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딸이 다니는 교육청 미술영재원 PPT 발표회가 있었다.

일 년을 총정리하며 선생님과 학부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이다.

지난 산출물 대회 작품 설명과 개선 방향, 영재원을 마친 소감을 발표하였다.

딸에게 일 주 일 내내 PPT 만들어라 노래를 불렀건만

이번에도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게 딸은 바로 전날, 금요일 밤에  PPT 를 만들었다.

언제쯤 미리미리 만들까!

 

5대1의 경쟁을 뚫고 미술 영재로 뽑힌 20명의 아이들.

지난 일 년 간 다양한 미술 활동을 하고

서로 같은 재능을 가진 친구, 선후배와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하면서

무엇을 느끼고 배웠을까?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줄곧

'누구나 성장통을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출물 대회 주제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화해서 표현하라 였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를 말하면서 은연 중에 아이들의 아픔이 드러났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없다고

그런 흔들림과 고민과 아픔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듯하다.

아픔의 종류와 깊이는 서로 다를지 몰라도

누구나 성장통을 겪고 있다.

 

누가 아이더러 " 니가 힘들면 얼마나 힘들어? 나만큼 힘들어? 공부가 제일 쉬워"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아이도 나름 힙들다.

초딩은 초딩대로, 중딩은 중딩대로, 고딩은 고딩대로 어른만큼 힘들다.

외모 때문에

성적 때문에

진로 때문에

인간 관계 때문에

기타 이유로...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크고 작은 아픔을 버티고 있는 아이들이 참 대견해 보였다.

3월에 비해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영재원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몇 가지를 짚어 주셨다.

나도 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였다.

 

첫째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내용을 숙지, 암기하여 화면을 보지 말고 관중과 아이컨택하며 발표하라.

얼마 전 들었던 연수에서도 이걸 강조하였다.

이걸 잘한 사람이 스티브 잡스였다고 한다.

19명이 발표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관중과 소통하는 아이가 있었고

시종일관 화면이나 쪽지를 바라보며 하는 아이가 있었다.

관중을 웃긴 아이도 있었다.

짧은 발표 시간에 좌중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은 PPT의 내용이 아니라 발표자의 언변이다.

자신감 있게 또박또박, 카리스마 있게, 가능하면 유머를 섞어서...

분명 개선해야 할 점이다. 

 

둘째 영재원을 마친 소감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동한 자신이 해 온 작품 활동이 PPT안에 들어가 있음 더 좋겠다.

딸도 이 부분을 간과하였다.  왜? 귀찮아서겠지.

일일이 사진 찾아 작업해야 하니까.

금요일 날, 내가 너무 졸린 바람에 검토를 못 해줬다.

봤다면 사진 넣으라고 조언했을 텐데....

일년 간 작품 자료가 들어간 아이가 몇 있었다.

그 아이들의 PPT는 단연 돋보였고 내용도 알찼다.

미술 하는 아이들이니 PPT를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기억해야 할 점이다.

 

딸은 초등 미술영재원 보고회 때 아픈 기억이 있다.

이쁜 폰트 쓴다고 잔뜩 멋을 냈다가

막상 보고회 장소에서 글씨가 보이지 않아 완전 당황하여

발표를 대충 해 버렸다.

지금 같으면 임기응변으로 할 텐데

그때만 해도 아직 어려서....

그 일을 계기로 어디서나 잘 열리는 가장 기본 폰트를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도 글씨가 깨진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도 이번 일을 통해 가장 무난한 글씨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의 실패를 교훈 삼아 개선하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닉 부이지치의 말대로

" 실패할 수 있어요. 넘어질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계속 도전하는 거예요"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늦잠도 못 자고, 한 번도 지각, 결석 안 하고

성실하게 다닌 딸과 나는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해 줬다.

딸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줬다. 털이 복슬복슬한 옷이다.

가장 늦잠이 많고, 게으른 시기인데

토요일 일찍 일어나 영재원 다니는 게 귀찮고 성가신 일임에 틀림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럼에도 일단 가면 작업에 빠져 들어 즐겁고 행복했다는 딸의 말을 듣고

너는 미술을 해야 즐겁고 행복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 영재는 다른 영재와는 달리 중2가 마지막이다.

다음 주 수료식을 하면 이제 당분간 집에서 끄적이는 것을 제외하곤 미술과 잠시 이별이다.

