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란트 러셀의 생애와 세 가지 열정, 서양의 지혜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 버트란트 러셀의 생애
러셀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저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지성은 철학을 넘어 그의 저작에까지 이르러 그를 문학가에게 수상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만들어 주었다. 러셀은 1950년 권위와 개인이라는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그는 작가이기보다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이었던 사람이다. 아니, 윤리학, 사회학, 교육학, 역사학, 정치학, 논쟁술 등에 관한 40 여 권 이상의 책을 썼으니 대단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1872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에서 보듯이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은 귀족 가문, 백작의 작위를 물려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존 러셀은 빅토리아 여왕 시절 두 번의 총리를 지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러셀은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 했다.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했고 1878년에 할아버지 존 러셀도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할머니의 특별한 교육방침과 원칙이 러셀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삶의 원칙이 분명한 사람이었고 공교육을 거부했다고 한다. 러셀의 좌우명은 그녀의 할머니가 즐겨 외우던 출애굽기(23:2)의 성경구절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가 되었다.
그가 할머니로부터 받은 이 영향으로 그는 사회의 부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했는데, 그것은 그가 98세로 사망할 때까지 이어진 할머니로부터의 가르침이었다. 러셀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하거나 아무리 큰 권력의 행위라 하여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비판하였으며, 그것이 비판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일관성을 견지하였다. 바로 이러한 지적 정직성을 갖고 러셀은 핵무기와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였다. 대중의 편견에 흔들리지 않고 진실을 지켜야 한다는 러셀의 태도는 이미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공자도 누누이 강조한 바가 있었다.
러셀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모해 갔다. 전쟁 중인 1916년에는 징병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납부를 거부하여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강의권을 박탈당했고, 2년 후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핵무기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막고자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조직했고, 아흔의 나이에도 시민 불복종 운동에 앞장섰다.
또한 러셀은 아인슈타인, T. S. 엘리엇, 디킨슨, 케인스, 화이트헤드, 조지프 콘래드, 비트겐슈타인 등 한 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20세기 지성사에서 그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지칠 줄 모르는 지적 정열로 하루 평균 3,000단어 이상의 글을 썼고, 화이트헤드와 함께 10년에 걸쳐 『수학 원리』를 집필하는 등 수학과 철학, 사회학, 교육, 종교, 정치, 과학 분야에 걸쳐 7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생의 마지막에 출간한 자서전은 정직하고 명쾌한 문체로 자신의 인생을 놀라운 통찰로 그려 내어 오늘날까지도 자서전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0년 2월 2일 밤, 98세의 나이로 웨일스에서 사망했다.
■ 사랑에 대한 갈망
러셀은 매우 고독한 사춘기를 보냈고 몇 번의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주된 관심사가 종교와 수학이었고, 그가 자살을 하지 않은 것은 조금이라도 수학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러셀은 1890년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고 나서 1890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보다 어린 조지 에드워드 무어를 만났고 17세에는 퀘이커 교도였던 앨리스 페어살 스미스와 만났으며, 그녀의 가족과도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러셀과 앨리스는 사랑에 빠져 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94년 12월 13일 결혼했다. 그러나 곧 그들은 1901년 파경을 맞고 1921년 이혼을 한다. 그의 어린 시절 사랑이자 아내인 앨리스와의 파경이 이유는 그가 자전거를 함께 타다가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의 장모가 잔인하게 그를 조종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그들이 이혼하기 전까지 별거기간 동안 러셀은 오톨린 모렐, 배우 콘스턴스 말레슨 등 여러 사람들과 열애 관계였다.
그러나 사랑이란 무엇일까. 보통은 사랑은 이성간에 생기는 감정으로 얘기한다. 그의 인생을 지배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러셀은 얘기한다. 그것이 지식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순수하게 이성간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면, 정말 그런듯하다. 그의 98년의 생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가 적어도 4번은 결혼했고 3번을 이혼했다는 것을 안다. 이십대, 사십대, 오십대를 지나 마지막 결혼은 그가 65세일 때였다. 그는 자신의 체험담을 담아 결혼과 도덕에 관한 책을 썼고, 그 책은 남녀 모두에게 억압적이지 않는 성, 사랑, 결혼의 방정식을 찾고자 노력하는 내용이다.
