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출판사에서 " 아빠와 1박 2일" 이라는 행사를 하였더랬다. 일체의 캠핑 장비를 대여해 주는 행사였는데 운 좋게도 당첨이 되었다. 지금도 매달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으니 나처럼 초보 캠퍼는 도전해봐도 좋겠다. 캠핑장 이용권이 배송되어 살펴보니 전국에 여러 장소가 있어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왕이면 설악산을 구경할 수 있는 데로 가자고 합의하여 " 정선 자연 학교" 캠핑장을 선택하였다. 나머지 1박은 우리가 돈을 지불하여 2박을 예약하였다. 단풍철인데 의외로 자리가 남아 있어 진짜 다행이었다.

 

  정선과 설악산은 예상과 달리 거리가 있어서 먼저 설악산부터 들르기로 하였다. 집에서 8시에 출발하였다. 이렇게 빨리 출발한 것은 처음이다. 차는 그런대로 뚫렸는데 지대가 높아 산안개가 끼어 운전하기가 좀 겁이 났다. 지난 5월, 대관령 넘어갈 때 운무 때문에 차를 멈추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그 때보다 훨씬 덜하기는 하였지만 안개는 정말 무섭다.

 

  드디어 설악동에 도착하였다. 운 좋게도 케이블카 매표소와 아주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다른 팀들은 무려 3km를 걸어와야 했다. 우리의 목적은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가서, 단풍든 설악산을 구경하는 거였다. 케이블카에 줄이 길~ 게 늘어서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줄이 짧았다. 표를 예매하고 요기를 한 다음 ,흔들바위를 다녀오자고 하였다. 부부 기억상 흔들바위는 가까운 걸로 알고 한 말이었다. 가벼운 산책 정도일 거라 예상했는데 착각이었다. 하마터면 케이블카를 놓칠 뻔했다.

 

  부부의 기억과는 달리 흔들바위까지 꽤 거리가 있어,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대학 때 친구들과 갔을 때와 코스가 달라진 느낌도 들었다. 흔들바위까지는 산책하는 정도였고, 흔들바위부터 울산바위까지가 난코스였던 것 같은데 흔들바위까지가는 길도 쉽지는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등산을 하는 바람에 아들은 아빠 때문에 힘들다고 불만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이제 3학년이라서 업히지 않고 끝까지 제 힘으로 흔들 바위까지 갔다. 그새 많이 컸구나 싶었다. 작년에 마니산 갈 때만 해도 아빠한테 업혔는데 말이다.  흔들바위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케이블카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한번도 쉬지 않고 내려온 덕분에 케이블카 시간 10분 전에 도착하였다. 휴~ 우!!!

 

  설악산에 올 때마다 켸이블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매번 포기하곤 했는데 드디어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도착하였다. 권금성까지 올라간 것은 처음이다. 아까 2시간여 산행을 하였는데 이번에도 절경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산행을 해야 한다. 아들은 이미 다리가 풀려서 짜증을 내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업히지는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그러라고 했다. 힘들게 올라가자 장관이 펼쳐졌다. 뉴스에서 1000m정도까지 단풍이 들었다더니 권금성은 아직 수줍은 듯 살짝 단풍이 들어 있었다. 그래도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숲의 모습이 정말 멋졌다. 저 높은 꼭대기 태극기가 꽃혀진 곳까지는 도저히 올라가지 못하겠다 싶어 포기했다. 남편과 딸이 올라가겠다고 하는데 위험해 보여서 불안했던 참에 둘도 포기하고 내려왔다. 날씨가 맑아 멀리 동해가 다 보였다. 날씨 덕을 톡톡히 봤다. 아직 완전하게 단풍이 안 들어 조금 아쉬웠지만 케이블카도 타고, 권금성도 오르고, 이번에는 이걸로 족하다 싶다.

