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말 걸 그랬다 


 이 엄청난 분량의 책을 쓴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자료수집과 쓰는데 많은 시간

이 소요되었다고 하는데, 읽는 나 역시 그러했으므로 저자의 노고가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 얼마나 공들인 것일까. 사실, 서두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부분에서 저자와는 다르게 팔레스타인에 감정이입해 탈무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저자가 그러했듯이 나는 유대와 유대인에 많은 매혹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에 관한 생각을 강하게 접어두고 탈무드의 내용으로 보고자하며 책을 읽었다. 쉽지 않더라는 것이 함정이었다. 관점이나 감정을 어디에 두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p69 인류 역사에서 유대인은 제국을 세우지도, 대성전을 짓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은 모든 에너지를 인간성 연구에 쏟았다.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예지 습득에 힘써 왔다. 그것은 인내와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로부터 받은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p103~104 수천 년에 걸쳐서 기록된 인간의 행동양식, 사고방식, 반응, 기쁨이나 슬픔, 고난, 성공이라는 것을 배움으로써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라는 전체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이나 가능성이나 한도를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여러 나라로 흩어진 유랑인이 되어도 힘을 잃지 않고 늘 새로운 힘을 유지한 것은 오로지 유대인이 성서를 마음의 지주로 삼고 탈무드를 지력의 지주로 삼아서 배워왔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익숙하게 들어 와 유대인을 남다르게 여겨 온 것이 바로 위와 같은 유대인의 상황일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영향력있는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는 것, 그것에 ‘탈무드’가 있다는 것이 유대인 정신과 탈무드를 뛰어난 경전으로 받들게 하는 요인이라는 걸, 그래서 탈무드가 신비로워 보일 것이라는 것. 어릴 땐, 랍비가 들려주는 우화의 이야기들을 접해서 조금은 그런 적도 있다. 우화는 항상 그러니까. 하지만, 성인이 되고 보다 방대한 탈무드를 접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보고, 세계사를 조금 알고 세계경제를 조금 알고, 권력과 자본을 조금 알고, 그렇게 조금 알다 보니 내 세계가 너무 좁은 건가.

  세상 모든 나라들에서 자기들 나라 특유의 ‘탈무드’를 가지고 있다.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원리와 원칙이 그 안에 담겨 있을 것이다. 다만, 유대인들이 그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아닐까. 하지만, 읽다보면 탈무드는 도덕윤리와 가치보다 어째 ‘성공'철학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지.

  솔로몬 탈무드는 크게 총 15장으로 구성된다. 전체적으로 유대인과 랍비, 탈무드에 대한 소개가 1장과 2장에서 제시된다. 3장과 4장은 유대인의 경제적인 부분인 돈과 그에 따른 철학을 살펴본다. 5장과 6장은 유대인의 발상과 유대인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7장은 유대인의 세상살이, 8장은 유대인의 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다. 9장에서 14장까지는 탈무드 우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9장과 10장은 각각 유대인의 예지와 지혜에 대한 우화를 11장은 걱정하지 말아라, 12장은 뿌린 대로 거두리라, 13장은 행복을 만드는 유대 사고방식, 14장은 불멸의 영원한 가르침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제목에 맞는 우화들을 엮어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5장은 토라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솔로몬 탈무드는 1장에서 8장, 15장은 저자가 탈무드와 유대인에 대해서 서술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9장부터 10장은 우화들을 엮어 놓고 있다.

  각 장마다 소제목을 두고 있고 소제목에 또 다시 하위 범주의 제목을 두어 내용을 전개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을 보다 보면 저자가 한 단락 정도의 내용에도 소제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단락의 내용을 나타내는 핵심의미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와 같이 핵심의미를 단락마다 마다 제시하고 있어 내용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요점을 파악하게끔 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로 인해 전체적으로 복잡하고 산만한 느낌이 들게 한다. 탈무드의 우화들이 각각이 제목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형태가 전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탈무드에 대해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이 우화이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랍비들의 이야기, 우화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다. 어릴 적 보았던 우화들도 있고 처음 접하는 우화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우화에 대해 나름의 결론과 해석은 나의 몫이기에 내가 부여한 우화의 해석을 쫓으며 즐겼다. 비교적 인상깊게 남았던 부분은 유대인의 경영원칙인 78:22의 법칙에 대한 설명이다. 유대인들의 부자철학은 유대인의 특성을 대표적으로 나타내주는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탈무드가 다른 나라의 그것과 차별적인 것이 바로 이 부분인 듯이 느껴지니까 더욱 그럴 것이다. 유교적인 틀에 묶인 우리나라에게 상인에게 가지는 생각이 다르기에 그 다름으로 유대인의 금전에 대한 생각들이 재미있게 읽혀지기도 했다. 원체 유대인의 경제관념을 부각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어쩌면 이것이 특징인가, 인식해서 일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3장이다. 3장 중 유대인의 기본 법칙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유대상술의 기본 법칙에 ‘78:22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1의 오차가 있으므로 이는 때에 따라 79:21이 되기도 하고 78.5:21.5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정사각형과 그에 내접하고 있는 원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정사각형의 면적을 100이라 한다면 그에 내접하는 원의 면적은 약 78이 되고 나머지는 22가 된다. 또 공기의 성분이 질소 78에 산소와 기타가 22인 비율로 이뤄져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의 신체도 수분이 78, 기타 물질이 22의 비율로 이뤄져 있다. 이 ‘78:22의 법칙‘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이다.

