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이브러리
개인 라이브러리를 갖고 싶다는 소망은 단순히 취미로 무언가를 콜렉션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크게 세 가지 라이브러리를 갖고 싶어했는데, 우선 활자 매체인 책, 음악, 그리고 영화다. 물론 주력은 당연히 책이다. 개인 서재는 갖추고 있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책을 모두 펼쳐놓고 있지는 못하다. 회사에 일부, 그리고 처가집에 일부, 다시 집 베란다에 종이 포장으로 묶어두다 못해 이제 거실, 서재에도 책들이 묶여 있다.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책이란 펼쳐져 있기 전에야 두 번 다시 손이 가게 되질 않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결국 책 때문에 이사가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책의 경우엔 게으른 탓도 있지만 한 군데 모아두고 있지를 못해서 내가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다만,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한정해두고 보았을 때 알라딘에서 추산해준(소장함 기능이 있으므로), 다시 말해 알라딘에서 구입한 책만 현재 707권이다. 지난 2000년 6월에 알라딘에서 첫 주문을 했으니 한 달 평균 11권을 주문했다. 나중에 이사를 가게 되면 서재도 좀 잘 꾸며놓고, 처가집과 회사로 피난가 있는 책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게 되면 한 번쯤 몇 권이나 가지고 있는지 잘 추산해볼 생각이다.
그에 비해 음반 수집과 영화 수집은 역사도 짧지만 주종목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수량을 파악해보기가 다소 쉽다. 대충 헤아려 보니 음반은 CD가 500여장, LP가 60여장 정도 된다. LP는 거의가 클래식 음반이지만, 현재 턴테이블을 갖지 못해서 LP청취는 어렵다. (이것도 언젠가는 구입하겠지만...) 오디오를 장만하면서부터 시작된 음반 모으기는 한동안 제법 분류도 잘 하고, 꼭 필요한 음반의 목록을 만들어서 차곡차곡 쟁여두다가 어느 순간 내가 이 모든 취미를 즐길 만한 사치를 누릴 만한 부와 에너지를 갖고 있지 못하단 생각이 들어 음반 모으기의 진척도는 확 떨어졌다.
한참 영화공부를 하던 시절, 나는 폐점하는 비디오 가게를 찾아 비디오 라이브러리를 꾸리느라 무진 애를 쓴 경험이 있다. 그 때 한참 노력해서 거의 100여장의 비디오 테잎을 수집했었다. 물론 지금은 더이상 비디오 테잎을 수집하지 않는다. 그 무렵 수집한 것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비열한 거리"를 비롯해서 나름대로 시중에서 구하기 제법 어렵다는 것들을 모았고, 내가 영화공부하는데 보탬이 될 거라 생각한 테잎들을 모았다. 왕가위 영화도 "해피 투게더"까지는 전작을 소장하고 있다. 덕분에 한 동안 친구들이 집에 오면 함께 영화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있었다. 현재는 주로 DVD를 수집한다. 그래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처럼 겹치는 영화들은 친구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현재 DVD타이틀도 한 100여장 이상 수집한 것 같다. 이것도 정식으로 헤아려보지는 않았다.
프랑소와 트뢰포, 페데리코 펠리니 등등 주로 작가 위주로 선별해서 하거나 일본 아니메 작품들 가운데 내 취미에 맞는 것들을 몇 종 구입해두었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함께 시청하면 재미있는 경험이 되리라.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HiFi & AV 시스템(물론 전문적인 이들이 보기엔 매우 보잘 것 없지만, 취미가 없거나 이를 사치로 보는 이들에겐 매우 사치인) 은 다음과 같다.

* 사진은 우리 집이 아니다.
AMP - CLASSE CAP-100 인티 앰프
스피커 - ATC SCM20 북셀프 스피커 + 타깃 스탠드
케이블 - 오디오 플러스
CDP - CEC 3100
DVDP - Sony DVP-975V
데크 - Teac 2010V
튜너 - 켄우드
TV - LG
오디오랙 - 바흐하우스
전부 합치면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데 한 3-400만원은 든 것 같다. 내가 오디오 생활자(나만의 오디오를 갖게 된 것)가 된 것이 지난 1998년 정도의 일이고, 그동안 기기를 바꿈질한 것이 두 차례 정도였으니까. 나름대론 소박하게 오랫동안 지내온 셈이다. 오늘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어제 DVD플레이어를 연결하면서 오디오 랙을 앞으로 당겨 하루종일 대청소를 한 후유증인 듯 싶다. 오디오쟁이들(물론 나 개인적으로 오디오쟁이이기 보다는 그저 음악 듣기를 즐기는 이라고 하고 싶지만, 예전에 한동안 오디오에 미쳐서 하이파이 동호회에서 미친 듯이 설쳐댄 기억이 있다. 앞서 말한 어떤 친구를 오디오쪽으로 끌어들인 것도 나였다.)은 가끔 오디오를 매만지면서 새로운 기기를 들여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역시 오늘 오전에 이것저것 오디오들을 살피면서 새로운 기기들을 들여놓고 싶다는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다 다시 욕심을 접고... 새로 배달되어 온 책들을 살핀다. 갈 길이 멀다. 이것저것 모든 걸 즐기며 살기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알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 이것이었으리라. 음반의 경우엔 LP에서 카세트테잎, CD로 다시 SACD, DVD 오디오니 해서 라이브러리를 갖추는데 일단 매체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영화 라이브러리의 경우에도 LD와 VHS테잎, 그리고 DVD, 조만간 수퍼 DVD 던가 하는 새로운 포맷이 출현할 것이라 한다.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매체도 변화한다. 그럼에도 어떤 것들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LP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책 역시 새로운 기술력에 의한 변화의 몸살을 앓게 되겠지만, 책이 사라지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 어떤 매체도 책이 주는 매력과 장점들을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좋은 디지털 매체도 침대에 누워 반쯤 접어 읽을 수 없으며 연필로 밑줄을 그어 내 기억을 보충할 수 없고, 나와 함께 서서히 빛 바래가는 영광을 누릴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