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간 듯한 착각을 불러오는 곳이 바로 이탈리아였다.

특히 로마와 폼페이가....

2014년이 아니라 200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그 느낌.

모든 것이 경이로왔다.

 

3일 내내 강행군을 하는 바람에 난 입 안에 커다란 혓바늘이 돋았고,

딸은 밀라노에서 급체를 하여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설상가상 이탈리아 모기에게 현혈까지 했는데 상처가 덧나 진물이 질질 흐르고 퉁퉁 붓기까지 하였다.

주말이라 문 연 약국이 없어 약을 살 수 없어 그대로 견딜 수밖에 없었다.

(가져 간 약은 소화제, 연고, 밴드, 진통제 정도밖에 없어서....)

서울에서 늘어져 있다가 갑자기 강행군을 하다보니 몸이 탈이 난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만 뒤쳐지면 안 되니 끝까지 따라다녔다.

먹을 것도 악착같이 먹었다. 타지에서 병 나면 안 되니깐.

 

밀라노, 로마, 바티칸,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카프리, 피렌체, 베네치아로 이어진 이탈리아 여행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시간 할애를 많이 한 부분이었다.

그만큼 이탈리아가 볼거리가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1. 밀라노

밀라노는 저녁 늦게 도착하여 별로 많이 구경하진 못했다.

주말인데다 휴가철이라서 문이 다 닫혀 있었다. 하여 패션 일번지 밀라노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나도 아프고 딸도 아프고 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밀라노 도시 설계를 "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했다는 것은 확실히 저장했다.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름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 젤로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두 천재에 대해서는 시간이 되는대로 꼭 세세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밀라노 성당은 참 멋졌다.

이탈리아 여행 내내 가장 많이 구경한 게 바로 성당이다.

딸이 이탈리아 여행 중에

" 아! 성당 지겹다"는 말을 했다.

"중국, 일본, 우리나라는 절 구경이 관광의 전부이듯

 이 곳은 성당 구경이 전부야. 성당이 그들의 역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라고 대답해줬다.

같은 듯 다른 성당의 모습들만 봐도 입이 쩌억 벌어지던데

유럽에서 성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2. 바티칸시국

교황이 한국을 방문할 때 우린 교황이 사는 바티칸을 방문했다.

일행 중 어떤 분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단다.

" 야, 나 교황 보러 왔다"하더란다.

" 그래? 난 교황 사는 곳에 왔다." 하셨단다.

교황이 사는 곳, 그 곳을 보기 위해, 아니 미켈란 젤로의 "천지 창조"와 "최후의 만찬"을 관람하기 위해

새벽별을 보고 일어나서 길거리에서 노숙자처럼 대기하였다. 실제로 바닥에 종이를 깔고 앉았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준비해서 바티카 입구에 7시 경에 도착하였다.

어떤 분이 줄 선 것을 구경하고 오셨는데 줄이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단다.

예약팀만해도 3만면이 넘는다고 하니 바티칸의 인기를 실감하고도 남았다.

보통 3-4시간은 기다리는 게 기본인데 일찍 서둔 바람에

2시간 10분만에 바티칸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바티칸은 9시부터 입장 가능하다)

바티칸에 들어가서야 왜 사람들이 그리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들어오려고 하는지 이해가 됐다.

들어서자마자 숙연함이 저절로 느껴졌다.

가장 위대한 예술품 중의 하나인 미켈란 젤로의 "천지 창조"와 "최후의 만찬"이 만들어진 배경 설명을 가이드로부터 들었다.

작품을 실제 보자 더 경이롭고 전율이 느껴졌다.

최후의 만찬 속에 흑인 두 명이 들어 있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미켈란 젤로의 평등 사상을 볼 수 있는 대목이란다.

유일하게 이 작품들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눈과 마음에 새길 수밖에....

베드로 성당이나 다른 곳들도 역시 위엄이 느껴졌다.

용감하고 충성스럽다는 스위스 근위대를 만나서 살짝 사진을 찍었다.

 

3. 로마

고대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로마 투어는 편하게 우아하게 벤츠를 타고 했다.

관광 버스가 진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보를 하거나 우리처럼 벤츠 투어를 해야 한단다.

기사가 열고 닫아주는 벤츠도 타보고 호사를 누렸다.

