한다. 결국 내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너무 마음 아프고 부끄럽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상담이 계속될수록 내 이야기를 온전히 귀담아 들어주고, 적절히 코치를 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기쁘다고 하였다. 치유가 되고 서서히 내적 힘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상담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나쁜 이력이 붙을까 봐 조마조마 하는 편이지만 선진국에서의 상담은 감기 치료 받는 것만큼 자연스럽다고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아직은 상담을 받으러 간다는 게 생각 뿐이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지만.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스트레스가 있다면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르치다 보면 신체가 아니라 정신이나 마음이 아픈 아이를 가끔 본다. 요즘 교사들이 힘들다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정신과 마음이 아픈 아이가 전보다 상당히 많아졌다. 교사는 엄밀히 말해 이쪽 전문가는 아니다. 관련 연수를 받고 더 관심 있는 분은 따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받기도 하지만 책의 저자처럼 정신이나 상담을 전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 전문가는 아니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 이런 분야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단 생각이 굳어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조금 아는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해서 아이에게 적용하는 게 어쩌면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이나 마음이 아픈 아이는 전문가와 꾸준히 상담을 하고 치료를 받는 과정이 있으면 아까 이야기한 선배처럼 좋아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상담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선입견과 편견이 많기 때문에 그냥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하다 못해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인데도 담임에게 감추는 경우도 많다. 담임이 아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까 봐 두려워서이다. 내 경험상 오히려 미리 알려주면 아이에 대해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인데 아직 학부모들의 생각은 전자가 강한 듯하다.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사회적 편견 때문에 치료가 늦어지고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보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또 하나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 하는 무조건적 낙관론 또한 아이의 치료를 늦추는 듯 싶어 안타깝다. 주위 어른들이 하는 말, " 나이 먹으면 괜찮아져. 아이가 다 그렇지 " 등은 아이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흐려놓는 경우가 있다. 아울러 매년 행해지는 정서 행동 발달 검사는 허울만 좋을 뿐 제대로 된 검사가 아니라고 본다. 아는 지인 중에서 자녀와 함께 이 검사를 전문 기관에서 해 본 적이 있는데 문항 수가 진짜 많다고 한다. 너무 많아 도저히 거짓으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초반에는 정상으로 나오게 거짓으로 체크를 하다가도 후반이 되면 지쳐서 제대로 체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하는 정서 검사는 문항수가 얼마 안 된다. 얼마든지 아이가 정상이 나오도록 부모가 나쁜 맘 먹으면 거짓으로 표시할 수 있다. 물론 제대로 체크하는 부모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교실에서 담임이 볼 때는 충분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다 정상으로 표시해 놓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부모가 자녀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객관화하지 않는 경우, 아이의 상태만 더 나빠질 뿐이다. 이게 바로 맹점이다. 검사는 하고 있지만 과연 판별해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문제를 직시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정신과 마음이 아픈 아이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학교 현장에는 상담 교사 한 명 제대로 배치되어 있지 않다. 이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전임지에는 상담 교사가 상주하고, 전문 인력도 교육청에서 나와 힘든 아이가 있을 때 도움을 받았는데 그마저 사라졌다. 복지가 좋아지긴 커녕 더 나빠졌다. 중고등학교 사정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중고등학교 교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이 아픈 아이가 오는 곳이 다름 아닌 도서실 또는 보건실이라고 한다. 딸에게 물어보니 중학교에는 상담 교사가 있긴 하나 그닥 도움을 받고 있지는 않는 모양이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가슴에 품고 사는가. 닭장 같은 교실에 가둬놓고 8시간 이상을 공부만 하라고 하니.... 아이들이 미치지 않고 버티는 게 대견하다. 책을 읽어보니 자살을 작정한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것만 해도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현대인은 오롯이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단 뜻이기도 하다. 잔소리 하는 엄마, 훈계하는 선생님 대신에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 말이다. 상대에게 털어놓는 사이, 감정은 누그러지고 스스로 문제의 본질을 깨닫고 해결점을 찾을 수도 있다. 학교 뿐 아니라 군대도, 회사도 전문가가 필요하다. 군대에서 계속 사고가 터지는데도 뭐 이렇다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시 행정이 아니라 제대로 된 내 마음을 읽어줄 전문가를 배치해야 한다. 또한 감기 걸렸을 때 내과를 찾듯이 마음이 답답할 때도 자연스럽게 상담가를 만나러 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저자도 말했듯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들리는 말에 교육 1번지라 하는 곳에 소아정신과 또한 가장 많다고 한다. 이 말은 그만큼 그 곳에서 성장하는 아이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는 반증인 셈이다. 우리나라 아이의 행복지수가 왜 자꾸 최하위를 기록하는가! 바로 사회 구조가 아이들을 행복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경쟁에 내몰려져서 유아 때부터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배워야 하고, 초등학교부터 스펙을 쌓아야 한다. 중학생 이상은 항상 잠이 부족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 시간, 취미 생활을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성적으로만 평가 받는다. 그렇게 힘들게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며 비싼 물가와 높은 현실에 가로막혀 삼포자로 살아야 한다. 연애도, 결혼도, 집 장만도, 자녀도 그저 꿈일 뿐이다. " 힐링 힐링" 외치기 전에 상처를 주지 않는 사회 구조를 마련해야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학생은 학생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는 아니라는 말이다. 덜 상처 받는 사회,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끼는 사회를 만들어야 구성원이 좀더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갈 터인데. 그 길이 요원해 보이니 갑갑하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무엇하나 정의로운 게 없어 보여 막막하다.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란다. 하나는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을 해결하는 것. 둘째 스트레스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는 것. 셋째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것. 나 같은 경우에는 셋째 밖에 답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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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4-11-19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읽어봐야겠네요. 다음 권이 곧 나올 것 같았는데, 저자분이 최근에 다른 책을 내셨더라구요.

