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따먹기 법칙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4학년 1학년 국어교과서 국어 4-1(가) 수록도서 작은도서관 33
유순희 지음, 최정인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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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식을 하고 현재 학년말 방학 중이다. 지금쯤 아이들은 새학년에 사용할 학용품을 준비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전학년에 썼던 걸 다시 써도 무방하지만 왠지 새 분위기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새학년이 될 때마다 새로운 학용품을 샀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용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연필과 지우개가 아닐까 싶다. 필통 안에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가지런히 정렬하고, 깨끗한 지우개를 채워 놓으면 왠지 공부가 잘 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실제로 교실에서 아이들을 살펴 보면 필통 안이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아이들이 반에서 성실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 책은 학용품의 대명사인 지우개를 가지고 지우개 따먹기를 할 때 필요한 법칙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우개 따먹기 법칙으로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친구 관계 즉 대인 관계에서 필요한 원칙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새학년을  위해 새로운 학용품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을 어떻게 대할 지 이 책을 읽어 보면서 마음을 준비하는 자세도 학년말 방학 때 꼭 필요하리라고 본다.

책에서는 지우개 따먹기 대장 상보와 상보의 짝꿍 홍미가 교대로 화자가 되어 지우개 따먹기 법칙 한 개씩을 알려 주고 있다.  지우개 따먹기 법칙은 모두 10가지인데 순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때 그때 상보와 홍미가 이야기하는 상황에 어울리는 법칙을 들려 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편의상 순서대로 써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꼭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릴 것  2. 가벼운 지우개를 사용할 것 

3. 지우개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더라도 미리 겁먹지 말 것  4.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켜라 

5. 납작한 지우개는 피한다.  6. 지우개 따먹기는 둘이 해야 한다. 

7. 한 가지만 생각하지 말 것  8. 집중하기 

9. 지우개 크기는 비슷해야 한다.  10. 지우개 따먹기를 할 때 상대는 나의 친구이다.

이 법칙들은 상보와 상보 아빠가 하나하나씩 만들어낸 법칙이다. 상보는 반에서 소위 모범생, 우등생이 아니다.  입 냄새가 구리게 나고, 양말은 벗어서 책상 밑에 놔두며, 준비물과 숙제도 잘 안 해오며 공부도 못한다. 심지어 지우개 따먹기 경기 중 그만 똥을 팬티에 싸버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아이이다. 상보는 오직 지우개 따먹기를 잘할 뿐이다. 반에서 가장 잘나가는 준혁이조차도 지우개 따먹기에서는 상보한테 지고 만다.  상보의 짝꿍 홍미 또한 상보와 마찬가지이다. 반에서 별 존재감 없이 지내는 그런 아이 중의 하나이다. 친구들 끼리 피구를 할 때도 서로 데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아이이다. 상보와 홍미라는 두 아이. 반에서 존재감 없이 살아가며 뭔가 부족함이 많아 보이는 두 아이가 지우개 따먹기를 통해 다른 아이들과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따뜻한 동화이다. 

책을 읽은 후 생각해 보니 근래 들어 교실에서 상보처럼 지우개 따먹기를 하는 아이들을 거의 보기 어렵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 교실의 모습보다는 내가 학교 다닐 때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거다.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서로를 알게 되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며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놀이문화들이 사라지고 있어서 안타깝다. 아이들은 놀면서 크는 건데 말이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사회성 내지는 대인 관계를 볼 수 있다. 꼭 끼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있는 아이, 놀이를 하다가 성질을 부리는 아이, 지나친 승부욕을 가진 아이 등등. 놀이는 교사가 그 아이의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는 거지만 놀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대인 관계에서 가져야 할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하교 후에 친구들끼리 실컷 놀아야 대인관계에서 지켜야 할 법칙들을 습득할 수 있는데 학원이나 뭐다 해서 놀 시간조차 없는 현재의 아이들이 불쌍하다.

흔한 학용품 중의 하나인 지우개를 가지고 아이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잔잔하게 그렇지만 대인관계에서 필요한 법칙들을 하나하나 에피소드을 통하여 짚어준 작가의 세심함이 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준혁이가 가져온 이탈리아제 맘모스 지우개의 그림에서 글자가 한국말로 되어 있는 그림은 잘못 된 게 아닌가 싶다. 이탈리아제 지우개가 한국말로 쓰여져 있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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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눈물, 한권으로 보는 그림 세계지리 백과>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프리카의 눈물 - MBC 창사 특집기획 다큐멘터리
MBC [아프리카의 눈물] 제작팀 지음, 허구 그림, 이은정 글 / MBC C&I(MBC프로덕션)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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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하면 생각나는 건 미개, 가난, 흑인, 노예, 에이즈, 사하라 사막, 유전 등등의 것들이다. 긍정적인 이미지보단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던 게 사실이다.  

