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족여행 첫째 날
학교재량휴업일과 개교기념일까지 합하여 황금보다 더 한 다이아몬드 같은 연휴4일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2박 3일 가족여행을 기획하였다. 강화도에서 1박을 하고, 파주 출판 단지에서 1박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언제나 계획일 뿐 결과는 항상 달라질 수 있음을 이번에 절감하였다.
첫 연휴날은 그동안 너무 피곤에 절여 있어서 하루종일 쉬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울 학교만 재량휴업일이라서 이 날 좀 뭔가를 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이 날 차 정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 일 날 뻔 했다. 앞 타이어가 부풀어 오른 것을 우연히 발견하시고 열어 보시니 안쪽에서 타이어가 벌써 터져 있었다고 한다. 그대로 고속도로를 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찌 되었건 차 정비를 다하고, 하루 종일 쉬고 나니 다음 날은 좀 일찍 기상해서 여행 준비를 서두를 수 있었다. 9시에 강화도로 출발하였다. 나들이 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차는 정말 잘 빠졌다. 강화대교를 건너 <고려 궁지>를 먼저 들렀다.<무신>의 무대가 되는 곳이라고 한다. 여유롭게 구경을 하겠다 싶었는데 우리가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초등학교 6학년 현장학습 팀이 때마침 도착하여 순식간에 고려 궁지는 조용한 궁터에서 시끄러운 놀이동산으로 변해 버렸다. 생각만큼 고려 궁지가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운치가 있었다. 궁지에서 내려다본 강화도의 모습도 멋졌고, 특히 외규장각이 이 곳에 있었을 줄은.....
다음은 갑곶돈대,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을 둘러 봤다. 5개 팩키지 상품이 있어서 표를 그걸로 구입했더니 안 들를 수가 없었다. 초지진이 제일 별로였고, 광성보는 꽤 넓고 괜찮았다. 남편이 여분의 카메라 배터리를 챙기지 않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휴대폰으로 아끼고 아껴서 찍었다. 날씨도 좋고, 사람도 없고, 카메라만 제대로 였으면 완전 따봉인데....
유적지 코스는 예전에 6학년 담임할 때 아이들과 현장학습을 왔던 기억이 나서 추억에 잠기게 했다. 그때도 이 코스로 돌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나다니.... 전등사까지 가려고 했으나 5곳을 다 둘러 보느라 시간이 지체 되어- 중간에 배터리를 혹시나 살 수 있을까 싶어 하이마트까지 갔다왔지만 헛수고였다-강화갯벌센터로 향했다. 애들은 절보단 갯벌을 더 좋아하니깐 어른이 양보해야지. 어린이날기념 여행이니깐.
슬리퍼로 갈아 신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니 너른 갯벌이 보였다. 탐조대에서 망원경으로 갯벌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도요새도 보였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순 없어서 갯벌에 들어가 봤지만 생물은 좀체 볼 수가 없었다. 아쉽게도 갯벌에 올 때마다 제대로 생물을 본 적이 없다. 아주 쪼끄만 게 한 마리를 봤을 뿐. 실망하는 아이들. 반지락, 낙지, 꽃게 등을 실컷 보고 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갯벌이 처음인 아들은 바지를 걷고서 즐퍽즐퍽 걸어다닌 것 만으로 즐거운가 보다! 그냥 갈까 하다 다시 산책로를 둘러 보니 그동안 숨어 있던 녀석들이 갑자기 여기저기 나타나서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 말소리와 발소리에 그렇게 감쪽같이 숨어 있었다니... 다시 망원경으로 조금 전 우리가 걸었던 벌을 살펴 보니 정말 많은 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실망해서 그냥 갔었으면 이런 장관을 볼 순 없었겠지. 잡는 것도 물론 재밌겠지만 갯벌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더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서식지 주변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꼭꼭 숨어 있었겠지. 비로소 주변이 조용해지자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던 게들의 모습이 아이들도 뇌리에 박힌 듯하다. 오는 길에 게 흉내를 내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곧장 펜션으로 향했다. 펜션은 석모도 가는 선착장 근처에 있는 걸로 나와 있는데 네비게이션에 번지를 찍고 가니 이상한 논두렁으로 데려 가는게 아닌가! 