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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잉글리시 티처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34
박관희 지음, 이수영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딸이 아침 밥상머리에서 " 힘들다"를 연발하길래 " 뭐가 힘든데?" 물어봤다. " 그냥 다 힘들어" 한다. 예전 같았으면
" 니가 뭐가 힘들어? 대한 민국에서 너처럼 편한 중딩이 어디 있다고? 속 편한 소리 하시네!!!" 잔소리를 4절까지 늘어놨을 것이다. 그 날은 힘들다는 딸을 가만 바라봤다. '그래 너도 힘들겠지. 안 다니던 학원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겠니' 그렇게 생각했다. 딸은 힘들다는 소리를 멈추고 조용히 아침을 먹었다.
아이도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마이 잉글리시 티처>라는 책을 읽고서이다. 마지막에 있는 작가 후기를 읽고서 아이도 그 나름대로 충분히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딸에게 잔소리를 안 할 수 있었다. 책은 이렇게 시각을 변하게 한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내가 그걸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서 관계가 달라진다. 그래서 책은 스승이다.
이 책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도 그 나름대로 힘들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네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네 아이의 삶은 어른 못지 않게 참 고달프다. 누가 그 아이한테 " 어린이가 뭐가 힘들어? 공부만 하면 되는데?" 라고 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 요즘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는데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의 혹독한 회사 생활을 보며 눈시울이 젖곤 한다. 네 아이에의 삶도 장그래 못지 않다.
표제가 된 <마이 잉글리시 티쳐>는 엄마의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한 열망 때문에 수준 높은 영어 학원에 다녀서 상위 클래스에 들어갔지만 원어민 영어 강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할 뻔한 선희의 이야기이다.
<아빠하고 나하고>는 어느 날 갑자기 실직당한 아빠로 인해 엄마가 집에 공부방을 차려 돌연 자기 방을 뺏긴 채 거리를 배회하는 민재의 이야기이다. 실직자는 모두 치효의 말처럼 루저이며 사회부적응자일까!
<여인숙에서 사는 아이>는 아빠의 사업 실패와 키워주시던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여인숙에 살게 된 세연이의 이야기이다.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외로움을 달래려 근처 도서관에 가 책을 읽다 우연히 비슷한 처지의 남자 아이를 만나 우정을 키워가지만 또 다른 시련이 세연이를 기디라고 있다.
마지막 <어디까지 왔니>는 엄마의 가출과 아빠의 부재로 인해 술주정뱅이 할아버지에 맡겨진 어린 선우와 선재 형제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누가 봐도 선희, 민재, 세연, 선우의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그들 나름대로 짊어진 삶의 무게가 참 무겁다. 마지막 선우 이야기를 보면 어린 아이가 짊어져야 할 짐치고는 너무 무겁다는 생각마저 든다. 내 자녀는 그들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부모가 다 생존해 계시고, 의식주가 해결된다고 해서 과연 각자의 삶이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힘들다는 것을 어른은 인정하지 않는다. "어른 되어봐라.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공부야. 직장 다녀 봐, 얼마나 힘든지 알어? " 라며 얼마나 쉽게 말해왔던가! 그런데 과연 그런가! 난 학생 때 공부가 정말 쉬웠던가! 고민이 없었던가! 힘든 일이 없었던가! 그렇지 않다. 나도 딸 아이 나이 때 힘들었다. 공부도 힘들었고, 친구관계도 힘들었고, 무엇이 될까 고민도 많았다. 지금 어른이 되었다고 그 시절 그 고민은 어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게 정말 힘들다고 한다. 아기가 배밀이를 하는 것도 힘들 거다. 초등학생도 나름대로 힘든 게 있고, 중학생과 고등학생도 당연히 힘들다. 노인이라고 힘들지 않겠는가! 가끔 친정 엄마를 보며 얼마나 힘들까 생각한다. 40대인 나도 밥 해 먹기가 이렇게 고달픈데 80 노모가 삼시 세 끼 차려 먹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굳이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도 정신적으로 참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통계를 보니 40분마다 한 명씩 자살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 자살률 1위라는 것은 이제 놀랄 만한 뉴스도 아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힘들지 않을까! 통계로 보면 직업에서 치과 의사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나와 있다. 이건 돈이 많아도,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나름 고민이 있고, 힘들다는 것이다.
네 아이의 삶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혹시 어른이 세운 기준과 잣대 때문에 아이가 힘든 경우는 아닌가! 선희의 경우가 그렇다. 엄마의 신분 상승 욕구 때문에 선희가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자식을 통해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려고 하거나 신분 상승을 꿈 꾸는등, 부모의 잘못된 목적의식이 아이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아이는 아이의 삶이 있는데 부모의 꿈을 강요해서는 안 되겠다.
반면 민재, 세연, 선우의 경우 사회적 복지 제도가 뒷받침되었다면 고통 받지 않아도 될 상황이다. 미약한 복지 제도 때문에 경제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예이기도 하다. 한국이 북유럽의 복지 수준이었다면 갑자기 아빠가 실직을 당하더라도 민재가 이런 고통을 당할 필요는 없었을 테다. 세연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기본 생활 문제로 고통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여도 재취업할 때까지 나라에서 책임을 지는 사회였다면 민재가 공부방으로 방을 빼앗기고, 거리에서 배회하지 않았을 테며, 민재 아빠가 루저로 오해 받으며 pc방에서 시간을 때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빈곤층 , 소외 계층이 사회 지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라면 네 아이의 고통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개인이 당하는 고통은 어쩌면 개인의 문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고통 중 일부는 사회적 제도가 뒷받침 안 되어 당하는 고통일 수도 있다고 한번쯤 시각을 달리하여 생각해봤음 좋겠다. 사람 일은 한치 앞도 모른다. 한국은 민재네 가정처럼 가장이 실직당하거나 세연이와 선우 가정처럼 파산하면 하루아침에 빈곤층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한번 빈곤층으로 전락하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사회적 안전망부터 만들어 놔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적 안전망이 없으면 선희 엄마처럼 악착같이 딸을 공부시켜 너라도 신분 상승 하라고 세뇌시키는 부류가 나올 수밖에 없고, 아이는 그런 부모의 기대 때문에 더 힘들어진다.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힘들게 하루를 버틴다. 힘듦의 종류와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라고 해서 힘들지 않다고 단정짓는 것은 잘못이다. 아이가 힘들다고 했을 때, 어깨를 토닥여주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겠다. 이 책에 나온 세 아이의 경우처럼 기본 의식주 생활 때문에 고통 받게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세연, 선우의 경우처럼 파산으로 하루아침에 빈곤층으로 전락해버리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 선희 엄마처럼 나의 이기심과 욕망 때문에 아이를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준 고마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