이 법칙 위에 유대인의 상술이 성립되어 있다. 세상에는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과 ‘돈을 빌려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는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단연코 만다. 은행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어다가 일부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만일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은행은 당장 문을 닫는다. 이를 유대식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빌려주고 싶다는 사람’ 78에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 22의 비율이 성립한다. 이와 같이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과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 사이에도 ‘78:22의 법칙’은 존재한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률은 78이고 실패율은 22인 것이다. 실패율 22을 생각지 말고 나도 하면 78이 성공률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p249).

 

  다시 탈무드를 읽게 되면 그때는 또 다른 마음이 들게 될까. 머리가 크지 말았어야 했나. 어릴 적 아동과 청소년들이 알고 있는 그 수준의 탈무드 우화만 기억하고 있을 걸 그랬나. 탈무드를 읽는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땅을 찾은 것을 마냥 축하해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탈무드에서 보라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마음을 추스르며 이 책이 조금은 정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1. 유사 내용의 카테고리 재분류

 탈무드의 내용을 보면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의 느낌이 든다. 그것은 유대인의 지혜를 이야기하며 유대인의 금전에 관한 탁월한 철학을 논하면서 지혜의 내용들이 금전의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많은 책의 내용이 유사한 내용을 한데 묶어 장을 통합하면 장이 줄어들어 보다 간결한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2. 제목 및 소제목 형태의 통일성

  솔로몬 탈무드는 제목이 많다. 각 장을 나누기 위해 1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각 장에서도 소제목으로 분류한데 이어 거기다가 단락단락마다 제목을 뽑아서 제시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소제목을 포함한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제목만으로도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제목의 형태가 전 장에 걸쳐 통일적이지 않다. 물론 특성에 따라 적절한 제목을 붙이겠지만 각 장의 제목만이라도 그 형태를 통일적으로 이어간다면 보다 더 체계적인 느낌이 들 것이다.

  아래 보는 바와 같이 어떤 장의 제목은 서술형, 의문형 종결어미 형태로 제시한다. 어떤 제목은 명사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을 서술형태이든 의문형태이은 명사형이든 통일적인 체계로 정리한다면 제목에서 느끼는 복잡함이나 산만함이 경감될 수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불굴의 방패, 절대의 가치는 무엇인가’, ‘유대 부자철학은 무엇인가,’ ‘유대 역정의 발상을 찾아라’로 한다거나 간결하게 ‘유대인이해’, ‘유대정신’ 이런 형태로 말이다.

3. 책의 집필 의도 고려한 우화 삽입

  저자는 유대인과 유대인의 철학에 매혹되어 여러 탈무드를 모아 재정리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저자의 매혹이 어떤 부분이었는지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논점이 점차 흐려진듯하다. 탈무드와 유대인에 대한 설명이 중심이었는지, 탈무드의 우화를 얘기하는 것이 중심이었는지 말이다. 처음 시작에서 9장까지는 우화가 설명 속에 제시되어 있다가 9장 중반부터는 우화만 제시되고 있다. 우화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했다면 조금 더 설명 부분에 우화를 삽입하여 제시하는 것이 더 좋았을 듯하다. 그리고 많은 우화들은 따로 탈무드 우화로 책을 낸다거나 아니면 솔로몬 탈무드에서 독립적인 장으로 제시하여 소제목으로 분류하여 엮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4. 탈무드 우화의 출처 제시

  솔로몬 탈무드에는 많은 우화들이 몇 장에 걸쳐 삽입되어 있다. 저자가 많은 책들을 참고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던 만큼 책 전반에 대한 참고문헌이나 자료의 출처가 명시되었으면 한다. 특히 우화들도 그 출처들이 궁금해진다. 1,0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저술하면서 저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녹아들었겠지만 설명과 의견들을 분리하여 좀더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각주를 통해 설명을 첨가하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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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바보들! 자네들은 나를 기관단총처럼 써먹어야 돼.


      노먼 베쑨이 자기 시대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해 나감으로써 역사의 진보에 기여한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앞선 자의 길인 것이다(p14).


  이 인물사는 베쑨의 생애를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시작은 그의 죽음으로 출발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형태이다. 베쑨이 성장하던 어린 시절과 의학을 공부하기까지의 시절을 제1부 우리 시대의 영웅에서 기록하고 있다. 제2부는 생명의 칼 정의의 칼이라는 제목으로 의사로서 결핵에 걸려 이 병을 극복하고 다양한 수술기구들을 개발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다루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의 제목이 바로 이 제2부의 제목이다. 제3부는 스페인내전이 일고 있는 전장에서 혈액을 공급하며 활약한 모습을 다루고 있다. 제4부는 중국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병원을 세우고 의료진을 양성하는 베쑨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공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들은 베쑨의 일기와 편지 등을 수록하고 그의 생애를 설명하기보다는 기술하였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영화 한편을 보는 느낌이랄까. 도입부와 결말 부분이 일치하는 것 역시, 현재에서 과거 회상씬으로, 그 현재에서 또다시 과거 회상씬으로 연결되는 것 역시 영화적인 느낌을 갖게 했다. 그러고 저자를 찾아보니, 저자가 각본가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묘사적인 부분이 매우 부족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베쑨 자신의 기록으로서 그 감정이나 사고를 제시하고 있지만, 저자들의 일종의 해석이랄까. 저자의 의지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느낌이 덜했다는 것이다. 물론 서문이나 에필로그에서 기술한 노먼 베쑨에 대한 직접적인 저자의 의견이 없이도 닥터 노먼 베쑨의 삶에서 그의 인생철학에서 우리는 노먼 베쑨이 어떠한 의사이고, 혁명가이며, 사람인지를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영웅이란 자기 시대가 모든 사람들에게 제기하고 있는 주요 과제들을 뛰어난 결단력과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오늘날 이러한 과제들은 전세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현대의 영웅은 그가 자국에서 활동하든 타국에서 활동하든 간에 역사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당대적인 의미에서도 세계적인 영웅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p22).