 

  다음에는 낙산사로 향하였다. 낙산사에 화재가 나서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꼭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이기도 하였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대학 때 친구들과 가 본 이후 처음이다. 화마가 할퀴고 간 다음 어떻게 달라졌을까.  낙산사로 올라가는 길은 그나마 완만하였다. 절 같지 않은 절. 규모가 엄청 컸다. 드디어 해수관음상이 보였다. 자애로운 모습은 여전하였다. 멀리 동해가 보였다. 대웅전에 가니 천수관음상이 보였다. 애들도 나도 깜짝 놀랐다. 다른 대웅전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불상들이 많았다. 아빠의 요구대로 오길 잘했다 싶었다.  낙산사까지 보고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정선까지 어떻게 갈까 서서히 걱정이 생겼다. 그놈의 운무 때문에.... 지난 번 강릉에서 넘어갈 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운무 때문에 차를 놓고 도망가고 싶었다. 흑흑흑!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전통 찻집 " 다래헌" 에서 대추차를 사서 마셨다. 연꽃빵도 맛났다. 따끈한 차를 마시니 몸이 좀 풀리고, 용기도 생겼다.

 

  이제 정선 자연 학교, 즉 캠핑장으로 출발~~. 다행스럽게도 운무는 없었다. 낙산에서 정선까지 꽤 멀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국도에서 하이빔을 켰다 껐다 하며 운전하였다. 오고가는 차도 없고, 길도 좁고, 구불구불 급경사에, 운전하기 참 힘들었다. 드디어 정선 자연 학교에 도착하니, 주인장이 마중을 나오셨다. 생각보다 꽤 넓었다. 우리가 묵을 곳은 1학년 방이다. 초보 캠퍼라 하니 주인장께서 방이 딸린 텐트를 빌려주셨다. 날이 추워 텐트에서 자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캠핑 기분만 내면 되지.

 

  다른 곳에서 고기 굽는 냄새와 모닥불 타는 향기가 나는데 우리 가족은 먹을 거리를 준비 안 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첫날 워낙 강행군을 하는 바람에 너무 지쳐서 먹는 것도 귀찮았다. 내일 제대로 고기를 구워 먹기로 약속하고 오늘은 대충 먹자고 합의를 했다. 그래도 점심은 낙산사 근처 회 센터에서 맛있는 광어회와 도미회를 먹었다.도미회 처음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었다. 내가 먹어 본 회 중에서 3위 안에 든다. 딸은 오징어회가 고소하다고 폭풍 흡임을 하였다. 점심을 잘 먹었으니 그걸로 만족하자.  내일 날씨가 좋아야 정선 투어를 잘할 텐데... 텐트가 아깝다며 자기 혼자 잔다고 한 남편이 새벽에 너무 춥다고 방으로 들어왔다. 역시 우린 캠핑 스타일이 아니다. 나도 뜨끈뜨끈한 방 놔두고 텐트에서 자고 싶지는 않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4-10-14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5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4-10-14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찬 여행 하셨네요. 화마가 쓸고간 낙산사 나무 둥치 보는데 맘이 짠했어요.
해수관음상 부럽더라구요~ 바다를 원없이 볼수 있으니ㅎ

수퍼남매맘 2014-10-15 21:12   좋아요 0 | URL
해수관음상과 대웅전은 그대로인 듯하고,
올라가는 길의 나무는 새로 심은 티가 확 나서 주변과 어울리지 않더라구요.
마음이 짠했어요. 어쩌다 큰 불이 나서....

2014-10-15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5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연휴 때, 가족과 나들이 삼아 파주 북소리 잔치에 다녀왔다. 휴일이라 온 가족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오후 1시가 넘어서야 출발하였다. 어린이책에 관심을 갖고나서 봄, 가을에 파주로 들락날락거린 게 6년이다. 입구부터 차가 막힌 것은 처음이었다. 가족 모두 의아해했다. " 교보문고에서 창고 대방출을 한다 해서 이렇게 밀리나" 싶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교보문고 앞에서 4시간 기다려서 겨우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올라와있었다. 최대 90%할인이라는 말에 사람이 많이 몰렸나 보다. 하여튼 우리가 가 본 중에 최고로 차가 많았다. 입구에서 30분 정도 정체한 후 겨우 주차를 하였다.

 

교보문고는 어디 있는지 몰라서 항상 다니던 데부터 갔다. 차가 많았던 것에 비하면 체험 부스와 사람 수는 적었다. 첫 해 파주 어린이책 잔치에서 봤던 왁자지껄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그 많은 차에 탔던 사람은 어디 있는 걸까. 홍대에서도 와우 북 페스티벌을 하고 있어서인지 파주에서는 행사를 하지 않는 출판사도 여럿 있었다. 아들과 <고양이 학교>시리즈를 사려고 문학동네를 찾아갔다가 낭패를 봤다. 가판대에 내놓은 책 종류가 너무 적고, 우리가 사려고 한 책이 없어서 아들이 너무 실망하였다. 창비도 행사를 하지 않아 서운했다. 나처럼 어린이책 사려고 온 사람은 적잖이 실망했을 듯하다.

