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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문고판) ㅣ 네버엔딩스토리 25
안네 프랑크 지음, 최지현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글을 본 적이 있다. 바로 그 날이 안네의 생일(6월 13일)인데 안네는 13세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을 받게 된다. 얼마 후 독일군을 피해 숨은 은신처에서 2년여 동안 일기를 썼고 이 일기장을 안네가 잡혀갈 당시 미에프라는 이웃이 몰래 책장에 숨겨 두었단다. 나중에 혼자 살아 남은 안네의 아버지가 책으로 출간하게 됨으로써 안네의 일기가 사장되지 않고 이렇게 세상 밖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네의 일기>는 고전으로 여겨질 만큼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한 소녀의 성장 소설이기도 하며, 시대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고증 자료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책을 받은 날 딸에게 먼저 읽어 보라고 권하였다. 이유는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안네의 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엄마의 강권에 못이겨 딸은 며칠에 걸려 아침자습 시간을 통해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 딸은 무엇을 느꼈을까? 나중에 물어 봐야지. 안네가 <은신처>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고 싶었다는 걸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 제대로 읽긴 한 것 같은데..... 4학년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내용들이 자주 등장해서 제대로 이해했을까 염려스럽다.
작년에 읽었는데 다시 읽어 보니 그때는 스치고 지나갔던 것들이 마음에 와닿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고전은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새롭다는 말이 진실이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 명작은 그래서 나이에 따라 적어도 3번은 읽어 보라는 누군가의 말이 옳다고 동의하게 된다. 내가 더 늙어서 읽게 된다면 또 와닿는 부분이 달라지리라.
<안네의 일기>를 통해 느껴지는 안네의 이미지는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를 연상시킨다. 겉표지에 나온 안네의 사진도 비비안 리와 꽤 비슷하다. 스칼렛의 당당함, 자존심, 강인함이 굉장히 닮아 있다. 그녀가 그렇게 수용소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조앤 롤링 부럽지 않은 작가가 되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1942년 13번째 생일날. 안네는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키티>라는 애칭을 붙인다. 키티는 그때부터 안네에게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된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은신처 생활. 안네는 이 일기장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2년 여 간의 은신처 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과 자신의 생각들을 아주 솔직하게 쓴다. 읽다 보면 13세의 소녀가 쓴 일기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안네의 일기를 통해 8명의 사람들이 그 좁은 공간에서 살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활이 우리들의 일상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생각을 하게 된다. 그건 바로 내가 그 상황이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뜻이다.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히 안네의 일기에는 전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절망과 독일군의 잔학상들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것과는 달리 사춘기를 겪는 안네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전쟁 상황이라는 것과 은신 중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곳곳에 나오긴 하지만 그것이 주를 이룬다기 보다는 13세~15세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온갖 생활의 단편들이 더 주를 이룬다는 생각이 든다.
2년 넘게 쓰여진 일기 속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은신처에 있는 8명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다. 그 중에서도 안네는 다른 사람들에게 건방지고, 제멋대로이고, 천방지축이며, 수다가 많고 고집쟁이로 통하며 갈등 상황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특히 반 단 부인과의 반목은 씩씩한 안네에게도 매번 큰 상처를 주기도 하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의 갈등, 그리고 페터와의 우정, 사랑 등등이 여러 일기에서 나타난다. 이는 전시 상황, 은신처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 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싸움이며 사랑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다.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라면 모든 것이 이해되고, 배려하며 살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똑같이 싸우고, 똑같이 사랑하고. 똑같이 화해하고.... 은신처 사람들 중에 가장 나이 어린 안네를 향해 쏟아지는 어른들의 비난의 화살을 보면 자명해진다. 그 어린 소녀가 겪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반 단 부인을 비롯한 여러 명의 어른들이 안네를 그렇게 윽박지르지는 못햇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은신처에 갇혀 지내는 사람으로서 사춘기를 맞이한 어린 소녀를 이해하기 보단 자신들도 역시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며,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밖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은신처 안에서도 크고 작은 전쟁이 매일 벌어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정말 나약하고 이기적인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면에서 타이타닉 호가 침몰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끝까지 승객들을 위해서 연주를 하던 악사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용기와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보통은 다 이렇게 안네를 비롯한 8명의 사람들처럼 자신의 고통에만 갇혀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고, 탓하며, 가시를 돋아 상대방을 비난할 뿐이다.
