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만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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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없이 목적없이


삶의 배후에 있는 삶을 찾아 떠난 여행자들은 때가 되면 귀환한다. 삶에서 얻은 것들을 삶의 뒷전에 놓아두고, 검고 어두운 어머니의 계곡으로부터 잃어버렸던 자아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과 깨달음은 기존 사회의 ‘서릿발 같은 증오와 심문’과 맞서야 한다. p444


  개정판에선 윤광준 사진가의 사진이 더해진 떠남과 만남은 저자의 남도여행기이다. 초판은 2000년이니 그 무렵의 어느 즈음에 여행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 즈음 저자는 2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오랜 시간 직장인으로서 살아온 저자에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IMF 이후로 자발적 퇴사보다는 어떡하든 직장인으로 살아남으려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가. 그런 만큼 현재와 미래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때의 여행은 마냥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는 여행과는 의미가 다른 것이었다.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다지며 미래를 위한 결심을 다지는 여행, 저자는 오랜 직장인으로서의 관습과 결별하겠다는 의미로 여행을 시작했고 다시 보내게 될 새로운 인생은 일에 매달려 바쁘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단언하건대, 비효율적으로 한 달반을 보내게 될 것이다. 쓴 만큼 못 얻는다는 것이 비효율의 정의다. 일주일에 다섯 군데밖에 구경하지 못했다면, 같은 시간에 열 군데를 둘러본 사람에 비해 얼간이 같은 짓을 했다는 뜻이다. 나는 얼간이가 될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인생이다. 산다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인생이 전부 경제와 경영일 수는 없다. 사랑도 해야 하고 눈물도 흘려야 한다. 순수한 배운 자체는 즐거운 것이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이 중요하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활동적이다. 철저하게 혼자 있을 때 가장 고독하지 않다. 이제 물리적으로 갈 수 없는 지리적 오지란 별로 없다. 마음속의 오지가 더 넓다. 나는 나와 함께 있을,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움 비밀스러운 공간을 찾아간다. 나를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쓸 예정이다. 햇빛이 들과 밭에 내리듯이. 산과 강과 바다에 쾅쾅 쏟아지듯이. 거기에 무슨 효율이 있는가? p19


  찬기와 따스한 기가 공존하는 3, 4월의 남도. 봄꽃이 나와 흔드는 길 위의 여행, 아무 계획도, 행선지조차 없는 여행은 50일간 지속되었다. 그 50일은 저자가 자신에게 주는 휴가였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10년의 휴가, 한달. 그리고 20년 일한 뒤의 두 달의 휴가. 기차표는 구례까지였다. 그러나 순천이든 곡성이든 저자는 어디든 내려도 상관없었다. 저자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발길 닿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기억을 따라서 혹은 그저 기대를 따라서, 혹은 꽃을 따라서….” 어쨌든 구례역에서 내렸나 보다. 섬진강이 이 책의 첫 시작인 것을 보면.


  꽃잎이 날리는 길을 따라 취한 여행길은 어느덧 옛사람의 정취를 느끼는 길을 따라 이어진다. 해남 두륜산과 강진, 다산초당에서, 그리고 고금도 충무사에서 그는 옛사람들의 정취에 그리움 한가득 담아 온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에서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며 반성과 다짐이 반복되는 진중한 여행. 역시 사람의 향취가 드리운 여행의 모습이다.  

  다시 바다와 바람이 이어진 길들을 찾아 떠난다. 그곳에서 바다를 즐기는 법을 배운다.


바다를 즐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푸른빛을 음미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이다. 철썩거리며 들어오고 다시 빠져나갈 때 작은 갯돌들이 구르는 소리가 난다. 저쪽 구석에서 먼저 부서진 파도가 내는 소리를 듣고 이어 다시 이곳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좋은 음악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파도가 싣고 오는 바다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이다. 바다의 채취는 바람에 실려 온다. 그 속에는 미역, 김, 파래, 톳 같은 것들의 싱싱함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지금처럼 눈을 감고 누워 손가락을 조금씩 꼬물거려 갯돌들을 더듬어보는 것이다. 매끄럽기 한량없다. 조금 거친 것들도 있고, 완벽한 매끄러움으로 손가락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도 있다. 또 있다. 간혹 바다가 만들어주는 소리들에 가벼운 변주를 더해주는 것이다.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던 갯돌을 누운 상태에서 하늘로 던지는 것이다. 잠시 후 바다에 퐁 빠지는 그 소리는 연주회에서 간혹 들리는 탬버린 소리처럼 경쾌하다. p179


 장환의 일몰, 잊혀지지 않는 천관의 초야, 아름다움이 가득한 천관산을 여행하고 마치 바다와 바람에 몸을 맡긴 듯이 정말로 계획과 목적 없이 떠난다. 섬으로 섬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계획 없다 하여 두려움을 품지 않는다. 목적이 없다 하여 허무를 품지 않는다. 보길도, 완도, 장도, 완도. 남도의 섬에서 그가 마냥 섬이라 고립과 외로움을 얻어 왔겠는가.