 노먼 베쑨은 의사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무기를 가지고, 즉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그 일을 통해 투쟁했다. 그는 자신의 분야인 의학에서 전문가이자 개척자였다. 그는 자신의 무기를 늘 새로이 날카롭게 갈았다. 그리고 그는 파시즘과 제국주의 반대투쟁의 선봉에 서서 자신의 능력을 초지일관의 자세로 열성적으로 발휘했다. 그가 볼 때, 파시즘이란 인류에게 그 어느 질병 못지않게 사악한 질병이었다. 그것은 무수한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의 가치 자체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인간의 건강과 활력과 번영에 기여하는 모든 과학들을 부정해 버리는 전염병과도 같은 것이었다(p22~23).


 그 후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에 대한 평가 역시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의 명성은 감소되었고, 어떤 사람들의 명성은 증대되었다. 그러나 베쑨의 명성은 아무런 도전없이 계속 커질 뿐이다(p612).


닥터 노먼 베쑨, 1922년

(http://ko.wikipedia.org)

지금은 노먼 베쑨 기념관으로 활용되는 베쑨의 생가

<출처: http://blog.naver.com/lebendiges>


  아무래도 실제 삶을 살아간 이의 인생을 엿보게 되면, 특히 그가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라면, 그가 살아온 인생 전체가 감동이다. 따라서 어떠한 부분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을 평가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약간의 주저함이 생긴다. 결국 나는 그의 삶에서 애처롭고 애처로운 사건에 대해 감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전기를 인물의 생애로 보지 않고 그냥 하나의 글로서 생각한다면, 그의 일기와 편지들이 생동감이 느껴져 좋았다. 1부에서의 그의 글들은 그의 내적인 변화와 비교적 개인적인 상황과 인과에 의한 변화와 각성이라면 2부 3부와 4부는 개인을 탈피하여 세계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변화를 보다 힘차게 각성하는 것이라 유달리 느껴진다. 실제 그가 공산당원이 되면서 하는 연설이나 병원을 설립하면서 하게 되는 연설들, 친우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에서 그의 현실 속에서의 생각이나 느낌이 묻어나 있어 그러한 편지들에 담긴 글이 매우 좋다.

  베쑨은 의사로서 자신의 본분을 통해서 사회적인 변혁까지를 생각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작은 의사에서 큰 의사로 변화되기까지 사회현실을 인식하며 주장하는 국민보건에 대한 그의 생각,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에 대한 담긴 글들이 인상깊게 다가온다. 복지과잉시대라고 부르지만 아직 보편적 복지보다는 잔여적 복지에 대한 개념이 행해지는 이 시대에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그의 말을 덧붙인다. 


  국민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질병을 재생산하는 경제체제 자체를 변혁시킴으로써 무지와 빈곤가 실업을 없애는 것입니다. 환자 개개인이 자신의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현재의 관행으로는 국민보건을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관행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며 소비적이며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것입니다. 우리 의사들과 개인 자선가들 그리고 박애단체들이 그 존속을 도와왔습니다. 그것은 19세기의 개막기에 일어난 산업혁명과 함께 이미 1세기 전에 마땅히 사멸되었어야 했습니다. 사회의 각 부문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사적 건강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건강문제가 다 공적인 것입니다. 일단의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병에 걸린다면, 그것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국민보건이라는 문제는 정부의 주요한 책임이자 의무로서 인식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p205).


  사회주의 의료제도의 반대자들이 강조하는 주요 반대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 창의력이 사라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아마도 인간 당나귀들은 이 현대적 야만상태 속에서 당근이 코 앞에서 자신을 유혹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입니다만, 그 당근이 반드시 황금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명예의 꽃다발도 그 역할을 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관료주의화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밑에서 꼭대기까지의 민주적 조직통제에 의해 억제될 수 있습니다. 셋째, 환자 자신이 의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역시 가공의 신화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환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 자신의 입에서 나오고 있을 뿐입니다. 예컨대 환자에게 제한된 선택권을 주어서 소수의 의사들 가운데 담당의사를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만약 환자가 그 의사들 모두가 다 싫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이 의사는 이렇고 저 의사는 저렇다면서 따지고 드는 환자가 있다면, 그런 환자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암거위를 요리하기 위해 쓰는 소스는 또한 숫거위를 요리하는 데에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언어도단입니다. 99%의 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치료의 결과이지 의사의 개성이 아닙니다(p208).


  많은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쉽게 읽혀진다. 한편으로 베쑨의 삶을 단순하게 묘사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의 굴곡을 굳이 롤러코스터처럼 기술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극적인 장치는 필요하리라 보는데, 매우 조용조용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것은, 어쩌면 처연한 느낌이기도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아마도 어떠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을 그가 보낸 편지와 일기들로 정적인 느낌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가 의사로서 활동한 것과 전쟁이라는 특수하고도 당시 보편적인 상황에 처한 역동적인 그의 삶을 조용히 보여주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면서 그보다 더 역동적인 그의 생각들이 더욱 부각되는 듯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의 생각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베쑨 자신이므로 공저자들이 그의 생각을 평가한다면 매우 어정쩡했으리라 보는데, 그만큼 그의 일기와 편지들이 수집되어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본다.