" 이제 미술 체험할 일이 없는데 기본기 익힐 겸 미술학원 다녀볼래?" 운을 뗐지만

딸은 학원 다닐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럼 기다려야지. 자신이 보내달라고 할 때까지.

딸은 영재원 다니면서 한계를 아직 못 느꼈나 보다.

다른 아이는 자신보다 더 잘하는 아이를 보거나 스스로 한계상황에 도달하여 좌절감도 맛봤다고 하는데...

딸은 아직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어린 듯하다. 어쩌겠나! 기다려야지.

 

그래도 이제 영재원 수료라고 하니 서운하긴 한가 보다.

이런 다양한 미술 활동을 하지 못하고

같은 재능을 가진 친구, 후배를 만나지 못한다는 게 말이다.

제일 좋은 건 주말에 늦잠 잘 수 있다는 것. 그건 나도 좋다. ㅎㅎㅎ

영재원에서 사귄 좋은 친구, 후배들과 계속해서 연락하고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성향이 반대인 딸을 기다려 줄 수 있는 마음의 여력이 생긴 것은 바로 좋은 책 덕분이다.

부모가 조급하면 아이를 망친다고 하였다.

지금, 여기를 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들러는 말한다.

청소년 소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나름 힘들구나 알게 되었다.

 

이틀 후면 수능이다.

어제 딸이 선생님께 들었다면서 감독관으로서 지켜야 할 일을 말해주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감독관 선생님이 조금만 신경을 거슬리는 복장과 행동을 해도 항의가 들어간단다.

그만큼 아이들의 신경이 매우 예민하다는 것이다.

누가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나!

바로 어른이다. 부모이다. 이 사회이다.

결과를 떠나서

그동안 먼 길을 힘들게 달려온 아이들, 격려해 줬으면 좋겠다.

수고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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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0 1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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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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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를 봤다.

사도세자는 언제 들어도 눈물샘을 자극하게 만드는 슬픈 이야기이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영조-사도세자-정조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다른 버전으로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들의 이야기는 세계를 통틀어 전무후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는

영조가 세자를 뒤주에 가두면서 했던 대사에 잘 나타나 있어 보인다.

" 이건 가족의 문제다" 라고 말이다.

다른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영화 사도는 철저히 영조와 사도, 즉 부자간의 갈등을 다루겠다는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당파 싸움의 희생양으로 사도가 죽었다는 정치적인 관점 보다는

철저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부자 간의 갈등이 결국 이런 비애를 남겼다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영조의 모습에서 욕심 많은 부모의 모습을 발견한다.

40세 늦둥이로 얻은 아들이기에

핏덩이 때 세자로 책봉하고

그 때부터 제왕교육을 한다.

처음에는 영특하고 영조의 기쁨이 되었던 세자였건만

대리청정을 하고나서는 실망을 더 안겨준다.

아버지의 격려는 커녕 매번 호통과 핀잔을 들은 세자는 더 의기소침해진다.

그 후,

둘의 관계는 멀어진다.

 

영조는 영조대로 공부를 멀리하고 그림과 무술에 마음을 쏟는 세자가 실망스럽고

세자는 세자대로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아버지가 무섭다.

" 너의 존재 자체가 역모다"라는 영조의 대사를 들으며

둘의 관계가 얼마나 어긋나 버렸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존재 자체가 기쁨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존재 자체가 역모라니...

아버지도 아들도 한 치의 양보없이

자신의 것만을 내세우다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사건.

영화 대사처럼

영조는 아들을 죽인 아버지로 자신의 오점을 남겼고

사도세자는 광인으로, 허약한 정신력을 가진 비운의 세자로 기억되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들이 조금만 더 상대를 이해하려고 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텐데 말이다.

 

자식이기도 하고 어미이기도 한 내가 보건데

일단 아버지인 영조의 욕심이 너무 과한 게 아니었나 싶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는 일단 부모가 기다리고, 기대를 낮추고, 십분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조는 궁궐에서 부자 사이는 자애보다는 호통이 우선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세자가 자신보다 더 좋은 왕이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하지만

결국 그게 세자를 옥죄는 무서운 쇠사슬이 되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격려하기보다 다그치고 윽박지르는 모습으로

아들의 숨통을 죄는 무서운 아버지이다.

아들 세자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워 점점 울화병에 걸리고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 하지 못한 채

점점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세손은 참 다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팽팽한 줄다리기 같은 신경전을 보면서

세손은 아버지 앞에서도 할아버지 앞에서도 참 현명하게 대처한다.

