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 간다 옛날옛적에 1
김용철 그림, 권정생 글 / 국민서관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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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옛이야기의 매력에 빠져 있는 나날이다.

교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줬는데

세 번 장난하면 책을 그대로 덮는다고 하였는데도

세 녀셕이 장난을 하여 끝까지 읽어주지 못하였다.

다른 아이들이 많이 아쉬워했다.

가끔은 이렇게 밀당을 해야

책 읽어줄 때 딴짓하는 게 얼마나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ㅋㅋㅋ

더불어 책 읽어주는 시간의 소중함도 깨달을 수 있다.

 

권정생 작가의 글에 김용철 작가의 그림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권정생 작가의 작품 중에 이렇게 유머러스한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간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김용철 작가의 그림 또한 익살스럽게 잘 표현하였다 싶다.

이런 그림풍 정말 좋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의 켜켜이 있는 주름이나 하나 남은 이빨은

고단했던 노부부의 삶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주면서도 정겹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바지춤을 잡아 당기며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는 장면에서

살며시 할아버지의 엉덩이가 보이는 게 얼마나 웃기는지.

 

밭일 하고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에게 이야기 한 자리 해 달라고 하는 할머니가

어떤 측면에서는 배려심이 없어 보이기도 하다.

힘들게 일하고 온 할아버지에게 무슨 힘이 남아 있어 이야기를 할까 싶은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라도 부부가 대화를 하게 하려는 속셈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야기 한 자리도 모르는 할아버지는

다음 날 할머니가 싸 준 무명 한 필을 어깨에 짊어지고 장터에 나간다.

이야기 한 자리와 바꾸려고 말이다.

장터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말을 모두 이상하다 생각하여 아무도 무명을 안 사고,

할아버지는 이야기 한 자리 얻지 못하여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걸어간다.

아이들에게 이럴 때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물어보니

"슬퍼요, 걱정돼요"란다.

 

어떤 마을 정자 나무 곁을 지나다가

빨간 코 농부 아저씨가 할아버지에게 " 그 무명으로 무얼 할 거냐" 물어본 것을 계기로

빨간 코 농부와 할아버지의 거래가 성립된다.

농부 아저씨는 어리숙해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이야기 한 자리를 해 준답시고

논에 날아온 황새의 몸짓을 흉내 내는데 농부의 꾀를 눈치 채지 못한 할아버지는 이야기인 줄 알고 농부의 말을 따라한다.

농부가 " 훨훨 온다" 하면

할아버지도 "훨훨 온다 "따라하고

" 기웃기웃한다"하면

"기웃기웃한다"따라하고.

 

엊그제 국어과 교과서를 집필하는 등 국어과에 조예가 깊은 교감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강사 말씀이

1-2학년 아이들은 주로 말놀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들을 선택하는 게 좋고, 교과서도 그런 방향에서 집필을 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말놀이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싶다.

농부 아저씨의 말을 따라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새 나도 흥얼흥얼 따라외고 있다.

 

과연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좋아할까!

이야기 같지도 아닌 이야기를 무명과 바꾸었다고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듣는 것은 아닐까!

놀라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해도 될 듯하다.

 

아이들과 앞면지와 뒷면지를 번갈아 보며 달라진 점을 찾아보기도 하였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달라진 점을 여러 개 찾아내어 칭찬을 듬뿍 해 주었다.

이야기의 겉표지, 면지도 꼼꼼히 보면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다.

 

지난 번 딸과 우연히 옛이야기에 대해 말하다가

딸이 어릴 때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자주 들려주시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걸 보고 우리 모녀 엄청 웃었다.

외할머니는 마르도 닳도록 오로지 그 이야기만 딸에게 들려줬던 것 같은데-내가 어릴 때도 그 이야기 뿐이었다.-

용케 딸은 그 이야길 기억하고 있었다.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이라고 할까!

 

이야기는 외어서 들려주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지금은 그림책이며 동화책들이 많아서 어른들이 이야기를 줄줄 외어 들려주는 예가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이렇게 할아버지처럼 외어서(또는 지어내어)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랫목에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 할머니 이야기 한 자리 들으면

마음까지 따듯해지던 기억이 아스라히 난다.

 

난 창의성이 약해서 외어서 또는 지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재능이 없었는데

남편은 그 부분에 있어서 탁월하여 아이들 어릴 때 정말 유치찬란한 이야기들을 지어 내어 들려주곤 하였다.

