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의 <화성과 나>를 읽었다. 얼마 전에 <타워>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것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역시나 좋았다.
<화성과 나>는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매우 독특하다. 먼 미래에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아보고 싶다는 연구 의뢰를 받고 화성 연구에 착수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 의뢰는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의뢰자인 외교부 공무원이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되면서 공식적인 연구 자체는 거기서 끝이 난 듯 하다. 하지만 연구 보고서를 본 과학자들이 강의 요청을 해왔고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화성 이주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호기심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우리나라 정부 기관이 화성 이주에 관한 연구를 의뢰한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걸 SF소설가에게 의뢰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물론 외교학으로 석사까지 마친 소설가여서 그런 연구 의뢰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 안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붉은 행성의 방식>과 <위대한 밥도둑>이다. <붉은 행성의 방식>은 화성에서 벌어진 첫 번째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화성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라니, 말만 들어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살인사건 자체에 대해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살인사건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지구의 법을 따를 것인가 화성만의 법을 만들 것인가, 이런 논의들이 주를 이룬다.
화성에는 정치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논의할 사람이 별로 없다. 사람들은 정치인이 화성에 가면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조종사, 엔지니어, 의사, 생물학자와 같이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과학자 및 공학자 집단들이 주로 이주 초기에 화성으로 왔다. 하아...이래서 '문송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구가 망하고 화성으로 가게 된다면 그 우주선에 날 태워달라고 설득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웬만한 기술로도 안 되고(미용사도 안 태워준다) 인간의 삶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술이 하루아침에 나한테 뚝딱 생길리가 없다. 망해가는 지구에서 행복하게 사는 수밖에.
아무튼 화성에 몇 없는(아마도 유일한?) 정치인인 '희나'는 화성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해 '상식적으로 처리하자'는 과학자들의 말을 듣고 열이 받아 버린다. 상식적으로 처리하는 게 도대체 뭔데?! 그들은 모든 걸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인 희나의 입장에서는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화성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어떤 법을 따라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정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계기였다.
【"어느 상식?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할까? 거주지 내규가 벌거벗겨서 곤장을 치는 거면 받아들일래? 설마 군법을 말하는 건 아니지? 에이, 설마. 그래도 민간 형법이 낫겠지? 그럼 어느 나라 법으로 할까? 당신 나라 법, 아니면 우리 나라 법? 피살자 출신지 법으로 해. 아니면 피의자 출신지로 해? 그런데 이 법들은 관할 지역이 전부 지구 대기권 안이지? 피의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어떻게 할래? 판단은 누가 하지? 지구 법정에 원격으로 세울까? 화성에 변호사는 한 명도 없으니까 지구 변호사를 선임하게 할 거지? 단심제로 해, 아니면 삼심제로 해? 항소 기간에 피의자는 어디에 머물러? 집행은? 형이 정해지면 해당 거주지 구성원들이 직접 집행하게 해? 살인이니 똑같이 사형시켜? 30년 형쯤 나오면 어디에 수감해? 전문 교도관을 화성으로 보내나? 감옥은 새로 하나 짓고? 아니면 우주선 태워서 지구로 보낼래? 그러다 중간에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지? 이송 비용은 누가 부담해? 이송 기간은 수감 기간으로 계산하나? 화성 거주 기간 전부를 수감 기간으로 쳐달라고 주장하면 어쩌지?"】
화성은 완전히 다른 행성이고 다른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 화성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도망가지 못한다. 지구라면 그야말로 '지구끝까지'라도 도망갈텐데 화성에서는 갈 곳이 없다.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역은 (비유적으로)한뼘 정도의 공간밖에 되지 않기에 도망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 보면, 도망치지도 못 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구인의 시각에서는 도저히 예측하기가 어렵다. 배명훈 작가는 이 소설에서 '희나'의 예측보다는 좀더 늦게 살인사건이 발생했다고 쓰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화성에 이주하자마자 살인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붉은 행성의 방식>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단편이라서 아쉽다. 