얼마 전 읽었던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를 보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변하였다. 앞에 열거했던 것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아프리카의 한 쪽 면만 바라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아프리카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흑인 노예를 만든 것도 백인이었고, 지금 가난에 허덕이게 만든 것 또한 서구유럽과 미국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어쩌면 문명국이라고 하는 나라에 좌지우지되면서 행복할 수 있었던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빼았긴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나처럼 아프리카에 대해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아프리카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도록 도와 준다.  

현재 우리나라와 아프리카 원주민을 비교해보면 누가 행복지수가 높을까?  미개하고 , 부자 나라도 아니고, 통신 강국도 아니지만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더 행복해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행복이란 것은 더 많이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욕심이 있냐 없냐의 문제인 것 같다. 욕심 없이 자족하며 사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현재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류 최초의 화석이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화석을 루시라고 하는데 지금도 오모강 근처에서 루시의 후예들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 자랑할 만한 축제가 있는데 드링킹데이라고 부르며 소 뛰어 넘기를 하는 거다. 건장한 청년들이 소 뛰어 넘기에 성공해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풍습이다.  

수리족들의 이야기도 참 재미있다. 아름다운 남자를 뽑는 대회는 여느 미인대회를 방불케 할 만큼 치밀하게 준비되고 있었다.수리족 남자들은 가장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눈 자위를 하얗게 하고, 흰 이가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 검정색으로 입술 문신을 한다. 눈과 이가 하얗게 빛나고 살찌지도 않고 호리호리한 남자를 부족의 여자 둘이 낙점하는 걸로 대회의 우승자를 뽑는다고 한다. 아프라키 부족 중에서 외모가 빼어난 부족에 속한다는 수리족의 이야기는 흥미로왔다.  

지참금의 크기를 알 수 있는 입술 원반을 하는 부족의 이야기는 자신의 부족 여자들의 정절을 지켜주기 위해 했던 입술 원반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부의 상징이 되었다는 게 신기했다. 아무리 봐도 큰 원반을 하고 있는 여인네의 모습이 아름답기 보다 아파 보이고, 흉해 보이건만 미의 기준도 절대적인 게 아니라 언제나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상대적임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이 부족 여자들은 결혼을 해야만 입술 원반을 할 수 있고 처녀들은 원반 대신 문신을 하는 걸 보고 이 부족은 아픔을 통해 미를 완성하는 부족임을 알 수 있다. 

연간 10KM씩 확장되어 가는 사하라 사막의 가뭄 문제는 정말 심각하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을 통과하여 물을 찾아 떠나는 커다란 코끼리 떼의 이야기는 지구의 환경 문제 심각성을 각성시켜 주었다. 올 겨울 유난히 추웠고 며칠 전 강원도에 사상 유래 없는 폭설이 내리는 등 이상 기후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사하라 사막 또한 예외는 아니다. 아니 아프리카 전 지역에서 이상 징후들이 보여 지고 있다. 지구의 환경이 그만큼 많이 훼손되었다는 증거일 게다. 사막의 확장으로 인해 수많은 동물과 사람이 물이 없어 죽어 가고 있다. 모계 사회, 끈끈한 유대감, 지능 높은 행동을 보여 주는 코끼리에 대한 설명도 색달랐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다른 지역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 부족의 이야기는 지금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의 이야기를 대변해 주고 있다. 지난 번 TV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는 아프리카 주민들의 모습이 나왔다. 그들이 하루종일 아니 매일 다이아몬드를 캐내어도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거의 없다. 아프리카에 있는 모든 자원들이 그들에게 정작 가난을 벗어나게 해 주기 보다 그들의 노동력만 착취하고 , 제대로 값을 지불하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아프리카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하늘의 재앙이 아니라 인재라는 것을 목도한다.  

지금은 여러 가지 것들로 힙든 시기를 겪고 있음이 사실이고, 다른 대륙들에 비해 발전이 더디고 미개하며 가난한 대륙으로 떠올려지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이면에 있는 진실들을 알게 될 것이며 아프리카의 현재 모습은 어쩌면 문명이라 먼저 불리운 자들이 무자비하게 파헤친 결과로 흘리는 그들의 눈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겠다. 더불어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지 문화의 우위는 단순하게 결정되어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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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방배동 교원연수원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전달 연수>에 참석하러 가는 거였다. 