  서문을 통해 이 책의 저자가 베쑨과 안면 없는 기자이고 그 기자에게 베쑨의 이야기를 전한 이가 친구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저자에 대한 기록을 통해 신문기자 출신인 저자가 베쑨과 친분이 있고 베쑨과 친분없는 저자의 친구가 자료를 수집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고 다시 보니 저자는 자신과 베쑨의 친분이 있으면서도 개인적으로 본 베쑨과의 일화를 묘사하지 않고 있다는 데 놀랐다. 그 자신이 희곡이나 영화각본을 많이 쓰고 신문기자로 활동해서인지 영화적 대본 느낌과 함께 전체적으로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저자가 본 베쑨의 모습이라거나, 다른 모습들을 기술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 오히려 베쑨 자신의 기록들을 중심으로 엮어 가다 보니 이는 자서전을 읽은 듯한 모습이다. 다른 인물에 대한 평전들을 보면, 어쩔 때는 지나치게도 저자의 개입이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물론 이 책은 그런 방해를 조장하는 느낌은 없지만,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보다 베쑨을 이끌어내는 묘사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가 각 장의 시작뿐만 아니라 베쑨의 일기나 편지와 함께 나타나면 더 좋았을 듯 했고, 베쑨이 죽는 장면에서 멈춰지는 것이 아니라 베쑨의 행동과 그의 존재가 변화를 이끌었던 중국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더 덧붙여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살아남은 베쑨의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가 부록으로 소개되었으면 한다거나 이 책에서 많은 등장인물들은 분명 실존인물임에도 가명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아쉽다. 아마도 익명으로 요청받았던 듯한데 이 전기가 보다 사실적일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세심함이 필요했을 듯 보인다. 더구나 베쑨 자신 그의 생애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일들을 이루어냈을 터인데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별로 없어서, 베쑨이 살았던 그 시대 그 인물들과 베쑨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도록 설명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베쑨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홀로 각성하고 홀로 행동하는 인물인 듯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조금 언급되는 인물에 대한 주석을 통한 소개와 관련된 사진들이 첨부되었으면 하고, 무엇보다 베쑨의 기록들을 참고하고 있으니, 어느 한 장이라도 베쑨의 자필 편지나 일기를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끔은 커피라든가 로스트 비프 또 애플파이라든가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이 간절히 생각날 때가 있다네. 천국의 음식에 대한 망상이랄까……. 그리고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은 책이라네. 지금도 여전히 책이 씌어지고 있는가? 음악이 아직도 연주되고 있는가? 자네는 여전히 춤도 추고 맥주도 마시고 그림도 구경하는가? 부드러운 침대의 깨끗한 시트 위에서 잠을 잔다면 어떤 기분일까?(p572)


  전쟁속에서 이와 같은 기록을 남긴 그의 필적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내밀한 저 마음들을 함께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애틋하고, 감사한 마음에.

  바보들! 자네들은 나를 기관단총처럼 써먹어야 돼!

  이 역시도 전쟁통에서 노먼 베쑨이 한 말이다. 그의 마음과 그의 행동들이 기관총처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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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 엄친아다, 불온하다!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세계는 망신창이가 되었다.”

   더 볼 것도 없다. 이 문장에서부터 이 책은 내 맘에 쏘옥 들었다. 쉽고 편하게 다가오는 내용이 끝까지 책을 편하게 읽어 나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살아가면서 묻게 되는 이 짜증나는 질문들을 속시원하게 비판해줘서 즐거웠다.

   경제는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한번쯤 생각해보고 경험해 보았을 의문들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책이다. 현재 통념처럼 되어 버린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자유시장을 주창하는 선진국의 논리와 그들이 시장에 가한 정책 사이의 문제를 지적하며 ‘정의롭지 않은’ 주장에 대해 사례들을 제시해 가며 반박하고 있다.

   그러니 23가지의 질문과 그 답들, 그들이 말하는 것과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는 형태로 진행된 논쟁들이 재미를 더해 주었다.

   경제는 어렵다, 아무도 책에는 관심이 없다, 하물며 경제책인데,라는 통념을 비웃으며 승승장구하는 장하준의 책들이다. 이쯤되면 장하준 개인의 인기를 떠나 사람들이 얼마나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경제는 전문가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어려운 것처럼 포장되어 왔지만 사실 실생활에 밀접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실제 상황과 사례들에 비유하여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의 ‘전문’책이지만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듯한 방식이 아주 좋다.

   어쨌든 글은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시종일관 자신의 주장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점이 좋다. 이것은 저자가 가진 지식의 수준이 뒷받침되기 때문이겠지만, 일단 확고한 자기주장을 펼 수 있다는 것은 이야기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질문과 의문형태의 물음을 던지고 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게 읽다 보니 23가지 물음은 짧은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저자가 한국 사람이다 보니 이 책이 번역본이라는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 번역보다 한국말로 설명해준다면 오히려 더 쉽고 절절하게 와 닿지 않았을까. 저자는 전문번역인을 통해 번역하게 했는데 자신이 번역하기엔 바쁘다 한다....그리고 자신이 한국말로 하다 보면 오히려 왜곡된 전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영어로 쓰여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국인이라 그런지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번역본이 껄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끄럽다.

    원체 유명한 저자라서 글의 맛과 더불어 저자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에 대해 처음 떠오른 것은 ‘젊다’ ‘엄친아’ ‘불온하다’였다.