영화 "로마의 휴일" 에 나왔던 진실의 입에도 가고,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 먹었던 그 장소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마침 공사 중)도 갔다.

그 옆에는 오드리 헵번이 커트했던 이발소도 있다.(지금은 가방 가게)

이 곳에서 젤라또(아이스크림)도 먹고 마침내 약국을 발견하여 가이드에게 통역을 부탁하여 약을 샀다.

딸은 그새 모기 물린 데가 퉁퉁 부어 올라 있었고, 난 혓바늘이 점점 커져 쓰라렸다.

(다행스럽게도 일행 중 소염제를 가진 분이 있어서 2일간 먹였더니 한결 나아졌다.)

바티칸 보려고 새벽에 일어난지라 너무 고단하여 계속 벤츠를 오래 타고 싶은 소망이 있었으나

조금 탔다가 내려서 설명 듣고 하는 통에 소망이 사라졌다. ㅋㅋㅋ

로마에 깔려진 돌은 고대부터 사용한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달릴 때마다 차가 덜그덕거리는데 로마 사람들은 그러겠거니 하고 산단다.

건물 하나하나 역사 자체였다.

왜 우린 옛것을 모두 부수고 새것으로 도배를 하고 말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생겼다.

 

이탈리아 관광이 모두 끝나고 인솔자가 버스에서 "로마의 휴일"을 보여줬는데

벤츠 투어 하면서 봤거나 직접 가봤던 장소들이 나오니 정말 반가웠다.

오드리 헵번은 정말 귀품 있고 아름답다.

 

4. 나폼쏘(나폴리, 폼페이 , 쏘렌토)

이번 여행에서 다른 팀의 일정보다 좋았던 게 바로 나폼쏘가 뜰어 있던 것이다.

먼저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배는 나폼쏘가 들어 있는 우리 일정을 부러워했다.

나폴리와 소렌토는 폼페이를 위한 경유지에 불과했지만서도.

폼페이를 가던 날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여행은 날씨가 정말 중요한데(사진에도 영향을 준다) 운이 좋았다.

유럽 간다고 민소매를 옷을 몇 벌 샀는데 계속 쌀쌀해서 못 입고 있다가 이 날 입었으니 제대로 여름 날씨였던 셈이다.

평소에는 40도 이상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 날도 평균 기온은 아니었다. 걸어다녀도 땀이 안 났으니 말이다.

엄청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던 폼페이란 도시가

하루아침에 화산재에 덮여 사라진 어마어마한 사건,

그 사건을 이야기로 쓴 책을 읽었던 게 고등학교 때인 듯하다. 영화도 나왔다지. 꼭 봐야지.

그런 폼페이를 내 발로 밟아보다니.....

화산재에 뒤덮이 시신을 보니 이게 실화인 것이 절감되었다.

이런 도시가 하루아침에 멸망하고 그걸 오랜 시간이 흘러 발견하고 복원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폼페이를 돌아보니 상상 이상으로 발달된 도시였다는 걸 여기저기서 알  수 있었다.

하다 못해 사창가도 있고, 사창가에는 다양한 체위 그림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가이드가

" 남자분들은 자세히 보고 가시고, 아이들은 바닥만 쳐다 보고 후딱 지나가세요" 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사창가 옆에는 비뇨기과도 있다.

바닥에는 형광 대리석을 깔아 밤에도 불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대리석 모자이크도 벌써 보인다.

화덕도 보이고, 맷돌도 보인다.

폼페이 사람의 놀라운 문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발달된 도시가 하루아침에 멸망하다니 허망하다.

 

5. 이탈리아 VS 대한민국

로마에서 23년 째 살고 있는 가이드가 들려준 현지인의 삶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아둥바둥 사는 우리와는 너무 달랐다.

상점들은 보통 8시에 문을 열고 12시에 닫는단다.

그리고 점심 먹고 낮잠을 잔 후, 4시에 문을 열어 7-8시에 폐점을 한단다. 공무원들도 일이 참 널럴하단다.

아침은 주로 가까운 카페에 가서 빵과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간단히 먹고,

우리와는 정반대로 저녁을 2-3시간 거하게 먹는단다.

 

대박은 학생들의 삶이었다.

가이드 딸이 고3인데 이탈리아 학생들은 초중고 학생 동일하게 수업이 1시에 끝났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일행에 있던 학생들(우리 딸 포함)이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우리나라 고3의 생활과 천지차이다.