내가 듣기엔 정말 어이없고 허무맹랑한데도 아이들은 아빠의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책을 읽어주면 내 시선이 아이들보다 책에 고정되기 쉬운데

외어 들려주면 아이들과 마주할 수 있어서 더 좋다.

 

나도 그런 경험이 전에는 몇 번 있었다. 학교 아이들과 말이다.

그때는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다.

하여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아이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열심히 외어서 들려주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었다.

내가 생갹해도 썩 잘하지 못했는데도 아이들은 정말 집중하여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우린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서로 마주본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오늘부터 이야기 한 자리 지어내볼까!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들려 줄 으시시한 이야기 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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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율맘 2014-03-2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정생 작가님!
예담이가 어제 숙제를 하면서 "엄마 권정생할아버지가 누군지알어?"
이래서 첨에는 못알아들어서 뭐라고? 되물으니깐
"권정생할아버지, 강아지똥지은할아버지!!" 이러더라구요!
그러면서 "이할아버지는 초가집에서 살았는데 책파는돈으로
어려운사람에게 10억을 기부했데,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책판돈이 통장에 들어와서 아줌마(?)한테 주고갔데
어려운사람도와주라고" 이렇더라구요! 아줌마라했던것 같은데 아닌지
매일 예담이한테 배우고 있는 예담엄마예요^^;;
그리면서 "권정생할아버지가 강아지똥책만 있는게 아니고 "훨훨간다"책도 있어 이렇더라구요.
우리 훨훨간다 책사서 읽어볼까? 이러더라구요^^;; 자극이 팍팍되요 선생님^^~
떠든 아이들때문에 끝까지 보질 못해서 아이들 많이 섭섭했겠네요^^;; 혹시 예담이가 떠든건 아니겠지요?
오늘하루도 화이팅하세요 전 목요일이 젤힘들더라구요^^;;

수퍼남매맘 2014-03-27 12:52   좋아요 0 | URL
아줌마는 아니구요 늘 옆에 계셨던
친구분에게 맡기고 돌아가셔서 재단에서 그 돈을 관리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계속 책은 팔리고 인세가 들어오니 이 돈을 운영할 관리자가 필요하였겠죠.
우리가 권정생 작가의 책을 사면 그것 또한 기부가 되는 것이니 많이 사줬으면 좋겠어요.
예담이는 엄청 집중하여 듣는답니다.
오늘 끝까지 다 읽어줬어요.
 

요즘 최은희 선생님의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를 정독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읽은 부분 중에서 아주 유용한 글이 있어서 한 번 옮겨 적어본다.

어제 내가 읽었던 그림책이 왜 2% 부족하게 느껴졌는지 이 책을 보니

이론적으로 설명이 되었다.

 

그림책에 관심을 가진지 5년 정도가 되었는데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되다니.....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르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꼼꼼하게 읽고 있다.

익히 잘 알고 있는 그림책이지만

최은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그림책을 다시 보니 달라 보인다.

식견이 넓어졌다고나 할까! ㅎㅎㅎ

책을 보면서 내가 참 많이 모자라는구나를 가장 먼저 느끼게 된다.

학부모들도 이 책을 옆에 두고 틈틈이 읽어두면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참 좋을 듯하다.

 

 

 

그림책 고를 때 생각해 볼 만한 잣대

 

 

글의 서사 구조가 탄탄한가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치밀하게 짜여 있는가)

진실한 삶이 들어가 있는가

아이의 심리를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아이의 욕구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인가

아이에게 익숙한 어휘를 사용했으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렸는가

번역된 경우 우리말법에 맞게 자연스러우면서도 귀를 즐겁게 하는가

바람직한 가치관을 담고 있으며 이야기의 내용이 풍성한가

인종이나 계층, 문화에 대한 편견이 드러나 있지 않는가

지식 그림책의 경우 정확한 지식, 명확한 설명, 적절한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새로운 가치나 건강하고 보편적인 아이를 발견하게 해주는가

지나치게 가르치려는 생각이 드러나 있지는 않은가

 

그림

 

그림이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그림만 보아도 그 책에서 전개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

세부 묘사가 진실되며 생생하게 표현되었는가

그림과 그림이 이어지면서 형상이 연속되고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보는 이에게 친숙한 주인공이 등장하는가

글에서 표현되지 못한 부분을 그림이 형상화시켜 주어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는가

그림만의 독창적 세계를 펼쳐 나가면서도 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그림 구석구석에 이야기 세계를 납득할 수 있는 실마리를 담고 있는가

공들여 그린 그림으로 독창성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가

글과 섞여 잇을 때 글자를 읽는데 불편을 주지 않는가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하여 그린 그림으로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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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3-2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 공부하는 동아리 식구들과 같이 이 책도 보고 있어요.
간추려 주시니 쏙 들어옵니다~ ^^

수퍼남매맘 2014-03-26 18:02   좋아요 0 | URL
다른 이론서들은 딱딱하고 머리에 잘 안들어오는데
이 책은 아주 머리와 마음에 착착 감겨요.
저도 두고두고 보려고 옮겨 적어봤어요.