수퍼남매맘 2014-11-20 07:31   좋아요 0 | URL
요즘 마음이 좀 우울해서 읽어봤는데 괜찮더라구요.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왜 근래 들어 잠이 많아지고 식욕이 왕성해지는지 과학적 근거가 있더군요.

2014-11-20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1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키싱 마이 라이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9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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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시절에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요즘은 좀 잠잠해졌지만 예전에 떠들썩했던 '미혼모'이야기. 대부분 주인공이 청소년이다. 미혼모들이 한 일을 일컬어 '사고 쳤다'고 한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한창 '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데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미혼모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키싱 마이 라이프(kissing my life)'를 읽어보았다.

 

 

  주인공인 하연이는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하는 고등학생이다. 이제 수능준비도 해야 하고 여러모로 바쁜 시기에 하연이는 남자친구인 채강의 집에 놀러갔다가 덜커덕 임신을 해 버리고 만다. 하연이는 술을 먹고 들어와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때문에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인데 어린 나이에 임신까지 겹쳐서 더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여기서 잠깐 미혼모에 대한 편견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미혼모라고 하면 사람들이 불량 청소년 등을 떠올린다. 사실은 나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미혼모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한 번 실수 때문에 뒤에서 험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미혼모들이 결혼 안한 채로 임신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실수나 강제로 당한 것뿐인데 왜 힘든 상처를 안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리어 욕을 먹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욕을 먹어야 하는 건 임신을 하게 만들고 책임지지 않는 남자들인데 말이다.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보살펴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미혼모인데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욕을 먹으니 같은 여자로써 참 안타깝다.

 

 

  책에서 감동받은 부분은 하연이의 의지와 강인함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실수로 임신한 하연이를 내치지 않고 도와준 하연이의 친구들이다. 나에게도 저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했다. 하연이가 집을 나와 모텔에서 살게 됐을 때도 언제나 하연이의 친구들은 하연이의 옆에서 도와주었다. 진정한 친구란 정말 세상이 다 등 돌려도 한결같이 옆에 있어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 아닐까 싶다. 나중에 미혼모시설에 가 보살핌을 받을 때도 끊임없이 찾아와 이야길 들어주고 함께 했다.

 

 

  책을 읽다보니 우리나라에 미혼모 시설 복지가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 궁금했다. 검색을 해보니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힘들게 사는 미혼모들이 많다고 했다. 사회에서 내쳐지고 힘들게 일하면서 사는 미혼모들이 좀 쉴 수 있는 공간이 지금보다 많아졌으면 좋겠다. 미혼모와 그녀의 아이가 쉴 수 있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미혼모가 되었다고 하여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열심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책 제목처럼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한다. '키싱 마이 라이프!'

