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말에 책베개를 주문했는데 책만 오고 책베개가 안 왔다. ㅠㅠ 이렇게 슬플 수가.... 물량이 모자라나. 오기는 하겠지. 배송이 늦는 알라딘이 아닌데 주말에 주문하면 당일 배송이 안 되고, 화요일에 오는데 이번엔 더 늦게 수요일에 왔다. 아마 주문이 밀려서이겠지.
아들은 월요일부터 이제나저제나 목 빠지게 <고양이 학교>오기만을 기다렸다. 어젯밤 책을 받자마자 자리 잡고 책을 펼치더니 1시간 여만에 세계편 1권을 읽었다. 글씨도 마음에 들고, 앞표지 겉표지도 마음에 든단다. 세계편도 재밌다고 하니 다행이다.
중딩 딸도 어제는기특하게 책을 손에 들었다. 학원 숙제를 다했단다. 영어 학원 다니는데 숙제가 장난이 아니다. <14세와 타우타우>는 너를 위해 산 책이라고 하니 읽기 시작하였다. 그림이 많이 들어가 있어 부담이 덜했을 거다. 몇 장 읽더니 " 엄마, 요시오가 사춘기를 심하게 겪네" 한다. 휴대폰 안 하고, 끝까지 읽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 타우타우가 뭐야?" 했더니 " 응 동네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 이름이야. " 한다." 이 책은 학교를 비판하는 책이야" 한 마디 덧붙인다. " 그래? 읽고 독후감 좀 써라." 했더니 순순히 " 알았어" 한다.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한달에 1번 독후감 쓰기로 한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곤 하였는데 이번 달엔 지킬 것 같다. 나도 좋아하는 작가라서 이 책 읽어봐야겠다. 학교를 비판하는 내용이라 하니 더 관심이 간다.
두 남매가 침대에 제멋대로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보니 참 이쁘다. 자기한테 맞는 책은 저렇게 빠져들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해야지. 솔직히 난 1시간 내내 책 잡고 있지는 못하는데 남매가 나보다 낫다 싶다.
2.
지난 목요일, 독서부 아이들이 우리 교실에 들어오더니 " 선생님, 건방이 책 없어요?" 한다. "글쎄, 책이 하도 많아서 어디 꽂아 놨는지 모르겠다. 니가 찾아 봐" 했다. 2년 동안 이 아이를 독서부에서 만났지만 스스로 날 찾아와 책을 찾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교실에 있는 책꽂이를 대충 둘러봤는데 못 찾았나보다. 마침 어떤 아이 한 명이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내용이 정말 궁금해서 서점에서 샀다고 자랑을 하였다. " 선생님, 2권이 나올 것 같아요. " 한다. " 그래, 선생님도 끝을 보니 작가가 2권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더라" 했다. 책을 못 찾은 아이는 그 아이가 책을 빌려주길 바랐지만 " 너는 빌려주기 싫다. 어쩐지 내 책을 찢을 것 같다"는 가슴 아픈 거절의 말을 들었다. 실망했을 아이가 가여워 내가 직접 책꽂이를 살펴봤는데 보였다.
책을 건네주니 다른 2명의 아이가 그 아이를 별안간 덮쳐 책 쟁탈전이 벌어졌다. 5학년이라서 여차하면 다치거나 책이 찢어질 것 같았다. 처음 책을 건네받은 아이가 " 선생님이 판결해 주세요" 한다. " 그래? 가위바위보로 2번 먼저 이긴 아이가 이번 시간에 이 책을 읽는 거야" 했다. 가위바위보가 시작되었고, 처음 책을 건네받은 아이는 억울하지만 가위바위보에서 패해 다른 아이에게 책이 넘어갔다. 솔직히 그 아이가 나에게 책을 물어봤고, 건네받은 장본인인데 친구들이 덮치자 자기가 먼저 읽어야한다고 끝까지 주장을 하지 못했다. 마음이 여린 탓이겠지. 지지난 번에 독서부 전체에게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한 꼭지를 읽어준 것밖에 없는데 그 후로 우리 교실만 오면 이 책을 서로 읽겠다고 야단법석을 한다. 급기야 뒷내용이 궁금해 책을 산 아이도 있고 말이다. 평소에는 책과 친하지 않은 5학년 남자 아이들이 이 책을 읽기 위해 쟁탈전을 하는 걸 보고, 느낀 바가 많다.
3.
수퍼남매와 독서부 아이들을 보면서, 아침독서운동 한상수 이사장인 한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 책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 다만 어려서부터 책 문화에서 자랐느냐 자라지 못했느냐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문구를 처음 읽었을 때 전율이 느껴졌다. ' 그래,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다. 어려서부터 책 문화에 묻혀 자랐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책 읽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로 나뉘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 말은 가정에서 벌어진 간극을 줄이는 역할을 결국 공교육이나 사회 기관이 담당해야 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첫째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려면, 어린이책 작가가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는 좋은 책을 써야 한다. 잘 쓰면 독서부 아이처럼 스스로 책을 찾게 된다. 책과 별로 친하지 않은 아이가 스스로 책을 찾을 수 있을만큼 잘 쓰는 게 작가의 몫인 듯하다. 독서부 아이 한 명이 무슨 책을 읽을지 몰라 두리번거리길래 <고양이 학교>를 추천해줬다. 40분 동안 다 읽지 못하자 " 빌려갈 수 있어요?" 묻는다. " 이거 선생님 아들 책이라서 꼭 반납해야 돼, 안 그러면 선생님 아들한테 혼 나" 하며 빌려줬다. 두 책을 쓴 작가가 그만큼 잘 썼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도 요즘 <가부와 메이>를 읽어주자 도서실에서 이 시리즈를 빌리기 시작하였다. 결국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되는 첫째 번 비결은 작가가 좋은 책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작가가 좋은 책을 썼어도 책과 친하지 않은 아이는 도서실에 오지도 서점에 가지도 않는다. 좋은 책을 접할 기회가 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그 책을 소개해줘야 한다.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부모와 교사다. 부모와 교사는 " 왜 너는 책을 안 읽니? 책을 싫어하니? " 타박하기 전에 그 아이에게 좋은 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책 읽어주기이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은 진실이다. 그 힘을 직접 체험해 본 사람이기에 난, 부모라면 자녀에게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게 매일 책 읽어주기를 실천하고 지속적으로 좋은 책을 소개하고, 구매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이가 책을 좋아하길 바란다면 말이다.
요즘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걱정을 많이 한다. 아이 뿐 아니라 어른도 참 책을 안 읽는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수퍼남매, 우리 반 아이들, 독서부를 보면서 자그마한 희망을 본다. 어린이책 작가들이 재밌고 감동적인 책을 꾸준히 쓰고, 부모와 교사가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좋은 책을 소개해주면 책을 거부할 아이는 없을 듯하다.
또 하나, 아이가 책을 읽을 시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 아침독서든 잠 자기 전이든 매일 꾸준히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해줘야 한다. 학교 숙제, 학원 투어, 학원 숙제, 게다가 스마트폰,TV시청 까지 하면 책 읽을 시간은 없다. 요즘 듣는 원격 연수에서 창의성은 책상 머리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서 나오는 게 아니란다. 여가 시간에 여가를 즐기다가 번뜩이는 창의성이 나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 그래, 맞아. 그래서 한국의 아이가 창의성이 없는 거구나.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살면서 여가를 즐길 마음의 여유와 시간의 여유가 없는 아이에게서 어떻게 창의성이 나오겠는가' 그 말이 옳았다. 아이에게 여가를 허락하는 것부터 어른이 해야 할 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