 

가족 간의 갈등으로 영조와 사도 세자를 보니 더 안타깝다.

왜 서로의 단점만 보려고 하였을까!

왜 좀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왜 자기 것을 요구하려고만 했을까!

왜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했을까!

왜 존재 그 자체만으로 만족하지 못했을까!

 

영조의 모습에서 나를 되돌아본다.

혹시 나도 수퍼남매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완벽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욕심 많은 엄마는 아닐까!

아이를 위한다면서 결국 나의 욕심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본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팔다리 멀쩡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던 그 순간을 떠올려본다.

자라면서 부모의 욕심은 점점 비대해진다.

아이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것은 기본이고,

이왕이면 남보다 뛰어나고 더 나아가 최고가 되길 바란다.

영조가 아들이 최고의 왕이 되기를 바랐던 것처럼 말이다.

자꾸 내 안에서 그런 욕심이 꿈틀댄다.

영화 <사도>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못된 욕심을 가라앉게 하는 특효약이었다.

 

몇 해 전 외고 다니던 학생이 유서에 썼다는 말이 생각난다.

" 이제 됐어?"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이 세상 부모들은 지금 이 아이가 내 옆에 존재하는 것이 감사했다.

그런데 또 일상을 살다보니 어느새 그런 감사가 사라졌다.

 

부모의 욕심이 싱그러운 아이를 점점 시들게 하고 있는지 매일 돌아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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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6 16: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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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9 15: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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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장 보러 갔더니 빼빼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11월 11일을 겨냥한 마케팅인 것이다.

11월 11일은 원래 "농업인의 날"이라고 한다.

이 국적도 모르는 빼빼로 데이에 밀려 농업인의 날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참 안타깝다.

하여 우리 도서실에서는 농업인의 날임을 어린이에게 알려주고 이 날 하루만이라도

농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자

" 가래떡 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홍보 포스터에 사용할 가래떡 캐릭터 제작은 딸에게 맡겼다.

딸이 아직 생일 선물을 안 줬기 때문이다. ㅋㅋㅋ

남편한테는 옷 선물을 받았고,

아들한테는 독후감 선물을 받았는데

딸은 여차저차해서 선물을 못 했던 터라

이 참에 이걸로 퉁 치자고 하였다. ㅎㅎㅎ


내일 학교 가면 딸이 그려준 가래떡 캐릭터를 이용해서

행사 안내 포스터를 만들어 도서실에 전시하려고 한다.

이미 가래떡은 주문해 놨고,

가래떡에 발라먹을 꿀과 일회용 접시를 사면 되겠다. 

(조청은 도서실 바닥에 떨어뜨리면 곤란해서 튜브형 꿀을 준비해 각자 짜서 먹게 하려고 한다. )

전임교에서 가래떡 데이 행사를 딱 한 번 진행해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빼빼로 데이인 줄로만 알고 있다가

이 날이 농업인의 날이란 것을 새롭게 알고

도서실에서 책도 대출하고 뜨끈뜨끈한 가래떡을 맛있게 먹고 간 좋은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사서 선생님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이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본교는 어머니들의 도움을 전혀 안 받기 때문에

오롯이 사서선생님 혼자 이 일을 담당하셔야 한다. ㅠㅠ

요즘에는 신간도서 작업도 하시느라 바쁘신데 항상 흔쾌히 하시겠다고 하셔서 늘 미안하고, 감사하다.

다행스럽게도 교실이 도서실과 가까와 짬짬이 도와드릴 수 있을 듯하다.


먹는 걸로만 끝내면 조금 아쉬우니 

우리의 삼시 세끼를 책임지는 농부에게 감사 편지를 써 보자고 하는 건 어떨까 생각 중이다. 

위 그림은 딸이 그린 가래떡 캐릭터입니다. 딸이 저작권 안 따진다고 하니 필요한 분은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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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11-0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저요 저요~~~~
캐릭터 참으로 깜찍합니다. 땡큐^^
우리도 가래떡데이 준비하거든요^^

수퍼남매맘 2015-11-04 07:36   좋아요 0 | URL
님 도서관도 가래떡 데이 하시는군요. 반가워요.
캐릭터 사용해 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

희망찬샘 2015-11-04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따라하고 싶은 이 강렬함이라니... 가래떡은 얼마를 맞추셨어요? 떡볶이처럼 가는다란걸로 맞추셨나요?

