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작가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나!

이번에 <파과>라는 책을 읽고나서 그녀가 궁금해졌다.

일단 청소년소설부터 읽어보려고 한다.















어른용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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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파과- 흠집이 난 과실" 이렇게 사전에 나와 있다.

다른 뜻이 있는데 여자 나이 16세를 의미한다고 한다.

"과" 라는 한자가 각각 다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겉표지에 한자를 적어주지 않았다.

판단의 몫을 오롯이 독자에게 맡긴 것처럼 보인다. 

끝까지 다 읽은 후에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둘 다 평소에 잘 안 쓰는 말이라서 생경했다.

파과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띈 것은 2년 전이었던 듯하다.

알라딘 서재에 자주 노출되던 책이라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오고가는 기차 안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이 책과 조우하게 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너무 긴 문장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떤 문장은 무려 13줄이나 되어서 중간에 주어와 서술어를 놓쳐 다시 읽은 적도 있다.

요즘 내가 읽었던 책들 대부분은 문장이 간결하였는데

구병모 작가는 정말 문장이 길~~었다.

그것도 능력인 듯하지만 말이다.

혼자 속으로

' 이 작가  왜 이렇게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야? 숨 넘어가겠네' 하며

약간 오기가 생겨 끝까지 읽어보고 비판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더랬다.

그런데 첫 꼭지를 읽고나서 이야기가 재밌어지자 좀 화난 마음이 수그러졌다.

' 음 그래도 이야기는 좀 재밌네. 뒷이야기가 궁금하군'

그런 마음으로 오며가며 읽다보니 다 읽었다.

기차는 책 읽기 정말 좋은 공간이다.

 

들어보니 나름 구 작가의 이 만연체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고 한다.

함부로 비판했다간  몰매를 맞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하여튼 내가 좋아하는 문체는 아니지만 이야기는 재밌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고 독특했다.

우리나라 여성 소설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진 못 했지만

내가 아는 소설가 중에서는 단연 독특하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이다.

다음이 궁금해서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또 하나 이 책의 주인공 조각에 대한 연민이다.

파과 같은 그 가여운 여인에 대한 애처로움이 끝까지 읽게 만들었다.

 

조각은 65세, 여자 킬러다.

이 설정부터가 심상치 않다.

여자 킬러까지는 그닥 독특하지 않은데 나이에서 깜짝 놀랐다.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초반 방역을 한다고 해서 액면 그대로 방역업자인 줄 알았다.

몇 장 넘기고 첫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방역 대상이 쥐나 바퀴벌레가 아니라 인간이란 걸 알게 되었다.

 

65세의 여자 킬러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영화 " 레옹"을 보는 것처럼 흥민진진했다.

레옹에 마틸다가 있는 것처럼

이 책에도 조각이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메마른 겨울 나무처럼 살아가는 조각에게 두 번의 사랑이 찾아오는데

두 번 째 찾아온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전투를 치르는 장면은 압권이다. 많이 잔인하지만서도.

영화 " 암살 "에서 배우 전지현이 웨딩 드레스를 입고 총격전을 하는 것만큼 긴장감과 비장미가 넘친다.

 

킬러에게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머어마한 약점이다.

자칫하면 그걸 빌미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찾아온 사랑을 거부하지 못한 조각.

그녀가 가엽기도 하지만 멋지기도 하다.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으니깐 말이다.

 

책을 보는 내내

'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듯한데' 하는 생각이 들어 남편한데 말하니

" 누가 할머니가 킬러로 나오는 영화를 보겠냐?" 고 시큰둥 대답한다.

정말 그런가!

파과처럼 된 할머니가 킬러로 등장하는 영화는 대중한테 외면당할까?

 

그렇담 구 작가는 대단한 이야기꾼인 듯하다.

할머니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펼치다니  말이다.

구 작가의 다른 책도 구미가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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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10-03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과... 에 그런 뜻이 있군요. 종교어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수퍼남매맘 2015-10-05 16:21   좋아요 0 | URL
이중적인 의미가 있더라고요.
그쵸? 저도 첨엔 불교옹어인가 싶었어요.
 

