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포스팅에 이어 계속한다.

리버럴 아트는 깨어있는 시민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을 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글쓰기이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개진하고 다른 사람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요컨대 소통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또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리버럴 아트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현대 세계의 수많은 정보가 영어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소통의 다리이기보다는 소통의 장벽이기 때문에 그네들의 속임수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보에 직접 접근하고 그에 기반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절대로 필요하다.

음악을 제대로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미술을 제대로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영화를 제대로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전문가들의 통계 조작에 속지 않는 능력... 이 모든 것들이 리버럴 아트에 속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일상적인 필요 이상의 것을 전제한다. 다른 말로 하면 생존이 아니라 생활을 요구한다. 삶이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이어야 함을 요구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자면 이러한 삶을 위한 환경, 도구가 곧 리버럴 아트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영역에서 리버럴 아트에 기여할 수 있는 제품을 세상에 제공하고자 노력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플 기기들의 특성, 즉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한 디자인은 그 자체가 리버럴 아트로서의 자신들의 미적 취향을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사용자들로 하여금 리버럴 아트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해 준다. 

자 이제 몇 가지 인용이다.

   
  We ascribe beauty to that which is simple,
which has no superflous parts,
which exactly answers its end,
which stands related to all things,
which is the mean of many extrems.
                -Ralph Waldo Emerson, The Conduct of Life
                  (How to Design Programs, 페이지 xxiv에서 재인용)
 
   
   
  아름다운 것이란 단순하고, 불필요한 부분이 없고, 목적에 딱 들어맞고, 모든 것과 관련이 있고, 극단들 사이에서 중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리버럴 아트란 바로 저러한 미적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단순하고 목적에 딱 맞는 것들을 골라낼 수 있는 능력. 그러므로 리버럴 아트는 능력이자 태도이다. 도구이자 내용이다. 직관적 사용성과 단순성이 미학과 연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합하자면 리버럴 아트는 삶의 질과 관련된 것이고 더 높은 질을 골라 내는 기준이자 태도이자 능력이자 도구이자 결과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름답다는 느낌을 동반한다.

   
  If you want to enjoy art, you must be an aristically cultivated person; if you want to exercise influence over other people, you must be a person with a stimulating and encourging effect on other people. Every one of your relations to man and to nature must be a specific expression, corresponding to the object of your will, of your real individual life. If you love without evoking love in return - that is, if your loving as loving does not produce reciprocal love; if through a living expression of yourself as a loving person you do not make yourself a beloved one, then your love is impotent - a misfortune.
                                                         -Karl Marks
             (Economic and Philosophic Manuscripts of 1844, XLIII 마지막 문단)
 
   
   
  그대가 예술을 향유하고 싶다면 예술적인 소양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다른 사람을 북돋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대가 인간이나 자연과 맺게 되는 모든 관계는 그대의 삶의 정확한 실존적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대의 삶의 표현을 통해 그대의 사랑이 그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불모이며 하나의 불행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버럴 아트는 능력이다. 예술을 향유하는 능력이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능력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능력이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를 사랑하게 하는 능력이다. 능력이고 도구이고 표현이다. 곧 우리의 실존을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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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애플(WWDC 2011을 보고)

아래 포스팅(http://blog.aladin.co.kr/weekly/4850380)의 4번 항목은 과장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기판의 회로 배선처럼 사용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약간 미친 CEO임에 틀림없다.

(공학적으로 우수한 것은 미학적으로도 우수하다는 것을 많이들 경험해 보았을 것이므로 그리 튀는 얘기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휴대폰을 손으로 정상적으로(!) 잡았을 때 수신율이 떨어지는 제품을 세상에 내놓을 회사는 아마 애플 밖에 없을 것이다. 휴대폰 안에 유닉스라는 거대한 운영체제를 구겨 넣고도 내장형 배터리 하나만으로 충분할 거라고 믿는 회사도 애플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사례들은 사용성과 미적 기준이 충돌하였을 때 스티브 잡스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혹은 애초 어떤 항목이 더 높은 우선순위에 있었는지를 시사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스티브 잡스의 변명은 이러할 지도 모르겠다. 사용성이란 기술의 발전으로 계속 개선될 수 있는 것인 반면 미학은 영원한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미학이란 궁극의 사용성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미학이란 미래의 사용성이다.

