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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샤쓰 (문고판) ㅣ 네버엔딩스토리 29
방정환 지음, 신형건 엮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어린이날을 있게 만든 방정환 님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읽어볼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있는데 이번에 네버엔딩에서는 방정환 님의 9개 작품을 묶어서 책을 펴냈다.
1부는 만년샤쓰, 금시계, 나의 어릴 때 이야기, 삼태성 이 들어있고 2부는 사월 그믐날 밤, 시골 쥐의 서울 구경, 양초 귀신, 호랑이 형님, 노래 주머니 이다. 제목만 봐도 < 어라?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제목인데? >할지도 모르겠다. 방정환 님의 창작동화, 실제 이야기를 쓴 수필, 우리 옛이야기나 외국 우화를 고쳐 쓴 동화까지 다양한 맛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만년샤쓰>이다. 박물시간(생물시간) " 이 없는 동물이 무엇인가? " 라는 선생님 질문에 " 이 없는 동물은 늙은 영감입니다. "로 응수하는 아이가 바로 창남이다. 반에서 제일 인기 좋고 쾌활한 아이인 창남이는 다 낡아빠진 옷을 입고 다녀도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그런 아이이다. 아주 추운 겨울 날, 웃옷을 벗으라는 체조 선생님 말씀에 머뭇거리는 창남이. 다시 웃옷을 벗으라는 말에 " 만년샤쓰도 좋습니까?" 라고 되묻는 창남이. 만년샤쓰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는 선생님께 " 맨 몸 "이라는 것을 말하고 옷을 벗는다. 이 추운 겨울에 맨 몸이라니? 이유인즉 며칠 전 창남이 사는 동네에 큰 불이 났다. 창남이는 그 불쌍한 이웃들에게 자신이 입은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나눠 줬다. 그런데 어머니가 자신이 입었던 옷까지 모두 남에게 주어 벌벌 떠는 것을 보고 창남이는 자신의 샤쓰를 어머니에게 벗어 주고 자신은 맨 몸으로 온 것이었다. 여기까지 듣던 선생님이 "니가 맨몸이란 걸 어머니는 모르시냐?" 묻고 그 말에 "실은 어머니는 제가 여덟살 되던 해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듣는 선생님도, 다른 아이들도 훌쩍훌쩍 울었다. 부족함 없이 자라는 요즘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문학작품은 감동을 준다는 진실이 통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딸도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이 이야기를 읽었는데 감동적이었다고 한 마디 했던 게 기억난다.
그 다음 이야기 <금시계>는 혼자 서울로 와서 돈벌이를 하면서 야학에 다니는 가난한 아이 효남이가 주인공이다. 목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야학에 가서 공부하는 효남이한테 어느 날 여동생으로부터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편지가 온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를 끝마치겠다고 약속한 터라 집으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효남이는 주인어른께 월급을 미리 좀 달라고 두번 사정을 말하지만 거절을 당한다. 때 맞춰 주인집에 금시계가 없어진 사건이 터지고, 자연스레 돈을 꾸러 왔던 효남이가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된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고, 어머니 아프신 것도 서러운데, 도둑으로 누명이나 쓰고, 급기야 효남이 서랍에서 주인 마님의 금반지가 발견되어 영락없이 도둑으로 몰려 매를 두들겨 맞고 쫓겨 나게 된다. 억울한 누명을 쓴 효남이는 야학선생님을 찾아가지만 억울함을 호소하기는 커녕 어머니가 아프셔서 집에 내려가야 하다는 말만 한다. 선생님이 도움을 주신 차비로 기차를 타고 떠나려 할 때 우연히 떨어진 종이 쪽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진짜 도둑이 금시계를 전당포에 맡긴 영수증이었다. 효남이는 진짜 금시계를 훔친 이가 누군질 알면서도 발고하지 않는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진짜 도둑은 자신 때문에 효남이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난 것을 알고 더이상 숨길 수가 없어 결국에 이실직고를 하게 된다. 그제서야 주인은 효남이가 정말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음을 깨닫는다.
만년샤쓰와 금시계 모두 가난하지만 한없이 착한 두 남자 아이가 주인공이다. 까도남이 대세인 요즘에 이렇게 착하디 착한 사람들을 우린 바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 그래도 아직까지 이런 바보들이 존재하기에 세상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구다 다 저 밖에 모르고, 이웃은 돌아다 보지도 않고, 남의 일에 관심도 없게 살아간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남들에게는 바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래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창남이 효남이 같은 사람들이 아직 보석처럼 존재하기에 그나마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게 아닐런지.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