    

 ■ 젊다 

 

  오랫동안 이름을 들어온 듯한데, 63년생이다. 오래도록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교수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당연 그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으려고 했었다, 읽었다고 착각했다가 사실이었다. 자세히 그의 저서들을 보니 읽은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저자의 글을 읽었다고, 저자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착각이 들었던 것일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번역본이기에 그제야 내가 완전 저자를 잘 모르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교포던가 또한 놀라며 다시 저자에 대한 소개를 뒤적였다. 역시, 한국에서 태어났고 대학 이후에야 영국에서 공부를 했다. 영국 대학 교수이니 영어로 당연 수업을 진행하고 글을 쓰고는 하겠지. 또한 우리나라를 향해 출판한 것이 아닐 터이니. 여러 번 칼럼이나 신문에서 저자의 글을 보곤 했는데 그것이 저자를 오래도록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자주 언론에서 접한 이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자의 나이가 젊다는 것에 놀란 것은 내가 가지게 된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 탓이 크다. 정부로부터 금지 서적으로 분류된 탓에 저자의 이름이 더욱 공공연하게 오르내렸던 것 같다. 자본주의를 비판함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과도한 반응들이 오히려 그의 위상을 높여 주지 않았을까. 나 역시 요즘 시대에 ‘불온’ 서적이란 것이 지정되리라는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에 당연스레 과거의 책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리고 당연 저자도 희끄무레한 머리색을 가진 초로의 교수로 머릿속에 여기고 있던 것이다. 이런!

   암튼 저자가 젊다는 것이 중요하다. 젊다는 것은 요즘의 사회 속에서 성장하고 배웠다는 것이고 그 속에서 가치와 생각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니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의 경제학적 관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더구나 온전히 한국적 시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유럽에서 공부하였고 그 바탕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생각의 얼개가 자유스러우리라 생각한다.

 

엄친아시군!

    

   저자는 경제학자로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이다. 그의 동생 장하석 역시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저자의 아버지 장재식은 행정고시 합격한 3선 의원에 전 산자부 장관 출신이며 어머니 최우숙은 영문과를 졸업했다. 한국사회는 혈연 집단이니 사촌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 전 여성가족부 장관 장하진이 저자와 사촌지간이다. 이렇듯 저자의 집안은 ‘특출’한 집안이다. 일찍부터 학자적일 수 있었고 또한 경제력과 영향력까지 갖춘 집안이다. 잘 아는 말로, 엄친아다. 더구나 놀라운 건, 그들의 1세대인 저자의 할아버지와 형제들은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 그러니까, 또한 독립군의 자손이기도 하다.

가진 자들에게 무수히 당해와서인지 일찌감치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대충봐도 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대략 언론을 통해 소개된 이 집안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가진 자들의 행로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독립군 자손에 저자의 부친과 형제들은 6·25전쟁에 참전하였고 상이용사가 된 이들도 있다. 그들의 집안은 형제애와 가족애가 돈독했고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깔려 있었다. 장하진 전 장관은 이렇에 집안의 분위기를 전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현대사에 항상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일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기 일에 성실해야 한다는 게 가풍으로 자리 잡은 거죠. 우리는 한번도 ‘좋은 대학에 가라, 좋은 과에 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다만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과를 선택하라’는 말씀은 하셨죠.” 이러한 분위기에 저자의 아버지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들의 태몽을 기억한다. 멧돼지를 품에 안는 꿈을 꾸었다 한다. 저자의 사진을 보면 통통한 얼굴 인상이 조금 닮았다(^^:::) 싶다. 우리들이 늘 꿈꾸고 싶어 하는 돼지꿈을 꾸고 잉태된 아이, 그가 바로 장하준 교수다. 이런, 꿈까지 ‘되는’ 사람이라니! 꿈의 기운 덕분이었을까. 저자는 영국에서 공부한 지 4년 만에 케임브리지 교수가 되었다. 나이로 얘기하자면 27세 때다.

놀라운 성과, 결과를 쥔 저자이기에 과정 역시도 순탄했을 듯 보이는데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기까지는 한번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1986년 케임브리지 대학은 석사과정이 아닌 디플로마(diploma:학위를 주지 않고 수료증만 주는 과정) 과정만을 저자에게 허용했다. 대학이 석사과정에 저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참 놀랍다. ‘세계 2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대학 졸업생’이라는 이유였다고 하니...저자는 이 과정에 들어가서 4개월 만에 실력을 인정받았는데, 학과 교수들이 1년 만에 석사를 주겠다고 했고 박사과정도 마찬가지였고 박사과정이 끝나기 전에 “경제학과 교수를 하라"고 했다 한다. 그렇게 교수로 임명되고 나서 박사를 받았다 한다.

   도대체 얼마나 놀라운 실력을 보였기에 단순 감탄을 떠나 실제로 교수가 되었을까. 어떻게 공부하였기에 그러할까.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많은 양의 책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는데 도서관 직원이 아버지가 그 책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독서의 정도를 가늠하면 사례로 중학교 2학년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영어원서로 11번, 번역판으로 12번을 읽었다 한다. 더구나 저자인 칼 세이건으로부터 직접 편지까지 받았다 한다.

    

불온하다구! 

 

   서울대에서 개발경제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에서도 같은 전공이었다. 저자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로버트 로손(Robert Rowthorn) 아래서 연구하였는데 로손은 계획 경제와 시장경제의 절충안인 산업 정책 이론을 구체화시킨 학자이다. 저자 역시 그의 아래 공부를 하며 비주류 경제학 분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저자 자신이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이라 부르는 경제학을 구체화하였다. 또한 저자는 옥스팜의 일원으로서 세계 은행, 아시아 개발 은행, 유럽 투자 은행 등의 자문을 맡았고 워싱턴 D.C.에 있는 정치 경제학 연구 센터의 회원이다. 에콰도르의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의 경제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하준은 《사다리 걷어차기》로 2003년도 뮈르달상을 수상했고 또 2005년에는 국제개발환경연구원(G-DAE)으로부터 2005년 바실리 레온티에프상을 수상했다. 세계 경제학계와 출판계에 저자는 유명한 인물이며 비주류경제학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런 그가 영국의 대학에서 잘 연구하며 살아갈 줄 알았더니 모교인 교수직에 세번이나 지원했다고 한다. 매번 탈락하였는데도 말이다. 이쯤되면 그래도 지속적으로 한국에서 살고 싶었나 보다 싶다. 그런데 그의 임용탈락에 한가지 이유가 떠돈다. 이른바 저자가 비주류경제학자라는 이유가 그것이라 한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경제에 치중한 서울대 교수진들 사이에 홀로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란다. 표면적인 이유는 논문 자격요건이 어쩌고 한다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실질적인 이유는 공공연하게 나온 이 이유, 저자는 한국사회에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대학에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경제학자라는 것이다. 여전한 한국사회의 이러한 인식들이 세상살이를 서글프게 한다.