얼마 전 가이드가 큰 수술을 받아 중환자실 3일, 입원실 3일 있었는데 퇴원할 때 돈 한 푼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교육 복지와 의료 복지가 우리보다 앞선 것이다.

노인 수당도 자그마치 월120만원이 꼬박꼬박 나온단다.

한국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액수다.

이탈리아가 이렇게 복지가 안정되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놀랍고 부러울 뿐이었다.

 

한국이 유럽식 교육과 복지 정책을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미국식을 받아들여서 오늘날 국민도 학생도 불행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복지 정책은 말 그대로 국민이 병 들고 무일푼일 때도

나라가 최소한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복지 사회가 아닐까!

우린 지금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국민의료보험도 뜯어고치려고 하고 있다.

미국에 4년간 살다온 후배말이 미국에서 앰블런스 부르면 까딱하면 1000만원도 나온다고 한다.

팔이 부러져도, 감기가 걸려도, 이가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다고 한다.

차라리 한국 나와서 받는 게 더 이득이란다.  바로 의료 민영화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불법체류자도 일단 병원에서 치료부터 해 준단다.

이게 진정한 선진 국가이고 생명 존중 아닐까!

솔직히 이탈리아 가면 소매치기와 좀도둑이 너무 많다고 하여 이탈리아가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인 줄로만 알았다.

가이드의 현지인 삶을 들어보니

이탈리아가 한국보다 훨씬 더 선진국이나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탈리아 또한 갈등을 가지고 있단다.

남북으로 빈부 격차가 심해

밀라노, 로마 등 북부는 GNP가 4만 달러를 넘지만

남쪽 특히 나폴리 등은 1만 달러도 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북쪽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남쪽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븍쪽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급기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남북 분리를 주창하는 정치인이 나오고 있고,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한국과는 철학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탈리아 학생들의 삶이 참 부러울 뿐이었다.

한국의 학생들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말이다.

노동 시간 2위를 달리는 한국인들과

이탈리아 인들의 즐기는 삶이 너무 달라 그들의 그 여유가 참말로 부럽다.

우리처럼 살아도 한 세상,

저들처럼 살아도 한 세상인데,

이렇게 아둥바둥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각에서는 이탈리아 인들이 너무 게을러서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난 그들의 " 카르페 디엠" 적 사고가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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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0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01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학날이다.

교육경력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개학 전날은 긴장을 한다.

늦잠 자서 학교 못 갈까 봐.

 

아침 조회를 하였다.

시상을 하고 정년퇴임을 하시는 선생님의 퇴임사를 들었다.

41년간 교직을 지겨오다가 떠나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이제 며칠 후면 출근을 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쉬시게 될텐데...

방학이라서 쉬는 것과 이제 완전히 학교를 떠나 쉬는 기분이 많이 다를 거라 짐작 된다.

명예롭게 정년퇴임을 한다는 것은 분명 축복 받을 일이다.

이번에도 많은 분이 명예퇴임을 신청하셨다는데 7% 정도만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금이 불안하여 평소보다 많은 분들이 신청서를 냈으나

나라에서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명예퇴직할 권리도 앗아 갔다.

자기 계획대로 퇴임하기도 힘들어진 세상이다.

선생님은 퇴임사로

본교 아이들에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인성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었다.

이어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2학기에 배려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을 해주었다.

두 분 말씀에 공통점이 있어 나도 덧붙여 말했다.

 

이제 공부 잘해서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하고.

창의성과 인성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창의성이란 남과 다른 것을 생각하는 힘이요

인성이란 남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들이다.

예전에도 지, 덕, 체라 하여 인성이 강조되긴 하였으나

요즘 들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고 본다.

작금에 벌어지는 여러 가진 흉흉한 일들이 바로 머리만 커지고 마음은 자라지 못한 결과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성이 함께 자라야 남과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남의 아픔에 공감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게 우리의 비극이 아닌가 싶다.

 

창의성은 1학기에도 누누히 말했던 부분들이라 아이들이 대충 개념은 알고 있다.

인성 중에서도 교장 선생님이 말했듯이 "배려"가 가장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배려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있을 때 나온다고 생각한다.

배려가 없기에 올해만 해도 안좋은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배려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그림책이 떠올랐다.

