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다음 주까지 6일 동안 수영 학습이 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당연 아니고, 인근 중학교 수영장에 가서 수영 강사가 가르친다.

예전에는 전 학년이 하루나 이틀 정도 수영 학습을 받았는데- 거의 자유 수영 내지 물놀이였다-

작년부터는 3학년만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본교가 그렇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게 나은 것 같다.

전에 전 학년이 하루 수영장 간 것은 그냥 생색만 내 본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6일 강습을 받는다고 해서

자유롭게 수영을 할 리는 없다.

한 달 배워도 할까 말까 한데 말이다.

본교는 3학년에 수영 학습이 잡혀 있다.

그러다 보니

보통 1-2학년 때 수영학원에 등록해 개인적으로 수영교육을 받는 듯하다.

 

이 또한 사교육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듯하다.

영어가 3학년 교육과정에 들어오고부터

3학년 되기 전에 미리 사교육을 받는 것처럼

수영도 마찬가지이다.

 

듣기로는 일본에서는

공교육만으로도 수영을 습득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섬 국가인 일본은 우리보다 단연 수영이 필수일 것이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 수영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일련의 것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하려면 이렇게 제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이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가르치다보면

부모의 사교육비만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학교 교육과정에는 나와 있지

우리 애만 안 배우면 기 죽을까 걱정되지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학원에 등록해서 수영을 배우게 되는 듯하다.

계절 운동인 스케이트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나마 우리 학군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정이 적어서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 이런 식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되면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마음이 안 좋을 듯하다.

자비 부담으로 미리 배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학교 교육으로 배워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 마음만 상처 입을 수도 있겠다 싶다.

 

요즘 이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중에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를 내줬는데

집에 읽을 책이 마땅히 없어 고민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의무 교육이라 하면,  보편적 복지라 하면

이런 고민이 들지 않게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뒤쳐지는 것 싫어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알아서 미리 배우게 하기 때문인지

아님 공교육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인지

탁상공론처럼 그저 생색 내기만 급급해서인지

학교에서 뭔가를 한다 하면

결과적으로 사교육만 늘어나는 듯하다.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한자 병기를 한다고 한다.

지금도 한자 교육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정에 있어서 하긴 하는데 정말 이건 아닌데 싶다.

무조건 조기 교육이 좋은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제 또 한자 사교육이 시작될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보니 어른과 달리 금방 기능을 습득하는 듯하다.

어제와 오늘 이틀 연속 가니 어느 정도 호흡이 되고, 발차기가 되는가 보다.

이렇게 한 달만 집중적으로 지도하면 자유형은 습득할 수 있을 듯 보인다.

자유형만 배워도 어딘가?

학교에서 뭔가를 하려면 제대로 예산지원 받아 차근차근 하면 부모 부담도 덜 되고, 상처 받는 아이도 줄어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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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4 09: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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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4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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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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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무새 죽이기. 제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이 책은 불편하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책에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편견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인간적이라고 욕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런 적이  없을까? 한번쯤 있을 거다. 별로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누군가가 그 문제에 대해 마음을 후벼파고 진실을 고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책은 어린아이인 스카웃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스카웃이 바라본 세상은 별로 자비롭거나 평화롭지 못하다. 책 내용 중에 톰 로빈슨이란 흑인이 재판을 받는 내용이 나온다. 로빈슨이 항상 다니던 길 주변에 있는 유얼 가의 집 딸을 강간했다는 것이다. 유얼 가는 메이콤 동네에서 잘 알려진  파탄난 가문이었지만 그들은 백인이었기에 법정은 유얼 가에 유리하게 돌아간다. 명백한 증거도 없고 증언과 증언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로빈슨은 유죄 판결을 받는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심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모두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스카웃의 오빠 젬은 판결 결과를 듣고 크게 실망한다. 아무 증거도 없는데 왜 로빈슨이 감옥에 가야하냐고, 사람들은 정말 진실을 못보는 거냐고, 너무너무 슬프다고.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그들이 오래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한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정말 그가 잘못한 것인지 단지 흑인라는 것으로 유죄판결을 받아야 하는지 그것에 대해 생각한 것에 대해 만족한다고 했다. 고작 그거?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애티커스 핀치 라는 한사람으로 인해 그 재판에 대해 골똘히 고민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나같은 사람 말이다.


