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지게 자보려고 하였지만
따르릉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었다.
친정 어머니의 " 방학 했냐?"는 전화였다.
한 번 깬 잠은 다시 청하기가 어렵다 .
수퍼남매와 아침을 먹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내일 손님이 오시기로 되어 있어서
그동안 등한시했던 집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보단 햇살이 약하긴 하였지만 바람이 불어줘서 얼른 이불을 내다 널었다.
아이들은 잠깐 나가 놀라고 하고 엉망진창인 거실 청소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빨래도 한가득이어서 세탁기를 돌렸다.
끝날 시간이 되었는데도 계속 에러를 알리는 높은 음이 나와서 탈수가 안 된 빨래를 몽땅 꺼내서 살펴 보니
동전이 끼어 있는 것이었다. 아뿔사! 나의 불찰이다
힘들게 동전을 빼내어도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이지?
AS센터에 전화를 하니 다음주 월요일에나 기사님이 오신단다.
여름이라서 하루에도 몇 벌씩 옷을 벗어 놓을 텐데 큰일이다.
10년지 지나니 이 세탁기가 지난 겨울부터 계속 고장이 난다.
오래된 친구와 이별할 시간이 가까이 오는 듯하다.
탈수만 안된 상태라서 대충 옷걸이에 걸어 널어 놨다.
중간 중간 집안 일을 하면서
<오래된 꿈>
이란 책을 읽는데 무지무지 재밌다. 열네 살 여자의 몸으로서 금강산에 오른 김금원의 이야기이다.
역시 난 역사 소설과 궁합이 맞나 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인물인데
책을 읽어 보니 "여자는 절대 안 된다" 통념에 맞설 줄 아는 배포 큰 사람이었다
"금원"이란 것도 이름이 아니라 <비단 마당>이라는 일종의 호이다.
비단 마당. 너무 멋지다.
딸 아이더러 보림출판사에서 개최하는 독후감 대회에 응모해 보라고 사준 책인데
내가 더 재미있게 보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읽을 것 같다.
김금원과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써니>라는 영화에 나왔던 리더 춘화다 .
<써니>에서 춘화가 자신을 찾아온 친구 나미에게 하던 말이 생각난다 .
" 그냥 살지 마. "
춘화의 말을 들은 나미는 그제서야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던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꿈을 잊어버린 그녀들에게 도전을 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애 낳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만 살아가는 그녀들.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신의 오래된 꿈을 잊고 산다.
그런 그녀들에게 김금원과 춘화는 "그냥 살지 마" 라고 말해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나랑 친한 후배교사다.
어제 잠깐 후배 교사 집에 갔었다.
" 언니랑 대화를 해야 시사적인 걸 알게 돼요"
"나도 예전엔 시사에 관심 없었어. 보통 여자들이 그런 것에 관심 없잖아.
그런데 알아야 겠더라. 모르고 있으면 당해 . 무엇보다 우리 세대에 끝나는 게 아니라 자녀들 세대까지 나쁜 것들을
물려 주게 돼. 그리고 그들은 생각보다 더 강하고 치밀하고 악랄하더라"
" 언니. 나도 예전엔 시사에 대해 관심도 많았는데 결혼하고, 애 낳고 하니깐 멀어지게 되더라구요"
내가 말해주는 시사 프로그램과 여러 가지 자료들을 메모하던 후배
그녀의 꿈은 시 짓기이다.
그녀도 이번 여름 방학에는 자신의 오래된 꿈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어디 이게 그 후배 만의 이야기이겠는가?
나의 이야기이고
이 시대 주부로 살아가는 여자들의 보통 이야기일 것이다.
나도 그랬고, 주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모두 나미처럼 그렇게 자신의 가정에 국한된 것들만 고민하고 관심 가지면 살아간다 .
여자는 원래부터 비정치적이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적고 그러잖아 하면서 심지어 자신을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김금원처럼 시대의 통념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여성들이 있다.
자기 한 몸 돌보면서 편하게 살아도 되련만
저 높은 크레인에 올라가
해고당한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
더 나아가 이 시대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
더 나은 노동자들의 사회를 위하여
골리앗과 싸우는 김진숙 위원장 같은 사람도 있다.
꿈을 포기하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꿈에게 한 발짝 다가가라고 말한다.
달콤한 꿈 같은 방학
나의 오래된 꿈이 무엇이었나 찾아보려고 한다 .
그 꿈에게 한 발짝 다가가 보려고 한다 .
한 남자의 아내도 아니고
애들의 엄마도 아니고
아이들의 선생님도 아니고
나
오로지 나
나 자신의 꿈을 찾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