 

이번에는 기필코 "푸른숲" 출판사에 가야지 다짐하여 다리품을 팔아서 겨우 갔건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진짜 인연이 없나보다. 푸른숲은 홍대에서 행사를 하나보다.  남편은 이럴 줄 알았으면 홍대에 갈 걸 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파주 북소리 행사 자체가 너무 썰렁하였다. 6년 내내 다녀본 사람으로서 걱정스러웠다. ' 이 정도로 출판계가 얼어붙었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그나마 시공사에 가서 그림책과 동화책을 몇 권 샀다. 파주에 가서 이렇게 책을 적게 산 것 또한 처음이다. 여러모로 처음이 많은 나들이였다. 늦게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남아 "까사이마 아울렛"에 들러 구경을 하였다. 전에는 책 구경하고, 사는데도 시간이 모자랐는데 말이다.

 

6시 폐장하여 집으로 향하는데 처음 본 한우 직판장이 보여 차를 멈추고 들어갔다. 봄에 평창 직판장에서 고기를 직접 골라 음식점에서 구워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여기도 그런 곳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메뉴판을 보니 아니어서 그냥 등심, 안심, 채끝 1인분씩을 시켜먹었다. 비싸긴 하였지만 이왕 왔는데 나갈 수는 없고,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눌러 앉았다. 고기가 살살 녹았다. 내 기억상 최고로 맛있었다. 평창 한우보다 더더더.

 

맛있게 다 먹었는데 남편이 다른 사람들이 옆 출구로 드나드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따라가봤다. 알고보니 여기도 평창처럼 직판장에서 고기를 사와 음식점에서 구워 먹어도 되는 곳이었다. 그게 더 저렴하였다.우린 그런 줄도 모르고 가장 비싼 한우를 시켜 먹은 게다. 그 사실을 알고나서 남편의 얼굴이 완전 구겨졌다.  자기 말대로 직판장 입구로 들어갔으면 저렴하게 먹었을 텐데 내 말대로 음식점 입구로 들어와서 비싼 고기 먹었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우리에게 메뉴판을 갖다주면서 직판장에서 살 수 있음을 안내 안 한 판매원 잘못도 있고, 지레짐작하고 메뉴판에 있는 걸 주문한 내 잘못도 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그걸 가지고 몇 시간째 투덜투덜대는 남편을 보니 내 맘도 답답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파주 북소리가 썰렁해서 기분이 조금 우울하였는데 고기 맛있게 잘 먹고나서 남편의 타박을 몇 시간 동안 들으니 더 심란해졌다. 잔소리 듣기 귀찮아서 다음에는 남편 하자는대로 해야겠다. 남자들은 나이 먹으면 왜 그리 잔소리가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여성 호르몬이 많아져서 그렇다지. 쳇!!!  내년에는 홍대 와우 북 페스티벌에 가야겠다. 다녀온 사람들 후기를 보니 그 쪽이 더 나았던 듯 싶다. 홍대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는데 젊음의 거리 홍대로 진출 좀 해봐야지. ㅎㅎㅎ

 

시공사에서 건져온 책들이다. 그림책 3권과 동화책 3권이다. 고작 6권이라니...

 시공주니어 그림책은 전에 208권이 당첨되어 시리즈를 안 모을 수가 없다. 파주에 올 때마다 시공사에 들러 새로나온 시리즈를 구매하고 있는 중이다. <생명의 나무>는 라가치상을 받았고, 글밥도 장난이 아니게 많아서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다. 역시 피터 시스 그림은 참 독특하고, 내용도 깊이가 느껴진다. 그림책이라고 무시하고 펼쳤다간 큰 코 다친다.

 

 

 

 

 

고정욱 작가 책인데 나중에 " 장애 이해 교육" 할 때 필요할 듯하여 구매하였다.

