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딸의 중학교 미술 영재원 최종 합격자 발표날이었다.
오후 3시에 발표가 나기로 되어 있어서 아침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몇 시간 전부터 난 긴장하여 자꾸 교육청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는데
딸은 제 일이면서도 떨리지도 않는지
아이패드로 애니메이션만 열심히 보는 거다.
오전에 친정 어머니로부터 좋은 꿈 꾸었으니 붙을 거라는 전화가 왔다.
진짜 그랬으면...
드디어 2시 30분 경에 최종 합격자 명단이 올라왔다.
그러나
어머니의 꿈은 들어맞지 않았다.
딸의 이름이 명단에 없었다.
아! 내가 안 된 것보다 더 안타깝고 속이 상했다.
중학교 영재원은 초등학교 영재원보다 더 경쟁률이 셌다.
구청을 두 개 합쳐서 선발하는 것도 그렇지만
중학교 영재원부터는 입학사정관제와 관련이 깊어서인지 미술 좀 한다 싶은 아이들은 다 응시를 한 듯했다.
영재 시험을 위해서 따로 미술 학원에서 고액 주고 특강을 받기도 한단다.
3차가 실기 평가이고 가장 어려운 관문인데 거기서 1.3배 수를 뽑았다.
최종 20명 선발에 26명을 뽑은 것이다.
초등 영재원 수료자 중에서 8-9명이 시험을 같이 봤는데
3차 통과는 우리 딸 포함 겨우 3명이 했다.
3차 합격자 명단에 들어갔을 때는 중학생들 제치고 거기에 들어간 것만도 기적이다고 좋아했는데
어디 사람 마음이 그런가!
거기까지 갔으니 면접도 무사히 통과해서 최종 합격자 명단에도 들어가길 간절히 바랐다.
3차에 합격한 3명 중 다른 두 명은 합격하고 우리 딸만 불합격을 한 것이다. 솔직히 그게 더 속상했다.
다같이 떨어졌으면 덜 속상할 텐데 딸만 떨어지니 상대적으로 더 속 상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보다.
최종 문턱에서 떨어지니 아쉬움이 더 컸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중학교, 고등학교 거치면서 이런 실패가 한 두 번이 아닐텐데...
앞으로 수많은 실패들을 경험할 터인데
우리 가족 모두 실패에 대처하는 법을 잘 몰랐다.
그 동안 딸이 이런 저런 큰 상들을 많이 타서 실패는 별로 경험하지 못한 터라 더 충격이 컸다.
딸도 많이 실망한 모양이다.
셋 중에서 저 혼자 떨어지니 자존심도 상하고 그런가 보다.
처음 초등 영재원 시험 보고 떨어질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 때는 자기 학년에서 달랑 한 명만 최종합격자 명단에 들어갔었고,
이번에는 자신과 함께 영재원 수료한 친구 둘은 들어갔는데
본인만 불합격했으니 많이 속 상할 것 같다.
왜 불합격했을까?
면접은 당락에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고, 실기 평가(3차 시험)에서 창의성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합격한 두 아이가 표현한 것을 들어보니
딸이 작품 표현시 두 아이에 비해 창의성이 부족했던 것 같다.
<책은 도끼다>에서 말했듯이
창의성이란 좋은 책을 꾸준히 꼼꼼히 읽고,
일상에서 그것들을 구현해 내야 하는데
딸은 그 점이 부족했던 것이다.
2학기 들어 사춘기가 살짝 와서 책도 잘 읽지 않고,
독후감은 아예 쓰지도 않았고,
그림도 그리기 쉬운 만화 그림만 베껴 그리고.
창의성을 위해 노력한 게 없다.
딸도 자신이 꿈을 위해 노력한 게 별로 없음을 인정했다.
오늘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제부터 또 실패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첫째 좋은 책 꾸준히 읽기.
둘째 독후감 쓰기.
셋째 그림은 주제를 정하여 매일 1시간씩 그리기.
열심히 노력한 후에 온 실패는 겸허히 받아들이겠지만
이번처럼 전혀 노력하지 않고 실패하는 것은 재능에 대한 모욕이 아니겠니?
중학교 입학하기 전에 이런 실패를 경험한게 차라리 잘 됐다 싶다.
그 동안 책도 안 읽고,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도 게을리하여
심히 걱정이 되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과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성실하게 생활하는 것임을 부디 깨달았으면 좋겠다.
딸이 영재원 합격했으면 더없이 기쁜 연말연시가 되었겠지만
현실에 감사하려고 한다.
그 어렵다는 3차까지는 통과했으니 재능과 창의성은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니깐.
2013년 마지막날이다.
일 년 내내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지낸 것,
새 식구 들어온 것,
서로 화목한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책은 도끼다>에서
"행복은 선택이다" 라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