희망찬샘 2014-03-26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수퍼남매맘 2014-03-26 20:35   좋아요 0 | URL
네. 읽을수록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 손에 매달려 꿈터 지식지혜 시리즈 25
최정현 글, 대성 그림 / 꿈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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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방과후에 여러 가지 학원 투어로 고단한 아이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나라 아이들처럼 바쁜 아이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나라 아이들은 삶의 여유가 어른만큼, 아니 어른보다 더 없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들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통계 결과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터이다.

 

주인공 예나는 매일 여섯 시에 일어나 엄마 손에 동동 매달려-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여기 저기 학원에 다닌다.

영어 끝나면 피아노 학원, 피아노 끝나면 미술 학원, 그림 끝나면 수영 학원.

와! 진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미취학 아동으로 보이는 예나이건만 이렇게 많은 사교육을 받고 있다.

한창 놀아야 할 나이인데 말이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예나가 영어, 피아노, 그림, 수영에 재능이 있어서일까?

아니라고 본다.

까놓고 말해 엄마의 욕심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본다.

물론 예나 엄마는 예나를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예나를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내 아이가 남들보다 한 발 앞서기 바라는 엄마의 욕심 때문이 아닐까?

내 아이가 최고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욕심 말이다.

하지만 정작 예나의 현재는 이렇게 고달프다.

한 마디로 엄마 손에 매달린 예나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책에서 아쉬운 점은 예나 엄마가 갑자기 회심한 것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점이다.

예나가 학원 투어에 그렇게 파김치가 되어가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던 엄마가

휑해진 두 눈으로 " 오늘 집에서 엄마와 놀면 안 돼?" 라는 예나의 간절한 한 마디에

따뜻한 엄마로 돌아와 예나와 놀아주는 설정은 내가 보기에 너무 억지스럽다.

그렇게 아이의 말 한 마디로 돌아올 엄마였다면

애초부터 학원을 네 개씩이나 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어떤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그림책을 썼는지는 이해하나

보는 사람, 특히 엄마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려면 좀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난 그림책은 첫째 번 독자가 엄마라고 생각한다.

엄마들이 이 그림책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고, 예나의 마음에 공감하고, 아이들을 놀게 놔두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그렇다면 좀더 갈등이 극대화되고, 갈등 해결도 뭔가 더 극적이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현재 행복한 아이가 미래도 행복할 수 있다고 난 생각한다.

오지도 않는 미래 때문에 현재를 저당잡히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한창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신의 선물>이다.

이 드라마는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기 전, 엄마는 겉으로는 진보적인 엄마였지만 그녀 역시 남들과 똑같은 속물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가슴 아프게 잃어본 엄마는 이제 안다.

무엇이 아이를 위하는 것인지 말이다.

신의 선물로 주어진 14일, 그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죽음도 불사한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영어, 피아노, 미술, 수영이 중요하다고 하여 아이를 닦달할까!

아닐 것이다.

그냥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서 내 옆에 있는 자체가 감사할 것이다.

부모라면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 온전히 감사하던 때가 있다.

아이 자체가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부모의 욕심이 스멀스멀 자라 아이를 위한답시고,

아이를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번 나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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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예준맘 2014-03-26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와 가슴으로는 알면서...
온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어미의 욕심때문에~~
아이를 힘들게 한적이 많았던 거 같네요!!
아이들을 통해 제 모습을 돌아볼때가 많습니다..
오늘도 선생님의 글로 힘을 얻고, 희망을 얻습니다...꾸벅...

수퍼남매맘 2014-03-26 12:54   좋아요 0 | URL
저도 매일 갈등하고, 흔들리고 내가 아이를 정말 사랑하는 게 맞나 되돌아보곤 합니다.
흔들릴 때마다, 불안감이 엄습할 때마다
이런 책들이 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곤 해요.
두 아이 모두 예나처럼 학원 다니느라 파김치가 되게 하지는 않아
그 점은 엄마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고백할 때는 내가 잘 버티었구나 싶어요.

