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 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살랑거리는 바람이 날 산으로, 들로, 강으로 이끈다. 지금쯤 적벽강엔 한창 푸른 잔디가 올라있을 테고, 지난 겨울 살얼음 위를 낮게 날아다니던 청둥오리 떼는 떠났겠지.
요즘 내 주변 사람들 - 재단 동료들, 편집위원들, 가족, 친구들 - 은 대단히 신기하다는 듯 날 쳐다보고 있다. 택배가 오면 이번엔 어떤 물건이 온 건지 궁금해 한다. 예전엔 별로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예전엔 거의 대부분이 책, 음반, DVD였으니까...
그런데 요 알마동안엔 각종 등산용품, 캠핑용품들이 택배로 왔다. 늘 집, 학교, 회사만 오가는 줄 알았던 사람이 주말이면 산이다, 강이다, 들이다 나돌아다니니 너무나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하긴 내가 봐도 신기하긴 하다. 게다가 퇴근하면 방에 들어가서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보거나 주로 보는 일만 하던 사람이 요즘엔 밥 먹고 나면 옷 갈아입고, 뒷산에 간다.
다녀오면 씻고 그냥 잔다.
예전에도 나름 건전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이젠 건전을 넘어 건강하게 살려고 하는 것 같긴 하다. 본의 아니게 그렇다. 한동안은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가 궁금해서 뉴스를 봤는데 이젠 뉴스 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상심하고 있는 거냐? 그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특별히 상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마음속으로는 초침을 재듯 이번 정권의 예견된 몰락을 바라보며 내 안의 권력게임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4월엔 인천에서 중요한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시점상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로는 아직 이르지만 MB정부의 강공 드라이브가 지속될 수 있을지 아니면 한 차례 걸림돌이 되어줄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를 비롯해 부동산 정책 등이 서울시 정책 조례, 같은 집권당 내부에서의 트러블 등 온갖 불협화음이 빚어지고 있으므로 보궐선거에서 조기에 패배하기 시작하면 권력누수 현상이 급속도로 올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마음, 현 정부의 정책에 여기저기서 중단되는 것을 고소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테니까. 그래서 한편으론 권력시뮬레이션게임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다. 다만 그 미안한 마음은 정권에 대한 것이 아니다. 비록 내가 지지하는 정부는 아니더라도 정책 사안에 따라서 잘 하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퍼센테이지상 어느 정도라도 있었다면 내 마음이 이 정도로 어긋나진 않았을 거다.
어쨌거나 나는 산에 간다. 택배가 왔는데... 이번엔 책이라 하니까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젠 네가 공부를 다시 하려고 그러는구나" 그런데 책을 풀어보니 다시 등산과 여행안내서들이다. 경악한다. "넌 놀고 쉬는 일도 공부로 하는 구나!"


MB정부처럼 "이 길도 아닌게벼, 저 길도 아닌게벼"하며 우왕좌왕하지 않으려거든. 틈날 때마다 공부해야 한다. ^^ 에고고, 그나저나 대통령의 봄도 가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