2교실 도서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읽어줬다.

배려란 이런 것임을 정말 잘 보여주는 멋진 그림책이다.

<구름빵>의 저자 백희나 작가의 신작이다.

다른 올챙이보다 조금 더 일찍 개구리가 된 큰오빠 개구리 이야기이다.

큰오빠 개구리가 얼마나 동생 개구리를 배려하는지 그림책은 보여준다.

백희나 작가는 이번에 또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

그림을 보면, 얼른 그림자 연극이 또오른다.

자신이 먹고 싶은 똥파리를 동생을 위해 양보하고

배고픈 동생 개구리들을 위해 하루종일 똥파리를 처억 척 잡아준다.

정작 본인은 하나도 먹지 못하고 쫄딱 굶은 채 기진맥진 쓰러진다.

꿈에서 똥파리를 통째로 잡아먹는 큰오빠 개구리,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우리 아이를 이 큰오빠 개구리처럼 길러내야 하는 게 교육의 목표이고, 인성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장 먹고 싶지만 나보다 더 약한 이를 위해서 기꺼이 내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지금 우리 사회는 강자가 약자를 도와주고 보호해주는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동물 사회와 똑같이 약육강식의 사회이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들이 평생을 보낼 사회는 그런 사회에서 벗어나도록 해 줘야 한다.

우리 아이가 행복하게,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부모가 그런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나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다.

연합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이 무서운 사회로부터 내 아이를 지킬 수 있다.

세월호와 윤일병 사건이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짧은 글과  단순한 그림 속에 백희나 작가의 바람이 보인다.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살 맛 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큰오빠 개구리 같은 사람이 하나둘 늘어난다면

분명 어제보다 내일은 훨씬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큰오빠 개구리이기를 바라기보다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 아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부터 큰오빠 개구리 같은 사람이 되라고 교육해야겠다.

그게 다같이 맘 놓고 잘 살 수 있는 길이다.

공생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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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는 역시 스위스였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동경하던 곳이 스위스였는데

스위스는 나를 실망시지키 않았다.

 

전 날,파리의 넓은 평야 지대를 지나자

서서히 산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산이 있어야 경치라는 게 성립하나보다.

들만 계속 되면 지루해서 금방 졸리는데

산도 나오고, 폭포도 나오고, 만년설도 나오니 잠이 확 달아났다.

역시 스위스는 산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인터라켄 가까운 곳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봉고차에 나눠타서 인터라켄으로 가는데

우리를 태워주는 한국 기사님이 스위스에 사시면서 구수한 대구 사투리를 진하게 쓰셔서 무척 반가웠다.

 

스위스 관광의 핵심은 바로 유럽의 정상, 만녈설로 뒤덮인, 알프스 봉우리 3454m에 달하는 "융프라우요흐"를 가는 거다.

"처녀의 어깨"라는 뜻을 지닌 융프라우요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이고, 이 곳에서 신라면도 팔고 있단다.

신라면을 준비해 왔는데 인솔자말이 라면 먹을 시간이 없을 거라고 해서 그냥 트렁크에 놔뒀다.

후배 딸은 여기서 고산증이 와서 입술이 파래졌다고 해서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얼른 초콜릿을 먹으라고 조언을 해 줘서 초콜릿을 가방에 잔뜩 챙겨 넣었다.

" 난 할 수 있다. 정상까지 갈 수 있다"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융프라우요흐 관광은 기차를 6번 갈아타야 한다.

정상까지 기차를 세 번 타고, 내려 올 때 다른 코스의 r기차를 또 세 번 타야한다.

역마다 차표 검사를 꼭 한다. 차표를 잃어버리면 절대 안 된다. 이것도 은근히 신경 쓰였다.

기차 색깔도 다 다르다.

기차를 한 번 갈아탈 때마다 조금씩 풍광이 달라지면서 점점 녹색보다는 하얀 색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기차 유리에 성에가 끼기도 하였다. 온도가 급속도로 떨어지는 게 확실이 느껴졌다.

머리도 띵했다. 고산증이 오는 건가!

중간 중간 기차에서 내려 주위 경관을 구경하도록 되어 있다.

 

딸을 위해서 아버지가 이 높은 곳까지 터널을 뚫었다고 하니 부성애가 정말 대단하다.