(그러므로 스티브 잡스는 예술가다. 예술가들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서는 즐겁게 향유될 수 있는 어떤, 말하자면 영원한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창조물을 평가한다.)

(물론 안테나 게이트는 미학보다는 공학, 즉 기술적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의 고집을 인정해 주느냐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불평을 하면서도 그의 고집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탈착불가능한 배터리는 분명 많이 불편하다. 그러나 배터리를 탈착가능하도록 만들면 나의 아이폰4의 외양 디자인이 어떻게 변할까를 생각해 보면 끔찍하다. 차라리 지금의 불편한 사용성을 감수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조차 든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전적으로 스티브 잡스의 존재로 인한 것이다. 나의 자연스러운 성향대로라면 미적 요구 때문에 내장형 배터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미친 얘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티브 잡스는 교주거나 예술가, 또는 교사, 또는 사상가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피카소 이전이라면 우리는 피카소의 그림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든 것은 요즘 웹 서핑을 많이 하면서 한 장의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술과 리버럴 아트의 교차로에 스티브 잡스가 서 있는 사진. 물론 스티브 잡스식의 포장하기일 뿐이라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재반박하겠다. 모든 것은 포장하기일 뿐이라고, 나는 그대의 잘 된 포장을 요구하겠노라고, 그러니 나를 감탄시킬 그대의 포장을 내게 보여주시라고...

























(이미지 출처: http://live.gdgt.com/2010/01/27/live-apple-come-see-our-latest-creation-tablet-event-coverage/#07-53-00-pm)

스티브 잡스의 이상은 두 가지 인간형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직관적 사용성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형이다. 예컨대 어린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등이다. 파일의 디렉토리 구조가 나에게는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저 분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그 차이를 안다.

다른 하나는 애플 제품들의 미적 가치관이 염두에 두고 있는 인간형이다. 애플의 제품들은 버튼이 여러 개 달리고 번쩍번쩍 하는 최첨단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답지만 저런 것이 어떻게 동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경우마저 있다. 즉, 스티브 잡스는 공학 제품을 마치 예술 작품인냥 내놓는 것이다. 즉 그것을 미적 경험의 장소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reviews.cnet.com/2300-33_7-10002000-3.html)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제품들이 일상적인 도구로 사용되기를 바라면서도 일상적인 가치 이상의 것을 그 도구들에 심어 놓는다. 어린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전혀 어렵지 않은 사용성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독특한 미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한다. 이 둘 사이에 모순이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미적 가치, 미적 경험을 일상적인 것 이상의 가치, 일상적인 것 이상의 경험과 동일시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물론 전자가 후자에 포함되는 것임을 잘 안다. 그러나 말을 순하게 하고 싶다.)

미적 경험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미적 경험의 환경 안에 놓여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미적 경험이란 미적인 것의 소비와 생산 모두를 의미한다. 그리고 미적인 것의 소비와 경험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우리는 미적 도구라고 말한다. 이 미적 도구를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리버럴 아트(liberal arts)!

(헤... 우선은 여기까지 하자. 이 글은 나의 아래 포스팅에 대한 나 자신의 댓글(주석)로 시작되었다. 해서 글이 이렇게 크게(?) 발전할 줄 몰랐다. 그러므로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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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 2012-06-05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놀랍군요, 이렇게 깊숙한 내용의 글을 쓰시다니...^^
대개는 이런 설명은 감적인 부분으로만 이해할 수 있기 떄문에 듣는 사람이 생각이 매우 깊거나 아예 생각이 없을때가 아니면 잘 안씁니다만...잘보고 갑니다.

덧붙힘 : 디자인과 효율의 적정 비율은, "특정 기준"을 중심으로 5.3 대 4.7이 아닐까 하네요, 여기서 5.3은 최대 5.7까지 올라갈 수 있고, "휴대폰" 이라는 기준에서 그 경우가 배터리 탈착이나 3.5인치 화면 등이 예라고 할 수 있겟네요.
 

1. 애플의 개발자 컨퍼런스를 챙겨 보았다. 스티브 잡스가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 부분만. 행복한 배우다. 청중들이 기꺼이 박수와 환호를 준비하고 있다.