 

 

 

 

 

 

 

 

 

 

 

제목이 선정적(?)이라서 구매한 게 아니라 박상률 작가 이름이 눈에 띄어 얼른 골랐다. 아들 먼저 읽히려고 샀는데 아들이 요즘 <고양이 학교>에 푹 빠져 있어서 그것 다 읽은 후에 권해 보려고 한다.

 

 

 

 

 

 

 

 

 

 

우리 반은 매달 짝을 바꾼다.  " 얘들아, 짝 바꿀 거야" 하면 " 와!!"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온다.  제비를 뽑아 자리와 짝을 정하는데 어떤 짝이 되느냐에 따라 아이의 반응이 사뭇 달라진다. 내가 좋아하는 <건방진 도도군>을 쓴 강정연 작가는 짝 바꾸는 날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궁금해서 골랐다.

 

 

 

 

 

 

 

 

 

이번에 못 사 온 책들은 내년 5월 어린이책잔치에 가서 사와야겠다. 어린이책은 그때가 더 풍성한 듯하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4-10-0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옆지기님의 잔소리라니~~
음 와우도 그저 그랬어요^^
오전에 가서 그런가 썰렁하더라구요.
온 국민이 책을 확실히 안보는듯요.
전 체게바라평전이랑 또 뭐 샀더라?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는 신선했어요.

수퍼남매맘 2014-10-09 05:48   좋아요 0 | URL
와우에 오셨었군요.
거기도 그저 그랬다니 출판시장이 어려운 게 확실한가 봅니다.
북카페, 저도 엄청 좋아하는데....
칼데콧의 작품만 모아놓은 작품집이 있었는데 10% 할인만 해서 마음을 접고 왔네요.

순오기 2014-10-10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출판사 영업부장님과 통화했는데 북소리 및 책잔치로 정신없다 하던데...
예전보다 많이 썰렁하군요.ㅠ
개인의 구매력도 중요하지만 전국의 공공도서관 및 작은도서관들이 책을 많이 사줘야 해요.

수퍼남매맘 2014-10-13 18:3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점점 책을 안 사는 분위기인 듯하여 안타까워요.
학교 도서관도 책을 많이 사야 출판사에 도움이 될 텐데 그렇지 않은 학교도 많아요.

2014-10-13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트 & 맥스 베틀북 그림책 105
데이비드 위즈너 글.그림, 김상미 옮김 / 베틀북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중1 딸이 친구2명과 함께 직업 체험을 하기 위해서 우리 교실을 방문하였다. 말이 직업 체험이지 중간 고사 보는 2,3학년 선배들 방해할까 봐 학교 밖으로 내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대신하여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라고 미션을 줬다. 딸이 읽어준 책은 데이비드 위즈너의 <아트 & 맥스>이다. 딸이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커다란 수확이었다. 그림책도 한 번 보고나서 덮어두지 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어야 이렇게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된다.

 

일단 글씨가 아주 적다. 책과 별로 가깝지 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하다. 좋은 그림책은 그림만으로도 이해가 되어야 하는데 이 그림책이야말로 그렇다. 굳이 글씨를 읽지 않아도 이해가 쏙쏙 잘 된다. 그림으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번 그림은 3D  만화 영화를 보는 듯하다. 동물들의 익살 맞은 표정 또한 그림책에 빨려들게 한다.

 

사실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아트처럼 맥스도 그림을 그려보려고 하얀 캔버스를 마주한다. 하얀 캔버스를 본 아트는 그 순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야말로 머리가 하얘졌다. 가끔 그리기 시간에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면 맥스처럼 하얀 종이 위에 무엇을 그려야할지 몰라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 있는 아이를 보곤 한다. 아이의 표정에서 당혹감이 느껴진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처럼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은 하얀 종이가 너무 두려운 존재다. 맥스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림에 재능이 없는 맥스의 실수로 친구 아트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친구를 예전처럼 되돌리기 위해서 맥스는 실로 아트의 몸을 만들어야 하고, 색을 입혀야 한다. 아까 하얀 캔버스 위에 아무 것도 그리지 못했던 맥스이건만 친구를 살리기 위해선 더 이상 주저할 수가 없다. 맥스가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아트의 형체를 만들고 색을 입힌다. 무엇을 그려야할까 고민하던 맥스는 사라지고 없다. 오직 친구를 되살려야 한다는 일념이 맥스를 예술가로 만든 기적 같은 순간인 셈이다. 맥스의 예술 행위로 재탄생한 아트도 전과 달라졌다. 아트의 그림이 그 증거다. 아트 역시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던 그림에서 진일보하여 창의적인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친구란 아트와 맥스 같은 사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친구 뿐만 아니라 부부, 부모-자식, 스승-제자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만나 상대가 업그레이드 되고, 나 또한 상대를 만나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라면 정말 좋겠다.  아트가 맥스를 만나 그림을 좀더 창의적으로 그리게 되고, 그림에 문외한이었던 맥스가 아트를 만나 그림에 눈 뜨게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모름지기 아트와 맥스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외적인 업그레이드가 아니더라도 좋다. 내가 그를 만나, 그가 나를 만나 어제보다 오늘 좀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가? " 네" 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 내 짝이, 모둠 친구가 나를 만나 업그레이드 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자" 고 힘 주어 말해줬다. 