■ 서양의 지혜에 대하여
저자인 러셀은 이 책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학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철학을 해보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과거 사람들이 철학을 어떻게 해왔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러셀은 위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그동안 철학이 전개되어 온 흐름에 따라 그 흐름을 주도한 철학자의 주장과 생애를 서술하고 있다. 간간히 철학가들이 주장하는 이론에 대해 러셀 자신의 개인적 평가를 담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처음 철학적인 질문이 제기된 것이 언제였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누가 그것을 제기하였는지에 대해 시작하며 러셀은 철학에 관한 사유와 논증들이 변화되고 이어져 가게 되는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지만 특정 시대에 특정 철학사조가 나타나는 이유는 당대의 사회문화적인 상황과 연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문화적인 상황들 속에 나타나는 철학사조의 전개가 철학가들의 개인적인 특성과 관심과 맞물려 이루어나가게 되는지를 러셀의 생각을 통해서 보게 된다.
전반적으로 시원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서인지 어떤 장이 감동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10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장의 내용전개는 동일한 패턴으로 흐르고 있기에 딱히 어떤 장절을 감동적이라 꼽기는 애매하다. 아마도 감동적이라 꼽는다면 특정한 철학가나, 특정한 철학사조에 대한 매력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어쨌든 철학의 흐름이 당대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으로 그러한 배경을 이야기하고 철학가들의 개인의 생애에 대한 아주 약간의 이야기들을 곁들이고, 그들이 제기한 주장에 대해 자신의 논평을 곁들여 이끌어 가는 것은 그 의견에 대한 수용을 떠나 보다 흥미로울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먼저 편집에 관하여 얘기하자면, 이 책은 1990년 출간되고 현재까지 계속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판본의 변화를 주고 있지 않다. 두드러진 여백의 미는 좋아 보이긴 하지만 그로 인한 작은 글씨체나 정리되지 않고 나열된 그림의 배치가 개인적으로는 책의 가독성을 높이는데 방해가 되었다. 교과서를 읽은 지 오래 되었지만, 마치 학생들 교재용 참고서라고 할까, 그런 느낌을 받는 책이었다. 내가 서양의 지혜에 대한 지식을 좀 더 흥미롭게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 수 있는 편집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사실, 러셀에 대한 기대가 많아서 이 책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나에게 서양철학에 대한 이해를 잘 이끌어 주리라는 기대. 그는 20세기 대표적인 지성이라 불리고 무려 4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사고나 문장들에 잔뜩 기대를 가졌다. 아마도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족도가 덜 하다는 것은. 고등학교 때 배운 국민윤리 이상의 느낌을 가지지 못한 것은 나의 이해의 부족이 크게 자리할 것이다. 그 점을 감안하고라도!
20세기의 지성이라는 러셀의 저작에 대해 감히 어떤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보완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러셀이 과거의 사람들이 철학을 어떻게 해왔는가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이 책을 덮고 나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특정한 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보다는 흘러가는 대로의 철학가들을 소개받기만 한 것이다. 아마도 부족함은 여기에서 오는 것일 게다. 좀더 깊이 있게 들어가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 더 이상 논의가 되지 않으니까 답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학가들의 주장인 듯 러셀 자신의 주장인 듯 덧붙여진 의견에 대해서도 좀더 명확하게 분리가 되었으면 하는데 이 역시 철학가들을 명확히 알지 못하기에 정확히 분리한다거나 다른 의견을 덧대지 못한다는 점이 있었다. 이 책 한권으로는 철학이 전개되어 온 흐름에 대한 윤곽을 잡아보기는 하겠지만 러셀이 드문 드문 보태는 자기 의견에 동조가 되지 않는 점은 분명하다. 만약 흡입력이 있었다면 러셀의 주장 모두를 고개를 끄덕이며 수용하고 있지 않았을까. 철학가들의 이론을 요약하고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철학가들의 사상에 대해 부족하게 이해된 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해까지 해주도록 러셀에게 바랐다면 지나친 것일까. 다만 이 책은 보다 깊이 있게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전단계로서의 개론서의 역할에는 충분했다고 본다. 다른 철학가들과 그들의 사상에 대해 찾아 읽어보기를 재촉한다는 점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