도대체 범인은 왜 피해자를 살해했는지(물론 책 안에 이유가 나오기는 하는데 그것 말고 좀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 나서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화성에서 벌어진 첫 번째 살인 사건 소식을 듣고 나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어떠한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등등 알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이래서 단편소설집은 너무 좋아도 막 심각하게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다. 궁금한 게 많은데 풀리질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 다음으로 좋았던 건 <위대한 밥도둑>이다. 뭔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평생토록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화성에 이주해서도 별로 힘들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이거 먹고 싶다, 저거 먹고 싶다'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평생 뭔가를 먹고 싶어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어느 순간 지구의 어떤 음식을 강렬하게 갈망하게 되는데.......그후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위대한 밥도둑>은 플롯이나 주제보다도, 주인공이 자신이 먹고싶어하는 음식을 설명하는 그 대사가 너무 좋았다. 이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어 나간다면, 외국인들이 저 부분을 보고 당장 저 위대한 밥도둑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한 번 반성했다. 끼니마다 '오늘 뭐 먹지' 고민하는 것도 귀찮고 나를 위해서건 누구를 위해서건 요리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한동안 포만감 느껴지는 알약 개발을 강력하게 원한다고 떠들고 다닌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화성으로 이주할지도 모르는 미래 인류를 생각한다면, 내가 한 말은 그야말로 있는 자의 배부른 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화성으로 보내져서 맨날천날 아무 맛도 없지만 생명은 유지하게 해주는 식량들을 먹으면서 살다보면 뭐 먹을지 고민하면서 사는 지구에서의 삶이 얼마나 좋았는지 뼈저리게 반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얼마 전에 봤던 영화 <다운사이징>이 떠올랐다. 어떤 과학자가 생명체의 몸을 아주아주 작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 그 과학자는 인간의 몸을 아주아주 작게 만들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거기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는다. 사람의 몸이 작아지니까 환경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몸이 작아졌으니까 한달 식비도 엄청나게 줄어들고, 당연히 엄청나게 작은 집에서 살아도 되니까 집세 걱정도 완전히 사라진다.(작은 집이라고 해도 다운사이징한 사람들에게는 대궐 같은 집이다.) 다운사이징 수술은 지구의 환경 문제와 개인의 경제적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해결책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사회에서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은 사람은 5%에 불과하다. 집 문제, 돈 문제 한꺼번에 해결이 되는데도 그 수술을 선뜻 받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이 극극극소수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대궐 같은 집에서 살게 해준다고 해도, 너무나도 작고 연약한 존재가 되는 것에 겁을 먹는다. 게다가 원래 크기의 인간들은 다운사이징 수술을 한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렇게 작아지는 수술을 받고 세금도 덜 낼 거라면 투표권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을 한다. 영화에서는 깊게 다루지 않지만 다운사이징 인류와 非다운사이징 인류의 갈등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화성과 나>에서도 지구에 사는 사람과 화성으로 이주해온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미묘한 알력 다툼이 등장한다. 지구에서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낼 때마다 매번 더 힘 있는 사람을 보내서 화성에 대한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화성으로 온 권력자들은 처음에는 화성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다음 번 우주선이 올 쯤이 되면 갑자기 화성 친화적으로 바뀐다. 그 우주선에는 자신보다 더 권력이 센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힘 있는 지구인에게 지지 않으려면 화성인들끼리 대동단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운사이징 수술이든, 화성으로의 이주든, 결국은 인간 집단 간의 갈등이 문제다. 인간이 '화성'에 가서 산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이 화성에 가서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 화성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인간에 방점이 찍히게 된다. 기후 문제로 인해 인류의 앞날이 계속해서 힘들어질 거라는 우울한 전망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요즘, 화성으로 가거나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과연 선뜻 나설 수 있을까. 이런 소설을 보고 이런 영화를 볼수록 쉽사리 답하기가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