가장 바쁜 학년말에 서울시 초등학교 독서 관련 교사들을 죄다 모아놓고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하게 된 경위와 취지, 목적과 사용 방법 등을 설명하는 연수였다.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런 시스템을 시행한다고 우리 교사들에게 사전에 예고를 했던가?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니 와서 전달 연수 받고 각 학급 교사들에게 알아듣게 설명하라는 것이 정녕 올바른가?  어차피 이 일을 하는 것은 학급 담임 교사인데 우리 나라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정작 교사들과 정책에 대한 취지, 실효성, 찬반론 등에 대한 일체의 토론 과정도 없이 무작정 날치기 하듯이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려고 든다.  이번 정책 또한 그런 식인 듯 하여 이 연수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처럼 도서관 업무를 하는 사람도 이 정책이 이렇게 빠른 시일에 시행되리라고 예상도 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각 담임들이야 말로 갑자기 웬 날벼락이냐 싶을 듯하다. 작년 부터 스멀스멀 교과부가 이 시스템을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정책을 놓고 대다수 <독서교육>을 하는 전문가들은 많은 우려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갑자기 모든 초, 중, 고 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연수를 하고 이번 학년부터 이 시스템을 무리하게 시행하려고 한다니 정말 말이 막히고 코가 막힌다.  ( 시스템도 미흡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고, 우리 학교처럼 DLS가 구축되지 않은 학교에선 할 수도 없다. )

연수장에 들어서자 시민단체에서 오신 분들이 전단지를 돌린다. 바로 이 시스템이야말로 아이들을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정작 신 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걸 방해하는 시스템이라는 내용이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도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 마찬가지로 부산과 경남에서 지난 일년간 이 시스템을 해 본 결과 별 효과가 없었다는 내용과 더불어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요령만 가르쳐 준 셈이라는 내용이었다.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추진하는 사람도 이를 저지하는 사람도 모두 학생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전자는 독후 활동을 차곡차곡 모아 이를 이력화하여 대입까지  이를 수 있도록 자신만의 독서 포트폴리오를 가지는 것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고, 후자는 이런 일련의 것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즐거움을 빼앗아 가고 오히려 단편적인 암기 위주의 독서를 하게끔 만들어 평생의 독자를 만드는데 오히려 방해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과부와 여러 시민단체 및 독서교육전문가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찰나에 이런 연수가 있었다. 연수가 있다는 것은 바로 시행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점이 참 못마땅하다. 당장 3월부터 시행하려고 한다면 최소한 그걸 써먹어야하는 현장의 교사들은 이런 논의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하고 각 단체(교총, 전교조)및 학부모단체 등과의 공개토론회 등을 통해 충분히 이 시스템에 대해 점검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짠하고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니 와서 보시고 각 학교에 가서 잘 설명하시오 였다. 항상 교육정책이 이런 식이라는 게 정말 못마땅하고 분통이 터진다.위에서 자기네들끼리 뚝딱뚝딱 처리하고 만다. 그러곤 위에서 지시하니 아래서는 알아서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충분한 논의를 가지고 정말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 평생을 책과 함께 노닐며 평생 독자가 되게 하는데 효과적인지 공개 토론회 등을 거쳐 충분히 심사숙고 한 후에 시스템을 만들더라도 만들고  정책을 시행을 하더라도 했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이 또 하나 <독서>라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 숙제 내지는 평가의 대상이 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되며 입시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충분한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부모들은 독서를 위해 또 하나의 사교육을 해야 될 지도 모르겠다. 교사들에게 또 하나의 업무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교육의 3주체는 정작 이 시스템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로 없고 그것에 대해 충분히 사고해 보지도 않았는데  너무 일방적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경험상 아이들은 독후감을 쓰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한다. 아니 싫어한다.    

지난 해 내가 맡았던 아이들에게는 전혀 독후 활동을 시키지 않았다. 그냥 책을 읽어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게만 할 뿐 그 흔한 독후화도 독후감도 시키지 않았다. 2년 전 맡았던 아이들은 똑같은 1학년인데도 일주일에 1-2회 정도 독후감을 쓰게 하였다. 전자와 후자를 비교해 보건데 확실히 독후활동을 시키지 않았던 아이들이 훨씬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게 되었다. 나 혼자서 쓰는 독후감은 또 어떨지 몰라도 선생님이 평가를 하고 공개되는 독후감을 정말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과연 자신의 사고력과 창의력, 책 읽는 습관을 증진시켜 줄까에 대해서 난 회의적이다.   