 

-중1 딸이 쓴 리뷰를 그대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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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9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9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9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9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터의 기묘한 몽상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27
이언 매큐언 지음, 앤서니 브라운 그림,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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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와 한가족이 되고나서는 고양이가 나오는 책은 저절로 눈길이 머문다. 이 책은 알라딘 지인 중의 한 분이 추천을 해서 읽게 되었다. 약간은 시건방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반인반묘의 모습이 굉장히 흥미롭다. 고양이 얼굴이 우리 온이와 많이 비슷하다. 고양이는 역시 눈이 매력적이다. 혹자는 그 눈 때문에 고양이가 무섭다고들 하던데...

 

  이언 매큐언이 쓰고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몽상 내지는 상상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는 초반부가 썩 흡인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집중도가 높아졌고, 마지막장을 덮을 때는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온이(우리 집 고양이)는 하루종일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궁금할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온이가 아무런 걱정 없이 진짜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 때나 사람들이 절 끌어안고 쓰다듬고 만지는 게 귀찮고 싫을 수도 있겠다 싶다.  온이도 꿈을 꾸고, 생각을 한다고 한다. 우리 집 구조를 다 알고 자기 맘대로 왔다갔다 하는 걸 보면 분명 생각이란 게 있오 보인다. 기억력도 있어서 자기 간식을 어디가 감춰놨는 지도 안다.   가족 중 나를 가장 잘 따르는 걸 보면 누가 저를 가장 사랑하는 줄도 아는 듯하다. 수퍼남매는 이 다음에 태어나면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24시간 띵가띵가 놀며, 학교도 안 가고, 숙제도 없는 온이가 부럽다는 것이다. 반대로 온이는 수퍼남매를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피터는 좀 독특한 아이다. 왜냐하면 시간만 나면 몽상을 즐기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스쿨버스를 동생과 같이 타는데 버스 안에서 그만 몽상에 빠져 동생을 버스에 놔두고 저만 내린 적도 있다. 겉표지가 된 에피소드는 이렇다.  피터에게는 이제 많이 늙어버린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어느 날, 피터의 몽상이 시작된 덕분에 고양이가 피터가 되고, 피터가 고양이가 된다. 고양이가 된 피터는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한 마리 고양이를 멋지게 KO시킨다. 피터가 고양이가 되어보니 고양이라고 해서 마냥 편안한 것만은 아니었다. 고양이도 늙어가고, 새파랗게 어린 녀석에게 무시 당하기도 하며,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한판 승부를 내야할 때도 있었다. 고양이가 된 피터가 멋지게 적을 물리쳐 준 그 날, 늙은 고양이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피터 곁을 떠난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한 고양이가 떠날 때 피터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래도 아주 잠깐 동안 고양이가 되어본 피터는 고양이의 마음을 좀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피터의 이야기는 상대가 되어보는 이야기이다. 고양이가 되어보고, 못생긴 인형이 되어보고, 어른이 되어보고..... 무슨 말을 하기 전, 무슨 행동을 하기 전, 역지사지 해 본다면 훨씬 상대방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역지사지하는 과정이 없어서 언쟁이 생기고, 불화가 생기며, 급기야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피터의 몽상은 그런 면에서 상대방을 이해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초반에는 책장이 느리게 넘겨지다 중반부 넘어가면서 속도가 나기 시작한다. 피터 같은 몽상을 즐긴다면 상대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언뜻 들었다. 가장 가깝고 친밀한 사람부터 되어보자. 난 남편이 되어보고, 누나는 동생이 되어보는 것이다. 그렇담 지금보단 훨씬 이해의 폭이 넓고 깊어질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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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4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5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생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 - 전3권 미생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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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 열풍이다. 우리 모두 "미생"이기에 깊이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다. 직장 생활을 잠깐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기에 굳이 러브 라인이 나오지 않아도 재밌다. 금요일 저녁만 되면 TV앞에 목을 쭉 빼고 앉아 있곤 한다. 드라마 미생 1-2국을 본 후 절판 위기에 처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구매했다. 뒷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드라마보다 먼저 내달리고 싶었다. 장그래와 장그래가 속한 영업 3팀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리미티드 에디션은 생각보다 더 근사하였다. 총 9권을 3권씩 합본하여 만들어서 상당히 무겁다. 어디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없다. 그냥 제자리에 얌전히 모시고 읽어야 한다. 잘못하면 흉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근사한 책이 처음 온 날, 내 옆에서 아들도 함께 읽었다. 드라마를 같이 본 터라 저도 궁금했었나 보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면 충분히 읽을만하다.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아들은 직장인의 애환을 공감할 능력이 안 되어서 잠깐 같이 읽다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10년 넘게 바둑 프로 기사가 되기 위해 정진했던 장그래는 결국 꿈을 접어야 했다. 바둑을 끝낸다는 것은 어쩌면 장그래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나이 26세,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아무런 스펙도 없이 낙하산 발령을 받아 대기업 인턴으로 들어가게 된다. 고졸 출신인데 낙하산이라니....그 이유만으로 다른 인턴들에게 밉보이고 장그래의 힘든 인턴 생활이 시작된다. 26세 동안 오직 바둑판만 보며 살았던 장그래에게 있어서 회사라는 거대한 바둑판은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승부 같은 곳이었다. 거기서 살아남아야 함은 물론이다. 미생은 세기의 대결이었던 조훈현 9단과 중국 녜웨이핑 9단과의 마지막 승부를 에피소드 앞에 배치하여 바둑과 삶과의 연관성을 철학적으로 풀어주고 있다. 바둑을 잘 모르는 문외한이지만서도 두 바둑 고수의 대결 또한 정말 멋지다. 바둑과 삶을 이렇게 연관지을 수 있다니 작가와 바둑해설가의 내공이 대단하다 싶다.

