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믿어라, ‘실험과학’이 아닌 ‘도덕과학’을
☞ 「과학의 사기꾼」 요리하기(cooking)
‘과학’이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과학의 발달 속에서 이루어져왔음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의 진리와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해 오면서 우리는 일상에 존재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전문가가 아닌 경우에야 여전히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렇기에 깊은 의심을 품거나, 그 의심을 증명해 보려는 노력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과학의 사기꾼」은 그러한 의심에 대한 실행을 보여주고 있다. 즉, 과학분야에서 일반인들이 모르고 감춰졌던 부분에 대한 실제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라는 객관적이고 실험이 강한 부분에서 간과한 비객관성, 비관찰성과 수많은 오류들, 그리고 그 오류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과학사에서 진보하고 위대한 발명과 발견이라 불리는 사건들의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 사례에서는 역사책에서, 전기 위인전에서 봤던 위인들이 이야기와 노벨상이라는 엄청난 권위의 상을 받은 과학적 사건들의 허구와 조작이 나타난다.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은 많은 업적들이 사실은 객관성을 잊어버리고 자료를 조작하거나, 혹은 은폐하거나, 남의 것을 가로채기했다는 내용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사례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해관계에 의해 공공연히 묵인되어 왔다는 사실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 법칙으로 진리로 읽혀왔던 어떤 사건이 문제였고 누가 문제를 그대로 방관했는가?
☞ 장난질(hoaxing)?
역사상 위대한 천문학자로 알려진 프톨레마이오스가 실제 별자리관측을 하기보단 다른 사람의 연구업적을 이른바 ‘빌려’, 자신의 학설을 펴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어떠한 진리든, 법칙이든 무언가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되고 다른 것을 참조한 것에서 이뤄진다는 측면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러나 작가가 붙인 제목처럼, 점점 더 의문스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단순한 실수인지 그렇지 않으면 천재의 영감인지가 말이다.
피사의 사탑에서 물체를 떨어뜨리는 실험을 할 정도로 끈질기고, 객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 과학자로 알려진 갈릴레이. 지동설과 관련하여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하였지만 마지막까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하였다는 일화는 갈릴레이의 위대성을 더욱 부각시켜줬다. 그러나 갈릴레이의 일화가 실제로는 의심스럽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떨어지는 사과하면 떠오르는 뉴턴의 성격과 관련한 이야기, 아인슈타인의 이야기 등은 그동안 특정한 업적에 의해 그 사람들의 참모습이 얼마나 편견에 가득 찬 채로 조작되고 위인으로 덧씌워진 것인지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이들이 자신들의 연구에서 거짓없이 연구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연구의 오류나 문제점을 시인하고 계속적으로 진실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들을 더 했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준다. 과학자로서의 실험과 연구를 생각하게 하는 아인슈타인이 실제 연구와 증명을 위한 노력보다는 특정한 이론에 대한 가설을 만들어내는 것이 주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의 이론들이 지금에서도 위대한 이론으로 평가받고 그러한 가설이나 이론을 세운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긴 하나, 자신의 이론이나 학설을 증명하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의 뒤따름이 없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론이나 업적에 대해 과소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유명한 학자에 대해 그 연구에 대한 신뢰는 지식에 대한 찬탄과 동시에 실제로는 그들의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포함된 것이리라 본다. 때문에, 『과학의 사기꾼』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과학사의 발견된 연구들이 심각한, 혹은 사소한(?) 수치상의 누락이나 조작들로 가득하고, 실제 검증된 연구와 실험이 생략된 법칙과 이론이다라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이르면서 잘 알지 못하는 많은 학자들이 그들의 연구로 노벨상을 받고 인류의 과학학문발전에 기여를 했지만 이러한 조작된 기여가 과연 인류에 어떤 공헌을 했느냐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물리학이나 수학, 화학이라는 분야보다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은 유전학이나 의학분야의 연구와 같은 부분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 사건과 같은 일을 생각해 볼 때 그렇다. 슈틀러와 쿠글러가 항체를 통해 암의 치료법을 찾아냈다는 연구를 보자. 암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은 당연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 연구가 거짓으로 밝혀졌을 때,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줄기세포로 치료에 대한 기대를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참담한 심정을 단순히 개인의 업적에 눈이 먼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 다듬기(trimming)