 

아트의 그림이 달라졌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준 것은 딸이었다.  딸이 말해주기 전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사실 이 그림책을 3-4번은 읽었는데 말이다. 전에는 이 그림책이 우정을 다룬 그저 재밌는 그림책으로만 느껴졌는데 이번에 읽고나서 더 좋아졌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0-07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08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da 2016-03-2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에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챈 따님이 대단하네요. 책 다시 봐야겠어요. 아이들이 더 깊은 눈으로, 마음으로 책을 보나봅니다.

수퍼남매맘 2016-03-24 10:45   좋아요 0 | URL
어른은 문자에 집중하는 반면, 아이들은 그림에 집중해서
어른이 보지 못한 부분을 잘 찾아내더라고요.
반갑습니다.
 

<고양이 학교>라는 책이 프랑스 아동문학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작년이었던가! 고양이 온이를 키우게 되면서 딸이 겉표지에 고양이가 크게 그려진 <고양이 학교>책을 사고 싶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이 " 네 수준에 안 맞어"라고 반대를 하였고, 책을 사느냐 마느냐로 아빠와 딸은 심하게 다퉜다. 읽고 싶다는데 수준이 무슨 문제냐며 나도 딸을 거들어주었고, 결국 모녀는 이 책을 사고야 말았다.  1부-3부까지 총 10권의 책인데 딸이 1권만 읽고 더 이상 사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 책은 책꽂이 한 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빠랑 그렇게 다퉈서 산 책 치고는 대접을 잘 받지 못한 셈이다.

 

아들이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길래 <고양이 학교>를 권해 봤다. 아들은 책을 펼치자마자 이 책에 빠져들었다. 정말 재밌다면서 파죽지세로 매일 한 권씩 읽어내고 있다. 아들이 왜 그리 좋아할까 궁금하여 1권만 읽어봤는데  ' 음~ 아이들이 열광할만 하구나!' 싶었다. 아들은 지금 1부 마지막 5권을 읽고 있는 중이다.

 

작가가 왜 고양이를 소재로 한 판타지 동화를 쓰게 되었을까 궁금하였는데 2부 서문에 사연이 쓰여 있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작가는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고양이의 습성에 대해 그리 잘 알 수가 없다. 글을 읽을 때마다 " 어쩜 우리 온이랑 똑같네!" 하는 소리가 자주 나오는데 역시 고양이 집사여서 고양이 묘사가 현실적이고 실감 나다. 작가가 키우던 고양이가 15년 정도 살다가 죽었는데 둘째 아이가 굉장히 슬퍼하였단다. 이 책에 나오는 민준이처럼 말이다. 가족처럼 지내던 고양이 버들이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딸을 위해 " 버들이는 아주 죽은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고양이들만의 세계에서 살려고 간 거란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3부까지 10권의 시리즈가 될 줄은 작가도 상상 못 한 일이었다고 한다.

 

딸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된 <고양이 학교>는 오랜 시간 사랑 받고 있는 판타지 동화이다. 프랑스에서조차 인정 받아 어린이 문학상을 받을 정도이니 작품성은 믿고 봐도 될 듯하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그림 작가 김재홍 씨가 삽화 그림을 그렸는데 고양이 그림이 진짜 예쁘다. 고양이와 가족으로 지내고있는 사람으로서 각양각색 고양이를 동화에서 만나는 것은 또 하나의 큰 기쁨이다.