이번 추석 연휴 기간은 완전 파라다이스였다. ㅎㅎㅎ

어떤 후배는 친정에 시댁까지 경상도, 전라도 지방을 두루 다녀와서 담에 걸렸다고 하는데...

난 진짜 휴가 기간 같았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로스터리 카페도 갔다 왔다.

<커피 비경>이란 책에 나온 카페인데 이름이 <커피 마시는 고래>이다.

울산이 고래가 잘 잡히는 지역이라서 그런 이름을 지었나 보다.

시댁이 울산이라 제일 눈여겨 보던 카페였다. 

울산에 태화강이라는 제법 큰 강이 있는데 그 근처에 있다고 해서

딸과 함께 찾아 나섰다.

우리 모녀는 카페 탐방을 아주 좋아해 호흡이 잘 맞는다. 


명절 연휴라 가게 문을 닫았을 지도 몰라 미리 전화를 하니 마침 영업을 한다 해서 쾌재를 불렀다.

"블루 마운틴 커피"는 사장님이 직접 내려야 해서 예약을 한단다.

그쪽 시간에 맞춰 3시 경에 예약을 했다. 

언양 쪽에 2호점을 개업 준비하느라 그 때쯤 가게에 나오신단다. 

이 카페가 유명한 것은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인 오리지널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커피를 마셔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장님 지인이 자메이카에 생산지를 갖고 있어서 거길 통해 직접 들여오는 거라고 알고 있다.

시중에 나오는 블루 마운틴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블루 마운틴이 소량 들어간 블렌딩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커피 비경 책에도 여기서 마시는 블루 마운틴은 진짜라고 하였다.

기대가 엄청 되었다. 블렌딩은 마셔봤지만 단종은 처음이라서 말이다. 

도대체 어떤 향과 무슨 맛이 날까?

 

태화동 정류장에서 내려 지도에서 본 대로 골목길을 쭈욱 따라 내려가다 막다른 골목에서 좌회전을 하니

책에서 본 그대로 <커피 마시는 고래>간판이 보였다.

그 일대가 모두 카페 거리였다. 

바로 앞에는 태화강대공원이 있어 길 따라 코스모스가 만발하였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걷고, 자전거 타고, 전동 휠을 타고 있었다. 

커피 마신 후에는 나도 코스모스에 파묻혀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전동 휠에 꽂혀 자기도 타고 싶다고 졸랐지만 모른 척했다.

우린 커피를 마시러 온 거지 전동 휠을 타러 온 게 아니니깐.


우리가 카페 안에 들어가니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 아까 전화 드린 사람인데 블루 마운틴 마시러 왔는데요" 라고 말을 부치자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으셨다.

아까 전화 통화한 분이 아니가 보다.

사장님을 기다린다고 하자 아메리카노 한 잔 하시며 기다리라고 서비스로 주셨다. 

수제 쿠키까지 내주셨다. 인심이 후해서 일단 10점 플러스다.

딸은 배고프다며 혼자 다 먹었다.

아메리카노가 아주 보드랍고 달콤하였다.

지지난 겨울에 여기서 택배로 한 번 블렌딩 커피를 시켜봤는데 그때도 참 달콤했던 기억이 난다.

사장님이 로스팅 할 때 달콤한 맛이 나는 것에 포인트를 준다고 읽은 기억이 난다. 

맛은 좋지만 조금 가격이 세서 택배를 끊었더랬다. 110 그램에 9000원이니 좀 센 편이다.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면 블루 마운틴을 못 마실 듯하여 조금만 마셨다.

딸이 낼름낼름 다 마셨다. 

도대체 중 2 위는 언제 포만감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북 카페처럼 책이 여러 권 꽂혀 있어 책 1권씩을 골라와서 읽었다.


3시 30분 정도 되자 책에서 본 것과 똑같은 커트 머리 여사장님이 쿠키가 가득 든 비닐 봉지를 들고 카페 안으로 들어오셨다.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책에서 본 것보다 훨씬 동안이셨다.

고맙게도 블루 마운틴 내려 주시러 언양에서 오신 모양이다. 감동이다. 

딸은 카페 라떼를 시키고, 난 핸드 드립 블루 마운틴을 시켰다.