2. 애플만이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 같다(아마 구글도). 애플은 앨런 케이의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이란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애플은 자신의 방식대로 시장의 규칙을 바꾸어버렸고 애플의 속내를 알 수 없었던 다른 기업들은 허둥댔다. 항공모함같았던 노키아는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3. 그렇다 해도 아이튠즈,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클라우드로 이어지는 애플의 행보는 놀랍다. 너무 일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물리적 플랫폼(각종 기기들)과 운영체제, 생태계로서의 추상적 플랫폼 모두를 갖고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구글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삼성도 그 세가지 모두를 갖고 있지 못하다.

4. 애플은 제품에 미적 취향을 불어 넣으려 노력한 거의 유일한 기업이다. 애플의 기기들은 단순하며 직관적이며 성적이며 선적이다. 애플의 이러한 특성은 창업자의 인생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스티브 잡스는 선에 심취해 있었으며 워즈니악이 디스크 드라이브의 배선을 축약하려고 머리를 짜내는 동안 케이스를 더 멋지게 만들기 위해 궁리하고 있었으며 제록스 파크에서 본 폰트들에 미쳐 날뛰었으며 마우스나 아이폰의 버튼이 하나여야 한다고 고집했다.  

5. 단순하고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혁신자들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면 답이 나온다. 앨런 케이나 네그로폰테는 아이들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에 자신들의 삶을 바치고 있다. 디지털 기기들은 인간화되어야 한다. 즉, 사용함에 있어 부대낌이 없어야 한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는 "It just works(그냥 됩니다)"를 연발했다. 나는 서핑을 하다가 "아버님 댁에 아이패드 놔 드려야 겠어요"라는 문구를 읽고 미소를 짓는다.

6. 스티브 잡스는 피카소를 인용해 "유능한 예술가는 베끼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은 이렇다. 첫째, 전적인 오리지널리티는 없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것은 항상 기존의 성과물 위에 기반하고 있다. 뉴턴도 그런 말을 했고 베르길리우스도 그런 말을 했다. 애플이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하지만 애플이 전적인 혁신을 산업계에 도입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둘째, 베낀 것과 훔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베낀 것에는 위화감이 내포되어 있지만 훔친다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프 버클리의 "할레루야"는 제프 버클리의 대표곡이다. 원곡은 물론 레오나드 코헨의 것이지만 제프 버클리가 그것을 "훔쳤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자기화하는 것이다.

7.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이클라우드가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나는 드롭박스를 통해 리눅스에서 작성한 문서를 윈도에서 보고 아이폰에서 수정하는 일을, 마치 로컬 폴더 속의 문서 다루 듯이 한다. 그러면 애플이 이 서비스를 도입한 것에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물론 사용자 편의가 증대된다. 그리고 애플의 생태계는 더욱 공고해 진다. 예를 들면 내가 아이폰을 갖고 있다면 이제 테블릿으로 삼성이나 모토로라를 선택할 리가 없다! 아이클라우드를 통해 애플의 모든 기기에서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마당에!

8. 이 모든 것은 애플이 아이튠즈 등의 생태계, 아이패드 등의 디지털 기기, 오에스텐 등의 운영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이클라우드를 통해 애플이 그리고 있는 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 진 것 같다. 그래서 그 비젼이 놀랍다는 것이다.

9. 물론 한국 시장에서 애플의 힘은 미약하다. 한국 기업들이 벽 안의 갈라파고스를 짓는 것이 가능할 것도 같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는? 아이폰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갤럭시탭을 사는 것이 바보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남편이 아이폰을 갖고 있는데 아내가 갤럭시를 사는 일이 바보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아이메시지도 그렇고).

10. 결론? 애플이 쌓은 벽의 엄청난 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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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티브 잡스와 리버럴 아트
    from weekly님의 서재 2011-06-19 16:05 
    아래 포스팅(http://blog.aladin.co.kr/weekly/4850380)의 4번 항목은 과장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기판의 회로 배선처럼 사용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약간 미친 CEO임에 틀림없다.(공학적으로 우수한 것은 미학적으로도 우수하다는 것을 많이들 경험해 보았을 것이므로 그러므로 그리 튀는 얘기가 아
 
 
2222 2012-06-0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충분히 가능합니다. 조금 동떨어진 내용이지만 저같은 경우엔 폴더이름 하나 짓는데도 10분, 심하게는 하루종일 걸릴때도 있습니다. 디테일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단순히 New Folder 가 아닌 윈도우에 있는 모든 폴더들과의 관계나 생성 원칙...으..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ㅜㅜ. 여하튼 기판이 아름다워야 한다는건 납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적인 부분이 심화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느냐 하면...회사에서 쓰는 PC 의 용도가 문서작성용이라면 PC가 고사양일 필요도, 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개는 PC 사양을 업그레이드 하길 바라는데 저는 반대로 다운그레이드 하길 원해 주변인들에게 미쳤다는 소리 듣습니다.