줄곧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독 속에 누군가 며칠 다녀가고 다시 혼자가 되면 그때는 허전해진다. p74


  여행이란 떠난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의 귀환은 어떤 변화와 함께였을까. 그가 잃어버린 자아와 되찾은 자아는 이제 이어갈 삶에서 어떤 형태로 그를 다듬어 가게 될까. 여행은 떠남이고 만남이다. 그것은 장소와 사람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생각과 생각들도 포함된다. 익숙했던 관성에 따랐던 것들을 어떤 식으로 떠나보내었을지. 왜 그것들을 보내고 새로운 생각들에 나를 담그게 되었는지, 여행은 그런 것들을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는 시간들을 만든다.

 

한 달 반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버리고자 했던 다섯 가지를 버렸는가? 아침의 면도, 대낮에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자유, 지위에 대한 압박, 월급이 주는 안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유한 책임.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아닌지도 모른다.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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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 구본형의 하루 경영 9가지 법칙, 개정판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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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돌을 놓는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의 화두는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저자는 ‘변화’를 단순하고 감상적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인 접근으로 ‘경영’할 것을 지속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첫 책에서부터 줄곧 저자의 메시지인 ‘변화’의 필요성은 여러 책을 출간하는 동안 차곡차곡 단단히 채워져 왔다. 특히 저자는 이 자기계발, 자기혁명을 주창하면서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가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있는 언어로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변화를 위해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한 방법들을 인문학적 사고와 감수성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보통의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차별적인 책의 제목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저자의 책이 읽고 싶어진다면 다른 무엇보다 탁월한 책의 제목 때문일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낯선 곳에서의 아침><일상의 황홀><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떠남과 만남> 등등. 저자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상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주는 제목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봐도 될 듯하다.

  이 책은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타자의 욕망이 아닌 순수한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볼 것을 제안하며 일상을 차근히 들여다보며 새로운 의미 찾기를 모색하라고 했던 저자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루를 보다 알차게 보내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른바 하루를 더욱 더 아름답게 경영하는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위기가 도래했을 때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변화하기 위해 애썼노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는데 주저하고 있지만 아마도 변화라는 것을 대단하고 거창한 ‘변혁’ 혹은 ‘사건의 전환’ 쯤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일상의 작은 것에서부터 변화를 넘어선 변화경영을 시작할 것을 말한다. 그것을 위해 9가지 하루 경영의 원칙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녹여내는 이 글은, 어쩌면 ‘시간관리’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간 관리는 시간의 통제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시간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우리를 통제한다. 시간을 통제하려는 사람은 시간 대신 자기를 통제하게 된다.

시간 관리는 ‘만일 내가 시간을 통제한다면, 나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번 사람이 더 시간이 없다. 하루를 작은 조각으로 나누고 분해하는 사람은 적어도 그 일을 하느라 더 바쁘다. 그 사람은 하나의 약속에서 다른 약속으로 이동할 뿐이다. 여전히 그는 시간에 쫓긴다. 시간의 부족은 유감스럽게도 오히려 성공적인 시간 관리의 결과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한가로운 사람은 시간을 절대로 가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들은 시간을 그대로 놓아둔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선물(先物) 거래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조각조각 분해된 시간의 조각을 먼저 어딘가에 배타적으로 묶어놓지 않는다는 말이다. p94


  자신의 이중성을 칭찬하고, 창조적 괴짜가 되고, 함께 춤추는 여인에게 배우고, 웃고 또 웃고, 쓸데없는 약속은 버리고, 스물 네 권의 책을 읽고, 놀지 않으면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아빠 앞에 ‘부자’와 ‘가난’이란 말을 달지 말고, 남김없이 쓰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이와 같은 아홉 가지 주제를 내세우며 “오늘에 몰두하고 빠져들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만들어 내게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개인이 개인의 관점에서 조직의 관점에서 풀어주고 격려해줘야 할 원칙들을 이야기한다. 오늘이란 이미 내가 소유한 것으로 하루를 가볍고 경쾌하고 살만하고 몸에 안기는 시간으로 바꾼다면, 진검 승부가 가능하리라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다.