" 핸드 드립 하는 것 구경해도 돼요?" 하자 괜찮다고 하셔서 아주 가까이서 드립 하는 걸 지켜봤다.

지난 번 제주도 <최마담네 빵다방>은 너무 쌀쌀 맞아서 말도 못 붙여서 먼 발치서 구경했더랬다. 

역시 책에서 소개한 대로 진한 파랑색에 찻잔 안이 금색인 잔을 준비하셨고

동으로 된 드리퍼를 사용하였다.

블루 마운틴은 110그램에 5만원 판매한다고 하셨다.

저렴한 것은 블렌딩 한 거라고 하셨다.

금잔에다 담겨진 블루 마운틴은 어떤 맛일까!


사장님이 자리까지 배달해 주셨다.

먼저 향을 맡아 봤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났다.

이제 맛을 볼 차례.

쓰지도 않지만 아까 아메리카노 보다는 훨씬 바디감이 느껴지고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갔다.

커피잔을 예열했는데도 약간 식은 감이 있어 그게 좀 아쉬웠다.

솔직히 그렇게 좋다는 느낌은 못 받았는데 어찌 되었건 블루 마운틴을 먹어봤다는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난 번 제주도 갔을 때 " 풍림 다방 " 융 드립 커피를 못 마셔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나보다 미각이 뛰어난 딸은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부드럽고 좋다고 하였다.


로스터리 카페 여러 군데 다녀본 중에 여기 사장님이 가장 친절하고 말씀도 조곤조곤 잘하셨다.

자리에 오셔서 이런저런 설명도 해 주시고, 로스터기도 이해하기 쉽게 말해 주시고,

커피 콩도 먹어보게 하시고 말이다.

그래서 커피는 좀 식었지만 100점을 주고 싶다.

게다가 핸드 드립과 비교해 보라면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덤으로 주셨다.

에스프레소를 먹기 힘들면 설탕 한 숟가락을 넣어 휘젓지 말고 먹으면 좋다고 팁을 알려주셨다.

그대로 해 보니 먹을 만하였다.

마지막에는 커피잔을 살살 돌려가면서 먹으라고 해서 따라하니 달콤한 설탕 맛과 어우러져 목구멍으로 잘 넘어갔다.


내가 만약, 은퇴하고 나서 북카페를 차리면 뚱하고 말 없는 사장님보다는

여기 사장님처럼 친절하고 말 잘하는 카페 주인장이 될 테다.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집에 빨리 돌아오라는 호출이 와서  서둘렀다.

이왕 온 김에 여기서 볶은 커피를 사가지고 가야겠다 싶어

케냐  AA 와 블렌딩 커피 두 봉지를 샀다.

사장님이 멀리서 왔다면서 수제 쿠키 두 봉지를 서비스로 넣어주셨다.

인심도 후하고, 말씀도 잘하시는 사장님! 

'2호점도 잘 되시길 바랄게요' 마음으로 응원했다.

"설날에 울산 오면 꼭 들를게요. " 약속하며 카페를 나왔다.


아! 고래 카페 주인장이  <커피 비경>에 나온 다른 로스터리 카페 중에서 하나를 추천해 주셨는데

나도 예전부터 가고 싶어 노래를 부르던 곳이었다. 양평에 있다. 

회사를 은퇴하신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오래된 단독 주택을 개조하여 도자기 박물관 겸 로스터리 카페를 하는 곳이다.

이름은 잊어버렸다. (책을 찾아봐야 하는데 행방불명 상태다)

집에서도 가까우니 남편 꼬셔서 꼭 가봐야겠다.

다음 목적지가 되겠다. ㅎㅎㅎ


카페 주인장 보면서 또 생각한다.

한 번 보고 또 볼 일 없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 순간 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게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말이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술도 그런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런 것 같다.


블렌딩 커피는 바로 이웃이면서 나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사서 선생님께 오늘 아침  선물로 드렸다.

항상 곁에서 도와주시고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분이다. 

가끔 커피도 얻어마신다. ㅋㅋㅋ

혼자 마시는 커피도 맛나지만 함께 마시는 커피는 더 그윽하고 향기롭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덕분에 커피가 더욱 그리워진다. 

지금 마시면 잠이 안 올테니 참기로 하자. 