 

독서부 시간에 매번 그림책만 보는 5학년 어떤 아이에게 <고양이 학교>1부 1권을 한번 읽어보라고 빌려줬다. 역시나 이 아이도 정말 재밌다면서 추천 도서로 해야겠다고 소감을 말해줬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대박 날 것 같은데 누가 안 만드나?

 

우리 온이도 언젠가는 고양이 학교로 가게 되겠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찬샘 2014-10-08 0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 수준이 정말 많이 올라갔네요. 온이 덕분에 더 재미있게 읽고 있겠지요?

수퍼남매맘 2014-10-08 17:51   좋아요 2 | URL
저는 그닥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1권으로 끝냈는데 아들은 지금 2부를 열심히 읽고 있네요.

2014-10-08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08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은 한번도 없다. 심지어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나만 그럴까!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은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언제부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가끔 글짓기 대회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일기, 글짓기를 어떻게 하라고 선생님한테 배운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알라딘 서재에 둥지를 틀고 리뷰를 쓰면서부터 제대로 글쓰기 공부를 한 듯하다. 리뷰를 쓰다보니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잘 써서 저자가 된 분도 있고, 서평으로 유명한 분도 있어서 자극이 팍팍 되었다. 내가 작가가 될 사람도 아니고 그럴 재능도 없지만 이왕이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글을 퇴고하면서, 남의 리뷰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잘 쓴 글의 특징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접속사 사용이었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에서는 거의 접속사가 없었다. 진짜 신기했다. 반면 내 글에서는 접속사가 한 문장 건너 나오곤 하였다. '아! 접속사를 사용하면 안 되는구나' 그걸 깨달았다. 처음에 접속사를 빼고 쓰려니 뭔가 허전하고 불완전해 보였다. 계속 연습하다보니 접속사를 빼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는 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접속사를 빼고도 말이 통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 하나, 유명 작가의 특징은 문장을 길게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봐도 정말 간결하다. (아직 그 사람 소설은 안 읽어봤다.) 긴 문장을 읽다보면 요지가 무엇인지 혼동이 올 때가 있는데 간결한 문장은 머리에 쏙쏙 저장이 잘 된다.

 

  위 두 가지는 스스로 발견한 것이다. 접속사 사용 자제와 간결한 문장만 연습해도 한결 글이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문장이 모여 글이 되는 것이니 문장 연습이야말로 기초 체력 다지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은 <고종석의 문장>에 세세히 나와 있으니 이 책을 스승 삼아 공부하면 좋을 듯하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물론 실전은 이제부터이지만 서도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연습 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다고 본다. 고종석 씨의 말이 큰 위로가 된다. 다른 예체능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 것임을 순간순간 느끼는데 글쓰기 만큼은 그렇지 않단다. 글쓰기는 다른 분야보다 재능을 덜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재능보다는 노력이 요구되는 게 글쓰기라는 말에 용기가 생긴다. 노력하는 만큼 좋은 문장과 좋은 글을 쓸 수 있단다.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면 -100%아니지만-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글도 잘 쓴다. 이 점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글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말이 첫문장과 끝문장을 가장 신경 써서 특징 있게 쓰란다. 첫문장이 가장 인상적으로 와닿았던 소설이 있다. 바로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이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이 첫문장을 읽고나서 정말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후 책을 볼 때마다 첫문장이 무엇일까 눈여겨 보는 습관이 생겼다. 첫문장이 중요하다는 말에 완전 공감한다. 첫문장은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도화선 구실을 한다. 반면 끝문장은 감동과 여운을 느끼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인 작품은 떠오르지 않는다. 앞으로는 책을 덮기 전에 끝문장도 유심히 봐야겠다.  지금 끝문장을 어떻게 쓸까 무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첫문장도 어렵지만 끝문장이 더 어려운 듯하다. 이것도 연습하면 나아지겠지?

 

문장에서 쓰지 말아야 할 것을 몇 가지 정리해 본다.

1. "~~적" 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개인적 취향 보다는 개인 취향)

2. 같은 조사가 반복되는 것을 피하자. (~의 ~의 )

3. "~~ 하는 이유는 ~~ 하기 때문이다" 도 피하도록 하자.

4.  "~~함으로써" 보다는 "~~해서"로 바꾸도록 하자.

5. 복수 의미의 " ~들"이라는 말도 가급적 피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