덕분에 나같은 관광객들이 편하게 이 높은 곳까지 오게 되고 말이다.

염려와는 달리 고산증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계속 띵하긴 했다.

일행 중 네 명은 고산증이 와서 휴게실에서 대기하였다.

얼음 궁전은 일 년 내내 영하 6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아 온도가 높아지면 이 열을 모아 난방을 한다고 하니 정말 발달한 기술을 느낄 수 있었다.

스핑크스 전망대를 가니 융프라우요흐 꼭대기가 보였다.

옷매무새를 단단히 하고 융프라우요흐에 올랐다.

정상에 가더라도 날씨가 자주 흐리기 때문에 융프라우요흐를 보기는 힘들다고 하는데

운이 좋아 볼 수 있었다.

스위스 국기가 꽃혀 있었다.

산 아래는 여름인데 이곳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채 바람이 쌩쌩 불고, 한겨울 날씨였다.

눈을 만져 보고 싶었지만 손이 너무 시려워 관두었다. 왜 인솔자가 장갑, 목도리를 가져오라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여기가 바로 유럽의 정상이구나!'

저 멀리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였다.

 

스위스가 아름다웠던 이유 중의 하나가

눈앞에 펼쳐지는 초록이 진초록이 아니라 연초록이여서 더 상큼했다.

우리나라 4월의 푸릇푸릇한 그 풀색이 어디서나 보여서 정말 싱그러웠다.

게다가 집집마다 발코니에 예쁜 꽃들을 가꾸고 있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해줬다.

꽃을 보면서 화낼 사람은 없을 테니 지나가는 이들이 꽃을 보면 화났던 마음도 수그러질 듯했다.

다른 나라보다 온도가 낮은 데도 불구하고 집집마다 꽃을 가꾸는 게 스위스의 전통이 아닌가 싶었다.

고산 지대인데도 이름 모를 들꽃들이 옹기종기 피어 있는 것도 보는 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예쁜 꽃들을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프스 전통 가옥인 "샬레"는 아기자기하면서 말 그대로 풍경화에 나온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무로 만든 전통 가옥, 발코니의 꽃, 연초록, 우뚝 솟은 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래 전 스위스는 높은 산악지대 때문에 쓸모 없는 땅으로 여겨졌었단다.

따지고 보면 알프스산도 7개 나라를 포함하고 있는데

유독 알프스 하면 스위스가 연상되는 것은 부단한 그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한다. (엄청난 홍보를 했다고 한다.)

각박한 땅 때문에 유럽에서는 거의 존재 가치가 없었던 그들이

지금 이렇게 어마어마한 관광 자원을 끌어 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스위스인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 높은 곳까지 기차를 연결할 생각을 어떻게 하였을까?

중립국 선언도 지금의 스위스를 있게 한 발판이 된 것이라고 한다.(유럽 연합이 아니기에 유일하게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다.)

온갖 세계 회의를 이 곳에서 하게 되니 당연히 어마어마한 수입원이 되는 것이다.

(노르웨이도 중립국이다는 것을 가이드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중립국 하면 스위스만 떠오르는데 말이다.)

정밀 산업(시계 등)의 발달은 스위스 국민을 부강하게 만들었고,

금융업은 세계의 검은 돈(?)을 끌어 들여 더욱 더 부강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스위스 용병들의 용맹과 충성심은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실례로 바티칸 교황 근위대는 오로지 스위스 군인만 할 수 있다고 한다.

(나중에 바티칸 가서 스위스 근위대를 볼 수 있었다.)

예전에 무시 받던 스위스는 조상의 노력 덕분에 지금은 유럽에서도 손 꼽히는 부자 나라가 된 것이다.

 

다음은

고대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겨지는 이탈리아로!!!

 

<TIP>

스위스 날씨는 여름이라도 가을 날씨와 가깝기 때문에 긴 팔과 두꺼운 옷을 꼭 챙기기.

고산증 증세가 생기면 얼른 초콜릿을 먹기.

 

고대의 숨결을 느끼러 이탈리아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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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서유럽을 가기 위해서였다.

콜 택시가 오지 않아 리무진 버스 타는 곳까지 트렁크를 덜덜덜 밀고 걸어갔다.

리무진 버스는 인천공항까지 45분만에 데려다 줬다.