2014-03-26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6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돼지 이야기
유리 글.그림 / 이야기꽃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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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으로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오늘 아침독서시간에 이 책을 봤다.

이 책을 먼저 봤더라면 내가 삼겹살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책은 지난 2011년에 전국적으로 돌았던 구제역 때문에 살처분된 돼지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당시 우리 나라에는 1000만 마리 정도의 돼지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구제역이 돌자 331만 마리 이상의 돼지들이 구덩이에 버려진 채 살처분되었다.

법에는 가축들을 산 채로 묻지 않고 고통을 극소화시켜 도살 후에 묻게 되어 있었지만

그건 그냥 법일 뿐 그 당시 돼지들을 비롯한 많은 가축들이 산 채로 매장당했다고 한다.

 

겉표지에 보면 눈 오는 날 돼지가 처음 본 눈을 보며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맛보는 장면이다.

이 외출이 마지막 외출이 될 지도 모르고 마냥 행복해 하는 돼지의 표정이 더욱 슬프다.

 

그림책을 보기 전에는 돼지들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는 줄 몰랐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통해 닭의 고단한 인생을 알게 된 것처럼

이 그림책을 통해 돼지들의 슬픈 인생을 알게 되었다. 

돼지들도  닭 못지 않게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었다.

 

번식 전용 돼지들은 콘크리이트 바닥인 사육장에 갇힌 채, 자신의 꼬리 조차 보지 못하는 아주 좁은 곳에서

먹고, 자고, 싸다가 인공 수정을 받고, 분만할 시기가 되면

분만틀에 옮겨진다고 한다.

분만틀은 말 그대로 분만을 위한 것으로 돼지 한 마리가 딱 들어갈 만큼이다.

어미 돼지가 새끼 돼지들을 분만하고나서 젖도 줄 수 없을 만큼 좁고,

어미 돼지는 분만을 하고나서 새끼 돼지를 안아 주지도, 핥아 주지도 못한 채 생이별을 한다.

 

갓 태어난 돼지들은 이빨과 꼬리가 잘린 채, 또 다시 좁은 사육장에 갇혀 평생을 지내게 된다.

번식용돼지로 뽑히지 못하면 그렇게 6개월을 기른 후

도살장에 가게 되고 우리 인간은 그렇게 사육되고 도살된 돼지 고기들을 먹는 것이다.

내가 먹는 삽겹살이 바로 이렇게 자란 돼지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니....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돼지들의 인생이었을진대 그들로부터 나온 고기가 과연 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스트레스를 받았을 법한 돼지들로부터 나온 고기들이 과연 온전할까 싶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여러 가지 질병에 쉽게 노출된단다.

하여 돼지들은 예방 주사를 맞거나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염성이 엄청 강한 구제역은 살처분해야 하는데

2011년, 사육장에만 갇혀지내던 돼지들은 생전 처음으로 눈을 맞으며 밖으로 나온다.

"어라 이게 웬일이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몽둥이와 전기 막대가 그들을 커다란 구덩이로 밀어 넣는다.

그림은 구멍 속에 떨어지는 돼지들의 시야가 흙으로 뒤덮여지면서 점점 구멍이 작아지다가

완전히 깜깜해지는 것으로 표현된다.

 

태어나자마자 이빨과 꼬리가 잘리고,

내내 옴짝달싹 못하는 사육장에 갇혀 지내던

돼지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었다.

 

그렇게 살처분된 지역은 3년 동안 파헤칠 수 없다고 한다.

그 곳에 우뚝 솟아오른 관들은

돼지 사체가 썩으면서 내뿜는 가스들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플라스틱 관이라고 한다.

 

양계장에서 나와 마당을 거닐고 암탉이 되어 새끼를 품고 싶었던 잎싹이처럼

돼지들도 자신의 새끼에게 젖을 물리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고, 사랑 담아 핥아 주기도 하고 싶었을 텐데.....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육장 밖을 나와 흰 눈을 맞으며 걸어간 곳이 지옥이었다니....

이 책을 보고나니 왜 채식주의자들이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동물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채식을 하는 사람도 있겠다 싶다.

이 그림책을 보고나니

인권이 중요한 만큼, 동물들의 권리 또한 지켜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의 식량이 된다는 이유 만으로 우리는 너무 가축들을 학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반성을 해 본다.

