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동아리 독서부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우리 학교는 블럭 수업을 하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2시간 연속으로 한다.
첫째 시간은 그저 책을 읽는다.
둘째 시간은 책에서 찾은 보물을 옮겨 적고 발표를 한다.
4학년 아이들을 맡았는데
글씨가 장난이 아니다. 알아볼 수가 없다.
우리 꼬맹이들 글씨보다 훨씬 못하다.
대부분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울며 겨자 먹기로 독서부에 끌려 왔기 때문에
독서기피자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1년을 지도하다 보니
이 아이들이 30분을 집중하여 책을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10명이 오는데
그 중 3명은 책벌레다.
2명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신간을 읽어보라고 줬더니 진짜 재밌단다.
둘 다 여자 어린이들인데 독서력이 참 좋다.
왜 이 책은 도서실에 없냐고 물어와서
이 책들은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출판사에서 선물로 받은 거야 하니
엄청 부러워했다.
그 중 한 명이 12월에 전학을 간다고 하여
<나쁜 학교>를 선물로 줬다.
집에 한 권 더 있어서 기꺼운 마음으로 편지까지 써서 말이다.
나머지 한 명이 자신도 전학 가고 싶다면서 난리가 났다.
이렇게 독서부는 책벌레와 독서 기피자들이 섞여 있다.
두 부류의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을 책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읽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책이다.
언제 읽어도 언제 들어도 감동스러운 책.
아까도 말했듯이 독서기피자들은 듣는 것도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다.
책벌레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아주 귀담아 들어줘서 고마웠다.
역시 리액션을 해줘야 읽는 사람도 힘을 받는다.
청소부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매일 닦던 표지판의 작곡가와 작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때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공부를 하여
교수에 버금 갈만한 지식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교수 제의를 거절하고
여전히 청소부로 남아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즐긴다는 내용이다.
언젠가 독서운동가가 우리 학교 학부모 연수를 해주시면서
이 책을 예로 들어서 말해준 적이 있다.
진짜 기억에 남는 예화였다.
오늘 나도 아이들에게 이 예화를 들려줬다.
대학 교수직을 거절하고 끝까지 청소부로 남아 있는 이 감동적인 그림책을 읽은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나도 이 아저씨처럼 행복한 청소부가 될래요" 말했단다.
엄마는
" 얘야, 그건 어디까지 그림책일 뿐이고, 그만큼 공부를 많이 했으니 청소부가 아니라 대학 교수가 되어야지"
라고 말했단다.
그림책을 정말 감동적으로 받아들인 아이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행복한 청소부가 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게 정상일 것이다.
아이에게는 직업의 귀천 따윈 안중에도 없고 무슨 일이든지 행복해 하며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스스로 원해서 하는 공부는 정말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하여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여전히 청소부는 성공하지 못한 삶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으니
아이의 순수한 말에 이렇게 저차원적으로 답할 수밖에.
이것도 이해와 수용의 낙차라고 할 수 있겠다.
행복한 청소부가 공부를 많이 하여 대학교수가 되는 걸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이 그림책은 감동도 없고,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우수한 그림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림책의 감동은 감동이고
실제로 아이들에게는 청소부가 아니라 공부 많이 해서 대학 교수가 되어라고 아이들을 다그치며 살고 있지는 않던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 말로는 떠들지만 정작
내 아이만큼은 적성 재능과 상관 없이 주변에 내세울 만한 그런 안정되고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던가!
이해와 수용의 낙차는 자녀 문제에서 더 커진다.
청소부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농부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만화가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아이가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 그런 멋진 부모가 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청소부, 농부 등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업들이 이 세상의 기초를 다진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내 자녀만큼은 그 길을 가지 않기를 바라는 이 모순 덩어리!
그래서 이 그림책 또한 불편한 그림책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되더라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단다. 실제로 치과 의사들이 자살을 가장 많이 한단다.
돈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치과 의사들이 왜 그리 자살을 많이 할까?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러니 직업이,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행복한 청소부가 있듯이 불행한 의사도 있을 수 있단다.
여러분들이 이 청소부처럼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며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청소부처럼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라고, 내년에 독서부에서 또 만나자"로 끝맺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