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다시 보는 방식.....일기를 읽으며

 

   어릴 적부터 이순신은 위인이었다. 어린 내 기억 속에 너무나 당연했던 영웅 이순신. 우리나라의 위인전은 늘 그랬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명확히 이 사람은 ‘위인’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어렸을 때부터 ‘남과 다른, 뛰어난’ 특성을 갖추고 있어서 ‘아, 그래서 위인이구나’ 하게 만들었다. 한국 위인전은 늘 특별했던 이들이 결국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래서 늘 사람냄새 가득한 이들을 만나기보다는 경직된 듯 보이고 위엄에 가득찬 포장지 속에 들어 있는 이들을 만나야 했다. 특히나 한국화폐공사의 모델이신 이순신인데, 아무리 지폐 아닌 동전모델이라도 그 위엄을 잊을리 있을소냐.

   강제적으로 이순신은 자동 위인이 된 사람이다. 내 스스로 그에 대한 경외심을 찾아가기 보다, 내가 생각하는 위인과 영웅에 대한 정의를 정리하기 전에 이미 위대한 영웅이며 위인이라는 도식으로 자리잡은 사람...그리고..또 어렸던 어느 날, 선생님은 이순신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원균의 모함으로 죄를 추궁받던 중 전쟁으로 다시 그의 자리에 복귀되었을 뿐이라 전쟁이 끝나면 다시 감옥으로 가게 될 것이었기에 죽은 것으로 위장하였다는, 그래서 그의 무덤에는 이순신이 아닌 다른 이가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그래서 그에 관한 무수한 이야기들이 나왔음에도 딱히 재밌지 않은 이야기, 더 들어볼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던 이순신이었다. 그리고 경남에서의 이순신 사랑은 더욱 각별하여 곳곳에 이순신 동상과 이순신 관련 문화유적지 조성이 이어지고 있었고, 연구원에서는 남해안 특별법과 더불어 이순신 프로젝트가 중대한 과업이었다. 이순신이 먹었던 이순신 반상이 만들어져 있고, 이순신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금만 이순신과 걸쳐져 있으면 이순신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다. 이순신 프로젝트는 거대했고 ‘거북선을 찾기’, 해저유물탐사도 있었다. 판옥선과 거북선의 차이, 이순신이 전쟁에 사용했던 총통들이 기억나는 것도 대대적인 프로젝트라 본 기억이 있다.  선거철이면 이순신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야기도 부지기수다. 어느 때인가는 이순신의 리더십에 관한 주제로 김훈의 초청강연까지 있었다. 그렇게 이순신 관련 보고서가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보고서들이 넘쳐나고 이순신 강연이 이뤄지던 그 때에도 이순신은 ‘일’로 만나고 스치는 사람이었을 뿐, 강연의 내용보다 강연자에 더 관심을 기울였을 뿐, ‘아, 이순신!’이라는 공명을 느끼지 못했다. 딱히 느낄 여유도 없었거니와 이미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부분적으로 봤던 난중일기를 읽으며 타인들 때문에도 너무나 기대를 했던 탓일까. 몇 장 넘기고서 ‘이게 뭐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게 다 인가? 계속 이런 형태인 건가? 반복되는 ‘공무를 보았다’를 보면서 선생님들이 절대로 일기를 쓸 때 쓰지 말아야 할 구절로 강조했던 ‘나는 오늘 ~했다’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도대체 이순신은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공무를 보았다’는 한 줄을 일기라고 적고 있는 건가. 이것은 일기가 아니라 그의 업무일지였던 것인가. 몇 번 본 난중일기의 내용이 이렇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라는 생각과 더불어 기대의 강도를 0을 놓고 난중일기를 읽었다. 정지된 바늘이 점점 올라갈 때까지.

   남의 일기를 읽는데 감동이고 뭐고를 따지는가. 그저 소소한 일상의 날들이 아니, 격랑의 날들의 소소한 기록들이 애처롭고 애처롭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데, 공무를 보았다는 그 한줄마저도 마냥 가슴이 아린다. 전장에서 기록한 그의 글 하나하나가 어찌 울림이 없을까. 갈수록 길어지는 그의 문장도 짧은 단문들도 그저 이순신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의 삶과 죽음에 관한 글들은 항상 애처롭다. 그리고 그의 기록들은 대체로 같은 패턴이다. 그의 일기 전반에 흐르는 이순신의 마음이, 알리도 없음에도 나 혼자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이 여겨진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의 일기를 모은 책이다.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되어 그가 전사할 때까지 씌어진 일기이며 기록의 해는 임진년(1592), 계사년(1593), 갑오년(1594), 을미년(1595), 병신년(1596), 정유년(1597), 무술년(1598)이다.

