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들의 모임인 인디스쿨에서 서평단으로 받은 책이 교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서평단으로 받게 되는 책은 언제나 반갑기 그지  없다. 

야쿠바와 사자 (신뢰) 라는 그림책이었다. 

섣불리 발음하면 야쿠자가 되어 버리니깐 조심해야 한다. 

 좋은 그림책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길벗어린이> 출판사에서  

프랑스 작가의 그림책을 선보인다. 

전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난 2권에 당첨되어 2권 신뢰편이 왔다.  

내용을 보니 1권과 2권이 조금 연결 고리가 있다. 

1권을 내 돈으로 사 봐야 할 것 같다. 

그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고 내용 또한 훌륭해서 소장하고 싶다.

겉표지에 있는 사자가 너무 멋져 보여서 얼른 일을 마치고 

후다닥 교실에 와서 딸 아이에게 읽어 줬다. 

내용 또한 아주 철학적이다. 

책에 대한 리뷰는 조만간 포토 리뷰로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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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11/02/01/201102011336461412.html 

 

나를 독서의 세계로 이끌어 준 구세주와 다름 없는 존재 <아침독서 추진 본부>에 좋은 글이 있어 옮겨 본다. 

나에게 꿈이 생겼다. 

바로 나로 인하여 우리 학교 전체가 아침 독서 하는 학교로 탈바꿈하는 꿈 말이다. 

그 꿈의 시작은 내가 맡은 우리 반 부터다.  

작년 한 해 일학년 아이들과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학습잘, 운동회날도 마찬가지) 아침 독서 10분을 했다. 

그 결과 먼저 내가 많은 책을 보게 되었다. 

고작 1학년 아이들이지만 아이들 또한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게 되었다. 

학부모들 또한 독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교 측에도 학교 전체가 다같이 아침독서를 해 보자고 건의도 해 봤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며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벌써 후배 한 명은 나의 말발에 넘어와서 

그 후배 반 (4학년)도 아침독서를 하고  있다. 

새로 맡게 될 아이들과도 열심히 아침 독서를 할 것이다. 

그리고 옆 반 선생님들께도 자꾸 권유할 것이다. 

학교에도 한 번 다같이 해 보자고 끊임없이 문을 두드릴 것이다. 

  

이 맘 때면 내가 새로 담임하게 될 아이들이 누굴까 궁금해진다. 

그런데 더 궁금한 건 수퍼남매의 담임이 누구일까이다.

수퍼남매의 담임 선생님이 부디 책을 좋아하는 선생님이 되셨으면 좋겠다. 

아침 자습 시간에 한자, 그리기 말고 독서를 하는 분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녀는 매일 밤 자기 전에 기도한다.  

< 하나님. 책 좋아하는 선생님 만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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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남편에게서 들은 내용이다.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수학하고, 그녀가 만든 단편 영화가 

주목도 받았고 앞으로 영화계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던 시나리오 작가가  

자신의 집에서 굷어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세상에 돈이 없어 먹을 걸 못 멋어 굶어 죽다니.. 

2011년에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란 말인가? 

내 귀를 의심했다. 

진짜? 굶어 죽었대? 

응... 며칠을 굶어서 죽고 말았대. 

 

그녀가 써 놓은 시나리오도 몇 개나 되지만 

우리 나라 영화 산업이 어디 좋은 시나리오 있다고 영화로 당장 만들어지나?  

제작사나 배급사의 입김이 들어가야지 영화화 되는거지.. 

돈이 없어 방세도 제대로 못 낸 그녀는 

주인집을 찾아 남는 밥이 없냐고 구걸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녀가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한 명도 없었다. 

서른도 넘은 성인이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가 

그렇게 서서히 굶어 죽었다. 

그게 우리 나라 현실이다. 

 

그녀에게  

나라에서 기초수당이라도 줬더라면 

우리 나라가 보편적 복지가 이뤄지는 복지국가였다면 

과연 그녀가 그렇게 굶어 죽었을까?  

예술을 하려고 했던 그녀에게 

우리나라의 현실은 죽음 그 자체였다. 

그녀의 소식을 듣고 정말 마음이 아프고 

나라에 대해 화가 났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해서  

그녀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 돈 없어서 굶어 죽지 않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장하준의 책에서도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경제가 어렵고,고용이 불안하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물가가 불안정할수록 미시적 경제 정책보다는 

거시적 경제 정책을 써서 경제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해서  

그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의식주 걱정 없이 자시의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어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비가 활성화되고, 경제가 원활해진다는 것이다. 