결국 펜션에 전화를 해서 몇 번을 물어 물어 겨우 찾아갔는데 그 곳이 바로 <후포항>근처였다. 갑자기 짠내가 밀려왔다. 바닷가에 있다는 실감이 났다. 주변을 보니 횟집이 쭈르르 있었다.'흠~ 저녁은 회를 먹어야쥐.' 펜션은 아들의 취향대로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는 복층펜션을 구했다. 수퍼남매 모두 이층이 있는 펜션을 좋아해서-나도 그렇고- 펜션은 가능한 복층펜션으로 구하려고 노력했다. 사진에 비해 실물이 형편 없을 때도 있지만 이번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저녁을 먹으려고 나와서 주인 아저씨게 회 맛있는 곳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아저씨가 <유진호>를 추천해 주시면서 주인 아저씨 먹는 대로 해 달라고 하면 알아서 해 준다고 말씀해 주셨다. 가 보니 자리가 거의 다 차 있었다. 주인아저씨 말씀대로 주문을 했다. 스끼다시로 나온 전어회를 먹어보니 달달한 게 맛있었다. 개불도 처음 먹어 봤다. 생긴 게 징그럽긴 한데 맛은 쫄깃한 게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젓가락이 자주 가진 않았다. 주메뉴가 나왔는데 와! 정말 도톰하게 썰어진 회가 먹음직스러웠다. 옛날에 딱 한 번 이런 회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정말 씹히는 맛이 예술이었다. 자연산 광어와 우럭을 먹는데 진짜진짜 맛있었다. 회를 가장 맛있게 먹었던 적이 결혼 1주년 기념으로 간 우도 여행에서 민박집 사장님이 직접 잡으신 돔을 그 자리에서 회로 떠 먹었을 때와 동학년 회식 때 학년부장님이 사 주신 일식집에서 먹은 모둠회가 내가 손꼽는 회맛이었는데 이번 유진호회를 1등으로 올려야 할 것 같다. 남편도 연신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여 먹었다. 마지막에 나온 지리 매운탕은 더 예술이었다. 보리 새우와 소금만으로 간을 해야 해서 어지간히 맛을 내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아이들도 맛있다며 잘 먹었다. 지리탕에 꽃게까지 들어 있어서 아이들은 게 먹느라고 난리가 났다. 2년 전 제주도 가족여행 갔을 때 잘하는 곳이라고 가서 회를 먹고 적잖이 실망했었는데 이번은 회맛이 환상 그 자체였다. 다음에 강화도에 또 가게 되면 꼭 들러서 다시 먹고 싶은 곳이다.

<고려 궁지> <덕진진>
2. 강화도 여행 둘째 날
이튿날은 느지막히 여유롭게 일어났다. 다른 팀들은 나갈 생각들도 안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제주도에서는 우리가 가장 늦게 출발하였는데 말이다. 다들 2박을 하는 건가? 우리 가족도 자리만 있었으면 2박을 했으련만... 벌써 예약완료되어 1박만 하기로 했다. 나머지 1박은 파주 출판 단지에서....10시 정도에 짐을 챙겨서 <마니산>으로 출발하였다. 단군이 제사를 지냈다는 그 참성단. 그 근처에 가니 제법 관광객들이 많아 보였다. 강화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본 장소였다. 해발 408m? 가뿐히 올라갔다 오겠네 싶었다. 계단으로 가는 길은 2.2km, 계단은 좀 적지만 돌아가는 길은 2.7km. 우린 짧은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웬걸? 참성단까지 거의 대부분이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얕잡아 봤다가 된통 혼이 났다. 동네 뒷산처럼 가볍게 갔다 올 줄 알았던 마니산 참성단이 그렇게 힘들 줄이야. 그래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어두웠던 게야. 남편은 아들을 업고 가느라 진짜 힘들었다. 평소에 운동도 안 하는 사람이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역시 자식에 대한 사랑은 대단한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업고는 정상까지 가기 힘들 거라고 했지만 남편은 그 일을 해냈다. 장하다! 우리 남편!!! 참성단에 가니 아이들도 자신들이 기특한지 풍경이 좋다면서 야단이 났다. 이 곳에서 매번 개천절날 제사를 지낸다는 말이지. 소사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언뜻 보기에도 영험해 보였다. 그나마 참성단에서 휴대폰으로 마지막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충전기를 챙겨 넣은 줄 알았는데 찾아 보니 없었다. 모처럼 하는 가족여행인데 이번은 사진이 흉년이네! 내려오는 길은 쉬엄쉬엄 근육을 풀어주면서 내려왔다. 비리비리 아들이 그래도 참성단까지 올라간 것을 보니 이제 제법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1/3는 업혀서 갔지만 그 말이 듣기 싫었는지 마지막은 자기가 올라서 갔다면서 우겨대는 아들. 수퍼남매 모두 나무 지팡이 하나씩 주워서 들고 올라가는 모습이 볼만 했다. 체력이 약한 아들 때문에 가족여행을 많이 못 다녔는데 이제 초등학생도 되고 마니산 정상도 다녀왔으니 좋은 곳에 많이 데리고 가야지.