weekly 2012-06-06 05:5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댓글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네요.
폴더 이름을 짓거나 폴더 구조를 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과 기판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비슷한 성향, 그러니까 일종의 편집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증과 더 나은 것을 생산하려는 욕구는 별개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저는 항상 편집증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2222님께서도 비슷한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한 것
1. code name GA: 2.01
--------------------------------
총 2시간 1분 읽고 씀-.-

-다음 주 계획
1. 페이퍼: 청갈색책의 두 가지 번역본
2. 부자 통장 리뷰

-비고
1. 많은 일을 하지 않았다.
2. 집중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그에 들어가기 전에 저 두 일을 끝내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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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했던 것
1. 부자 통장 리뷰[빚]
2. 구글노믹스 리뷰[포기]
3. 헤드 퍼스트 프로그래밍 리뷰[완료], 6/4, 6/4, 2.18
그리고
4. 구글노믹스 재독[완료]: 4.13
5. 헤드 퍼스트 프로그래밍 연습[계속]: 3.10
6. code name AS[완료]: 1.13
7. code name GA: 0.52
8. code name SP: 0.28
9. code name GR[완료]: 2.00?
------------------------------
총 14시간 34?분 읽고 씀

-비고
1. 위클리 리뷰가 늦었다.
2. 구글노믹스 리뷰는 포기하기로 한다. 부채 탕감하는 차원에서 깨끗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내 속에서는 저 책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자라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것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글노믹스의 주 포인트는 사용자의 자율적 통제권 강조, 그리고 무료 비즈니스 모델 등일 것이다. 나는 저자가 현상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점에서 솔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자면 애플이다. 저자는 애플을 예외라고 인정한다. 애플은 사용자에게 통제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잡스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애플 역시 여러 면에서 구글적이라고 한다. 둘 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이고 단순함을 추구하는 기업이고 등등... 그러나 이런 공통점은 이 책의 주포인트에 비추어 볼 때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이 책의 주포인트에 비추어 볼 때 두 기업은 양 극단에 위치하고 있다. 저자는 그 점을 심층적으로 해명해 주어야 했다.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나의 짜증을 유발하는 대신에. 구글은 검색 서비스를 매개로 한 광고중개업자다. 그래서 구글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본적으로 무료 모델이다. 요컨대 구글은 광고로 먹고 사는 방송사와 같다. 반면 애플은 컨텐츠 공급자(예컨대 거대 음반사)와 소비자들이 연결되는 공간으로 자신의 플랫폼을 제공한다. 애플은 자신의 플랫폼에서 컨텐츠의 검색-구매-결제-배달-유지보수 프로세스를 이용하는 것이 불법복제본을 구할 때 드는 비용보다 저렴하다는 것을 보증하여 성공했지만(즉, 네그로폰테의 아이디어를 구현했다) 그럼에도, 당연히 유료 모델이다. 구글은 무료 모델이므로 사용자에게 최대한의 선택권, 통제권을 부여하지만 애플은 자신이 최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면서 대신 제품의 질을 보증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의 숙제가 생긴다. 컨텐츠의 질과 사용자 통제권 사이의 관계라는. 저자가 책에서 긍정적인 면만 말한 디그 닷컴이 하나의 예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트래픽에만 의존하여 수익을 얻는 언론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앱이냐 웹이냐 하는 논쟁도 그렇다. 안드로이드 마켓의 문제도 그렇다. 저자가 아이디어를 낸, 조리법을 공개하고 고객들의 의견을 받는 식당에 대해서도 그 음양의 양면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모든 것을 구글화하려 하며 구글화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마치 창의적 아이디어의 부족인 것처럼 여기는 듯 하다. 내가 보기에는 저자의 관점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다양성과 질과 깊이를 어떻게 보증할 것이냐 하는 질문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저자에게 그리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구글 방식이 다양성과 질, 깊이를 보증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분명 새로운 방식이 호응을 얻을 것이다. 애플이 그 한 예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좀 더 유연한 사고에 대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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