맛있는 커피와 후한 인심, 더불어 친절한 카페 주인장 덕분에 <커피 마시는 고래>는 

나에게 당분간 최고의 로스터리 카페로 남을 듯하다.

서비스로 주신 아메리카노와 수제 쿠키


로스팅 기계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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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10-0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울산이 시댁이셨어요?
반갑네요
울산옆 동네에요^^
태화강 주변이면 어딘가요?
친구가 울산에 사는데 보고 싶음 한 번씩 울산으로 넘어가봅니다
지난달부터 국화꽃 축제할때 넘어오라고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때문에 울산으로 넘어갈 시간이 없어 아쉬워하는중이어요
나중 <커피 마시는 고래>집에 찾아가보고 싶어요 특히 언양쪽에 2호점이 생긴다굽쇼?^^
저희 친정에서 30분거리에욧!
오호~~수퍼남매남님이 왜이리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지는걸까요?^^

수퍼남매맘 2015-10-02 07:19   좋아요 0 | URL
양산에 사신다고 하셨죠?
울산에 자주 가신다면 한 번 들러보세요.
태화강 대공원 주변 카페 거리에 있습니다.
언양 2호점은 정확히 주소를 몰라요. 아직 오픈 준비중이라서...
나무 님도 커피 좋아하시나 봅니다.
저도 갑자기 친구 같은 느낌이 드네요.

신야 2015-10-16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커피마시는 고래 포스팅중이라 검색하다가 우연히 봤어요.
책에도 나왔네요. 사장님 자랑도 안하시던데 ㅎㅎ
여긴 오픈때부터 단골인데 사장님 참 좋아요. 커피도 맛있구요.
언양점은 전 다녀왔는데 지금 영업중이에요.
저도 언양점 주소 검색하다가 ㅋㅋ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1586-12 라네요.
10시부터 22시까지 한답니다. 다음에 또 울산오신다면 커마고 더치도 한번 드셔보세요. 더치도 맛있습니다^^

수퍼남매맘 2015-10-16 22:00   좋아요 0 | URL
와! 커피 마시는 고래 단골을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울산에 사시나 봅니다.
언양점 오픈했군요.
다음에 울산 가면 언양점에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사장님이 참 친절하시고 좋았어요.
커피 맛도 물론 일품이고요.
 

인조잔디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진짜 아름답다.

애들이 교실에 있으면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 소리를 다 삼켜버렸을텐데...

지금 영어실 가서 나 혼자 교실에 있으니 이 아름다운 소리가 다 들린다.

좋다. 좋아!

빗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책 읽으면 낙원이 따로 없을 듯하다.

 

39분, 지금은 비가 좀 잦아들었다.

그동안 여름 같은 가을이었는데 이 비 그친 후에는 제대로 된 가을을 느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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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1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1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1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1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5-10-0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 1일 비가 내리는 참 좋았어요. 정말 가을로 접어드는 느낌이었거든요.
따뜻한 차와 향초 켜두고 빗소리 들으며 책 읽으니 그렇게 좋을수가 없네요. ㅎㅎ
 

시댁에 온 김에 경주 가서 문화재 탐방을 하려고 해도 번번이 성사가 안 되었다.

이번에는 좀 시간적 여유가 있어 불국사만이라도 가 보자고 남편과 약속을 하였다.

차를 안 가져왔기에 버스를 이용해서 가기로 하였다.


추석 다음 날, 우리 가족은 야심차게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였다.

고속 버스 터미널은 몇 번 가봤지만 시외 버스 터미널은 나도 처음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사는 동안 남편이 불국사행 표를 구매한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시외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손님이 우리 가족 하고 아가씨 이렇게 달랑 5명이었다. 


딸은 초중등 모두 경주로 수학여행을 오지 않아 경주 여행은 처음이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지지난 겨울, 작은 아빠가 안압지에 데려다줘서 구경한 적은 있다. 

안압지는 처음이었는데 운치 있고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깜깜할 때 구경해서 제대로 보진 못했다. 

내가 6학년 담임할 때는 고적답사로 경주까지 왔는데 

요즘은 백제권까지만 내려오는 추세인 듯하다.

아님 아예 제주도로 가던지.

