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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눈을 보았니? ㅣ 꿈터 책바보 6
질 르위스 지음, 해밀뜰 옮김 / 꿈터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실로 오랜만에 어린이책을 보고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진짜 오랜만인 듯하다. 세계적인 희귀종인물수리를 우연히 발견한 두 남녀 어린이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렸지만 그것말고도 이 책은 인간과 동물, 나라와 나라, 인종과 인종, 세대와 세대를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가 존재함을 보여 주고 있다. 단순히 물수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식의 내용만 들어있었다면 그렇게 읽고나서 눈시울이 붉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 그 이상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기에 감히 올해 만난 최고의 책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먼저 물수리에 대해 전혀 사전지식이 없기에 한 번 이미지를 찾아 봤다. 우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나 궁금해졌다. 나중에 찾아봐야지. 책에선 이 새가 스코들랜드에서 여름을 지내고 아프리카 감비아까지 날아가 겨울을 지낸 후 다음해 봄에 다시 돌아오는 걸로 나와 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 위이고, 감비아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을 지나 세네갈 밑의 나라이다. 저 날개로만 39일을 날아서 감비아에 도착하는데 실로 그 여정이 대단한 것같다. 철새들이 왔다갔다 하는 거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책을 읽다 보니 그 일이야말로 정말 목숨을 내놓고 하는 연중 행사라는 사실에 숙연해졌다. 새들은 정말 자기 목숨을 담보로 그런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이 희귀한 새가 자신의 농장에 살고 있었다니 칼룸은 믿을 수가 없었다. 물수리의 존재를 알려 준 것은 다름 아닌 아이오나라는 여자아이인데 아이오나와 아이오나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거의 왕따를 당하고 있고, 심지어 정신병자라고 놀림을 받기까지 하는 집이다. 처음엔 칼룸도 아이오나를 피하려고 했지만 낚싯줄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운 암컷 물수리를 구해주는 일을 계기로 해서 둘은 가까워진다. 하지만 둘의 우정도 잠시, 갑작스럽게 아이오나가 뇌수막염으로 하늘나라로 가버리자 칼룸은 방황을 한다. 엄마도 없이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는 할아버지와 외롭게 살던 아이오나가 그렇게 죽는 걸 보고 정말 가여웠다. 아이오나의 죽음을 통해 아이오나를 싫어했던 칼룸 친구들,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아이오나 가족에 대해 너무 무심했다는 걸 반성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구성원 간의 갈등 또한 심도 있게 보여 주고 있어서 읽는 내내 재미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먼 여행길에 오른 아이리스에게서 GPS 신호가 오지 않아 며칠을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던 칼룸이 문명의 이기 인터넷을 이용하여 아프리카 감비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드디어 감비아의 소녀 제네바로부터 이메일이 오는 부분은 드라마틱하였다. 이제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오나를 대신하여 아프리카 감비아의 소녀 제네바와 함께 칼룸은 아이리스를 찾기 위한 구조작전을 개시한다. 39일의 힘든 여행 끝에 아이리스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고, 아이리스를 다행히 구조해서 치료해준 덕분에 아이리스는 예전처럼 건강해진다. 하지만 이번엔 또다시 씩씩한 소녀 제네바가 다리를 절단해야 될 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칼룸은 지난 번 아이오나처럼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낼 수 없다는 판단에 칼룸과 칼룸의 친구들은 제네바를 구하기 위한 일을 도모하게 된다.
물수리 하나로 시작된 인연. 아이오나, 제네바, 칼룸은 서로 다른 처지, 서로 다른 문화, 정반대에 위치한 나라를 넘어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 주고, 급기야 서로에게 든든한 구원자가 되어 준다. 처음에 아이오나가 칼룸을 만났을 때 해 주었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 말이야말로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 사람들은 모두 강과 같아."
" 누군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노력해야 돼."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에 대해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지 말 것, 칼룸은 아이오나를 통해 그걸 깨달았고, 제네바를 만났을 때는 그리하여 겉모습이 아니라 제네바의 속사람을 볼 수 있었기에 넓고 깊은 인류애로 그녀를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일 게다. 또한 그 인류애는 어쩌면 한낱 동물이라고 치부될 수 있는 아이리스에게도 확장되어 아이리스의 생사에 대해 그토록 궁금해 하고, 그녀의 귀환을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을 사람들이 물수리의 존재를 언론에서 냄새를 맡자 합심하여 모르쇠로 일관하는 행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체에서 희귀종이 번식하거나 풍경이 좋은 곳이 소개되면 더 이상 그 곳은 희귀종의 서식지도 될 수 없고, 더 이상 비경을 간직할 수 없는 곳으로 전락되어 버리고 마는 바람에 혹자는 일부러 언론에 알리지 않는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가 좋다 하면 벌떼 같이 달려 들어 그곳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기에- 동강이 대표적이지 않나?- 어쩌면 차라리 안 알려지는게 그들에게는 더 좋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칼룸 마을 사람들도 물수리 아이리스의 존재가 알려지면 더 이상 아이리스의 보금자리는 존재하지 않을 지 모르기에 그렇게 숨기려고 했을 것이다. 칼룸, 아이오나, 제네바, 헤미쉬 아저씨처럼 희귀종을 보호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편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기에 이런 희귀종을 발견한 것에 대해 보도하냐 안 하냐는 신중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책을 읽고나니 나 또한 아이리스와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사하라사막을 지나 감비아까지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아이리스로부터 신호가 오지 않을 때는 나 또한 혹시 잘못 된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였고 초반부 칼룸과 아이오나가 아이리스를 돌보고 그들만의 오두막에서 지내는 이야기는 황순원의 <소나기>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오래도록 감동의 파문이 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