“이 책은 도약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는 그 지점에 징검돌 하나를 새로 놓으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곳은 물살이 너무 세고 물이 깊어 돌을 놓을 수 없는 자리다. 이 책이 시도하려는 것은 그 간격이 우리가 건너뛸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음을 알리는 일이다.”


  이 책은 일본어와 영어 번역본으로도 출간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가 말하는 아홉 가지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그들의 하루를 경영하는데 의미있는 방법이 되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눈부신 하루를 보내는데 아홉 가지를 모두 행하느라 낑낑댈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런 조언들을 들을 때면 그 조언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해내기 위해 안달하곤 한다. 이런 맘을 아는지 저자는 모든 것을 다하려 애쓰지 말고 하나만이라도 기억하라고 말한다. 자신이 가장 맘에 닿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실천하여 가라고. 저자가 말한 징검돌의 의미가 새롭게 와 닿는다. 내가 건너뛸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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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일상의 황홀
구본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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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상, 의미



  이 책이 출간된 2004년 당시만 해도 스스로를 “변화경영전문가”라 칭하던 구본형 선생님의 하루하루의 기록이다. 그 하루하루를 일기 형식으로 담은 것으로 이 일상의 기록이 중요한 것은 이 기록을 통해 “나는 변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꽤나 일기를 써본 우리일 테니 일기란 어떤 것인지 안다. 아니, 일기를 쓰는 날의 기분 정도를 금세 떠올릴 수 있다. 일기는 내게 의미있는 사건이나 의미있는 감정의 변화가 있을 때에 자발적으로 써진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일기란 반복적인 일상을 기록하는 참 하기 싫은 숙제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저자는 하기 싫은 숙제인 일기를 기록함으로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변화’의 의미를 되새긴다. 하루하루를 기록하다 보면 ‘사건’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일에 시선이 갈 때도 있다. 그것이 그 감정 그대로 기록이 되면 그것 또한 내게 새로운 의미를 주는 ‘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우리의 일상의 느낌을 새롭게 가질 수 있다. 내가 하루 속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으며 어떤 것에 의미를 두고, 의미를 두지 않고 또한 다른 시선을 보내는지. 나의 그런 일상에서 황홀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황홀함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저자는 알려 주는 것이다.

  

일상의 끈을 놓치지 말 것, 그것이 현실이니까.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릴 것, 그것이 실천으로서의 변화니까. 하루를 잘 보낼 것, 그것이 삶이니까.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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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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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아침을 맞지 않기 위하여



  잠에서 깨었을 때 마주하게 된 사물과 공간이 낯설 때, 어떤 느낌이 들까. 불안함과 당혹감일지 황홀함과 충만함일지 혹은 기대감과 신기함일 수도 있겠다. 어떤 경우라도 감정의 파장은 셀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마다 내가 절대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하나라면 참 슬퍼질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떤 감정을 가지든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맞을 때마다 변하지 않는 일관된 감정만을 지속하게 될까 슬퍼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변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이다. 1년 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1년 동안 죽어 있었던 것이다. 만일 어제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난 24시간은 당신에게 있어 죽어 있던 것이다. p19


  슬퍼지는 이유가 이러했던 때문이었다. 어떤 경우라도 감정을 가진 상황이지만 그 감정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활성화되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나를 바라보는 기분.

  저자는 이 책에서 또다시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때, 그 아침을 신선하게 받아들일 것을! 그 신선한 아침은 자기혁명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그 자기 혁명을 위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 다음의 책이다. 전자의 책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면 이 책에선 변화에 대한 저항을 거두고 변화를 수용하려는 이들을 위한 첫걸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인간이 변화에 저항하게 된 이유는 많다. 저자에 의하면 33가지의 이유가 있다. 우선 변화 자체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기도 하고 불확실성, 의지부족 등등의.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라고 권한다. 그렇게 욕망을 찾아 떠나라고 말한다. 변화는 일상에서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에 하루하루 자신의 시간을 넓혀가는 것이 바로 변화이자 자기혁명의 걸음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낯선 곳으로 여행하며 1주일간의 단식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기 위한 욕망의 목록을 작성했다. 저자는 이 딘식 경험과 욕망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소개하며 마침내 자기혁명을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변화에 대해 관대할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상냥할 것은 물론이고 자신을 매일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변화, 왜 변화를 시작하려 했는지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성공적인 변화의, 자기혁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나를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저 청중이나 관객으로 객석에 앉아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 음악회나 축구 경기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을 구경하는 증인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은 한 번도 주인공이 된 적이 없다면 슬픈 일이다. 인류를 위해 한순간의 빛조차 된 적도 없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삶의 길을 걸어오다가 나에게 이르러,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매료되는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었던 것인가? 미치지 못하고 세상을 산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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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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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이 이룩하는 축복


