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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가 뭐예유? ㅣ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8
김기정 지음, 남은미 그림 / 시공주니어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바나나가 가장 귀하고 비싼 과일이었던 시절이 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그랬다.
소풍 갈 때, 바나나를 싸 온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을 정도였다.
그 때만 해도 바나나가 이렇게 싸고 지천에 깔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아이였을 때 정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이 아홉 겹으로 둘러싸인 곳에 사는 지오 마을 사람들은 바나나가 뭔지 조차 모르고 살았다.
말끝마다 ~~유를 붙이는 지오 마을 사람들은 가끔씩
저 산꼭대기에서 굴러오는 수박 때문에 몸을 피해야 했다.
수박이 어찌나 큰지 굴러오는 수박을 피하지 못했다가 큰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박 굴러가유~~ 얼른 비키시유~~
이런 말이 메아리치면 지오 마을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몸을 날려야했다.
수박 뿐 아니라
참외도 어지간히 커서 아이들이 참외 속에 쏘옥 들어가서 참외를 파먹곤 하였다.
지오 마을 수박과 참외는 꿀보다 더 달았다고 한다.
내가 듣기론 지상 낙원 같아 보였다.
어느 날, 서울에 갔던 마을 청년 한 사람이 지오 마을로 돌아온다.
지오 마을 사람들은 앞 다투어 그 청년에게 집 채 만한 수박, 아이들 머리통보다 큰 참외가 달다며 자랑하는데
서울 갔다 온 청년은
" 제일 맛있는 것은 바나나예요"라고 서울 말씨로 말한다.
지오 마을사람들은 바나나란 말에
" 바나나가 뭐예유?" 궁금해하지만 좀처럼 맛 볼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 때부터 지오 마을 사람들의 바나나 앓이가 시작된다.
본 적도 없고, 먹어 본 적도 없는 그 바나나 한 번 먹어봤음 소원이 없겄는디~~
지오 마을 사람들은 바나나 한 번 먹어봤음 하는 소원을 간직한 채 한 세대가 흘러간다.
어느 날, 지오 마을 앞으로 고속도로가 뚫리고 세상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바퀴 달린 것이 붕붕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하던 그 때쯤
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뒤집힌 사건이 발생한다.
지오 마을 사람들은 사고가 난 그 지점에 모여들고,
상자 안에서 삐져 나온 것이 바로 그 " 바나나"란 것을 알게된다.
아무도 보는 이 없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그토록 먹고 싶어하던 그 바나나가 눈앞에 뒹굴고 있는 게다.
구구장 할아버지부터 용기를 내어 바나나를 가져 가기 시작한다.
처음에 하나만 가져갔다면
다음 사람은 한 송이, 그 다음 사람은 점점 대담해져 3-4송이씩 상자에서 꺼내 집으로 가져간다.
소박하고 순수하던 지오 마을 사람들이 "바나나"를 본 순간, 뭐에 홀린 것처럼 바나나를 모두 가져간다.
바나나를 싣고 가던 트럭이 전복된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이
지오 마을 사람들을 의심하고 경찰서에 불러 조사를 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바나나 도둑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일단락된다.
마을 사람들이 가져간 바나나는 어떻게 되었냐고?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길.
책에서는 바나나를 예로 들었지만
보지도 듣지고 못한 것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져 본 적이 누구나 한 번 쯤 있을 테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 그렇다.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남이 가진 것만을 부러워하고 숭배한 적이 분명 있을 테다.
지오 사람들은 집채만한 커다란 수박과 꿀보다 더 달콤한 참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다녀온 청년이 바나나를 말한 이후로 오직 바나나만을 숭상하기 시작한다.
누가 지오 사람들을 비웃을 수 있겠는가!
나 또한 그런 어리석음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고
한국 또한 그런 과오를 범하고 있는데 말이다.
지오 사람들이 바나나 앓이를 시작한 이후,
수박과 참외가 작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 책의 주제와 연관이 있다.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무조건 남이 가진 것만을 부러워하고 숭배하기 시작할 때
결국 내가 가진 것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이번 유럽 여행에서 유럽이 가장 부러웠던 것은 자신이 살아온 흔적과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점이었다.
파리, 로마, 피렌체, 하이델베르크 등.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도시들이지만 현대적인 모습보다는 중세,고대의 모습 그대로였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는 그 모습을 보존한 채로 도시 개발을 한 덕분이다.
파리도 구시가지는 그대로 놔둔 채, 신시가지는 멀찍이 떨어져 개발을 하였다고 한다.
하여 그 곳 시민은 여러 가지가 불편하지만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 살고 있었고
옛것을 그대로 보존한 덕분에 어마어마한 관광비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600년 도읍지였던 서울은 어떠한가!
궁궐을 제외하고는 높은 빌딩과 화려한 네온 사인 때문에 옛 도읍지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높은 빌딩과 화려한 네온 사인을 보러 한국에 비행기 타고 오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 것들은 다른 곳에 가서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서울만의 특화된 것이 있어야 지구 반대편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데
과연 서울은 그런 것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지오 마을 사람들처럼 너무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도시를 난개발한 덕분에 귀중한 관광 자원 또한 잃어버렸다.
베네치아가 일 년에 오천만 관광객이 오는 것에 비해
한국은 일 년에 천만 관광객이 온다고 한다.
이 어마어마한 차이는 바로 옛것을 잘 보존하였느냐 안 하였느냐 하는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자기 것을 얼마나 귀히 여겼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하는 차이인 셈이다.
한옥 마을을 만들 게 아니라
한옥을 잘 보존했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게 하려면
우리가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부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얼마나 자랑할 만한 것들이 많던가!
한복도 그렇고, 김치도 그렇고, 굽이굽이 흐르는 강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