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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 ㅣ 스토리텔링 가치토론 교과서 2
안미란 지음, 정진희 그림, 조광제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11년 4월
평점 :
작년 일이다.
인문학 서적으로는 흔하지 않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가 공존의 히트를 하면서 우리나라에 <정의>란 화두가 던져지고 누구나 한 번쯤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들을 가졌었다. 나 또한 생전 생각도 않던 정의에 대해 떠올려 보고 밤잠도 자지 않고 ebs에서 하는 센델 교수의 하버드 특강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봤었다. 그렇게 정의 열풍이 우리나라 전역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여기저기서 <정의>란 제목을 내건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정의란 무엇인가 책도 등장하는 걸 보고, 좀 씁쓸하기도 했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꺼져버리는 냄비 근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정의에 대한 관심도 그렇게 갑자기 달아올랐다가 금세 꺼져버릴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이 책을 받은 순간에도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책을 보았다. 그런데 한 꼭지를 읽고나서 나의 선입견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런 좋은 내용으로 ,쉽게 써진 책들이 많이 나와서 어렸을 때부터 정의라는 것에 깊이 고민하고, 판단하며, 실천할 수 있는 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좀 더 빠른 시일 내에 정의사회가 구현되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정의라는 것은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거 아니겠는가? 한 개인 개인이 올바르게 사고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그 사회가 바로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싶다.
일단 이 책은 쉽지 않은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딸이 끝까지 다 읽을 만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그 점에서 성공했다.
둘째 어린이 눈 눞이에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여덟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정의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주변 가까이에서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갈등할 수 있는 상황이란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셋째 함께 읽으면서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토론을 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고학년 담임이라면 이 책의 내용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토론 수업을 해 보면 유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넷째 이야기 끝에 정의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한번 정리를 해 줌으로써 자칫 가닥을 잘못 잡을 수 있는 것들을 곁길로 새지 않도록 잘 인도해 주고 있다. 더불어 생각할 문제까지 던져줌으로써 어린이 스스로 사고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서문에 말한 착한 것과 지혜로운 것에 대한 차이에 실로 공감한다 . 평소에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는 글이라서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 착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이고, 지혜롭다는 것은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는 것으로 결국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에서 착한 것이 반드시 정의롭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첫 꼭지에 나온 이야기를 들어 보자.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친구가 야구장에 갈 수 없는 경우 착한 사람은 야구장 입장료를 몽땅 지불하려고 할 것이다. 매번 이렇게 돈을 지불할 경우가 생긴다면 착한 사람은 매번 물질적 도움을 줄 지도 모른다. 과연 그렇게 옳은 것일까? 지혜로운 사람은 한 번 더 생각하여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계속적으로 도움만 받는 그 친구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고, 혹여 그 친구가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 배려해 가며 그 친구가 자립할 수 있도록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 같다. 이 이야기에서 2명의 친구가 가난한 1명의 친구가 마음 상하지 않도록 어떡하면 입장료와 점심 등을 해결할까 고민하는 부분은 착한 행동과 지혜로운 행동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기에 좋은 자료라고 생각된다.
탁 샘 이야기에서도 탁 샘의 교육 방법과 내용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탁 샘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탁 샘의 태만과 폭력을 그냥 못 본 체 할 것인가? 아님 용기를 내서, 탁샘의 미래를 위해서 탁샘의 잘못된 언행을 상대방이 상처 받지 않고 잘 납득할 수 있도록 알려 줄까?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인 탁샘을 위해서 그에게 교육 받는 아이들을 위해서 옳은 행동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이 경우 전자처럼 탁샘의 잘못된 행동과 태만까지 눈 감아 주는 착한 행동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참으면 모든 일이 덮여서 분란이 일어날 리가 없다. 참지 못하고 누군가 탁샘의 잘못을 헤집으면 분명 소란이 일어날 것이고 탁샘과 학부모 또는 탁샘과 학생들의 관계는 불편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정의가 아닐까 싶다.
우리 주변에 정의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분들을 떠올려면 그분들은 다른 사람에 비해 바른 말을 참 잘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른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관계가 불편해지고, 소란이 일어날 각오가 없으면 바른 말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기가 없어서 정의롭지 못한 행태를 보면서도 눈 감아 주고 좋은 게 좋다 하며 넘어가는 것이 아닐런지.... 나부터도 말이다.
셋째 이야기 <덕만아, 하루만>은 가슴 아프지만 현재 학교 현장의 모습이기에 더 애착이 가는 이야기이다. 지체 장애우인 덕만이 때문에 그 반은 반 평균 점수가 다른 반보다 낮다. 담임 선생님은 반 평균 점수가 낮다는 이유 만으로 교장, 교감님께 책임 추궁을 받고, 반 아이들은 급기야 반 평균 점수를 조금이라도 올리려면 덕만이가 시험 보는 날 결석을 하는 게 어떨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설마 이런 일이? 하겠지만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에 전체 학력 평가가 실시되고나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 이런 비인권적인 처사들이 벌어지고 있다. 공부 못하고, 반 평균을 깎아 먹는 아이는 시험 당일에 오지 않도록 은근히 압력을 받고, 모 학교에서는 성적이 낮은 아이들이 전학을 갔으면 하는 의사를 학교측에서 내비쳐 학부모의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은 이런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으며 학교에 올 자유, 공부할 자유마저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반 평균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앞세워 덕만이 개인이 학교에 올 자유, 공부할 자유를 억압해도 되는 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
이 책은 이렇게 녹록지 않은 문제들을 가지고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고 행동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들고 있다 .
고민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무조건 착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덮고만 가려 하지 않고 어떤 것이 과연 정의로운 행동인지 이렇게저렇게 고민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
마이클 센델의 말처럼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게 된 순간부터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모호해 지면서,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지는 경험을 이 책을 보면서 우리 어린이들도 경험하게되길 바란다 .
그것이 바로 정의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