 

인솔자와 만나고 여러 가지 수속을 끝마친 후,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좌석 공간이 너무 좁았다.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난 중간이라서 화장실에라도 갈라치면 옆사람이 일어나야 한다.

이 상태로 11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파리를 가는 건가!

하지만 꿈은 어이 없이 깨졌다.

비행기 부품 결함으로 이륙을 하지 못한단다.

부품 교체 하는데 2시간이 소요되었다. 정작 가는 데는 20여분 이었으나 부품이 오는데 나머지 시간이 걸렸다.

그 좁은 좌석에서 견디느라 너무 고되고 지루하였다.

여행 하기도 전에 진을 다 뺀 듯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이 비행기가 무사히 파리까지 갈 수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난 이렇게 불안한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에어 프랑스여서 프랑스 사람들이 꽤 많았다.)

유럽을 여행하고 나서야 왜 사람들이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그게 유럽 사람들의 기본 자세였다.

불편해도 참는 것,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비행기는 염려와는 달리 무사히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하였다.

인천 공항의 위세와는 달리 파리 제1의 공항이라는데도 소박하였다.

비가 약간 흩뿌렸지만 이내 맑아졌다.

여행은 날씨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정 내내 날씨 운이 있었다.

인솔자와 버스 기사의 의사 소통이 안 되어 버스를 잘못 탔다가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도 달랐다.

크기는 45인승인데 좌석을 빼곡히 배치하여 57인승이었다.

팀이 26명이라서 널찍하게 앉아 다녀 외려 편했다.

 

곧장 관광이었다.

현지 가이드와 만나서 몽 마르뜨를 갔다.

예술가의 거리, 몽 마르뜨.

"몽"이 언덕이라는 의미여서 "몽 마르뜨 언덕"은 잘못된 표현이란다.

사람이 무지 많았다.

지인이 몽 마르뜨 가면,  카페 오레를 꼭 먹으라고 하였는데 먹을 시간은  커녕 구경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였다.

기념 엽서만 샀다.

소매치기가 많다고 하여 잔뜩 긴장을 하여 지갑 꺼내기도 무서웠다.

예술의 거리 답게 거리 화가들이 아주 많았다.

언덕 입구에 있는 파리 성심 성당은 이슬람 사원처럼 동글동글 아주 예뻤다.

그 아래 많은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파리 시내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많이 올라온 것도 아닌데 파리 시내가 다 보이는 게 신기했고, 파리의 건물들이 모두 낮은 것 또한 서울과 달리 특이했다.

서울은 온통 빌딩 숲인데 파리는 신시가지를 빼고는 모두 6층 이하의 건물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에펠탑으로 이동하면서 본 파리 시내는 방사형 거리로 참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전깃줄이 덕지덕지 없어서 좋았다.

거리가 더러운 게 좀 실망스러웠지만서도.

나 뿐만 아니라 파리에 온 사람은 파리병에 걸린다고 가이드가 말해줬다.

파리병이란 꿈에 그리던 파리와는 다른 모습에 급실망하는 병을 뜻한다.

 

현지가이드가 에펠탑 관람 예약을 해놓아서 기다리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다.

줄이 아주 길~었다. 항상 그렇단다.

에펠탑은 사진이나 그림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위용이 있고 고급스럽고 아름다웠다.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탑이라고 하니.....

그냥 단순한 철 색깔이 아니라 금빛이 살짝 도는게 가이드 말로는 밀크 커피 색이라고 하였다.

철색은 당연히 아니고, 금색도 아니고, 고급스러운 색이 참 맘에 들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에펠"이 만든 300m의 탑으로 파리를 대표하는 문화재 내지 관광지라고 할 수 있겠다.

3단계로 나눠져 올라가는데 우리는 2단계까지 올라가 파리 시내를 조망하였다.

아까 몽 마르뜨에서 본 파리 시내도 멋졌는데 에펠탑 전망대에서 보니 더 멋졌다.

파리 날씨가 자주 흐리고, 변덕스러워 비도 자주 내린다는데 이 날은

쾌청해서 멀리까지 파리 시내가 다 보였다.

세느강도 보이고, 노트르담 대성당도 보이고....

살짝 노을이 지고 있어서 더 아름다웠다.

 

에펠탑에서 내려오니 약간 어둑어둑해졌다.