이순신은 한글이 만들어지고 태어났지만 한글은 여전히 벼슬아치들에게서부터 널리 활용되지 못한 탓에 이순신은 전쟁 중에 초서로 몹시 흘려 쓴 일기를 남겼다. 특히 치열하게 전투가 일어난 해일수록 흘림의 정도가 심하였고 부분 부분 누락된 날들이 있다. 그만큼 치열하고 긴박한 날들을 이 일기가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이순신의 일기는 많은 부분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없었기에 후대에 이르러 그의 일기가 오독되어 전해진 글자가 많다고도 한다.

이 글은 그날 그날의 일들-그날의 날씨, 일어난 일들, 자신의 느낌과 감상 등-을 기록하고 있다. 년원일의 순으로 일기를 기록하며 하루에 한줄 기록을 남긴 날도 있으나 대체로 매일 매일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 영웅 이순신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누차 들어왔다. 그렇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다. 그의 일기 속에 늘 반복되는 것은 날씨. 어머니. 아이들. 그리고 임금과 나라와 부하 장수들에 대한 걱정들. 그리고 홀로이 외로움에 가득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글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므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개인적인 심정을 토로한 것이니, 그런 그의 글을 나중에 묶어 엮어 책으로 만든 것이니, 여기에 목차이며 내용의 면면이 이렇다 저렇다 말해 무엇하랴. 그가 작정하고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기록하겠다는 목적적인 글쓰기가 아니었을 터이므로 더더욱.

   장수의 병무일지라고 하기엔 너무나 개인적인 토로인 것 같고, 개인적인인 토로라 생각하면 업무와 관련한 일들이 나열되어 있다. 전쟁에서 어떻게 적은 무찌를 지에 대한 구체적인 병술일지도 아니거니와 기록된 글들을 읽다 보면 너무나 자질구레한 일들같이 느껴지는 기록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전쟁의 상황, 늘 긴장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그의 일상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개인적인 자신의 심정을 기술하면서 달이 밝은 밤에도 비가 오는 밤에도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그는 근심걱정이 마를 날이 없는 사람이었다. 전쟁이라는 상황, 어지러운 나라에 중책을 맡은 책임감, 그리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그의 일기는 자신의 마음을 가누기 위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다시, 타인의 일기를 읽는 이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의 일기를 읽다 보면 답답한 면이 적지 않다. 그래서, 원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알고 싶다. 그저 원균이란 자의 행태가 말이 간계하다라는 글만 적고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어떠한 원균의 행동과 처사가 그토록 다른 이들에게 애정을 가지는 그를 날이면 날마다 욕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은데 그런 글이 없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감정으로 적는 일기에 객관적인 사건의 개요를 요구하는 나는 참....

   날들마다 날씨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더욱 애잔한 마음이 가득한 느낌이다. 전쟁과 날씨, 그리고 병영의 소소한 모든 것을 기록하려는 그의 마음과 의지가 되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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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범일지는 백범 김구가 쓴 자서전이다. 상, 하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상권은 아들 인과 신에게 아비의 일생 경력을 알 곳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온 개인적인 행로를 들려주기 위해 쓴 글이다. 백범의 나이 53세에 임시정부 청사에서 쓰여진 글이다.