 

  다양한 스펙을 필요로 하는 종합 상사에서 장그래는 뭐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지만 특유의 통찰력과 좋은 멘토(오과장, 김대리)의 조력으로 점점 상사맨이 되어간다. 드라마에서는 오과장이 초반에 장그래를 굉장히 무시하고 핍박하는 성깔 있는 상사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아니다. 오히려 장그래를 챙겨주는 편이다. 오과장, 천과장, 김대리, 장그래가 활동하는 영업 3팀은 다른 부서와는 참 다르다. 다른 팀처럼 일을 하는 것은 같지만 영업 3팀은 끈끈한 동지애로 팀웍을 중요시하는 부서이다. 장그래 팀과 안영이가 속한 자원팀은 그런 면에서 사뭇 대조적이다. 오과장이 장그래를 팀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 혼자 하는 일이 아니야"라는 말을 한다. 또 우여곡절 끝에 오과장의 마음을 얻던 날 오과장 입에서 " 우리 애만 혼났잖아" 하는 말이 장그래의 기억 속에서 무한 반복된다. 두 에피소드는 결코 우리 일이라는 것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협력하여 만들어 내는 결정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기에 일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속한 직장은 장그래가 속한 종합상사보다는 출퇴근이 정확하고, 위계질서가 깍듯하지도 않으며, 다 된 일이 누군가의 정치로 뒤엎어지거나,  술 대접을 해야 하는 등의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여기도 직장이기에 장그래와 오과장이 겪는 일이 똑같이 일어난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미생에 열광하는 것은 장그래와 오과장, 김대리 즉 영업 3팀이 느끼는 열정, 절망, 희망, 분노 등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오과장이라는 인물은 윗사람에게는 가히 이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가시 같은 존재다. 능력도 있으면서, 신념도 있고, 정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으며 아부를 모른다. 그런 오과장이기에 회사에서는 버릴 수도 내칠 수도 없다. 오과장의 그런 성격이 누구나 꺼려하는 내부 고발도 하게 만들고, 그 일 때문에 오과장을 비롯한 영업 3팀은 다른 부서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오 과장 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군중들은 그의 신념과 용기를 칭찬하고 격력해주기 보다 오히려 " 너 혼자 잘 났냐?" " 너 혼자 깨끗하나?" " 모 나면 정 맞는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오 과장이 무슨 일을 하기 전에 고뇌하는 모습이 남일 같지 않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들도 모두 그런 모습이었다. 아니 자기가 속한 사회를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과장의 고뇌을 이해할 수 있다. 조직에서 곪아터진 것을 밖으로 꺼내려면 그걸 말하는 사람의 고통 또한 아주 크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 알던 선배는 하도 속앓이를 해서 늘 장이 안 좋았다. 그만큼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힘들다. 왜 그들은 자기 몸을 축내면서까지 그런 일을 굳이 하는가! 그냥 남들처럼 열심히 일만 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면 될 것을 왜 주변을 돌아보는 것일까.  