   아무튼 오히려 더 잘 되었다. 저자가 더 좋은 환경에서 자신이 펼치고 싶은 대로 주장을 이뤄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불온서적이라는 지적도 당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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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갑들에게는 없는,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가 이 책이 성공한다면 그 주제의 방대함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듯이 이 책의 내용은 방대하다. 총 6부 3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1편~8편, 제2부는 9편~13편, 제3부는 14편~19편, 제4부는 20편~23편, 제5부는 24편~26편, 제6부는 27편~31편이다. 제1부는 법의 개념 및 종류에 관해 고찰하며 각 정체의 원리를 파악하고 정치적 자유와 국가와 시민의 안전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제2부는 정치적 자유와 국가와 시민의 안전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제3부는 법과 기후, 토질, 국가의 일반 정신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제4부 법과 상업, 화폐, 인구와의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제5부 법과 종교의 관계에 관해 고찰하고 있으며, 제6부는 로마인의 상속법과 프랑크족 봉건법 등을 역사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내용적인 구성을 보면 법의 정신은 각 나라의 자연법과 실정법에 의해 구체적으로 나타나므로 자연법과 실정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실정법은 정체의 본질과 원리, 자연법, 국가의 기후, 풍속, 인구, 종교, 상업, 토질 등의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서술한 이유와 입법자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내가 이 저서를 쓴 것은 오로지 다음에 말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즉 중용(中庸)의 정신이 입법자의 정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선은 도덕적 선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두 극단 사이에 있다(p501).

 

부패와 타락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국민이 법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이 법에 의해 타락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고칠 수 없는 병폐이다. 왜냐하면 병의 근원이 치료법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p92).

 

   저자가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썼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례들을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사회적인 배경과 책의 출판 이후의 상황 등을 고려하다 보니, 삼권 분립의 내용보다 오히려 종교와 관련된 부분에 관심이 갔다. 어떤 내용들이 이 책을 금서 목록에 올리는데 기여를 했는가하며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18세기의 기록을, 그보다 더 오래 전의 다른 나라들의 풍속과 습속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게 되다 보니 반사적으로 반감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단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례에 대해서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법의 정신만큼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거듭 새겨도 모자라다.

 

최소한 법적인 이유를 제시할 때는, 그것이 그 법에 적합한 이유여야 한다. 어떤 로마법은 ‘장님은 소송할 수 없다. 그는 사법관의 영예의 표지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다. 적절한 이유가 얼마든지 있는데 그런 부적절한 이유를 든 것으로 보아 그 법은 고의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p511)

 

누군가를 탄핵하는 자가 공공의 복지를 위해 그 일을 한다면, 군주 앞이 아니라 재판관 앞에서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군주는 쉽게 편견에 사로잡히는 데 반해 재판관은 무고자들만 두려워할 무서운 법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p205).

 

   당연한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만큼이나 당혹스러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거듭 법의 정신, 올바르고 타당한 법의 정신을 새겨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근본적인 정신을 망각하고 오용하고 악용하는 이들이 법의 가치를 끊임없이 하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법을 법이지 않게 여기는 이들에게 거듭 법과 법집행의 청정함에 대해 강조한들, 알아들을까?

 

법에는 청정함이 필요하다. 법은 인간의 사악함을 벌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므로, 그 자체가 최대한 깨끗해야 한다. (p511)

 

불필요한 법이 필요한 법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사람들이 회피하려고 하는 법은 입법을 약화시킨다. 법은 반드시 그 효과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협정에 의해 손상되어서도 안된다. (p511)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이 많은 사례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책을 쓰기까지, 무수한 감회가 교차되었을 몽테스키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오랫동안 저자의 서문을 붙잡고 있었다. 저자가 부분에 집착하여 판단하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부분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가 의견을 내밀면, 나 또한 그에 의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므로 전체적인 맥락을 잊지 않는다면, 부분 부분에 대한 집착도 한편으로는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부분 부분에 대한 집착은, 내용이해가 부족했음이었음도.

  하지만 내용이해의 부족을 조금은 번역탓으로 돌린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역자라면

 

  이 책은 번역본이므로 먼저 번역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초판 이후 여러 번 개정판이 나왔지만 말을 다듬은 흔적이 ‘거의’ 없다.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서 보니 완역이 아니다. 몇 편만 살펴보았을 때 많은 내용이 생략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 할지라도 내 개인에겐 생략된 부분이 이해를 하는데 큰 몫을 했다. 그러므로 번역은 완역을 기본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작품의 이해는 저자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더욱 고무된다. 특히 이 책과 같은 종류의 책이라면 저자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다. 역자에 비해 독자는 한 문장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을 고려하여 저자에 대한 소개라거나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설명이 없는 것이 매우, 아쉽다.