서울에서 경주까지 또 시간 내서 내려오긴 쉽지 않다.

울산 온 김에 들르면 딱인데 그게 그렇게 안 되다가 이번에야 소원성취하였다.


하지만 버스 기다리느라 길에서 낭비한 시간이 꽤 많았고 기다리느라 지쳐

하루 동안 불국사 하나만 봤다.

물론 천천히 쉬엄쉬엄 보긴 했지만서도.

경주 여행할 때는 필히 차를 이용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다.

택시도 거의 오지 않는다.

대중교통 이용해서 가는 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렌트할 걸 하고 많이 후회했다.


여름 날씨처럼 해도 쨍쨍 내리쬐서 걷는 것도 힘들고, 버스 기다리는 것도 힘들고...

불국 역에 내려 걸어가면 불국사가 나올 줄 알았는데

또 다시 버스를 타야했다.

한참을 기다려 불국사행 버스를 타고 드디어 불국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불국사 불국사 노래를 불렀는데

지난 번 내장사처럼 아이들이 실망하면 안 되는데.... 싶었다.

기우와는 달리 불국사는 여전히 위엄을 떨치고 있었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옆에서 바라본 청운교와 백운교는 정말 아름다웠다.

수퍼남매도 멋지다고 해서 참 다행이었다. 실망하지 않아서 말이다.

연휴인데 그 정도면 별로 사람이 없다고 해야 할 듯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모두 "실크 로드" 쪽으로 몰린 거였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니 세월이 느껴졌다.

보수한답시고 세월을 지워버린 절도 많은데 불국사 대웅전은 빛바랜 현판이나 기와, 단청이 오랜 시간을 그대로 느끼게 해줬다.

고마웠다. 실망시키지 않아서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석가탑이 수리 중이라 아이들이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것이다.

다보탑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연휴 전, 중간고사를 치른 딸이 오히려 나에게

이런저런 배경지식을 말해줬다.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과정을 쫑알쫑알 말해줬다. 

역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걸 귀담아 듣고 있었나 보다.

역사 공부는 정말 필요하다.

더불어 역사 선생님도 정말 중요하다. 

역사 선생님 덕분에 우리 딸이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게다가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주셔서 학부모로서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역사 선생님이 왜곡된 역사를 가르쳐준다는 생각만 해도 으윽~~ 끔찍하다. 


불국사의 회랑이 참 독특했다.

오래 전 고적답사 왔을 때는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와보니 경복궁과 비슷한 구조의 회랑이 보였다.

불국사가 엄청 큰 절이란 걸 알 수 있는 증거로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극락전 등 여러 건물이 있다는 것이다.

비로전에 -헷갈린다.-사람들이 오며가며 쌓은 돌탑이 셀 수 없이 많아 신기했다.

눈부신 햇살을 피하려고 대웅전 계단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대웅전 후면에서 바라본 무설전은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진짜 잘 어울렸다.

깊은 가을에 오면 정말 환상 그 자체일 듯하다.

아마 그 때는 인파에 밀려다녀 제대로 구경은 못할테지만.


불국사는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6학년 담임하면서 고적답사로, 이번에는 가족여행으로 세 번째다.

여전히 아름다워서 정말 고맙다.

수퍼남매도 가족 여행하면서 여러 절을 돌아다녔는데

불국사가 특이하고 가장 아름답단다. 천만다행이다.

너무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많아 석굴암은 포기했다.


배가 너무 고파 맛집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난 제주도 여행부터 우리 가족은 맛집을 꼭 찾아먹기 시작했다.

그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인 듯하다. ㅋㅎㅎ

"맷돌순두부"가 유명하다고 해서 갔는데 진짜 사람이 많았다.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했다.

운 좋게 어떤 총각이 자신이 받은 번호표를 우리에게 줘서 대기 시간이 줄어들었다. 

우리 앞으로 50명 정도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기다리진 않았다. 한 30분 정도 기다렸나보다.

고객에 대한 배려가 있어

고객 대기장소를 별도로 마련해 놨다.

거기서 음료도 팔고, 수제 아이스크림도 팔았다. 

순두부 찌개 1인분이 9000원인데

우린 3개만 시키고, 공기밥 1개를 시켰다.