9시가 되어가는데도 빛이 있는 게 이상했다.

지난 주까지는 10시까지 해가 안 지고 있었다니 낮이 정말 길겠구나 싶었다.

세느강 유람선을 타러 갔다.

파리 야경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파리에 이렇게 한국인들이 많을 줄이야!

가장 자리 좌석을 맡아야 사진 찍기 좋은데 벌써 다 차서 가운데에 앚게 되었다.

파리 시내에 불이 하나둘 켜지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파리에 가면, 꼭 유람선을 타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도 깜깜할 때. 야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서울도 세느강 못지 않은 한강이 있고, 유람선이 있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는다.

무슨 차이일까?

한강 주변에는 높은 아파트만 즐비하지만

세느강 양쪽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있어 정말 낭만적이다. 그게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파리가 예전의 모습 그대로를 놔둔 채 개발을 하였다면

서울은 예전의 모습을 거의 다 부수고 개발을 하였다.

파리 시민들은 그래서 불편해도 참는다고 한다. 하도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다고 한다.

그 점이 가장 큰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 어디를 가도 2014년이 느껴지지 않고 중세가 느껴지는 반면, 서울은 궁궐에 가야 옛것이 느껴진다.

그러니 누가  돈 내고 한강 유람선을 타려고 할까!

세느강 유람선은 양쪽으로 중요한 건물이 다 있어서 비싸도 타고, 줄이 길어도 기다려서 타고,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단다.

불 켜진 에펠탑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너무 추워서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마음에 담고 있는데

딸은 추위도 아랑곳 안 하고 배 앞머리에 나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추위를 참고 고생한 보람이 있어 에펠탑 야경이 아주 멋지게 나왔다. 다른 일행들도 부러워하였다.

유람선을 탈 때는 꼭 두툼한 옷을 챙겨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겠다.

 

하루가 무척 길었다.

장시간의 비행에다 오자마자 관광까지.

인솔자 말이 3일까지 일정이 빡빡하단다.

가장 힘든 관광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라고....

 

빡빡하게 일정이 돌아가 시차 적응이고 뭐고 숙소 가서 자고, 모닝콜이 울리면 일어나 나왔다.

파리 사람들은 정말 바게뜨와  크로와상을 좋아하나 보다.

호텔식으로 나온 게 그게 전부다. 참 간단해서 주부가 편하겠다 싶다.

 

일찍 서두른 탓에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까지 보게 되는 행운이 왔다.

원래 밖에서만 사진 찍는 일정이었는데

개방이 되어 내부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뾰족뾰족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노틀담의 곱추>로 더 유명해진 그 곳.

어제 유람선 타고 지나갔는데 직접 내부에 들어가니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성당의 모습에 압도되었다.

딸은 초를 사서 기도를 하고 단상에 올려 놓고 왔다.

여행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도하였다.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을 보러 갔다.

개선문이 샹젤리제 거리에 있었다.

유럽 여행에서 힘든 게 화장실 사용인데

인솔자가 돈 내고 가는 화장실은 사립 학교,

돈 안 내고 가는 화장실은 공립 학교라고 칭했다.

샹젤리제 거리에 맥도날드가 공립학교라서 얼른 들어갔는데

너무 지저분하였다.

샹젤리제 거리에 명품들이 다 모여 있다고 하여 구경하려고 하는데 상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바캉스를 대부분 떠났기 때문이다.

바캉스의 어원이 원래 " 텅 비었다"인 것처럼 파리가 텅 비어 있었다. 원래는 교통 체증이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루이비통" 본점이 열려 있어서 가봤다.

검정색 양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현관을 지키고 있어서 좀 기가 질렸지만 당당하게 들어가서 구경만 했다.

역시 본점 답게 럭셔리하였다.

중국 관광객들은 돈 구애 안 받고 물건을 잘 샀다. 어디서나 말이다.

샹젤리제 거리를 올라오면서 개선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 곳이 바로 "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노래의 그 곳이다.

 

다음은 바로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모나리자 만큼은 꼭 봐야지 다짐을 하였는데 과연 인파를 뚫고 볼 수 있을까!

40만점이 전시되고 있다고 하니 세세히 보면 일 년을 봐도 다 못 볼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세워진 유리 피라미드는 좀 실망스러웠다.

이 것도 밤에 봐야 빛을 발할 듯 싶다.

