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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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마주 하지 않은 두 남녀의 이야기는 대서양을 사이에 둔 서점주인과 뉴욕 여인의 <채링크로스 84번지>에서 들었다. 이번엔 독일의 한 소도시. 잘못 전달된 이메일 때문에 그리고 그 짧은 몇줄에 담긴 위트와, 절묘한 타이밍으로 두 남녀가 만났다. 아니, 그들은 이메일로만 만나고 때론 며칠 동안, 때론 몇십 초 후에 답을 주고 받는 온라인 애인이 된다.  

이런 진부한 설정이 그래도 먹히고, 그래도 책장이 넘어가는 것은,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엽기도 하고 솔직하기도 해서다. 젠채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심, 설렘, 분노를 바로바로 드러내는 글에 (그렇다고 마구 까발리는 느낌도 들지 않으면서) 두 사람이 대체 언제쯤 만날까 조마조마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두 사람의 입장에 각각 번갈아 서면서, 상대가 어떤 인물일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키는? 머리색은? 몸매는? 특히 가슴?  

후반부, 갑자기 맥이 빠지면서, 여주인공의 실생활 설정이 좀 작위적인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새벽 세시가 오기 전에 이 책을 끝내고 싶었다. 아직 두시도 안됐는데, 밖엔 바람이 부는지 창문이 붕붕거리는 소리를 낸다. 창문 꼭꼭 잠그고, 가스 발브도 잠그고 자야겠다. (여주인공이 북풍이 불땐 창가쪽에 머리를 두고 잘 수가 없다고 하자, 남자는 이런저런 해법을 내놓는다. 원제는 '북풍'인데 우리말 제목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로 아주 귀엽게 바뀌었다. 제목이 이렇게 사랑스럽지 않았다면 아마 읽을 생각도 안 들었겠지.)  

그런데, 이런 솔직한 이메일 대화가 가능하기는 한걸까? 나는 이런 독서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얼만큼의 나 (내적인,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를 꺼내 놓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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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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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대한 책을 내리 읽고 있자니 두 권의 책(과 영화)가 한데 뒤섞여서 묘한 기분이 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집도 세고, 강박증이 있다는게 내가 대충 내린 결론이다.  

지난번 <채링 크로스 84번지> 보다는 내가 아는 작가와 책들이 더 많이 인용되어서 반갑기도 했는데 번역문이 영어의 말장난을 다 풀어놓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저자 앤 패디먼 일가의 유별난 책사랑, 문자 애착, 그리고 자존심 이야기는 연달아 읽기에는 버겁기도 하다. (나, 이런 사람이고, 나, 이거 억울하거든? 하는 식의 느낌이 각 엣세이에서 쌓여가다 보니 책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앤 패디먼을 패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듯 이 책은 앤 패디먼의 "가족" 이야기이고 (그 가족에 책이 포함된다는 게 특이하다) 사돈의 팔촌도 아닌 나에게는 (물론 나도 책읽기를 즐기기는 하지만) 영 정이 안 가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나는 책에대한 책을 만나면 또 반갑게 읽겠지. 다음 번엔 저자가 추천한 버지니아 울프의 <평범한 독자>를 읽어 보고 싶다. 참, 나도 저자를 흉내내서 이 책의 오자를 짚고 넘어가련다. 188쪽 하단 10번 주석. The Cat in the Hat 의 저자는 Dr. Seuss "소이스 박사" 가 아니라 "닥터 수스"라고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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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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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유정천 가족>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토록 간절하게 읽고 싶지 않았을 책. 그런데 너무 흡사해서 좀 실망하게 만든 책. 하지만 <유정천 가족> 보다 먼저 읽었더라면 어리둥절해서 끝까지 못 읽었을 지도 모르는 책.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면서 써클 후배 여학생 주위를 맴도는 선배 남학생과 교토의 대학촌 근처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반은 판타지 (혹은 뻥) 고, 반은 현실의 발랄한 버전이다. 그 덕에 지금은 머언 옛일이 되어버린 내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물론, 나를 졸졸 (해자나 메꾸면서 말이다) 따라다니던 지금의 남편도 함께. (음핫핫하!!!) 

