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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인문학 - 감정의 프리즘: 열정과 분노, 슬픔과 공포, 위안과 기대, 평온과 광기
소영현 외 지음 / 봄아필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감정민주주의
감정의 인문학 - 감정의 프리즘: 열정과 분노, 슬픔과 공포, 위안과 기대, 평온과 광기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부정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희노애락의 인생사에서 ‘감정’의 자연스러운 발현이 통제된다면 과연 인간은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에 대한 비난 역시도 존재한다. 어쩌란 말인지. 상투적이고 원론적인 말이 대안이 되겠다. “적당히”. 그 적당의 수준은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래저래 치이고 마는 ‘감정’인 까닭에 오히려 적절한 상황에서 기를 펴지 못한 감정들이 분출되거나 분출되지 못하여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게, 웃음도 눈물도 분노도 왜 그토록 타인의 눈치를 봐가며 학습된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건지. 감정의 자연스러움이 곧 진실이라면 이 비극적 감정의, 조작된 감정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이 책은 감정에 관한 인문학적 탐구다. 각기 다른 전공의 세 명의 저자들의 말대로 하면 ‘감성적 사회비평’이다. 이것은 위로와 공감에서 더 나아가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비평이란 얘기다. 저자들의 목적은 이것이니 독자로서의 나는 그들의 의도에 맞는 변화가 있는가를 살펴보면 되겠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책에 대한 사전 정보없이 제목으로 끌렸고 책 표지도 매력적이었다. 새해 들어 ‘감정’에 대한 새삼스런 고찰을 하다 여지없이 생각난 책이다. 이래저래 생각해보니 인문학과 사회학이 가미된 글에 대한 호감은 내 개인적 취향이구나 싶다. 그러니 감성적 사회비평 역시도 취향 저격된 셈이다.
감정의 가장 대표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는 열정과 분노, 슬픔과 공포, 위안과 기대, 평온과 광기를 중심으로 감정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겪는 일련의 상황들, 영화이거나 소설이거나, 점성술 등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모든 것이 감정을 탐구하는 자료가 된다.
감정에 대한 탐색은 단지 주체가 경험적으로 인지하는 신체적 반응이나 직관의 문제만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의 관계론, 의식과 무의식의 작용, 표상된 것과 감춰진 것의 역학, 역사와 현재의 연계와 상호 간섭 방식, 욕망과 가치의 충돌, 윤리와 관습이라는 사회적 요소들이 다선적이고 중층적으로 관여하는 복잡계에 대한 총체적 탐색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p26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왜 감정에 대한 통제나 억압이 주로 이루어지는가, 자기계발서 속 감정에 대한 조언들은 왜 억제와 통제가 아니라면 특정감정에 대한 지향인가. 감정에 대한 교육은 그것만이 지향하는 특정한 방식이 있는 것인가. 어쨌든 ‘감정’을 표출하는 주체가 정말 ‘나’가 맞는가. ‘나’의 감정표출에 대한 권리도 없다면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이해는 과연 가능한가. 감정의 주체가 되지 못해 나타나는 영향은 무엇인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감정 표현은 미숙하거나 유치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세상과 대면하기 위한 결의이자 선택이다. 감정의 ‘집단적 표현’이 곧 저항의 제스처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p26~27
“‘가정폭력’은 가부장제 위계가 은폐할 수 없었던 구조적 폭력의 일면이자 한국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위계구조의 폭력적 분출(p58)”이다. 가정폭력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수치와 분노의 감정에서 보면 인종적-국가적-계급적-젠더적 차원의 위계적 폭력 구조가 연관된다. 사실 모든 감정의 면면에 계급과 성별이 가득 차 있다. 이에 대한 경험은 사실 너무도 일반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갑을관계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사회에 만연한 갑질 속에 잘 드러난다. 또한 ‘남성의 화는 합리적인 분노‘로 ‘여성의 화는 성격이상’으로 치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위계에서 보듯이 사회는 여러 방식으로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을 막고 있다. 그것의 이득이 없지 않다면 적극적인 개선을 해나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한 분위기 형성을 보건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감정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관습화된, 위계적인 이 구조에서 벗어나는 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 이것을 저자들은 “감정민주주의 실현”이라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인간답지 않으며, 그런 위험사회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성자라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옹호라기보다는 인간성에 대한 패배주의적 탄식으로 다가왔다. p228
어쩌면 너무나 익숙해서 그러려니 했던, 아니면 익숙하지만 그래서 불편했던 감정의 표현 방식들에 대해 저자들이 비평은 공감을 준다. 일상의 모든 감정들에 대한 명철한 탐구를 통해 감정의 민낯과 포장된 감정에 대해 가늠하게도 된다. 감정표출마저도 자유롭지 못한데 무슨 인간다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잃어버린 나의 인간다움이 통제된 감정교육만큼이나 억압되어 있구나를 생각하게끔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