그 당시엔 흑인들은 진정 자유롭지 못했다. 자유를 가지고 있으나 차별 받았고 무시당했고 굽히고 들어가야 했다.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재판만 받으면 순식간에 유죄 판결이 나곤 했다. 왜냐고? 그들은 흑인이니까. 그 이유 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는 일상속에서 차별을 하며 살고있다. 나는 차별이 영원히 사라질수는 없다고 본다. 인간사회 속에는 언제나 무시 당하는 약자가 존재했었고 그들을 보살펴주고 사회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런 일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사람이 애티커스 핀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의 행동으로 우리는 평등에 한발짝 다가설수 있다. 누구든 할수 있지만  감히 못하는 일. 그 일을 애티커스 핀치가 해냈다. 차별과 무시, 무관심이 판치는 세상속에서 난 차별받는 그들을 지지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깜둥이 연인이라고 놀림 받고 얼굴에 침을 뱉는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는가? 


처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그러나 한번 첫 발을 내딛고 나면 그다음 부터는 느리지만 천천히 변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일이 그렇다. 글을 쓰기 전에는 생각을 많이 하고 이렇게 해야 문장이 잘나올까 어떻게 하면 내 글의 주제가 잘보일까 고민한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우선 연필을 잡아보자. 그리고 써내려 가며 생각하는 거다. 써내려 가면서 글의 흐름이 정해지고 여러 생각도 풍부해 진다.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만 시작한 것은 쉽다.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변호사가 평등과 정의의 첫발을 띤 것 같다. 사람들이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심각성을 깨닫게 하며 반성시키는 것부터 말이다. 이일은 정말 힘들다. 그 당시 사회로 봐서 흑인에 대한 반발이 심했는데, 흑인 편을 들고 세상을 등지고 서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자신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짓이다.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꿔보고자 그것을 시도했다. 나는 그것을 시작했다는 것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이 백번 옳다고 믿는다. 지금 하는 날갯짓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저 쪽 어딘가에서 큰 태풍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애티커스 핀치가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던 심각한 문제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메이콤의 인종차별은 좀 사그라들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우리도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겠지. 대부분은 책을 다 읽은 후에 나처럼 불편할 것이다. 마음 한구석이 쿡쿡 쑤시고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 아직 우리의 양심이 잘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 느낌을 잊어서는 안된다. 애티커스 핀치처럼 정의로운 세상으로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각자 우리의 자리에서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 위해 할수 있는 것들이 있다. 유창한 것이 아니라도 말이다. 예를 들면 나처럼 이런 좋은 책에 대해 독후감을 쓰고 친구에게 알려준다던지, 학교에서 차별이 일어나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차별 받는 아이 편에 서주는 행동 말이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앞장서서 피해 입은 사람을 돌봐주는 사람, 세상을 지금 당장 뒤집는 게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사람, 그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기를 소망하는 사람, 거창한 말뿐이 아니라 소소한 것에도 실천하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중2 딸이 쓴 리뷰를 그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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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8 0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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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8 14: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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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풍묘 온이"

풍뎅이를 죽인 온이라는 뜻이다.

어제 드디어 온이가 장수풍뎅이를 습격하여 생을 마감시켰다.


지난 번 장수풍뎅이는 여행 가는 동안,  먹이를 넉넉히 주지 않아 아사하였고,

이번 장수풍뎅이는 온이가 앞발로 압사시켰다.


처음에 비하면 아들은 좀 덤덤히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한바탕 푹풍 치듯 울었다. 

온이는 풍뎅이를 죽인 댓가로  잠시잠깐 케이지에 가둬 놨다 금세 풀어줬다.

천방지축 고양이가 뭘 알아서 죽였겠냐 싶기도 하고

결국 우리 인간들이 부주의해서 일어난 사건이지 싶기도 하고

풍뎅이 운명이 그 정도였구나 싶기도 하고.


하여튼 처음보다는 두번 째라서 그런지 아들의 감정 정리도 조금 빨라졌다.

어제는 비가 내려서 

" 엄마랑 같이 내일 장례식 해 주자" 약속하였다.


퇴근 후, 수퍼남매와 함께 장수풍뎅이 장례식을 치렀다.

자그만한 상자에 풍뎅이 시체를 넣고, 나무 젓가락, 플라스틱 숟가락을 들고 화단으로 갔다.

첫째 번 풍뎅이가 묻혀 있는 곳에 함께 묻으려고 흙을 파니

관이 나오고 옆으로 튕겨져 나온 풍뎅이 뿔과 다리가 보였다.