 

작녀에도 2집 까지 낸 어떤 30대 가수가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하직한 일이 있었다. 

그 가수의 노래 가삿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 도토리 싫어, 고기 반찬 먹고 싶어> 

이 가수 또한 명색이 가수이지만 소속사로부터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해 

끼니를 굶은 게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오죽 하면 < 고기 반찬 먹고 싶어>라고 했을까 

 

진정 우리나라에서  돈 없고, 백 없으면서 

예술을 하려는 사람들은 

굶어 죽을 것을 각오하고 뛰어 들어야 하나 보다. 

 

지금이 50-60년대도 아니고  

멀쩡한 어른이 굶어 죽다니... 

안타깝다. 

 

지금 곳곳에서 자신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분들이 있다. (청소부 할머니,할아버지들, 크레임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씨) 

이들도 우리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그들의 고통을 본체 만체 한다면

그녀처럼 굶어 죽을 지도 모른다. 

 

최고은 작가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서 평안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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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순난앵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13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홍재웅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열린어린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도봉도서관에서 린드그렌의 이름이 있길래 얼른 집어 들었다. <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 린드그렌. 그 이름만으로도 얼른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삐삐 시리즈를 즐겁게 읽었던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면서 언뜻 < 린드그렌 책 맞아?> 라고 다시 저자의 이름을확인하게 될 거다. 이 책은 분명 삐삐 시리즈의 경쾌함, 발랄함과는 거리가 멀다. 계절로 표현하자면 삐삐 시리즈가 이글이글 작열하는 여름이라면 <그리운 순난앵>은 허허벌판에 차가운 눈이 내리는 쓸쓸한 겨울이다. 

순난앵. 이건 뭐야?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동물 이름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다. 본문을 보니 스웨덴의 지명이다. 역자의 해설을 보니 <순난>이라는 말은 스웨덴어로 '남쪽의' 또는 ' 남쪽으로부터 오는' 이라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엥'은 잔디와 풀이 많이 나 있는 풀밭 혹은 목초지를 뜻한다고 하니 '순난앵'은 ' 따스한 바람이 부는 남쪽 풀밭'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그리운 순난앵'은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가난하고 , 헐벗고, 굶주리고, 병에 걸린 가엾은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자리'를 뜻한다. 

책은 네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 그리운 순난앵> < 라임오렌지 나무가 노래해요.> < 매 매 매! > < 에카의 융케르 닐스> 모든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앞서 말했듯이 가난한 어린이들이다. 

지금은 북유럽의 선진국인 스웨덴도 이렇게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난에 찌든 어린이들이 각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리운 순난앵>에서는 고아가 된 남매  마티아스와 안나,  <라임오렌지 나무가 노래해요>에서도 마찬가지 고아원에 보내진 말린,< 매 매 매 >에서는  가난한 목장 집의 아이 스티나 마리아,  <에카의 융케르 닐스>에서는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건강이 나쁜 닐스. 이런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른인 내가 봐도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안쓰럽기 짝이 없다.  

책 제목이 된 <그리운 순난앵>을 살펴 보자.

순난앵 마을에 살던 남매는 고아가 되자 멀리 농가에 보내어져 우유를 짜고 외양간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을 한다. 그들이 먹는 거라곤 오직 청어를 절인 소금물에 감자를 찍어 먹는 게 고작이다.  남매는 어서 겨울 학교가 열려서 그곳에 가서 글을 배우는 것이 꿈이다. 겨울 학교에 가면 이 지긋지긋한 생활이 좀 나아질까 싶었지만 맛있는 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은 가난뱅이 남매를 놀려 댄다. 농장으로 돌아 오는 길에 빨간 새를 만나고 그 새를 쫒아가 보니 이상한 틈 속에 문이 보인다. 먹지 못해 깡마른 남매는 그 문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그곳은 추운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고 개울에서 놀고 있는 여러 아이들은 이 곳을 <순난앵>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는 남매도 다른 아이들처럼 물에서 놀 수 있고, 피리를 불 수 있으며 나무배를 만들어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어머니라고 불리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맛있는 핫 케이크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다시 농부의 집으로 돌아가려면 빈 틈으로 나오면 된다. 그렇게 겨울 학교가 열리는 동안 남매는 순난앵을 방문하여 그들의 슬픔과 외로움을 견뎌 낸다. 마지막 겨울 학교가 열리던 날! 이제 더 이상 순난앵이란 곳에 올 수 없다는 생각에 남매는 가슴 밑바닥까지 슬퍼진다. 겨울 학교가 끝나면 예전 처럼 다시 농부의 집에서 들쥐의 잿빛 같은 생활을 해야 하니깐 말이다. 빨간 새를 쫒아 순난앵에 들어 온 남매는 한 번 닫히면 절대 열 수 없다는 그 문을 조용히 닫는다.  어린 나이에 부모도 없이 고생하며 굶주리며 살았던 남매는 따뜻한 남쪽 풀밭이 많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더 이상의 불행은 없기를 바란다.

