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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렁덩덩 새신랑 ㅣ 비룡소 전래동화 7
박경효 글 그림 / 비룡소 / 2009년 9월
평점 :
하루종일 비가 오는 오늘 같은 날
김치전 부쳐서 옆에 놔두고 할머니가 들려 주시는 누룽지 같은 구수한 옛이야기 듣고 있으면
잠이 솔솔 올 것 같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입이 똥꼬에게>라는 창작동화를 쓰신 분이 전래 동화를 새롭게 쓰신 책이다.
이런 날은 내가 할머니가 되어 옛이야기를 들려 주면 좋을 듯하여
공부 끝자락에 책자리에 모아 놓고 옛이야기를 구성지게(?) 들려 주었다.
요즘 배우고 있는 국어 단원도 마침 옛이야기가 나와서 안성마춤이었다.
옛날 옛적에 할미 한 명이 아이가 없어 돌미륵에게 아이 하나 점지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네 .
드디어 소원이 이뤄져 아이를 낳았건만 아 글쎄 구렁이인 것이여.
오메 이 일을 어찌할 거나?
할미는 징그러운 구렁이를 독에 묻고, 삿갓을 덮어 버렸구만.
영조가 사도 세자를 가둔 것이 생각나는구먼
할미가 아기를 낳았다는 소문을 듣고 정승댁 세딸이 구경하러 왔다네.
첫째 딸 독을 보더니 " 에그 징그러 퉤" 하고 침을 뱉네. 그래도 침을 뱉을 것까진 없지 않나?
둘째 딸 또한 구렁이라고 " 퉤"하네 하! 성질 한 번 고약하구만
셋째딸은 " 구렁덩덩 "이라 하며 놀라지도 업신여기지도 않고 오히려 귀엽다고 하네
나는 구렁이가 귀여울 것 같지는 않구만 셋째딸은 참 취향이 독특하구먼
어찌 되었건 구렁이는 순식간에 셋째딸이 마음에 들어 장가 들게 해 달라고 할미를 협박하네 그려.
구렁이가 정승 딸과 혼례를 치르겠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감?
언감생심 징그럽게 생긴 구렁이가 정승 딸과 결혼을 하겠다니 말이여~ 꿈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싶네 그려
구렁이의 협박에 못이긴 척 할미는 정승을 찾아가 운을 띄어 보네
정승이 첫째, 둘째에게 혼인 의사를 물어보자 두 딸은 단칼에 거절하네
셋째는 다소곳이 " 아버님 명령이라면 따르겠습니다. " 하네 그려. 역시 착한 딸이네 그려
이렇게 하여 구렁덩덩 새 신랑이 되어 혼례를 치르고 첫날 밤이 되었네 그려.
첫날 밤 구렁덩덩 새 신랑은 무슨 꿍꿍이 속인지
꿀 단지, 기름 단지, 밀가루 단지를 가져 오라고 해서
꿀 단지에 풍덩, 기름 단지에 첨벙, 밀가루 단지에 텀벙하네 그려
그러자 그 징그러운 허물이 벗겨지고 멋지고 잘 생긴 진짜 사람 신랑이 된 것이여.
세상에 우째 그런 일이 다 있당가?
두 언니들은 몰래 첫날밤을 훔쳐 보다가 이 사실을 다 본 것이여.
하여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다니껭
새 신랑은 색시에게 자신의 허물을 절대 남에게 보여 주지도 말며, 고이고이 간직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과거를 보러 멀리 길을 떠났구만.
이때다 싶은 심술맞은 두 언니는 구렁덩덩 새 신랑의 허물을 화롯불에 태워 버리고 만 것이여.
구렁덩덩 새 신랑과 착한 색시는 이대로 견우와 직녀가 되어 버리는 것일까나?
참 재미있는 옛이야기다
구렁이의 캐릭터도 유쾌하다.
할미가 장독에 가둬 놓아도 절대 기 죽지 않는 당당함.
사람과 감히 결혼하겠다는 약간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그 도전의식
이야기를 두세번 읽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나뭇꾼과 선녀의 캐릭터가 뒤바뀐 듯한 느낌이 든다.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됨됨이를 보는 셋째딸의 혜안도 돋보이고,
무엇보다 허물이 다 타버려 신랑을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자포자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남장을 하고 신랑을 찾아 떠나는 색시의 모습은 옛이야기 치고는 굉장히 진취적인 여성상을 그려내고 있다
마치 <종이봉지 공주>를 읽는 유쾌함이 느껴진다.
이야기만큼 재미 있는 그림 또한 덤이다.
어떤 교훈을 떠나서 일단 재미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장점이다
못된 두 언니도 나오고, 구렁덩덩 신랑과 색시가 만날 지 말지 긴장감도 느껴지고 말이다
비오는 날에는 역시 옛이야기나 무서운 이야기가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