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나랑 궁합이 잘 맞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기 마련이다.
샘들은 해걸이를 한다는 말로 위안을 삼곤 하는데
어떤 해는 그 반이 통째로 나랑 잘 맞기도 하다가 어떤 해는 잘 안 맞는 해가 있기도 하다.
이번에 담임한 아이들은 그런 의미에서 나랑 참 궁합이 잘 맞다.
아니 잘 맞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저학년을 하더라도 참 힘든 해가 있고, 고학년을 하더라도 수월한 해가 있음은
바로 아이들과 교사의 궁합 때문일 것이다.
오늘, 병원놀이를 하기로 한 날이다.
1학년 담임을 여러 번 하면서 가장 하기 싫은 게 바로 이 병원놀이다.
아이들은 참 좋아하는데 교사는 참 힘들다.
준비할 게 진짜 많다.
교과서 수업 시간은 그리 많지 않지만
병원놀이를 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준비하는 것을 따지면 교과서상의 수업 시간을 훨씬 초과한다.
교사가 혼자서 이것들을 다 준비하려면 벅차긴 하다.
그래서 매번 학부모님 지원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학부모들 도움을 빌리지 않고, 병원놀이를 해 보기로 하였다.
나에게 약간은 조잡한 병원놀이 세트도 있겠다
다른 것들은(보험증, 처방전, 약봉투 등등)은 아이들과 짬짬이 만들면 되었다.
남은 것은 바로 약, 약이 문제다.
매번 어머니들께 부탁 드려 맛있는 약들을 준비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준비해 보기로 했다.
지난 일요일 마트에 가서 초콜릿, 마이쮸, 캔디를 샀다.
아이들이 만든 약봉투에 그것들을 하나씩 넣자 아들이 도와준다고 왔다.
역시 울 아들 이뻐~ 누나는 열심히 런닝맨을 보고 있었쥐
도와주는 아들에게도 마이쮸를 주니 아들이 더 신이 나서 잘 도와줬다.
금일 3-4교시 가 팀과 나 팀으로 나눠 병원과 환자 팀을 정하고 병원놀이를 시작하였다.
3군데 병원을 다녀 오는 것이 오늘의 미션이다.
그래야 약국에 가서 맛있는 약을 타서 먹을 수 있다.
4교시에는 역할을 바꿔서 했다.
아이들이 병원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니 미래의 의사, 간호사, 약사들이 보였다.
제대로 하는 아이들 때문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특히 치과와 안과는 아이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환자를 치료하는지.... 진짜 같았다.
물론 당연히 시끄러웠지만 나만 참으면 애들은 즐겁다.
마음껏 소리 지르라고 내버려 두었더니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병원놀이를 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그렇게 커야 하는 것 같다.
역할놀이를 다 끝내고 약 세 봉지를 먹는 시간을 주었는데
다 먹는 아이, 아까워서 못 먹는 아이, 부모님 보여 드린다는 아이 가지각색이었다.
" 얘들아, 이 약은 선생님이 너희들이 아침독서 잘해서 선물로 주는 약이에요" 라고 말해 주었다.
우리 반은 그동안 아침독서를 무지 잘해서 선물을 받을만하다.
다음 5교시에는 실로폰을 연주하는데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지난 주 내내 집에서 5번씩 연습하라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 실력이 향상되었을지는 몰랐다.
우리 반 아이들이 이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노력한다는 것.
지난 번 처음 실로폰을 가르칠 때는 실력이 형편 없었는데
매일 내 준 숙제를 성실히 하여 이렇게 향상되어 온다는 게 교사로서 정말 흐뭇하고 보람되다.
그 뒤에 교사를 믿어 주고, 교사와 함께 같은 방향으로 아이들을 지도해 주시는 학부모님들이 계셔서 더 든든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설문지 제출하는 게 있었는데
100% 제출이다. 다른 반 물어보니 10여 명이 미제출이란다.
교사 생활하면서 이렇게 100%수합하는 게 참 드물다.
며칠 내내 수합하다보면 짜증 나고, 그게 곧 잔무가 된다.
우리 반은 안 그렇다.
담임 샘 힘들지 않게 학부모님들이 많이 도와주신다.
역시 우리 반은 명품반이다. ㅋㅋㅋ
평소에도 우리 반 아그들이 이쁘지만
오늘은 정말 정말 더 예쁘다.
얘들아, 알라뷰~~
내일은 가짜 송편 만들자.
이번 주는 연일 신 나는 일들만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