또한, 편집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편집은 저자나, 번역자보다 출판사에 그 책임에 무게가 실리겠지만 나의 글이 담는 그릇이 어떤 것이 어울릴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글은 내용이 중요하다지만, 책은 그 글을 어떻게 담았느냐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이들 모두를 고려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2) 저자라면

 

   잘 모르는 부분을 접하게 될 때 초보자는 작가가 그리는 자세한 설명과 다양한 예를 통해 내용을 이해한다. 그러한 면에서 세부적으로 논리를 이끌어 나가는 그의 논지가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내용의 방대함 때문에 구조화된 도식을 그리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만큼 명쾌한 느낌을 주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실험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 논리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몽테스키외를 연구하는 이들은 말한다. 그러나, 법에 대해 무지하고 유럽의 역사와 철학사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특히 번역서를 통해 내용을 이해할 때, 귀납법적 논리나 과학적 방법이란 개념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듯이 주제의 방대함은 내용을 이해하기에 부담을 주고 있다. 논지를 이끌어가는데 앞서의 부분과 배치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한마디로 무언가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연 각 편의 연결성도 부자연스럽게 읽혀지기도 한다.

   따라서 자료의 방대함을 명쾌하게 이어지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할 듯하다. 총 31편으로 구성된 것을 관련 내용을 묶어 편을 줄이거나 서술의 배치를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특히, 제27편, 제28편에서 로마법과 시민법의 기원과 변천을 살펴보고 제29편에서 법을 제정하는 방법이란 장을 두어서 내용의 정리를 하는 듯했는데 제30편, 제31편에서 군주정체 확립, 봉건법이론, 군주정체 변천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두 장의 위치 역시 오히려 제27편, 제28편 뒤에 위치하고 제29편으로 종결짓는 것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데 더욱 좋지 않을까 한다. 또한 제26편 역시 그 위치가 제29편 앞에 위치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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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은 땅에서 유래하지만, 두 번째 인간인 내적 인간은 ‘하늘에서’,

즉 현실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유래한다.”

 - 융의 묘비에 씌어진 글(p209~211)-

 

 

카를 융 - 생애와 학문, 게르하르트 베어, 한미희 옮김, 까치,| 1998.

 

 

 ■ 기억할 수 있는 것

 

 심리학책뿐만 아니라 여타의 책에 부지기수로 등장하던 프로이트를 난 좋아하지 않았다. 강박적으로 그의 이론부터 시작되던 심리학의 많은 부분을 참아내야 했지만, 프로이트의 핵심적인 이론에 회의를 느꼈고 그의 이론과 더불어 사람 자체에 대해서 흥미가 당기지 않았다. 프로이트의 정신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의 이론도 ‘이상’하다, 집착적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융님이 나 홀로 탐탁치않게 여기던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생각을 고정화시켜 줘서 기쁘다(?).

 집단무의식과 원형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융을, 융의 입으로 만나면서 프로이트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융에게 더 이끌렸다. 그의 세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부러웠던 것 중에 그가 살고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그가 그 집을 가지게 된 것도 결국 그의 세계 속의 움직임이니 결국 마찬가지다. 그는 호숫가 옆에 탑을 짓고, 또 짓고, 또 짓는다. 그의 복잡한 심정은 계속 확장된 집이 되어 간다. 그리고 그는 미로같고 문명의 기구들을 들이지 않은 그 탑에서 미로같고 문명이 들어차지 않는 자신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간다.

 

 1) 공간

 

  융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친구가 보덴호숫가에 성을 가지고 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때의 호숫가에서 놀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 호소의 광활함을 즐거움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호수 근처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고 했다. 그 어린 날의 기억이, 그를 호숫가로 이끈 것일까.

  호숫가에 지은 그의 탑은 단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의 머리속에서 구상하고 그의 몸으로 만들어낸 이 탑은 그가 처음 탑을 짓고 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보완된다. 이 공간에서 그는 어떤 문명의 기구도 외면한 채 원시적 삶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그의 내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장소가 주는 신성함, 장소가 주는 안정감, 장소가 주는 창조성.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 간 융의 볼링앤 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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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볼리엔 탑 / 85세 생일에 모인 융의 가족들>

 

 2) 시간, 기억

 

  무수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융이 놀랍고 부럽다. 과거의 사건들은 핵심적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내면의 생각들은 언제고 잊혀지게 마련이다. 관심두지 않는다면 존재했는지도 까마득하다. 그 모든 것들을 융은 살려내었다. 시간을 되돌려 놓았다, 그의 기억을 통해.

 그는 자신의 생애를 가리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의 인생을 지배한 무의식은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용이었던 것이다. 융은 죽기 전 인터뷰에서 기자의 신을 믿느냐고 물음에 "나는 신을 압니다."라고 답했다. 무의식을 통해 그 자신도 충분히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융은 스위스 주간지 「벨트보헤」와의 한 인터뷰에서 자신과 자신의 활동을 다음처럼 평가했다.

 

 “나는 인간 및 시대의 질병을 다루고, 고통의 현실에 맞는 치료수단을 생각하는 의사입니다. 정신병리학적인 연구를 하며 나는 역사적인 상징과 형상들을 무덤의 먼지 속에 깨워 일으켰지요. 나는 환자들의 증상을 치료를 통해서 없애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이라기보다 약간의 현명함과 자기관찰과 무의식적 경험에 대한 신중한 종교적 고찰입니다.”