   이 글은 백범의 일생의 기록이다. 일제시기와 독립 후의 격랑의 세월 속에서 살았던 백범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으므로 사회적 상황 속에 놓인 한 개인이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는 고대로 감동의 기록이다.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그 모든 과정의 담담한 서술들은 그의 행동에 대한 감동이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행동을 하게끔 이끄는 그의 내면 속에 자리한 생각들도 역시 감동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그의 소원에 관한 글이 아닐까. 하나하나 두루두루 곱씹는 맛이 좋다. 백범의 나의 소원! 또한 그것이 그의 일생과 더불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상권은 그의 일생의 기록이므로 그가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중년의 삶들을 회고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상권은 그의 행적의 기록이지만 그가 행한 구체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정에서 느낀 그의 생각과 감정들을 함께 기술하고 있어서 백점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함께 파악할 수 있다. 상권이 보다 개인적인 생애에 관한 기록이라면 하권은 백범의 활동을 보다 조직적인 관점, 임시정부 활동과 그 당시 활약하던 다은 인물들과의 관계를 중점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개인이 속한 조직의 활동 내역이라 불릴 만하다. 백점은 하권의 집필에 관하여 자신이 활동한 50여 년의 기록을 보며 숱한 과오를 거울삼아 다시는 이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하고 있다.

  개인의 생애에 대한 자서전에 관한 한, 이렇게 저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시간적인 순서대로 쓰여진 백범의 자서전 상권은 마치 한편의 소설을 보는 것처럼, 현실에서 일어난 것인가 하듯이 드라마틱하다. 그의 글은 특별한 수사나 기교없이 쓰여진 것 같은데도 글들이 휘날리는 듯하다.

   사실적인 내용을 서술하면서 그러한 행동 이면에 있던 백범의 생각을 함께 말하고 있어 그의 행동의 동기, 생각들을 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시간적인 흐름으로 정리한 것이 일제시기와 임시정부수립 이후의 활동들에 관한 역사를 함께 파악할 수 있게 되어 개인의 성장의 기록이자, 독립운동의 역사를 파악하게 되어 미흡한 공부를 더하는 느낌이었다. 개인의 기록이라 정확한 인명이나 시간이 헷갈릴 수 있음을 주해자의 설명에서 정정하며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기에 더욱 그렇다.

 

   본관 안동. 호 백범(白凡). 아명 창암(昌岩). 본명 창수(昌洙). 개명하여 구(龜,九). 법명 원종(圓宗). 초호 연하(蓮下).

   어떻게 불리든, 그는 그. 본질이 달라질까. 아니 어쩌면 그를 어떻게 불러주느냐에 의해 그의 정체성이 그의 행동력이 달라질지 모른다. 스스로 개명하며 그의 신념과 의지를 붇돋우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우리의 어린 왕자 속에서도, 김춘수의 꽃에서도 누누이 강조되듯이. 우리가 누군가를 부를 때, 그는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 간다. 그렇게 창수는 안동 김씨 김자점의 방계 후손으로, 황해도 해주 백운동 텃골에서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니 곽낙원의 외아들로 태어나지만 김구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고 살아 있다.

  백범의 일생을 보다 보면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그의 생을 뜨악하며 바라보면 그가 일제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그가 나의 아버지라면 나의 생활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의 아이들은, 모두 5명. 세상에 태어난 김구의 아이들 2남 3녀 중 딸들은 모두 어릴 때 사망하고 아들 또한 독립 전에 사망한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해준 것이 없는 아비의 마음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을 것이다. 살아 있는 아들들에게 띄우는 그의 생애의 기록이 그리하여 더욱 애잔하다. 그가 이러한 기록을 남기고자 한 것이, 아들들에게 띄우는 편지로 시작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일생을 통하여 가족을 모아서 가정생활을 한 적은 시간으로도 짧다. 18세에 붓을 던진 이후 시종 유랑생활이었으니, 장련읍 사직동 생활에서 모친을 모시고 종형 남매 일가와 거주하며 2~3년 머무르고, 그 후 문화, 안악 등지에서 몇 개월 몇 년간 거주하였으나 역시 유랑생활이었다. 가장 오랫동안 머문 곳은 상해 불란서 조계에서 4년간 가족과 같이 생활한 것이다. 아내를 잃은 이후 10여 년 동안 어머님은 인과 신을 데리고 본국에서 지내시고, 나만 혈혈단신으로 동포들의 집에 의탁하거나 새우잠을 자는 옹색한 집단생활을 계속했었다. 어머님이 9년 만에 다시 중국으로 오셨으나,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인과 신을 데리고 따로 생활을 하시고, 나는 나대로 동포들의 집과 혹은 중국 친우들의 집에서 더부살이 생활을 계속하였다. 중경 생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범의 입을 통해서도 가족과의 삶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입장이, 신의 마음이 궁금해지는 것은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 때문일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은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일본에 사죄했다. 힘들고 힘들던 그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무릎 꿇어버린 안준생에 통탄하다가도 그저 모두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리라 생각하며, 몇 번을 개명하며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던 김구와 그의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대가 낳은 개인의 불행에 울분만이 솟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나오려다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이냐.