 

  얼마 전 소셜 테이너였던 신해철 씨가 갑자기 사망하였다. 평소에 독설을 잘하던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도 다른 가수처럼 노래만 부르면 될 것을 사회 곳곳 후미진 곳을 둘러보고, 썪은 내가 나는 곳을 후벼파는 일을 한 덕분에 욕을 엄청 먹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도 한 명의 오과장이 아니었을까! 그가 영면을 하자 그의 몫까지 하겠다며 한 명의 가수가 나섰다. 그도 뮤지션으로만 살아도 될 것을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많지는 않지만 소수의 오과장이 존재한다. 그들은 왜 속 시끄러운 일을 자청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 그냥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사회가 덜 부패하기 바라는 마음에서일 게다. 조금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어서일 게다. 오과장의 말처럼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일 게다.

 

  미생에 흐르는 또 하나의 기저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완전 노선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이 낙하산으로 상사에 들어온 장그래가 한 사람의 몫을 해나갈 수 있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오과장과 김대리 덕분이다. 오과장 같은 사람은 윗사람 뿐 아니라 아랫사람에게도 껄끄러운 존재이다. 왜냐하면 사서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니깐. 그러나 김대리와 장그래는 오과장을 신뢰하고 그의 신조나 가치관을 존중한다. 심지어 장그래는 오과장을 멘토와 아버지처럼 여기며 그가 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제 일처럼 한다. 장그래는 오과장을 통해서 회사는 단지 일만 하는 곳이 아니고, 일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한 듯하다. 장그래처럼 오과장을 만나느냐 아니면 고가점수만 챙겨 승진에만 목매는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나도 현장에서 수많은 만남을 통해 어떤 교육자가 되어야 하는지 깨달았다. 자신만의 안위를 벗어 던지고 좀더 좋은 교육 현장과 아이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던 선배들, 40년 넘게 교단에 서시며 터득하신 노하우와 삶의 보따리를 하나둘 풀어내 주시던 선배들,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후배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였다. 나 밖에 보지 못했던 시야가 넓어졌고, 사회와 정치에도 관심이 생겼으며, 무엇보다 수퍼남매와 가르치는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엄마와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과장도, 장그래도, 나도 미생이다. 더구나 현실은 냉정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회사의 잘못된 관행이나 비리를 고발한 영업3팀은 영웅이 되기보다 천덕꾸러기가 되고만다. 현실도 그렇다. 미생의 마지막 부분은 오과장 같은 삶의 종국은 어떤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작가는 아무런 스펙 없는 장그래와 오과장의 종착지는 현실적으로 해피엔딩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독자로 하여금 근거 없는 희망을 가지게 만들지 않는다. 이윤말을 추구해야 하는 회사에서 오과장 같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과장 같이 살기로 했다는 것은 승진과는 멀어진다는 의미이며, 속 시끄럽게 살겠다는 것이며, 적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며, 편안한 고속도로가 아닌 비포장도로를 천천히 걸어가겠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삶을 살지는 결국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며,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 길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 배우자, 친구, 교사, 선배, 후배, 책 속의 인물들.....그들을 통해 변화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결국 어떤 삶을 살지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세상의 모든 오과장, 김대리, 장그래에게 지지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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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4-11-1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으로 페이퍼 쓰다왔는데, 쓸까말까 고민되네요. ^^;
정성스럽게 쓰신 글 잘읽었습니다.

수퍼남매맘 2014-11-12 07:24   좋아요 0 | URL
아휴~~ 부끄럽습니다. 정말 재밌고 감동 받아서 열심히 써 보긴했지만 필력이 약해서
느낀 것의 1/10도 표현을 못 했네요.
서니데이님의 페이퍼 기다립니다.
 