우습게 봤던 참성단에서 에너지가 완전 방전되어 다음 코스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일단 가까운 음식점으로 가서 주문을 했는데 30여 분을 기다려도 안 나오다가 우리보다 한참을 늦게 온 팀부터 음식이 나오자 이상하다 싶어 물어봤더니 제대로 주문을 안 적은 거였다. 그래서 그냥 나와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지친 데가 배도 고프고, 새치기까지 당하자 아이들은 " 우리가 먼저 왔는데.." 하며 계속 투덜댔다. 역시 우리 나라는 자꾸 보채고, 목소리 큰 사람부터 챙겨주나 보다. 우린 서빙하시는 아주머니들이 하도 바빠 보이셔서 채근을 안 하고 있었더니 그 아주머니가 주문을 놓친 거였다. 다른 음식점에 오니 주문하자마자 5분도 안 되어 음식이 나왔다. 음식을 먹고 나니 급 졸음이 밀려오면서 자꾸 눕고만 싶어졌다. 딸은 바닷가 가고 싶다고 안달이고...
일단 <동막해수욕장>을 찍고 운전대를 돌렸다. 역시 어린이날 답게 사람이 엄청 많았다. 강화도에서 차가 밀리는 걸 처음 경험했다. 야영장과 해수욕장에 밀려든 차들 때문에 옴짝달싹을 못했다. 해수욕장 근처까지 가긴 갔으나 주차할 곳이 없어 돌아나오는데 빈 자리 하나가 눈에 뿅 들어왔다. 주차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모래사장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기억하는 한 바다에 처음 온 아들은-초등학교 이전에 다닌 여행은 기억을 못하는 것 같다. - 파도와 연신 내기를 하고, 딸은 바지가 다 젖는 줄도 모르고 파도와 장난을 쳤다. 옆에서는 어떤 남매가 추운 줄도 모르고 수영을 하는데 저러고도 감기 안 걸리나 싶었다. 수퍼남매는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다. 그렇게 20여 분 파도와 장난을 치고 노는 아이들. 남편과 난 모래사장에 앉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밀려온 파도에 아들이 엉덩방아를 찧더니 순신간에 물살에 휩쓸렸다. 나는 소리 지르고 남편이 들어가 아들을 꺼냈다. 진짜 한순간이었다. 아들은 너무 놀래서 어리버리하였다. 완전히 몸이 다 젖어 더 이상 바다에 있을 수가 없었다. 온 가족이 다 놀라서 얼른 아빠가 업고 자동차로 데려와 옷을 갈아입혔다. 준비해 온 바지들을 몽땅 더렵혀 놔서 갈아입을 옷도 마땅치 않아 누나 팬티와 내복을 입혔다. 5월에 수영을 해도 감기 안 걸리는 그런 강체력들이 아닌데.... 워낙 다리 힘이 약해서 그깟 파도 하나 못 견디고 물에 빠지고 마는 아들. 진짜 운동 열심히 시켜야겠다. 더운 물을 먹이고, 어느 정도 수습을 한 후에 어디를 가야할지 의논을 하였다. 일단 파주로 가서 아들이 입을 옷을 사기로 결정. 감기에 걸리면 안 되는데.....
깜짝 놀란 가슴을 진정한 후 출발을 하였지만 서울로 들어가는 차도가 꽉 막혀 있었다. 네비게이션에서 알려 주는 길이 초지대교인데 아무래도 인천 가는 차들 때문에 정체되는 듯하여 유턴을 하여 강화대교를 향했더니 길이 뻥 뚫렸다. 오면서 원래 1박하고자 했던 <메종 드 라메르>펜션도 봤는데 역시 추천대로 근사하였다. '다음엔 저기서 묵어야지. '파주 출판단지에 숙박 예약을 해 놓긴 했지만 아들은 옷이 없어 내복 바람이고, 지금 사정으론 감기에 걸릴지도 몰라서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와글바글 어린이책잔치>와 누나의 <오토마타 체험>이 못내 아쉬웠지만 물에 빠진 아들 때문에 집에서 쉬는 게 좋을 듯하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계획은 언제나 계획일 뿐 언제 무슨 돌발사고가 생길지 아무도 모르기에 여행이 더 흥미진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남편은 하루종일 책잔치에 못간게 아쉬워서 궁시렁댄다.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 1년을 기다려온 책잔치인데... 길벗어린이책도 1000원에 팔았다고 하는데...)
이번 가족여행을 통해서 저질체력이었던 울 수퍼남매의 체력이 그동안 많이 향상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딸은 그동안 저질체력이었는데 친구들과 많이 뛰어 놀아서 그런지 체력이 한층 좋아졌다. 아들도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예전보다 한층 건강해졌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둘 다 열심히 운동을 시켜서 강철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 바다에 뛰어 들어 수영하던 그 남매까지는 안 되더라도 적어도 약한 파도에 휩쓸려가지는 않을 정도의 체력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근육이 하나도 없는 아들의 가느다란 다리를 보면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산도 보고, 바다고 봤는데 산이 더 마음에 남는다. 얘들아, 우리 북한산 진달래 능선에 한 번 도전해 볼래? 아! 그리고 여행 갈 때는 옷을 아주 여유롭게 가져가야 한다는 것.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