   김구의 생애를 살펴보면 한 개인의 생애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다. 그의 생애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다. 그의 연보를 보다 보면 그것이 고대로 그 시기 우리나라의 모습이었음을 알게 된다. 개인과 나라의 일체화가 그의 생애를 통해 대변된다. 그들에게 오늘의 삶을 빚지고 있다는 상투적인 말이 고스란히 내뱉어진다.

   백범일지에서 그는 줄곧 자신이 못생겼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의 노년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는 그 온화하게 보이는 얼굴이 꽤나 잘 생겼다고 생각하던 터라 그의 이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을 어떻게 하나 생각했는데 책 속에 나타나는 흑백사진 속의 아주 작은 그의 얼굴은 또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숟가락을 부수며 엿을 바꿔 먹던 어린날의 개구쟁이가. 그런 어린 아이가 굳은 신념을 가지고 굳건한 활동을 이루어가는 변화를 보며 파동도 없이 흘러가는 내 삶과 신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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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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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권력을 위한 불온한 정치사史



하워드 진,  김민웅 옮김, 일상이상,  2012.

 

 

 

   33가지.

  하워드 진은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이 책에서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내놓은 잘못된 정책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들, 또 공산주의라는 이름 속에 갇힌 사고로 인해 벌어지는 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장에서 미군들이 보여준 비극적이고 천박한 행동들,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당하는 노동자의 역경,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부시 대통령,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곤경에 처하자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선택한 클린턴, 2000년 미국 대선 당시에 표심을 잡기 위해 지키지도 못한 약속을 내걸은 대선 후보들의 실체를 파헤친다.

   1980년부터 2010년까지 그가 잡지 ‘The Progressive’에 올렸던 글들을 모은 것으로 이 기간 동안 나타나는 역대 미국 대통령과 수구언론 등 권력층이 벌이는 꼼수들은 하워드 진의 눈을 통해 드러난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국가안보란 무엇인가?” 등 국가, 국민 그리고 정치, 정책에 관해 우리가 답답하게 느끼는 부분을 질문하여 그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워드 진은 결국 자유와 평화와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시민’의 힘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항상 깨어있는 시각으로 기득권, 정치권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잘못된 정치와 정책을 바꾸어나가기 위한 대안은 보다 시민의 힘이 모아져야 하는 것, 조직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민주주의의 진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워드 진은 촘스키와 더불어 세계적인 실천 지성으로 통한다. 촘스키를 좋아하는 나에게 촘스키와 같이 거론되는 무엇이든 다 관심이 간다. 하워드 진은 뉴욕 시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유대계 이민자로 아버지인 에디 진(Eddie Zinn)은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 직전에, 어머니인 제니 진(Zenny Zinn)은 동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러한 이주민 가정, 하워드 진은 빈민가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부모는 미국에서 만나서 결혼했을 때 제한된 교육만을 받은 상태였고 집에는 책이나 잡지가 하나도 없었다 한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뉴욕 포스트에서 각 권마다 10센트와 쿠폰을 보내 20권의 찰스 디킨스 전집을 마련해줌으로써 아들에게 문학에 대한 시야를 틔워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워드 진은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서 시인인 엘리아스 리버만이 세운 창의적인 글쓰기 과정을 통해 작문을 배웠다고 한다.

   하워드 진은 세계적 진보 지식인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의 생애의 경험에서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해군기지 조선소에서 육체노동을 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폭격수로 참전하였다가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반전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 육군 항공대의 490폭격비행단에서 폭격수로 복무하면서 베를린,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을 폭격했다고 하며 1945년 4월, 서부 프랑스의 로얀에서 있었던 초기의 네이팜 탄을 사용한 폭격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하워드 진은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등의 평등, 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대학에 몸을 담으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되었다. 자신이 일하고 있던 보수적인 색채의 흑인 대학교인 스펠만 대학교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서도 싸웠다. 흑인들의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섰으며, 백인과의 평등권을 주장하는 흑인 활동가들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기도 하였다. 스펠만 대학교의 학교당국은 이러한 진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1963년에 종신교수임에도 하워드 진을 해고한다.