 

3) 그림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고 놀랐다.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는가. 이렇게 조각품을 잘 만드는 사람이었는가. 그는 매우 손재주가 있다. 예술적인 감각이 있다. 그는 이것들을 모두 단순하게 작업했고 무의식의 일련에서 행한 것이라 하지만 보고 있는 나에게는 경탄까지 일으키게 했다. 그가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예술가 쪽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그와 이름이 같은 할아버지가 의사였다는 점이 그의 진로에 영향을 미쳤으니 분명 집안에 화가가 있었다면, 예술가가 있었다면 달랐을 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는 그의 기질이 예술가적 기질보다는 학자풍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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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이 그린 그림, 1917년  좌, 필레몬을 비롯한 여러 인물과 지구 /우,  칼을 든 기사>


 융의 다양한 연구 속에 동양철학과 종교에 대한 관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무의식중에 만다라를 그리기도 하고 만다라가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아갔다. 만다라는 그에게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 상태와 연관되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융은 그것이 어떤 핵심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꼈고, 그 기간에 '자기'에 관한 생생한 개념을 더욱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융은 만다라를 그리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실제 그는 만다라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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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렸다는 융이 그린 최초의 만다라>

   

4) 관계

 

 융의 아버지는 개신교 개혁파 목사이며 박사학위를 가진 문헌학자이며 신학자였다. 어머니는 바젤의 유명한 목사 가문 프라이스베르크 출신이었고 이름이 같은 할아버지는 바젤 대학 교수이자 의사였다. 할아버지는 대학교수와 의사로서 많은 존경을 받았고 외할아버지 프라이스베르크 역시 그러하였다고 한다. 그가 말하듯 그의 뿌리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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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은 오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의 나이는 수백만 년을 헤아린다. 개인의 의식은 땅 속에 있는 다년생 뿌리로부터 자라나 계절에 따라 개화하고 결실을 맺는 꽃과 열매에 불과하다. 뿌리의 존재를 함께 고려하는 사람은 진리와 보다 더 일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뿌리는 모든 것의 모체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인 융은 1875년 스위스에서 태어났고, 1902년 취리히 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로서 취리히 대학 교수였던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프로이트와 교류하였고 국제정신분석학회 회장까지 역임한다.

  하지만 무의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활동영역을 구축해갔다. 특히 그는 집단무의식의 원형을 중점으로 연구하였고 문화사 및 종교사적 비교 작업을 함께 했다.

 그의 생애동안 융은 다양한 철학자들에게 매료되기도 했고 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에 대한 연구를 위해 다양한 독서의 세계에 있기도 했다. 그가 의학을 선택한 것은 그의 조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 에빙의 정신의학교과서를 처음 보고, 심리학 및 정신의학 분야가 자신의 적성에 가장 맞는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을 마친 후 보조의사로서 부르크휠츨리 병원에서 일하면서 이 병원의 엄격한 규칙을 묵묵히 따라고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융의 노력은 병원장의 신임을 얻게 되고 파리 유학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이에 융은 1905년 취리히 대학 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부르크휠츨리 병원의 수석의사가 되었다. 의사로 일하면서 1913년까지 취리히 대학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처럼 공부만 하고, 책만 읽고, 비사교적이고 엄숙하였을 것만 같은 융은 대학시절 사교성이 뛰어났다고 한다. 학생단체 “초핑기아(Zofingia)"의 회원으로서 열정적인 춤꾼이기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아버지의 이른 죽음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상황이 그의 기질을 온전히 드러내기를 어렵게 한 듯하다. 그는 학비를 모으기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아내가 된 엠마에게도 의사 자격을 얻은 후에야 청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진 것 없는 그에게 엠마의 부모가 결혼을 허락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융은 취리히 대학 강사를 하던 무렵 자신의 이후 생애와 창작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두 만남을 갖게 되는데 샤프하우젠 출신의 젊은 스위스 여성 엠마 라우셴바흐와 ‘스승’이자 한때 친구로 지내게 되는 비엔나의 지크문트 프로이트이다. 융은 아내 엠마와의 만남을 이렇게 전한다. 융은 대학에 다닐 때 14세의 엠마를 그녀의 집에서 잠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엠마를 보자마자 “깊은 충격을 받았고”, 곧 그녀가 미래의 아내라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1903년 결혼한 부부의 사이는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곧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엠마의 인간적인 성숙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고 게다가 엠마는 점차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노련한 심리치료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융은 자신의 아내 엠마가 죽은 뒤 너무나 큰 고통과 충격에 힘들다고 말하는데, 애정 깊고 사려 깊은 엠마라는 반려자가 없었더라면, 카를 구스타프 융의 삶과 작품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와의 대결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융에 대한 책을 쓴 게른하르타 베어는 적고 있다.

 여기서 결혼하고 곧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혔다는 것이 바로 샤비나 슈필라인과의 관계가 아닌가 한다. 놀랍게도 그토록 자신의 아내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오랫동안 기다려 청혼한 아내와 결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융은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바로 자신의 환자 샤비나 슈필라인이다. 샤비나는 융의 정신과 환자로 융은 그녀에게 Talking cure(대화치료)를 적용하는데 이 치료 방법의 위험성이 환자가 의사에게 가지게 되는 애착 혹은 의사가 환자에게 가지는 애착이라 한다. 어쨌든 샤비나는 단순한 정신과 환자가 아니었고 후에 자신의 이론을 구축한 심리학자가 된다. 이들의 관게에 프로이트가 가세하면서 당시에는 삼각 스캔들로싸지 퍼졌다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엠마 덕분이 모양이다. 엠마의 생애도 더불어 궁금해진다. 

  그리고 융에게 영향을 미친 프로이트는 융보다 19세 연상이다. 프로이트 이론에 매료된 융은 당시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에도 프로이트에 대한 옹호와 지지를 표명했고 이것은 프로이트와의 서신교환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아들처럼 여겼고 융 역시 프로이트를 따랐다. 그러나 곧 그들은 견해 차이를 보였고 융은 프로이트의 한쪽 면에만 치우친, 그리고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우는 태도에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은 시작이 그러했던 것처럼 편지를 통해 결별했다. 정신분석학회에서 영향력을 가지고있던 프로이트와의 결별은 그동안의 친구와 친지들을 떠나가게 했고 사람들은 융의 책을 쓰레기라고 말하며 등을 돌렸다. 그는 학회도 탈퇴하며 그의 길을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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