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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소나무 ㅣ 산하작은아이들 19
권정생 지음, 김세현 그림 / 산하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읽었던 책이지만 이번 권정생 님 추모 기간을 통하여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권정생님의 책을 연달아 읽어 보니 느낌이 새롭다.
왠지 그분의 정신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럴수록 그리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셔서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시지 하는 아쉬움이 많이 생긴다.
아기 소나무, 학교 놀이, 아기 늑대 세 남매,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
네 편은 모두 권정생님 서거 후에 산하 아이들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다.
모두 작년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들이다.
작가님 이야기 속에 아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결혼하지 않고 평생 홀로 외롭게 사셨지만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셔서
말년에 몸이 많이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도 아이들이 집을 찾아 오면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좋아 문을 빼꼼히 열고 노는 모습
을 보셨다고 들었다.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이야기 아기 소나무도 마찬가지 아기가 나온다. 스스로 아무 것도 못하고, 오로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여 살 것만 같으며, 자신의 의지나 주체성은 없을 듯 한 아기들이 작가님의 이야기 속에는 오히려 때묻은 어른들보다
더 순수하고, 성숙하며, 용감하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책은 하느님의 눈물, 아기 소나무, 고추짱아, 두꺼비, 소낙비, 굴뚝새, 다람쥐 동산 여덟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아마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지도 모르겠다.
가장 감명 깊게 읽고 기억에 오래 남는 이야기는 하느님의 눈물과 아기 소나무 편이다.
둘 다 아기 토끼와 아기 소나무가 나오는데 이 둘의 공통점은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하회와 같이 넒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눈물 이야기이다.
토끼는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기 보다 자신에게 먹히면 그 생명을 다하는 식물의 처지를 슬퍼하며 주린 배를 움켜 쥔다.
살고 죽는 것이 운명에 달려 있거늘 토끼는 자신이 먹어치움으로써 그 생명을 다해 버리는 식물들이 불쌍하고 가엾어
굶다가 해님을 만나게 되고, 곧이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은 무얼 먹고 사시냐 묻는 돌이 토끼.
하나님은 보리수나무 이슬하고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 조금 마시고 산다고 대답해 주신다.
하나님처럼 보리수나무 이슬하고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 조금 마시고 살고 싶다고 말하는 돌이 토끼.
아무런 욕심이 없어 보인다. 아기 토끼가 이런 기특한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기를 써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있구나 한탄하시며 돌이 토끼 얼굴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하느님의 눈물이었다.
무소유로 살아가는 돌이 토끼는
평생 흙집에서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고 사신 작가님을 연상시킨다.
더 많이 먹고, 더 좋은 옷 입고, 더 넓은 집에서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고, 짓밟는 보통의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아기 토끼의 이야기였다.
아기 소나무 편도 같은 맥락이다.
아기 소나무는달님과의 대화에서
키가 얼마만큼 크고 싶냐는 달님의 물음에
달님한테 닿을만큼 키가 크고 싶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저어기 산골짜기랑, 시냇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슬픈 사람들이래요. 아들들은 군인으로 뽑혀 가고, 딸들은 도시의
공장으로 돈벌이 가고...."
" 할머니랑 할아버지들은 달님만 쳐다보고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초가 삼간 짓고 살고 싶어라 한대요"
" 내가 하늘만큼 키가 자라서 튼튼해지면,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를 베어다가 초가집 짓고 사시라고요" 이렇게 대답한다.
요즘 우리 어린이들에게 이 다음에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 부자요" 란 말을 자주 한다
" 왜 부자가 되고 싶니? " 라고 물으면
" 넓은 집에서 살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씁쓸하다.
아기 소나무처럼 " 다른 사람 도와 주려구요" 라고 대답하는 아이들로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무엇이 되려는 이유가 타인을 위한 것일 수 있다면 작가님이 꿈꾼 다같이 행복한 세상이 좀 더 빨리 실현되지 않을까?
한편
고추짱아에 나오는 어린이들(사람)은 심심풀이로 고추짱아를 잡아 꽁찌를 뜯고 그 대신 보릿짚을 쑤셔 박는 인물로 등장한다.
동물과 식물은 하염없이 다른 이들을 걱정하고, 배려해 주는데 인간은 자기보다 나약한 존재를 심심풀이 땅콩처럼 짓이겨
놓는다. 아이들의 철없는 장난에 가엾은 고추짱아는 죽고 만다.
자연과 상생해야할 인간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연을 짓밟는 모습을 고발하는 이야기였다.
다람쥐 동산도 기억에 남는다.
아기 똘똘이는 저 산 너머에 진짜 도깨비들이 사는 지 궁금하다.
어른 다람쥐들이 절대 산 너머게 가면 안된다고 하고 그곳은 도깨비들이 사는 곳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하지만
똘똘이는 그 곳이 못내 궁금하다. 모두 잠든 사이 산 너머를 탐사하기고 결심하고 고개를 넘어 가는데 거기서 자기랑 똑같이
생긴 쫑쫑이를 만난다. 쫑쫑이 또한 똘똘이처럼 산 너머에 절대 가면 안 되고 그 곳엔 무시무시한 도깨비들이 살고 있다고
들었다고 한다. 둘은 자신들이 그동안 어른들에게 속았다는 걸 알고 산 너머에 도깨비들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과 똑같은
다람쥐들이 살고 있음을 전한다. 똘똘이와 쫑쫑이의 용기가 없었다면 여전히 다람쥐들은 저 산 너머 반대쪽엔 무시무시한
도깨비들이 살고 있다는 거짓말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고 있겠지.
어릴 적 초등학교 때 받았던 반공 교육이 생각났다.
북한 사람들은 모두 빨갛게 생겼으며, 모두 다 거지이고... 남한은 북한을 헐뜯고, 북한은 남한을 비하하고
서로를 향하여 무시무시한 괴물이라고 말했던 남과 북의 모습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그걸 믿었다니...
지금은 그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작가님의 바라시는 남북 통일 까지 가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다람쥐 마을은 다행이 똘똘이와 쫑쫑이 덕분에 마음의 벽을 허물고 아름다운 동산을 만들었는데
우리네는 아직도 먼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