한글 비가 내려요 - 어린이 한글 뒤풀이
김지연 글.그림 / 웃는돌고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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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된 지 2년째다. 한글날이 지난 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 한글날 아이들과 뭐했더라? 음~ 여행을 갔었군. 전날, 교실 아이들에게 한글 관련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게획은 했었으나 이런 저런 일로 바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세종대왕이 많이 서운하셨을 것 같다. 한글에 대한 책이 여러 권 있는데 이번에 만난 그림책은 한마디로 색달랐다. 한글이 비가 되다니... 발상 자체가 신선하였다.

 

  부제로 <어린이 한글 뒤풀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한글 뒤풀이? 이게 뭐지? 뒤에 있는 설명을 읽고서야 아하! 그거였구나 했다. " 한글 뒤풀이는 한글 자모 뒤에 그 뜻과 풀이가 비슷한 구절들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을 뜻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 가갸거겨 가랑가랑 가랑비 놀러 가라 사뿐사뿐"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이 그림책은 노래처럼 부르며 읽으면 더 재미있고 효과가 있겠다.

 

  이억배 작가는 자신의 아이가 또래에 비해 한글을 잘 모르는 것을 보고 <개구쟁이 ㄱㄴㄷ>이라는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도 그림책은 아니지만 두 아이에게 직접 한글을 가르쳤다. 딸은 6살 무렵에 글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기적의 한글 학습"이라는 책으로 한글을 가르쳤다. 아이가 관심을 가지니 몇 개월만에 깨우쳤다. 둘째는 누나 옆에서 보고 스스로 깨칠 줄 알았지만 그런 아이는 드문가 보다. 둘째도 누나처럼 6살 무렵에 글자를 읽고 싶어해서 책도 자주 읽어주고 한글 학습지도 하니 금방 깨쳤다.

 

  너무 일찍 한글을 배우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한다.유아 때 해야 할 다른 것들이 분명 있는데 그 시간에 한글을 공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돈은 돈대로 들고, 시간은 시간대로 오래 걸리니 말이다.  아이마다 글자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시기가 다 다른데 일률적으로 몇 세에 한글을 시작해야 한다는 아닌 듯하다. 부모가 좀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글자를 읽고 싶어하는 때가 온다. 1-2년 늦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 없다. 주변 어른 중에서 한글 못 하는 분 없지 않던가! 공부라는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글자를 알고자 할 때, 읽고자 할 때 투입하는 것이 극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종대왕이 한나절이면 배울만큼 쉬운 것이 한글이라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만 알고 있으면 글자가 만들어지고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본인의 학습 욕구만 있으면 금방 깨칠 수 있는 게 한글이다. 

 

  색다른 제목의 <한글비가 내려요>는 "기역과 리을 사이 자그마한 마을, 미음과 이응 사이 따로 혼자인 집에 살고 있는 조그마한 쥐"가 다른 동물 친구들(12간지)과 함께 한글비를 맞으며 재미있게 노는 내용이다. 유아들은 동물이 나오면 더 친근해 하는 경향이 있다. 수퍼남매도 그랬다. 동물들이 스트레칭을 하며 모음을 만들어 자음과 만나 글자를 만드는 장면을 보면 크하하 웃음이 터진다. 어렵고 힘든 판화 작업으로 하나하나 그림을 완성해서 보고 있으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동물들의 익살스런 표정까지 더해져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지녔다.  우리것을 좋아하는 작가는 그림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을 사이사이 넣어놨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후반부에 가면 이 그림책의 반전이다 싶은 장면이 나오는데 동물 친구들이 한바탕 신나서 춤추는 장면이다. 여기서 드디어 용이 등장하는데 용의 몸뚱아리가 오방색이다.

 

  동물 친구들과 함께 한글비를 맞으며 가갸거겨 나냐너녀 노래로 흥얼흥얼 하다 보면 한글이 쏙쏙 뇌에 저장될 듯하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동물 친구도 찾아보고 자음과 모음도 따라 읽어보고 동물 친구처럼 몸으로 모음도 만드는 놀이를 해 보면 신 나는 책놀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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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0 1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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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1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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