3년 전과 비교하여 지금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불편한 그림책이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가축들,

그런 가축들을 예의를 갖춰 도살하고(고통을 극소화 시켜서)

그렇게 얻어진 고기들이 사람의 양식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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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율맘 2014-03-2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근해 온 저에게 예담이가 그러더라구요
"엄마, 나5살때 돼지가 병에 걸렸데 그병이 뭐더라?"
"구제역"
"응, 구제역"
병이 돌아서 돼지들이 땅에많이 묻혔다면서 불쌍하다며 막 이야기를 해주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했죠 선생님이 또 무슨책을 읽어줬구나 하구요.
정말 책읽어주는 선생님 너무 감사하고 너무 좋아요^^;;;
선생님블로그에 들어오면 어떤책을 읽고 나에게 이런말을 해주나 이해도 가고 정말 좋은것 같아요
또 어떤책을 보고 나에게 전달하나 궁금증이 생기고 학교와 가정간에 책을 읽고 대화하며 다른책에 대해도
궁금해하는 요즘 예담이네 일상은 참 좋답니다.^^;;;

수퍼남매맘 2014-03-26 12:53   좋아요 0 | URL
예담이가 집중력이 참 좋네요.
어려운 이야기여서 그림책을 다 읽어주진 않고 소개만 살짝 해 주는 형식으로
이야기처럼 말해 줬는데
정확한 단어를 알고 있다니...
이럴 때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죠.
 

학년초만 되면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교실에는 자신감이 넘쳐 발표를 잘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자신감이 약해서 발표를 잘 못하는 아이들도 섞여 있다.

한 달 정도 생활을 하다보니

후자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 발표할 사람? 아는 사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물어보지만

끝내 손을 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이 책을 꼭 읽어준다.

손을 들고 발표를 못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내성적인 탓도 있고,

답을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신감이 약하거나 틀릴까 봐 두려워서이다.

그런 친구들이 이 책을 자주 읽었으면 좋겠다.

하루아침에 발표왕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덜지 않을까 싶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학급 분위기.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못하더라고 기 죽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아이들 사이에 배려가 있어야 한다.

틀린 답을 말하더라도 비웃지 않아야 한다.

설사 못하는 것이 있고, 서툴더라도 놀리지 않아야 한다.

이 책에서처럼 고작 8살이 다 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하늘 위의 산신령님도 모르는 것이 있는데 말이다.

 

모르기 때문에, 잘 못하기 때문에 학교와서 배우는 것인데

잘 못 쫓아오는 친구들을 기다려주고, 격려해 주고, 배려해 주는 우리 2반 아이들이 되었으면 한다.

 

기 죽으면 안 돼.

틀려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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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예준맘 2014-03-24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제목도 책표지의 그림도 선생님의 글도 너무 따뜻합니다.
오늘도 고단하지만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꼭 책을 읽어 주겠노라고
다짐합니다...

수퍼남매맘 2014-03-24 17:54   좋아요 0 | URL
네. 직장 일 마치고 나면 눕고 싶고, 쉬고 싶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생각해서 힘 내시기 바랍니다.

서니데이 2014-03-24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틀려도 괜찮다는 말, 모르니까 잘 못하니까 배운다는 말,
꼭 잘 해야해 하는 부담도 줄어들고, 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고, 정말 좋은데요.^^

수퍼남매맘 2014-03-24 17:55   좋아요 0 | URL
이 책 내용 보면 볼수록 멋지고, 이런 교실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저 혼자서는 안 되고, 아이들도 함께해야 하거든요.

담율맘 2014-03-2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예담이가 모둠장이라면서 발표도 해야한다고 많이 걱정했는데 오늘은 선생님께서 질문을 안하셨다고 무척이나 좋아하더라구요^^;;; 앞으로 일주일동안은 해야한다고 했는데말이죠. 예담이가 일주일동안 모둠장의 역할을 잘수행해 나갈꺼라 힘을 북돋아줘야겠네요.. 열마디 말보다 책한권으로 아이들을 아우르는 선생님의 지혜를 오늘또 배우고 가네요.

수퍼남매맘 2014-03-24 17:57   좋아요 0 | URL
모둠장은 발표를 많이 시킵니다. 모둠장이니깐요.
모둠장 아닐 때는 더 안 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모둠장은 자꾸 시킵니다.
틀려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본인이 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