   그의 저서에는 그의 이러한 활동과 생각이 정리되어 있다. 그는 생각하고 생각한대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2010년 1월 27일,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워드 진의 책을 읽었던가. 뚜렷이 생각나는 책이 없다. 그런데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어 그의 책을 읽은 듯한 착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여러 다른 책들에서 그의 인용문을 많이 봐온 때문이었다. 이것이 한 권을 제대로 읽은 그의 첫 번째 책이다. 잡지에 기고한 글을 묶은 것이라 하는데, 옛날 대통령의 이야기가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인 듯하다. 글이 재밌고 편하게 읽힌다. 무엇보다 음모론으로 치부되며 궁금해 할 일들, 역시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생각은 그렇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생각들을 명확하게 꼽아 내니 읽는 이로 하여금 즐겁게 한다. 풍부한 사료와 자료들과 더불어 날리는 풍자와 해학이 시원하다.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거짓말만 일삼는 자기 이익만 관철하려 애쓰는 기득권에 정치권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제시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글들은 어디나 똑같은 것 같다. 정치권, 기득권의 행태가 동일한 양상이고 그렇기에 그에 대한 질책 역시 같다. 이 오랜 기간 동안 같은 패턴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행동을 얘기했는데 여전히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정녕 책을 읽지 않아서일까. 그래서 이런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일까. 재밌게 책을 읽고서 늘 이렇듯 같은 이야기를 말하는 책들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데 여전한 ‘시민’과 여전한 ‘사회’는 무엇 때문인가 생각하게끔 된다.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달라져 왔다라고 말하기엔 빨리 변화는 사회로 인해 그 느림이 미학이 되지 않게 여겨진다. 우리는 알고서 속고 있는 것인가, 속아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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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저, 푸른숲, 2010.

 

    

   장애인인 저자의 삶의 이야기다. 저자는 이 책을 사회과학서로 쓰고 싶었으나 사회과학 에세이로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장애’를 인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회가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인 ‘청년’ 김원영은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생인 그의 시대에도 장애는 사회적인 편견을 받기에 충분한 ‘재앙’인 이유와 신체적인 이유로 그는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서만 지냈다. 그의 병명은 수시로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이다. 그런 그는, 재활원에서 지내다가 많은 노력과 투쟁 끝에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다시 또 그만큼의 노력과 투쟁으로 대학교에 진학한다. 대학에서 그는 인권 운동에 참여하고 인생의 진로를 고민하며 다시 로스쿨에 진학한다.

   수식어를 붙이기 좋아하는 우리네 언론은, 우리 사회는 그에게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라 칭하며 비장애인도 이루기 힘들다는 서울대학교 진학이나 로스쿨이란 타이틀에 집중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수식어에 대해 반박하며 ‘장애를 극복했는데 어떻게 장애인일 수 있는가’를 되묻는다. “쿨한 게 아니라 ‘핫한’ 장애인, ‘야한’ 장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말하는 그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무기력한 세대라 비판받는 세대에게 필요한 것이 분노라고 말하며 함께 하는 삶을 말한다.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이 책은 단지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류대에 진학한 외형적인 삶의 성공기가 아니다. 장애인들에게는 나는 이렇게 장애를 극복했다고 말하는, 비장애인에게는 나는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성공했다를 알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그가 깨닫고 느끼고 인식한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회’가 가져야 할 인식에 대한 물음과 촉구이다.

   분명 그는 개인의 이야기를 말했지만 그것은 저자의 ‘개인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보다 자세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견디어야 하는 그 모든 사회적인 편견과 모욕감의 인식적 측면과 사회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모욕을 ‘쿨하게’ 견디는 힘 이외에 슈퍼 장애인의 또 다른 조건은

과감한 도전과 주눅들지 않는 용기이다.