거의 1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다 흙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그 옆에 함께 묻어줬다.

우리만 알아볼 수 있게 자그마한 표식을 해뒀다.


집에 오니, 살풍묘 온이는 지가 한 짓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풍뎅이 있던 방문이 열려 있자 기웃거린다.

" 온이야, 이제 풍뎅이 없~거든요. 니가 앞발로 눌러 숨통을 끊어 놨잖아" 

온이 뇌속에 그 방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는가보다.

그 방문만 열려 있으면 냉큼 들어가려고 한다.

" 온이야,  그러니까 친구는 잡아 먹는 것이 아니란다"

먹고 먹히는 관계가 친구가 된다는 건 어디까지 동화 속 이야기였던가 싶다. 

그래도 이 동화책을 사랑한다.


고양이와 장수풍뎅이의 친구 관계는 현실에선 허락되지 않는가 보다.

그러기엔 고양이의 호기심이 너무 왕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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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8-28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크, 온이가 못된(?) 짓을 저질렀군요.ㅋㅋ
나는 숲에서 장수풍뎅이도 만났어요.
날마다 새로운 녀석들을 만나는 재미도 좋아요~
요즘엔 섬서구메뚜기가 한창이고...

수퍼남매맘 2015-08-28 14:40   좋아요 0 | URL
못된 짓 해 놓고 천하태평으로 늘어지게 자는 것 보니 우습기도 해요.
순오기님은 매일 숲에서 맑은 공기 쐬시니 더 젊어지실 듯해요.
숲은 계절을 빨리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으겠어요.

2015-08-28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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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8 1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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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개학을 하였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아직 적응을 못 해서 말이다.

 

개학 첫 날, 한 꾸러미의 책선물이 왔다.

언제나 잊지 않고 이렇게 신간을 보내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푸른숲 역사 동화>시리즈가 들어 있어서 참말 반가웠다.

저, 중, 고학년 책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완전 따봉이다.

 

아이들 영어실 갔으니 그림책 좀 읽어봐야겠다.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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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14: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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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2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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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컬링 (양장) - 2011 제5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딜리버리, 스위핑, 페블, 시트, 하우스, 브룸, 스톤.

이런 낱말과 연관되어 있는 운동 경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컬링"이다.

사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이 "컬링"이 그 컬링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 읽고 다시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힌트가 다 나와 있었다. 

그런데도 눈치 채지 못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가보다.

 

지난 동계 올림픽 때 잠깐 컬링 경기를 본 적이 있다.' 와! 무슨 저렇게 재미 없는 경기가 다 있냐?' 싶었다.

한 사람이 맷돌 같은 돌을 던지자 두 사람이 열심히 대걸레 같은 것을 가지고 돌을 쫒아가면서 빙판을 문질러댔다.

한편으론 웃겼고, 한편으론 저런 게 무슨 운동 경기인가 싶어 금방 채널을 돌려버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컬링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완득이>이후 이렇게 열광한 청소년 소설은 처음이다. 

책을 읽고나서 운동 같지도 않게 느껴졌던 컬링이 참 철학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빙판 위의 체스"라는 별명을 가진 컬링이 궁금해져 경기 동영상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놀라운 변화였다.

책 한 권이 이렇게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다니. 

작가는 참 위대한 사람 같다.

생각을 변화시키는 마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처럼

컬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료도 찾아 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도 해주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더불어 컬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음 좋겠다.

더 나아가

컬링 처럼 혹시 내 주변에 관심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관심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컬링이 비인기 종목이고,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는 비주류 운동이듯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또한 그런 존재들이다.

이름 때문에 "으라랏차"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 차을하를 비롯해서

며루치, 산적, 박카스 모두 그냥저냥하다.

작가 말대로 만년 후보 같은 아이들이다.

 

어느 날, 며루치와 산적이 을하에게 집적대며 컬링 이란 것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동계올림픽 중계 때 딱 한 번 스쳐가듯 경기를 구경한 것 뿐인데

그런 사람한테 컬링을 함께 해 보자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리고 왜 하필 나냐고? 라는 의문도 들었다.

넷이 하는 경기라면서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어디서 조달하려고?

뭐? 강원도에 내려간 박카스라는 녀석이 있다고? 

뭐 이런 녀석들이 다 있어? 라고 생각했지만

을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컬링 동호회에 들어가게 된다.