수퍼남매맘 2015-11-04 07:35   좋아요 0 | URL
네~~1말 반 맞췄어요. 가격은 7만 5000원. 떡볶이떡으로요.

2015-11-05 14: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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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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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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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가족 레시피>는 오래 전부터 입소문으로 들었던 책이었다.

불량가족이라? 구미가 막 당겼다.

읽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불량(?)스럽고 이 가족사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이 가족이 과연 부둥켜안고 화해할 날이 오기는 할지....

 

얼마나 불량한지 일단 가족 소개부터 들어보라.

주인공 여울이부터 말하자면

코스튬플레이가 취미이며 이 불량가족으로부터 가출 아니 출가가 꿈인 고1 여학생이다.

술을 진탕 먹어 필름이 끊겨진 적도 있다. (고1 여학생이다. )

여울이 덕분에 우리 딸도 가끔 가는 코스튬풀레이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딸과 모처럼 대화가 통했다.

 

여울이 위로 고3 언니가 있는데

여울이와 배가 다르다.

먹는 게 취미이고 따라서 살이 넘쳐난다. 

여울이와 같은 방을 쓰는데 여울이만 보면 쌍욕부터 나오는 캐릭터다.

 

그 위로 비리비리한 대학생 오빠가 있다.

이 오빠 또한 여울이 언니와 배가 다르다.

다시 말해 애 셋이 모두 엄마가 다른 일명 콩가루(?) 집안인 셈이다.

오빠는 희귀병에 걸려 대학생인데도 불구하고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여기에 뇌경색에 걸린 이혼 당한 삼촌이 함께 살고 있다.

주식 때문에 전재산을 말아 먹고, 뇌수술을 받고, 이혼 당하고 이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이 집의 가장인 여울이 아빠는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세 아이의 엄마가 모두 다르겠지.

여자를 밝힐 뿐더러 수 틀리면 폭력도 가끔 쓴다.

여울이도 불곰 아빠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적이 여러 번이다.

뚜껑이 열렸다하면 물불 안가리는 다혈질이다.

 

엄마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집에 없다. 

안주인은 다름 아닌 80세를 훌쩍 넘긴 여울이 할머니다.

80 넘은 노구를 이끌고 이 대식구 살림을 도맡아 하니

입만 열었다 하면 쌍욕에 "양로원에 보내 줘" 란 말을 노래처럼 부른다.

특히 캬바레 댄서였던 여울이한데는 한 번도 상냥하게 "여울아" 이름 불러준 적이 없다.

"이 년, 저 년" 이 일상어이다. 

이런 레시피를 가지고 있으니 불량가족이라고 할 밖에.

내가 여울이라도 하루 빨리 출가를 하고 싶을 듯하다.

이건 가족이 아니라 웬수가 모여사는 것 같다.

 

이런 가족사 때문에

여울이의 목표가 출가-가출은 어쩐지 불량스럽다나?- 가 된 건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얼굴도 모르지

아빠는 다정하기는 커녕 일만 부려먹고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두들겨 패지

할매와 언니는 자기만 보면 쌍욕을 해대지

그나마 자기 편이 되어주던 오빠와 삼촌이 여울이보다 앞서 가출을 해 버리자

마음 둘 곳이 더 없어진다.

 

여울이가 마음 줄 곳이라곤 코스튬플레이와 고양이 뿐이다.

지금의 " 나 " 가 아니라 전혀 다른 " 나 " 가 되어보는 시간.

그게 코스튬플레이의 매력이다. 

그 시간만큼 여울이는 우울함을 벗어버릴 수 있다.

이 집의 천덕꾸러기에서 탈피하여

피요나 복장을 한 그 날만큼은 공주인 것이다.

비참한 현실을 잊어버리기 위해 여울이는 코스튬플레이에 더 집착하는 것일지도.

 

오래 전부터 출가를 결심하고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던 여울이를 앞질러

다른 가족이 하나 둘 가출하자 정작 여울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욕쟁이 할매와 단둘이 집에 남게 된다.

할매도 양로원에 가고 싶은 게 소원이지만 

형편상, 할매의 꿈도 잠시 보류다.

바야흐로 지금이 불량가족 최대 고비인 듯하다.

"뭉치면 싸우고 흘어지면 산다"는 불량가족이건만

각자 서로 뿔뿔이 흩어진 지금, 여울이는 문득 도덕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한다" 

어쩌면 지금, 불량가족 저마다의 진화가 시작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어거지로 가족을 화해시키지 않고, 해피엔딩의 행복감도 독자에게 맛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위기를 맞은 그 상태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 점이 오히려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야기는 위기의 정점에서 끝났지만

여울이가 이 위기를 통해 달라질 거라는 점을 확신한다. 