전달 연수 내용 중에 이 시스템이 자랑하고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은 바로 어린이들의 독후 활동 분야이다. 어린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독후 활동을 하고 교사는 그것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다. 교사의 잔무가 늘어나는 부분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또 다른 숙제가 부과되는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교사, 학부모, 학생도 신중히 이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경험상 학교는 하나의 시스템이 들어오면 왠만해선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시행되기 전에 충분한 검토를 해야 한다. 그 검토를 하기 위해서 당사자인 교사, 학부모, 학생 들이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찬반이 서로 만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줘야 하며 그 후에 실효성을 검토해야 한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무조건 시행부터 하고보자는 식은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그르치는 거라고 생각한다. 

독서교육은 하루 이틀 강조된 것이 아니다.하지만 우리나라의 독서 인구는 해마다 줄어 들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과다한 수업시수와 사교육 등으로 인하여 차분히 앉아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서습관이 정착되지 않았고 그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책을 멀리하는 결과를 낳게 하는 것이다.그렇담 해결은 이런 시스템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공부의 부담감을 줄여 주고 독서할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의 독서 습관이 평생 독자를 만들기도 하고 책과 담을 쌓게도 한다. 오늘도 연수원을 오며 가며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뭐하나 살펴 보았다. 지하철 이용객 중에 책을 읽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고 문제이다.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는 독자를 만드는 것, 여행 가면서 여행 가방 안에 책 한 권 챙겨 가게 만드는 것. 즉 어려서부터 책이 즐겁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스스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는 방법이  여러 가지 독후 활동을 하여 교사에게 평가를 받고 초중고 12년 동안 자료를 모으는 것이 최선일지는 다시 한 번 검토해 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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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이 좋아 - 고통 속에 부르는 아가(雅歌)
김병년 지음 / IVP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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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 후에 한 권의 책을 홍보하셨다. 본인이 아는 후배 목사인데 사정이 참 딱하다고. 7년 전에 부인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식물 인간으로 지금까지 누워 있는데 그 아내에 대한 아가서를 이번에 출간하게 되었다는 거다. 

할증을 붙여 헌금이라고 생각하고 만원에 이 책을 사서 아침자습 시간마다 읽었다. 끝까지 읽기가 참 힘들었다. 김병년 목사님의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부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래서 꼭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부부라는 것이 어떤 관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하고 내 옆에 있는 남편을,아내를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라고 말해 준다.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변함 없이 사랑하라고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결혼식을 하면서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남편을 아내를 사랑할 것입니다>라고  결혼 서약을 한다. 살면서 작가와 같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되면 과연 그 결혼 서약이 지켜줄 수 있을까 나 자신조차도 의문이 생긴다.  

사랑하는 아내가  셋째 아이를 출산한 지 3일 만에 뇌경색이 일어나 하루 아침에 식물 인간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아내의 웃음도 아내의 목소리도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할 수도 없다. 고통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아내를 더 사랑해주고자 족욕기로 발마사지를 해 주고 깜빡 잠이 든 사이에 아내의 발이 타들어가 버렸다. 순전히 남편의 잘못이었다. 아내를 더 사랑해주고자 한 일이었는데 그 일로 인해 아내는 식물인간도 모자라 한 발을 절단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남편은 죄책감 때문에 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왜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왜 계속해서 때리는 지 묻고 또 물어도 하나님은 대답이 없었다. 남편은 그렇게 6년여를 아내, 세 아이와 함께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작가는 어떤 사람들처럼 <고통은 당신을 크게 쓰시려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건 위선이라고 말한다. 그건 그만한 고통을 당해 보지 못한 사람들의 입바른 소리일 뿐이다. 남편은 지금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내를 버리지 않고 그 옆에서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건강할 때 아내가 자신에게 자주 하던 말 < 난 당신이 좋아>라는 고백을 한다.  그게 그가 지금 아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고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힘든 싸움을 하고 계시는 김병년 목사님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할까? 내 짧은 위로의 말이 그 분의 지난 6년의 힘든 사투의 시간들을 어떻게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병석에 누워 있는 아내는 지금까지 얼마나 힘든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까? 한창 엄마의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만 봐온 아이들의 상처는 또 얼마나 클까? 그 가정의 고통을 보고 어떤 말을 할 수 조차 없다. 내가 단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분이 쓴 책 하나 겨우 만원 주고 샀을 뿐. 이 세상에 부부로 살아 가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있을 뿐. 내 옆에 있는 남편에게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사랑해>라고 매일 한 번씩 말해 주는 것. 그것 뿐이다.  