 

학교나 집에서나 관심 받지 못하던 을하는

어느새 컬링에 빠져들게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며루치와 산적이 왜 야구를 관두고 컬링을 하게 되었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자신은 아무런 재능이 없어 이렇게 관심 받지 못하고 지내지만

산적처럼 뛰어난 재능이 있고, 그 일을 좋아하더라도 뜻하지 않은 일로 관둘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를 다 해봤지만 어느 것 하나 남다른 재능이 없어 

모두 관두고,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말 그대로 이류처럼 되어버린 을하.

반대로 동생 연화는 피겨 스케이트에 일찌감치 재능을 보인다.

이를 본 엄마는 연화에게 올인하고, 이 때부터 을하는 집에서도 찬밥 신세가 되고 만다.

맹모 삼천지교라고

엄마는 연화를 위해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감행하고, 아버지만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가족이 된다.

 

을하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전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부모에게 아무런 도움을 구하지 않고 묵묵히 혼자 견뎌내던 을하는 어느 날,

학교를 걸어나와 무작정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이웃 학교 야구부 연습 장면을 보게 된다.

그후로 매일 같이 야구 연습을 지켜보던 을하의 눈에 들어온 선수가 한 명 있었다.

그게 바로 산적 " 강산" 이었다. 자신과는 달리 진짜 멋져 보였다.

그 강산이 하교 후에 흠씬 얻어맞고 있던 자신을 구해주던 "베어맨"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산적은 왜 을하에게 컬링을 함께하자고 제안했을까. 아무런 재능도 없는데 말이다.

그때 자신이 구해준 옆학교 비실비실한 남학생이 바로 을하하는 것을 산적은 알고 있을까. 

함께 컬링을 하며 친구 비스무레한 사이가 되어가지만 여전히 산적과 관련해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존재한다.

가장 궁금한 것은 그들은 왜 컬링을 하는 걸까.

또 을하 자신은 왜 컬링을 하는 걸까.

 

아웃사이더였던  을하가 컬링을 하면서 확실히 얻은 게 있다.

바로 친구다.

시종일관 말 많은 며루치, 자신을 구해줬던 은인 산적, 전지 훈련 장소를 제공해준 박카스.

매주 일요일마다 함께 연습하고 박카스가 있는 강원도 두메산골로 전지훈련하러 갔다오니 어느새 친하게 되었다. 

서울로 이사온 이후, 늘 혼자였던 을하에게 친구가 생겼다. 컬링 덕분에 말이다. 

 

그 녀석들과 함께 컬링을 하면서 확실히 달라진 점이 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 맞는 을하가 아니었다. 

을하는 산적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자

며루치와 합세하여 학교와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정작 범인은 따로 있는데 교묘하게 산적을 엮어 산적을 제거하고자 하는 이들에 맞서는 둘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한편 학교라는 사회도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깝고 분노가 일었다.

을하는 산적을 위해 그동안 억눌려 있던 용기와 정의감을 당당히 표출한다.

학주가 엄청 나게 폭력을 가해도 이에 굴하지 않았고,

대충 합의하고 넘어가라는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에 끝까지 저항하였다.

친구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컬링 팀을 향해 나도 몰래 " 힘내 화이팅 조금 더 버텨" 라며 간절히 응원했다.

 

을하가 안고 있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남다른 재능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그래서  무엇도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혼자라는 외로움 등.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감정이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요즘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꿈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을하 같은 아이들은 더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을하에게도 재능이 있을지 모르는데

기존의 잣대로만 들여다보니 재능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재능으로만 아이들을 평가하니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을하처럼 자존감을 잃고 더 헤매는 것은 아닐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을하는 그 해법을 "친구"에게서 찾았다.

그건 산적, 며루치, 박카스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이 암흑 같은 세상을 버티는 게 가능할 수 있다고 말이다. 

 

컬링 경기는 인생을 담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인생에 있어 곧은 길만 존재할까. 굽은 길은 없을까.

강한 직구로 던진다고 하여 하우스 안에 스톤이 안착하는 것은 아니다.

을하가 처음 딜리버리 했을 때는 직구로 스톤을 던졌다가 보기 좋게 아웃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가서 딜리버리 할 때는 을하가 던진 공이 컬링하여 하우스 근처로 간다.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게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는 길일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린 지금, 컬링 하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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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14: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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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6 2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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