 

   장애인으로 살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정상’으로 간주되는 ‘이긴 자’ ‘가진 자’의 세상에서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소외되기는 피차일반. 단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타인에게 온갖 모욕이 일상화되는 사회에서 특히, 그 일상적 모욕을 받는데 선두주자 격으로 장애인은 치부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시되고 일상화되기에 그 모욕을 견디기 위해서는 ‘쿨’함을 넘어서는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 저자는 주눅들지 않는 용기라고 말했는데, 저러한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또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그렇기에 그가 견딘 모든 모욕을 보여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펼쳐낸 이야기들은 그의 말대로 도전과 주눅들지 않기 위한 활동의 모습이었다. 모든 장애인들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모든 비장애인 역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삶이 아니니까. 또한 자본주의 사회, 언제 어떤 사고로 인해 장애를 겪을 지 모를 위험한 사회에서, 우리가 장애인, 비장애인의 구분이 필요치 않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쿨함도 주눅들지 않은 용기를 가져야 되는 인식과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저자의 경험이 속속들이 있는 관계로 저자가 주장하는 것에 좀더 설득력이 실린다. 그가 겪은 사회적 모순, 인식, 인간관계들이 잘 버무러져 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저자의 개인사에 더 치중된다는 우려가 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나, 그가 굳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하는 이야기들이 ‘개인 자신’에게로만 머무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이런 힘들고 어려운 조건을 이겨낸 ‘한 개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 그리고 칭송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저자의 역할이 있음이니 저자 자신도 이야기한 것처럼, 뭔가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의 이야기’로 좀더 치중한 부분이 있는 듯하다. 그 균형을 어떻게 잡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갈수록 저자의 개인 스토리가 많이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무리도 좀 급하게 서두른 느낌도, 감상적인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크기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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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마라 - 분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테판 에설 저, 조민현 옮김, 문학세계사, 2013.



  <분노하라>고 외친 스테판 에셀은 2013년 2월 27일 95세로 타계했다. 이 책은 그가 전하는 유언이다. 저자는 줄곧 분노하라를 통해서 이 시대의 진보를 위해 싸울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마지막 유언은 그것을 위해 포기하지 마라는 것이다. 물론 변화를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 노력은 단순히 봉기의 형태가 아니라 ”국가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의욕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지 항의에서만 머물르는 것이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에 대한 욕구를 회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정치없이는 진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토론을 유발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등 정치에 참여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구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했고, 소련의 지배에 대항한 역사적인 반체제 인사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작가 바츨라프 하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각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당신이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할지라도, 당신이 아무런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들 각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p38


나는 정당에 들어가는 데 지나치게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존의 정치 세력을 이용할 것을 확신을 가지고 지지한다. 밖에 있는 것보다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나는 항상 동료들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당신들ㄹ이 문제와 싸우기를 원한다면, 세상을 바꾸길 원한다면, 우리들이 속해 있는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그 일은 정당들의 도움으로 행해져야만 한다고. 비록 그들이 결점을 갖고 있고, 불완전하고,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말이다. p39


  책을 펴면 이러한 문구가 시작을 알린다.


“행복하여라, 율리시즈처럼 멋진 항해를 한 사람은.”

 - 조아생 뒤 벨레


  스테판 에셀은 행복하였을까. 책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그의 마지막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평온했다고 말한다. 세상을 떠나는 스테판 에셀을 추모하기 위해 수백만의 인파가 자리에 모였고 유엔인권이사회에서도 개인을 위해 공식적으로 묵념행사를 했다.

  끊임없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행동을 촉구하던 스테판 에셀의 마지막 말은, 포기하지 마라였다. 답답하고 지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저주저하는 때에 그의 마지막 말은,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것처럼 힘을 내게 한다.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죽음의 위험에 놓여 있다. 사회적・경제적 부정으로 또는 환경 파괴로, 또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소멸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세우기 위해 건설적인 비전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야망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용기에서 태어나는 야망. 세상 일이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낙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염세주의에 빠져서도 안 된다. 우리는 야망을 가져야만 한다. 포기하지 마라! p66~67


  경험과 지식의 폭으로 사회참여를 촉구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확연히 다르다. 하고픈 말이 정확하고 요구하는 것이 정확하다. 어쩌면 경험과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은 메시지는, 힘이 없고 중언부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명확한 사실에 대한 인지와 그를 바라보는 정확한 판단, 그리고 구현하고픈 의지에 있을 것이다. 겪음을 토대로 하게 되는 이야기와 겪을 지도 모르기에 하는 이야기의 차이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결국, 한계가 될 수밖에 없다. 같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전달력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구현하는 방법에도 신경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의 모든 것에 참고할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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