위대한 힘들이 위대한 결과를 보여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의 단순하고 불순한 ‘의도’에 의해 참담하게 무너졌는지는 연구자들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서머린의 경우에서도 그렇듯이 개인의 업적을 드높이기 위해 아주 단순히 싸인펜을 살짝 덧칠하는(실제로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러한 모습이 과연 연구의 진정성을 얼마만큼 생각하였느냐는 물음을 가지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과학이라는 특성이 구체적이고 정확한 연구와 실험을 중시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특정분야에 권위자의 영향력에 지나치게 매여 있다는 사실은 실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과학’이라는 분야가 가지는 ‘그들만의 요리잔치’의 문제와 윤리의식의 강조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그 학문영역의 특성상 실체를 검증하는데 있어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의 행동력과 연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이들은 결국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 연구결과와 연구주제가 이상적이거나 과학사에 큰 역할을 한 것일수록 의심을 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 의심에 따른 검증결과를 드러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과학자의 조작과 실수, 사기를 정당한 연구로 검증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로 치부되는 것이 과학계의 현실이라는 것을 꼬집고 있다. 때문에 연구의 실질적인 목적과 존립이유를 망각한 채 ‘같은 식구를 음해’하는 일로 간주되고 그러한 일을 한 사람이 오히려 따가운 눈초리 속에서 피해야 하는 일들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의 이해를 위해 공모하거나 사건을 눈감아 주고, 혹은 남의 업적을 제 업적인 양 가로채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결국 과학자들의 ‘윤리의식’의 부재, 공명정대하고 올바른 것,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치의식의 전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과학이라는 연구를 수행할 때 비이커와 과학사전을 들고 공부를 할 것이 아니라 ‘도덕’교과서를 옆에 두고 연구를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과학은,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하였을 때 결국 인간생활의 보다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도구이다. 무엇에 우선하여 가치를 두는가에 대한 의식교육이 끈임없이 강조되고 과학이라는 영역의 한정되고 비공개적인 분위기가 사라지기 위해선 이것이 중요하다.
과학자들이 그들의 연구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보다 더 바른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만이 과학에서의 사기와 조작문제는 사라질 수 있다. 과학이 가지는 무서운 힘의 영향력을 새삼 알게 되고 또한 과학이라는 정교하고 실험적인 학문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의 이러한 사례들에서 강조할 것은 결국 개인의 윤리의식의 확립과 과학전반의 학자들의 윤리의식 확립이다.
결국 바른 연구결과는 정확한 연구와 더불어 개인의 가치관의 정립을 통해 이뤄진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하인리히 창클이 전하고자 하는 바다.
고대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사에 위대한 학자들에서부터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단순한 요리와, 장난, 정교한 다듬기의 모습은 결국 이들의 인간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문제였음을 강조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 책에서 나타나는 과학의 실제 내용에 대한 의문에 대한 것은 조금 눈감아 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작가는 수많은 과학업적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나 과학에 대해 무지한 일반인들은 연구의 내용이 가지는 실제적인 내용을 이해하기엔 설명이 조금 부족하지 않은가 한다. 단지 어떤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그 과정에서 역시 조작과 속임이 있다는 큰 아우트라인을 잡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이 ‘과학’서로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설명이 없는 것은 작가의 의도는 멘델의 유전법칙이 이렇고 그것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초우라늄이 어떤 것인가?, X선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내용들에서 일어난 사기와 조작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가가 핵심이니 말이다. 우리는 과학에 대해 좀더 엄격한 잣대를 과학자에 대해서도 더한 엄중한 기준을 가지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실험과학의 문제가 아닌 ‘인간과학’의 속임에 대해 끊임없는 경고를 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