밑반찬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주요리인 순두부 찌개에 순두부가 엄청 많이 들어가 있어 좋았다.

아들과 난 원래부터 순두부를 좋아한데다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졌다.

30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근처에 순두부 집이 여러 개였는데 유독 그 집만 대기표 받고 기다리는 걸 보니 유명한 집이긴 한가보다.


갑자기 작은 아빠 집으로 가야 해서

울산으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가 너무 안 와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어디 가냐고 묻길래

" 고속 버스 터미널요" 했다.

" 어디 가시는데에?"

" 울산요"

" 울산 갈라믄 시외 버스 터미널에 가야 하는데요"하시는 거다.

우린 모두 식겁했다.

기사님이 안 물어봤음 우린 울산에 못 돌아갈 뻔 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안 막히는 길로 가시겠다고 하셔서 우리도 그게 좋다고 하였다.

기사님이 이런저 말씀을 하시는데 참 유쾌하신 분이셨다.

우리 타기 전에 내린 손님들도 "맷돌 순두부" 집 옆 낙지 먹으러 가는 건데

지금 "실크 로드" 행사 때문에 시내가 어지간히 막혀 안 막히는 길로 오셨다고 한다. 

기사님은 솔직히 말해 경주는 먹거리가 형편 없다고 하셨다. 

금방 우리가 순두부 먹고 나왔다고 하니

" 맛있습디꺼? 짜기만 하고..." 

맛있게 먹었는데...

" 시장하니까 맛있는 거지 경주 음식 짜기만 하고 맛 없습니데" 

경주 택시 기사님이 경주를 디스하시다니....

다른 건 몰라도 경주는 먹거리가 형편 없다고 솔직히 말씀하셨다.

짜고, 맵고 해서 맛집 추천해주면 욕 먹을까 봐 아예 말 안 한다고 하셨다.

짠 음식 때문에 경주는 고혈압 환자가 많아 내과가 잘 된다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솜씨가 개그맨 저리 가라였다. 

기사님과 대화하다 보니 금방 시외버스 터미널에 당도하였다.

예전에 왔을 때  경주 터미널이 너무 작아 엄청 놀랐는데

여긴 그런대로 컸다. 확장한 건가.

그때는 단칸방처럼 너무 작아

'야~~ 이거 너무하다. 그래도 경주인데,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인데 정말 시설이 낙후되었네!' 혼자 생각했었다.

많이 발전한 모습에 기뻤다. 


불국사 밖에 보지 못해 다음에 차 갖고 와서 제대로 찬찬히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적 답사 때,  남산이 참 볼거리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문화해설사가 설명해주시니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하나도 기억 안 나지만 그 때 지금처럼 기록을 해 놨더라면 잊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건가보다.

경주여! 다시 올 때까지 여전히 아름답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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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3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나들이 하셨네요. 석가탑이 아직 보수중이군요. 몇년전에 갔을 때도 그랬어요. 불국사는 저도 초등수학여행 간 곳입니다. 고교 때도 학교간부수련회로 갔었고요. 여기선 멀지않아서 좋지요. 단풍이 들면 가봐야겠어요^^

수퍼남매맘 2015-09-30 22:45   좋아요 1 | URL
단풍 들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아요.
가까운 곳에 계셔서 좋으시겠어요.
마음 먹으면 갈 수 있고 말이에요.
석가탑 보수가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거군요.
귀한 문화재이니만큼 심혈을 기울여야겠죠.
숭례문 보면 진짜 화 나요.

세실 2015-10-0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태국으로 신혼여행 다녀온 해에 경주 갔다가 고풍스러움과 깔끔함, 고즈넉한 매력에 빠졌지요. 한동안 경주가 휴가지였답니다. 석굴암 산책길도 참 예뻐요.

수퍼남매맘 2015-10-01 10: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석굴암 산책길 수퍼남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차를 안 갖고 가서 포기했네요. 아쉬워요.
6학년 애들 데리고 갔을 때 엄청 큰 민달팽이도 많이 봤었는데...

일본 교토, 나라가 경주 같은 엣 정취가 느껴져서 참 좋았어요.

2015-10-01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1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1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1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담율맘 2015-10-06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댓글 확인해요 빌려오라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