역시, 이십대 초반, 젊음은 혼돈과 열정과 순수함 투성이었다. 그리고, 실수 투성이. 이틀 동안 짬짬이 읽다보면 봄의 "술 타령"은 과한가 싶다가도 두 젊은이의 종종걸음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빙긋 웃게된다. 그렇다. 나도 한 때는 밤이 짧았고, 산뜻하게 걸어다녔던 아가씨였다, 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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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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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이 열 다섯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쿨한 열다섯 소년이라고, 까마귀 소년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숲 속 깊은 곳, 저 너머의 세계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던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만, 나는 왜 이 책을 지금 읽었을까. 다들 마흔 넘어서는 하루키를 극복(?)하고 독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데, 왜 나는 지금 그의 열다섯 소년 이야기를 읽었을까.

1Q84의 많은 퍼즐들이 이 책에서도 발견된다. 사에키상과 주인공 소년의 관계도 그렇고, 문을 여닫는 것이나 환상적인, 아니면 충격적인 설정도 그렇다. 그래서 훅하고 빠지는 하루키식 완전 몰입 독서를 할 수 없었다. (조니 워커와 고양이 장면에서는 깜짝 놀라긴 했다) 이상하게 사에키상과의 관계도 그리 놀랍지 않다. 초반부터 프로이트 이야기를 많이 해 두어서 마음의 준비가 된 탓일까. 문학적인, 그리고 계산된 장치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는데, 그 트릭들이 미리 보여서 재미가 덜 했다. 나카타 할아버지와 호시노 청년의 여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아니, 벌써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다. 

하루키의 책은 그렇다. 읽는 순간은 하루키식 논리 (하늘에서 생선이나 거머리가 쏟아져 내리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식으로)를 따라간다. 하지만 책을 덮고 사흘이 지나면, 줄거리를 다시 말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열다섯이라 하더라도 고등학생이 읽을 책 같지는 않고, 스물 다섯 쯤 읽고 서른 쯤에 주인공과 나카타를 떠올리면 좋을 듯하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러가지 인생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간간이 내 인생의 의미(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도 생각해 볼 수도 있을테고. 그런데 난 너무 늦게 읽었다. 그래서 감동을 받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입구의 돌은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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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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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판된 중고책을 찾아서 중고서점을 찾아 헤매는 일은, 이제는 흔하지 않은 7080 스타일이 되었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클릭 한 번으로 찾던 책을 구할 수 있고, 모르는 남남끼리도 책을 사고 판다.  

1949년 이차 대전 직후 던 런던의 한 고서점(채링 크로스 로드 84번지가 바로 그 서점의 주소다)이 미국에서 보다 훨씬 더 훌륭한 상태의 양서들을 취급한다는 것을 알고 배고픈 저술가 - 희곡을 써서 무대에 올리기를 열망하지만 현실에선 이런저런 기고로 생활을 꾸려가는 - 헬렌 한프가 한장의 편지를 쓰고 런던의 서점 사람들과 20년의 우정이 시작된다.  

이 얇은 책은 그들 사이에 오갔던 주문서, 안부 편지, 감사 편지, 선물 목록에 끼워둔 카드, 그리고 엽서들이다. 안타깝게 모든 편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이야기가 건너 뛰기도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은 채 우정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사랑하는 공통분모 덕이었다. 때론 짖궂은 투정을 부리는 고객 (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우두커니 앉아서 빈둥거리고 있나요?"22쪽) 은 서점주인에게 읽고 싶은 책을 어서어서 보내달라고 보채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햄과 위문 상자들을 보내기도 한다. (얼마전 영국 총리가 1950년대 초반, 영국의 경제사정을 빌미로 호주로 어린이들을 강제 이주시킨 점에대해서 사과한 바 있다. 그 시절, 힘겨운 삶은 우리 나라 뿐이 아니었나 보다)  

별다른 줄거리 없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 사이에 쌓여가는 정(情)이 보인다. 그래서 가슴이 훈훈해졌다. 주문서에 올려진 책들은 꽤 전문적이기도 하지만, 뭐 어때, 그 책을 읽어야만 그들의 우정을 느낄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헬렌 한프는 서점 주인이 사망한 다음, 오갔던 편지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놓고서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명해진 이 책은 이미 영화로 만들어져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품절인 디비디를 겨우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영화로도 훈훈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이제, <노팅힐> 다음으로 런던의 서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또 생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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