나머지 세 편의 이야기들도 가난한 어린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과 함께 그들이 경험하는 판타지가 나온다.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판타지는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들의 표상이기도 하다.  마티아스와 안나에겐 순난앵이 그렇고, 말린에게는 라임오렌지 나무가 그렇고, 스티나 마리아에게는 희고 예쁜 양들이 그렇고, 닐스에게는 성에서 망누스 왕대신 자신이 죽었던 경험이 그렇다. 이런 판타지들을 통해 현세에서는 외롭고 힘들었던 그들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더 이상 그 불쌍하고 가엾은 어린 아이들이 고통 받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삐삐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지만 린드그렌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재주와 어린이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담겨진 참 포근한 책이었다. 그림 또한 그런 분위기에 맞춰 펜으로 그려졌는데 그림에서도 순난앵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잘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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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월 5일), 우리 학교는 놀토도 아니고 학교 재량 휴업일이 아니라서 당연히 학교에 나갔다. 

설 연휴가 3일 밖에 되지 않은 터라 미리 체험 학습을 신청한 친구들이 4명 있었다. 

출석을 불러 보니 무려 9명이나 결석을 한 것이다.   

학급 인원수가 완전 우리가 원하던 북유럽 선진국같이 되어 버렸다.

내 교직 생활에 이렇게 많은 어린이가 결석한 것은 처음이다.

옆 반은 고작 8명만 출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겠는가?

다른 학년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학급마다 편차는 있었지만  결국 많은 학생들이 결석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예전처럼 꼭 학교에 가야한다는 학부모의 의식도 많이 바뀌었고 

이런 경우에는 체험학습을 하면 된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는 학부모들도 많아서 

대량의 결석 사태가 벌어진 것일 테지만 

그래도 원인을 분석해 보면 

무리하게 학사 일정을 잡은 것이 문제이다.  

아예 중고등학교처럼 개학을 설 뒤로 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2월은 어영부영 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굳이 2월에 개학을 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초등학교가 설립된 이래 아마 계속 이런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을 것이다. 

학사 일정이 바뀌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12월까지 모든 학사 일정을 다 마치고 3월에 신학년을 시작하던지. 

아님 3월은 아직 쌀쌀하니 일본처럼 4월에 학기를 시작하던지 

아님 미국처럼 9월에 시작하던지... 

지금과 같은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2월은 정말 죽은 달처럼 지나간다. 

빠른 1,2 월생을 입학하는 것도 이제 바뀌어  동일년도 1월-12월생으로 조정되었으니깐 

머지 않아 바뀌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학교 재량 휴업일을 정할 때 우리 학교는 학부모 설문 조사를 기반으로 정한다. 

3일 연휴면 3일만  고생하면 되지만 

토요일을 재량 휴업일로 잡으면 일요일까지 5일 연휴가 되므로 

대부분의 학부모가 설문 조사에서 재량 휴업일을 원하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대량의 결석 사태가 벌어졌다.  

즉 학부모들이 설문 따로 행동 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말이다.

학부모들이 원해서 토요일을 휴업일로 잡지 않았던 건데 

결국 다수의 아이들이 빠지는 바람에 

대부분 교실에서는 제대로 된 수업이 진행될 수 없었다. 

올바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그렇담 누구에게 돌려야 되나?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님의 말을 들어 보니 

중고등학교는 그런 설문 조사 자체가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는 학교 행정에서  학부모 참여라고 해서 

설문  조사를 하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벌어진 거 같아 한편 씁쓸하다.  

신종 플루가 기승을 부리던 2009년에도 이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결석한 적은 없었다. 

이번 경우를 보면서 꼭 다수의 의견이 최선을 말하는 것을 아님을 본다. (공리주의의 맹점)

학교 행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본다. 

여러 학부모의 설문 때문에 다수의 어린이들이 피해를 본 거나 마찬가지이다.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니깐 말이다. 

 

이 사태를 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이 생각났다. 

가장 좋은 플룻은 그 플룻의 목적에 맞게 그 플룻을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학교 행정에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예 : 학교 운영 위원회 )

하지만 학교 행정 모든 부분에 학부모를 참여시키는 것이 이번과 같은 사태를 야기시킬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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