안네의 일기에서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은 바로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는 점이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언제 게슈타포에게 잡혀가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독서를 끊임없이 하고, 계속해서 각자 필요한 공부들을 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웠다. 대수학, 속기, 프랑스어, 영어 등등 학교에 다닐 때랑 똑같이 아니 오히려 더 많이 공부하며 책을 읽으며 자신의 학문을 쌓아 나간다. 안네의 아버지 또한 디킨스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일기 곳곳에 나와 있다. 이렇게 일상 생활을 꾸준히 해 나가는 부분이 나에게는 감동적이었다. 그것이 바로 희망을 안고 사는 모습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언제 잡혀 갈지 모르니깐. 언제 죽을 지 모르니깐. 아무렇게나 살자가 아니라 그렇게 차근차근 일상 생활을 해 나갔던 그들의 모습이 존경스럽기 까지 하다. 그 와중에도 책을 읽고, 희망을 가지며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들이 난 그들과 비교할 때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나 반문하게 만들었다. 역으로 그들이 그런 생활을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며 매일 매일 불안에 떨고 있었다면 더 견디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일상적인 일들을 해 나갔기에 견딜 수 있었고 책이라는 친구가 있었기에 위로가 되었을 거란 생각도 해 본다. 안네에겐 거기다 <키티>라는 일기장이 있었기에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었으리라. 안네의 꿈이 기자와 작가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 재능을 일기 전편에 걸쳐 볼 수 있다. 어른인 나보다도 문장력이 뛰어나다.
안네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그 곳에서 보낸다. 가장 좋아하는 아빠와 페터에게도 말 못하는 부분들을 오직 키티에게 말하며 그럼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가고, 자신의 사랑을 키워 가고, 자신의 꿈을 준비해 나간다. 사춘기 소녀가 그 좁은 공간에서 느꼈을 답답함 , 반항심 등은 어른들에게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어른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안네는 정말 외로웠을 것 같다. 그래도 당당히 맞서 싸우며 자신의 꿈을 준비해 나간다. 안네 말처럼 하나님이 안네에게 글쓰는 재주를 주셔서 13-15세 소녀가 썼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내용들도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중에 조작한 것이 아닌가라는 설도 있었다고 하는데 안네의 친필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은신처 생활 속에서도 미래의 자기의 꿈을 위해서 게을리 하지 않고 여러 가지 책들을 많이 읽은 덕분에 안네는 박식했다. 책도 2권이나 썼다는 내용도 나온다. 매일 매일 힘든 상황에서도 책을 놓지 않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안네를 떠올린다면 지금 편안한 생활을 하는 나는 불평을 줄여야 하는 게 마땅하다.
둘째 안네 아빠가 안네의 생일 날 써 준 시가 마음에 와닿는다.
자기의 잘못은 작아 보이고
남의 잘못은 두 배로 커 보여
우리는 남의 잘못을 나무라기가 더 쉽지.
그러니 우리 어른들. 네 부모를 이해해 주렴.
널 이해하고 공평하게 판단하도록 노력할 테니.
잘못을 고치다 보면 때때로 네 뜻과 맞지 않을 때가 있을 거야.
그건 쓴 약을 삼키는 것과 같아서
평온함을 유지하고 싶다면 해야 할 일.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흘러 모든 고통도 끝나겠지.
은신처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아빠가 써 준 시같은 편지이다. 아빠의 편지가 안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후반부에 가면 그 아빠마저 안네를 이해해주지 못할 때 안네는 마음의 문을 닫고 만다. 그때 키티가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다. 좁은 공간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골칫덩어리로 대할 때 안네는 얼마나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났을까? 안네가 페터를 사랑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상황들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8명 중에 고작 안네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가족 외에는 페터 밖에 없었으니깐.
하나 더 꼽자면 안네가 만든 <은신처 생활 안내>는 안네의 유머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특별 다이어트 식단 제공>등등의 재치 있는 말들이 곳곳에 있어서 안네의 긍정적인 성격을 볼 수 있었다. 일기 곳곳에서 힘든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안네의 마음이 곳곳에 나와 안네가 얼마나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는지 깨닫게 해 준다.
안네는 정말 강하고, 영리하고,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초반에 나오는 은신처 설계도는 안네가 직접 그린 것인지 무지 궁금하다. 마치 건축설계사가 그린 것처럼 세세하게 그려진 이 설계도를 보고 있노라면 꼭 은신처에 가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실제로 암스테르담에 가면 안네의 은신처가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암스테르담에 가게 된다면 그녀가 2년 간 지냈던 그곳을 꼭 둘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