루브르는 에펠탑보다 더 사람이 많았다.

수신기를 끼고 가이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갔다.

모나리자 앞에는 역시나 사람이 많아서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딸은 그나마 키가 작아서 이마만 봤다고 내내 안타까워 했다.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작품들이 내 눈 앞에 있으니 정말 신기했다.

역시 실물로 보니 감동이 배가되었다.

아쉬운 것은 시간이 1시간 정도 밖에 없어서 정말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점.

다음에 파리에 올 일이 생긴다면, 그 때는 루브르만 꼼꼼하게 몇날 며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나폴레옹 대관식>이었다.

어쩌면 옷감 하나하나 그렇게 세밀하게 표현을 하였는지. 그려진 사람만 해도 160여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경이로왔다.

 

스위스로 GOGO!!!

 

<tip>파리를 갈 때는 두툼한 옷과 우산을 꼭 챙기기.

유람선은 꼭 밤에 타기

소매치기를 항상 조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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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8-2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파리, 에펠탑, 세느강, 루브르박물관, 몽마르뜨, 노틀담성당.........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꼭 가보고 싶은 곳중 하나예요^^
스위스로 고고~~~ ㅎㅎ

수퍼남매맘 2014-08-25 18:51   좋아요 0 | URL
파리는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곳 중의 하나이죠.
전 조금 실망하긴(거리가 더러워서) 했으나 일 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루브르는 1시간 정도 밖에 못 봐 너무 아쉬워요.
집에 와서 계산해 보니 40만 점을 보려면
하루에 30작품씩 계산하고 매일 빠짐없이 관람한다손 치더라도 거의 37년이 걸려요.
어마어마한 양이죠.
꼭 가보세요. 꿈은 이뤄집니다.
 

8박 10일의 서유럽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어제 집으로 돌아왔다.

비행기 안에서 하루가 지나갔다. ㅋㅋㅋ
갈 때는 코드쉐어로 에어 프랑스를 탔는데

올 때는 대한항공이었다.

대한항공이 자리가 넓어서 편안하였다.

 

유럽에 가보니 사람들이 불편해도 참 잘 참고 산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보다 덩치도 크면서

집도 작게

차도 작게

샤워 부스도 작게(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비행기 좌석 공간도 작게

휴대폰도 적게

와이파이도 적게

호텔 엘리베이터도 적게

기타 등등.

참 본 받을 점이다.

 

갈 때는 자리도 비좁고(유럽 항공들이 그렇단다.)

비행기 부품 결함 때문에 2시간이나 지연되어 얼마나 지루하고 불안했는지 모른다.

이 비행기가 이륙이나 하겠나 싶기도 하고

사고 나는 것은 아닌가 불안불안...

무사히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꿈에 그리던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오고,

미켈란 젤로의 " 천지창조"와 " 최후의 심판"을 보고,

다이애나 황태자 부부가 다녀갔던 카프리 섬을 둘러보고

폼페이의 유적을 보고

베네치아의 곤돌라, 수상 택시를 타고

유럽의 정상, 만년설이 있는 융프라우요흐를 발로 밟고....

수많은 추억을 가슴에 담았다.

어제 남편과 아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가 정말 그런 곳들에 다녀왔던가 싶은 게 또 다시 꿈만 같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 강행군이었지만

(유럽 여행은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정말 행복한 여행이었다.

인솔자와 현지 가이드도 잘 만나고,

같이 여행한 다른 팀들도 모두 마음이 잘 맞았고,

날씨도 곤돌라 탈 때 비 온 것 빼고는 내내 좋았다.(서울은 비 오고 흐렸다고 하는데)

여행의 3박자가 딱 맞아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였다.

 

남편이 어제

" 신혼 때부터 유럽 유럽 노래를 하더니 소원 풀었지? " 물어본다.

소원은 풀었지만 또 다른 소원이 생겼다.

다음에 또 갈 것이다.

동유럽이나 발칸 중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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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3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24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4-08-23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잘 다녀오셨군요^^
이탈리아, 프랑스 꼭 가고 싶어요~~~
유럽은 거리가 예술이죠. 멋진 후기 기대하겠습니다.

수퍼남매맘 2014-08-24 10: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딜 가도 거리가 예쁘더라구요.
고층 건물도 하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