  지금까지 몇 번의 개정판이 나온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IMF 당시를 휘감은 베스트셀러다. 누구랄 것도 없이 혼란과 울분과 자괴의 분위기에 듬뿍 젖어 있을 때, 분위기의 반전을 일깨운 책이다. 아마도 그 상황을 타개하기를 원하던 모든 이들의 마음이 이 책 속에서 희망을 발견했던 건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려는 의지가 남아 있던, 어떤 힘이라도 끌어 모으려던 사람들에게 건네진 ‘지푸라기’ 아니었을까.

  분명 IMF는 위기였고 상황의 변화는 연쇄적인 변화를 요한다. 그 변화의 방향과 농도를 찾아가는 것은 한편으론 개인의 일이다. 하지만 IMF 같은 상황에선 한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변화의 방향과 농도를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 때에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혁명적’ 변화를 역설했다.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보다 더 ‘변화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그러나 변화에 대처하는데 주저하고 망설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변화의 방향과 농도를 찾는 방법을 얘기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IBM에서 경영혁신 팀장으로서 자신의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변화경영의 방법들을 여운있는 글로써 표현해낸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저자의 책 전반이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지만 이 갖는 도식적인 글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마냥 선동적이지도 않고 누구나 쉽게 아는 것을 장황하게 떠들어 대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니가 잘 해야지”하는 식의 찍어 누르는 듯한 압력도 질책도 없다. “난 이렇게 잘했어”와 같은 자기 과시 또한 없다.

  깊은 생각과 깊은 공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글들로 사람들이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킨다. 동시에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가능케 하고 싶은 욕구를 증가시키며 의지를 독려케 해준다. 그런 힘이 조용히 파고드는 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미풍처럼 조용하고 잔잔하게 다가오는 글귀들이 많은 독서와 사색의 힘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려주며 다정한 이의 위로 같기도 하다.

  이 책이 1998년의 시간에 절대적인 힘을 가진 책이었다고 지금 읽는다고 해서 그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다르진 않다. 그때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는 ‘변화’에 대해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역시 IMF 만큼의 격랑이 일고 있는 나라이고 세계이니까.

  여전히 변화는 ‘나’ 하나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달라질 리 없는 사회에 나 혼자 변해서 이 세상에 맞춰가리라는 생각은 적극적인 생각인가. 아니면 패배주의적 생각인가. 기회주의적인 건가. 변화는 안팎으로 필요하다. 세상에 맞추어 변화하겠다는 것을 잘 생각하고 잘 골라내야 한다.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력의 세상인지 아닌지를.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잘못된 깨달음으로 우리를 몰아간 것은, 우리를 기존의 체제에 묶어두고 통제하고 싶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이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때때로 우리 부모의 모습으로, 선생의 얼굴로, 직장 상사의 이름으로, 그리고 친구의 한숨 섞인 충고로 우리를 설득시켜 왔다.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무난한 처신이었는지도 모른다. p15


  우리의 변화는 나의 변화와 세상의 변화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고선 ‘변화’의 긍정성은 상쇄될 뿐이다. 내가 변화해야 한다는 혁명적인 변화에의 욕구는 ‘내가 잘 살기 위해서’인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 나라도 잘 잘기 위해서’라면 변화의 종착역에 서 있을 때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나만 달라져서는 안되는 상황일 때, 우리는 진정 ‘변화의 대상’에 대해 ‘변화의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욕망이 반사회적일 때, 인간은 불행해진다. ‘욕망은 개인적인 것이므로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통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개인이 가져야 할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주장한 홉스로부터 시작된 지배자들의 논리이다. 자율성이 없는 사회가 붕괴하는 것은 외부에서 눌러오는 욕망에 대한 압살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걷잡을 수 없는 에너지에 대한 통제와 관리는, 각 개인의 몫이다.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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