이 책이 여느 간증 서적 같지 않았던 것은 내가 신앙 서적을 싫어했던 그 이유들이 이 책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고통도 없고 고통의 순간에도 기쁨이 있으며 하는 등등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듯한 그런 말들이 없다. 작가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 분노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과 대적한다. 그런 그의 솔직한 모습이 오히려 읽는 사람에게 공감을 일으킨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분하면 분하다고 말하는 그의 솔직한 모습이 바로 우리네의 모습이니까 말이다. 지금도 그 가정에 드리워진 어둠의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나님께 끝없이 기도하고 매달렸지만 하나님은 그들 가정의 고통을 없애주지는 않으셨다. 마치 바울이 자신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 간구하며 기도했지만 <네게 족하다>로 응답하셨던 것처럼 작가의 가정에도 변화가 없다. 하지만 6년 동안 그 가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통을 잘 견뎌 내고 있다. 놀랍게도 물질적으로 궁핍할 텐데도 딱 필요한 만큼 채워 주신다고 작가는 말한다. 때로는 하나님이 왜 이런 고통을 허락하셨는지 죽을 때까지 우린 모른다. 욥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바울도 욥도 목사님도 그 고통을 견뎌 내면서 분명 달라졌다.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그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이 달라지는 것이다. 

작가가 가장 후회한 일은 바로 사랑하는 아내가 늘 했던 말< 난 당신이 좋아>를 아내에게 미처 들려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부로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 당장 <난 당신이 좋아>라고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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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바와 사자 2 - 신뢰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29
티에리 드되 글.그림, 염미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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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드되라는 프랑스 작가가 아크릴 물감으로 흑백으로만 그린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런 그림책이다.
1권 <용기> 편에 이어서 내용이 이어지는 듯 하다. (1권을 아직 안 읽어서)
2권은 <신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바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신뢰이다.인간 사이에도 존재하지 않는 신뢰가 인간과 동물 사이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가뭄으로 인해 모든 것이 메말라 가고 동물도 먹을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있다. 사자 무리도 이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사자들의 우두머리 키부에는 무리들을 위해서 먹잇감을 구하러 인간 마을로 내려 간다.

인간 마을에는 사자들의 먹잇감이 될 만한 물소가 몇 마리 남아 있다. 그걸 지키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바로 야쿠바다.

물소를 향하여 뭔가가 걸어 오는 게 보이자 야쿠바는 물소를 지키기 위하여 창을 빼든다.

물소를 향하여 걸어 오는 것은 바로 키부에다. 둘은 서로를 한번에 알아 본다. 둘은 자신들의 무리를 위하여 싸워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발톱을 세우고, 창을 들어야 한다.

야쿠바는 키부에를 향하여 손으로 그를 도와 줄 수 없음을 표시한다. 둘은 자신의 무리를 위하여 싸워야 한다. 그게 그들의 운명이다.

키부에는 사람들의 급소가 어딘 줄 알지만 야쿠바의 급소를 찌르기 위해 발톱을 세우지 않았고, 야쿠바는 창을 세워 사자를 찌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그들의 무리들은 둘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여긴다.

둘은 밤새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다. 사자와 맞서 싸워 쓰러지지 않는 인간을 보고 사자들은 뒷걸음질쳐 되돌아 간다. 어느 한 쪽이 이긴 것도, 어느 한 쪽이 진 것도 아니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지켜준 거다.서로가 상대방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지켰다.
누가 먼저 발톱을 세우거나 창을 찔렀더라면 둘의 믿음이 깨어져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겠지만 둘은 싸움이 시작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믿음을 지켰다.

구제역으로 인하여 사상 초유의 300만 마리 가축을 살처분 한 요즘.
이 그림책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사자와 인간이 서로를 믿고 지켜주는 이 그림책과는 달리
우리네 현실은 300만 마리나 되는 가축들을 무참히 살처분하였다.
(똑같이 구제역이 번진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무참히 살처분하지 않았음을 보도를 통해 들었다. 우리나라는 그런 면에서 일본 따라갈려면 아직도 멀었다.)
갑자기 땅에 묻혀질려는 순간 기를 쓰고 나오려고 버둥대던 가축들, 살처분 하는 현장에서 가축들의 몸부림을 목격한 후 트라우마에 사로 잡힌 사람들, 가족 같은 가축들을 황망하게 보내고 슬픔에 잠겨 있는 축산업자들. 모두 다 피해자들이다.
우리나라는 너무도 무참하게 300만 마리나 되는 가축들을 처분해 버렸다.
구제역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너무 무책임한 인간의 변명일 뿐이다.
인간과 가축 사이의 신뢰는 인간에 의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깨져 버리고 말았다.
가축들의 인간에 대한 분노가 어떠한 재앙으로 닥치지는 않을까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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