" 위기에 처할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한다"는 그 말처럼 말이다.

여울이 뿐만 아니라, 이 가족 구성원 모두 각자가 맞은 위기를 통해

지금보더 더 진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삼촌이다.

 

가출 후 여울이를 찾아온 삼촌은 전과 완전 달라졌다.

뇌경색 때문에 팔다리 움직임이 부자연스럽지만

구박 받으며 주유총 쏘는 것을 익혔고, 주유소에서 기숙하면서

외국에 나가 있는 아이들을 언젠가는 보러 가리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단다.

주식도 끊었고 월급도 꼬박꼬박 모으고 있다고.

집 나갈 때 여울이한테 비루하게 꿔갔던 돈도 갚았다.

언니, 오빠, 아빠, 할머니, 그리고 여울이 모두 삼촌처럼 조금씩 진화할 거라고 믿는다.

 

불량가족을 응원한다.

부디 다시 한 집에 살게 될 때는,

상대의 상처를 후벼파는 말보다 따뜻한 눈길 한 자락, 말 한 마디 건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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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4: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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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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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가난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 어린이들을 위한 평등 교과서 목수정 셀렉션 1
모니크 팽송-샤를로 & 미셀 팽송 지음, 에티엔 레크로아트 그림, 목수정 옮김 / 레디앙어린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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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시작되었다.

11월 1일은 내 생일이다. 

며칠 전,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독후감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왜냐하면 이번에 아들이 읽은 책이 정말 알아야 할 경제지식인데다

조금 난해해서 이렇게 해야 독후감을 쓸 것 같아 머리를 좀 굴렸다. 호호호

어려운 부탁을 받은 아들은 어제 오후 내내 고민이 많았다.

그 진지한 모습이 참 예뻤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읽은 책을 다시 한 번 정독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뿌듯하였다.

" 아들아, 엄마는 내일 아침 독후감 선물을 받고 싶어" 라는 의미심장한 말에

아들은 어제 저녁 A4  한 쪽 가득 독후감을 썼다.

내용을 떠나서

엄마의 부탁을 지킬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 자체가 정말 고마웠다.

' 고마워! 아들'


드디어 생일날 아침, 남편이 끓여준 즉석 미역국와 계란말이로 생일상을 먹고나서

아들의 독후감 전달식이 있었다.

읽었는데 내용이 훌륭했다.

옆에서 함께 듣던 딸이

" 와! 잘 썼다" 칭찬해 주니 아들도 기분이 업 되었다.

아들이 쓴 독후감 내용이다. 

좋은 책은 글발이 나오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생각하게 하고, 나를 변화시킨다. 


부와 가난에 대한 생각


엄마와 함께 책을 고르다 

경제책이 있어서 나도 경제에 대해 지식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 부와 가난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를 골랐다. 

경제지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은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경제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부자들이 우리 시민보다 “ 세금구멍”과 “ 세금천국” 을 이용해서까지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돈도 많으면서 세금을 그냥 내지 세금을 조금 더 내면 어디가 덧나나? 

게다가 부자들이 조금만 더 내도 가난한 사람 없이 모두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악착같이 세금을 안 내는 지배계급(슈퍼부자)들은 세금을 조금이라도 적게 내려고 한다니.... 

또 슈퍼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뭐 하나라도 뺏으려고 노력을 한다. 

도대체 부자들은 그 많은 돈을 어디에다 쓰려고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가져가는 지 모르겠다. 

내가 만약에 이런 부자라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세금을 많이 낼 텐데.  


나는 우리나라가 가난한 사람도 없고 부자도 없는 

아주 평등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초4 아들이 쓴 독후감을 그대로 올린다.

아들에게 세상에는 좋은 슈퍼 부자도 간혹 있다는 부연 설명을 해 줄 테다.

아이에게 

우리나라도

미국의 빌 게이츠, 워렌 버핏 같은 기부와 사회적 환원을 많이 하는 

괜찮은 슈퍼부자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날이 빨리 도래하길 바란다. (최부자와 김만덕처럼 말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나면 부자가 가난한 자를 향해

'저들이 가난한 것은 게을러서야' 라는 말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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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11-01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려요~
똑똑한 아드님의 멋진 독후감, 정말 부자세요!♡

2015-11-02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