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는 처음으로 아이들과 캠핑을 가려고 하였으나 예약도 다 찼고,
몸상태가 좋지 않아-금요일 학부모 상담을 5건 하다보니 목소리가 완전히 잠겼다.-
11월에 가기로 하고 집에서 푹 쉬었다.
남편이 집 정리를 한다고 오래 묵은 비디오 테이프를 꺼내든 바람에
딸 어렸을 때 재롱 부리던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돌 지난 즈음의 비디오인데
그 때부터 잘 먹고 노래도 잘하고 춤 잘 추는 게 입증되어서 온 가족이 얼마나 하하호호 웃었는지 모른다.
딸은 자신의 포동포동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지 지금은 용되었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어릴 때 딸 업고 나가면
" 남자예요?" 하고 물었더랬다.
지금 이렇게 갸름한 얼굴이 될 줄은 몰랐지.....
아들은 누나에 비하면 캠코더를 거의 안 찍어줘서 정말 미안했다.
자기는 비디오가 없다면서 서운해 하는 아들을 보며
" 이번 학예회 때는 꼭 캠코더 찍어줄게" 약속을 했다.
돌 넘기고 아장아장 걷는 딸을 다시 보니
언제 이렇게 컸나 싶고
지금보다 한참 젊어보이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절감하였다.
비디오 정리하다가
" Shall We Dance?" 녹화한 게 나와서
온 가족이 다같이 시청하였다.
다시 보니 그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좋은 영화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다시 봐도 또 감동을 준다.
내가 40대가 되어보니 스기야마 씨의 내면이 이해가 잘 된다.
회사에서 중견이고,
단독주택도 샀고,
아내도 아이도 별탈없이 잘 지내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그인데
정작 본인은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지하철을 타면서 늘 올려다 보는 여인이 있었다.
바로 댄스 교습소의 마이.
너무나 모범생처럼 생활하던 그에게 마이는 일탈을 안겨주는 팜므파탈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 않는다.
마이 또한 나름대로 상처를 가진 채 교습소를 마지 못해 운영하고 있던 터에
스기야마를 통해 점점 변화된다.
스기야마는 비록 마이를 흠모하는 마음에서 댄스를 시작였지만
결국은 40대 중년이 느끼는 무미건조함에서 빠져나와 생활의 활력을 되찾는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또 다른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안정된 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스기야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를 나이게 하는 그 무엇, 나를 들뜨게 하는 그 무엇,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있을 때 행복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와 행복지수가 연관되는 게 아니라
지금 나를 푹 빠지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가 행복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같다.
참, 마이 역을 한 배우는 이 영화를 찍은 후 감독과 결혼을 하였단다.
여자인 내가 봐도 참 매력적이었다.
일요일에는 또 다른 영화 한 편을 봤다.
바로 <화양연화>
치파오가 이렇게 아름답게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장만옥은 이 영화 때문에 아마 세계에서 가장 치파오가 어울리는 여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진짜 라인이 살아있다.
장만옥의 치파오를 담당한 디자이너의 가게는 이 영화 성공 후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나도 하나 사서 입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장만옥의 치파오는 정말 압권이다.
노출 없이도 섹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까나!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장만옥은 보여주고 있다.
이건 아이들이 이해하기 좀 어려워서 중간까지 딸과 같이 보다 자라고 한 후
우리 부부는 끝까지 봤다.
이것도 40대에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아내와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상처 받은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그들도 불륜으로 오해받을까 봐 사랑을 접고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을 선택한다.
마지막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사원에 가서 속에 있는 말을 장시간 하고 진흙으로 입구를 막은 것을 보니
둘의 사랑은 이제 아스라한 추억의 일부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다른 의미에서는 또 다른 사랑을 일깨워 준 화양연화였음은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에게도 가장 힘든 시기가 어쩌면 화양연화 같은 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닐까!
어쩌다 보니 우리 부부가 연애하면서 함께 봤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싱그러웠던 초록잎같던 20대를 지나 이제는 울긋불긋 물드는 단풍 같은 40대를 맞이한 우리 부부이다.
영화도 책도 나이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게 참 다른 것 같다.
20대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은 깨닫는다.
하여 나이 드는 게 슬프지 않다.
다른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니까.
40대에도 나를 들뜨게 할 그 무엇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읽으면서 주인공 여자가 왜 불한당 같은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지 이해가 참 안 됐었다.
영화 <피아노>도 마찬가지이다.
외부적 조건만 보면 그녀의 남편들이 훨씬 나은데 그녀들은 이상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뺏긴다.
그런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가을이 점점 깊어진다.
나는 지금 무엇에 마음을 뺏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