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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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저는 임항 열차에서 내려 지저분한 보도를 이 두발로 직접 밟을 그날을 꿈꾸며 살아간답니다. 걸어서 버클리 광장까지 올라갔다가 윔폴 거리로 내려오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탑 입성을 거부하고 앉았던 세인트폴 성당의 그 계단, 존 던이 앉아 연설하던 바로 그 계단을 저도 한 번 밟아보고 싶어요. 대전 중에 런던 주재원으로 나갔던 신문기자 한 사람을 아는데, 그 사람 말이 관광객들은 영국에 어떤 고정 관념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늘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찾는대요. 전 영국문학 속의 영국을 찾아갈 거라고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렇다면 거기에 있어요."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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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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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9월 11일, 큰아이의 preschool 첫날이었다. 세시간 차이로 이미 큰일이 벌어져 버린 뉴욕과 달리 캘리포니아는 놀랐지만 다소 덤덤했다. 유아원도 정상 수업을 했고 쇼핑센터도 문을 열었다. 정작 다음날이 되자 사태의 심각성이 더 다가왔다. 그 다음해 9월11일이 되기 훨씬 전부터 자동차 뒷범퍼에는 God Bless America 스티커가 붙어있었고 국가 의정 관계차도 아닌 허름한 중고 (일제) 차들도 성조기를 매달고 다녔다. 쌍동이 빌딩에서 희생된 수많은 생명들 보다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오와 분노가 더 컸다.

911 을 배경으로 한다는 이 책에 대해서 좋은 서평과 "상큼"하다는 이야기들도 별로 믿기지 않았다. 911은 내게는 외국인으로서 꽤나 불편하게 버텨야하는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책의 911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너무도 바라는 아홉살 아이의 이야기이다. 그 아이를 찢어지는 심정으로 쳐다보는 엄마와 할머니, 또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그날밤만 밤이었던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439쪽)" 이런 새털같이 많은 미래를 당연시하던 일상말이다. 

2차대전 공습때 사랑하던 연인과 가족을 잃은 할아버지, 또 기구하게도 21세기 평화의 땅에서 또 한명의 아들을 잃는다. 그리고 그의 손자는 없을지도 모를 자물쇠를 찾아 뉴욕시의 Black 을 찾아나선다. 

이 괴상하고 정신없고, 먼 이야기가 어이없게 나를 울렸다. 손자를 알아보는 할아버지의 눈에서 아빠와의 마지막 통화 (일방적인)를 이야기하는 꼬마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외국인 아줌마는 울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내 가족,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살을 부비고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안쓰럽도록 까칠한 주인공 오스카 만큼 인상적인 할아버지는 역시 미스터 블랙이다. 스무해 넘도록 아파트 밖으로 나서지 않고 전화주문으로 쇼핑을 해결하고 보청기마저 꺼버린 사람. 전쟁터를 누비다가 이젠 더 전쟁터 같은 바깥을 닫아 버리고 매일 아침 대못을 한 개씩 박으면서 하루를 여는 엽기 할아버지. 하지만, 그 역시 진짜 셸 할아버지를 만나고는 쿨하게 퇴장할 줄 안다. 

책 중간 중간 만나게 되는 사진과 메모들, 색색깔의 이름들, 빨간 교정본들, 빽빽히 겹쳐져 있던 할아버지의 독백들....그리고 다시 그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오스카의 마음처럼 빌딩 옆을 날아서 올라가는 사람의 사진. ... 책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이 말하는 것 처럼 엄청 시끄럽고 엄청 가까운게 뭘까 싶게 멍한 느낌이다. 같은 뉴욕땅에서 성경말씀대로 살았던 A.J.제이콥스가 그렇게도 질투해 마지 않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나도 그의 재능을 열심히 질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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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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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예술은 돈 보기를 돌과 같이 해야한다고 여겼다. 19세기 낭만파 예술가들은 술에 절고 가난에 절었지만 하늘을 향해 목을 빳빳히 쳐 들었다. 그런데, 러시아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행동들이 가식이며 없는자들의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했다. - 아니, 도스토예프스키를 축약본 말고는 읽어본 적이 없으니 - 이 책의 저자에 따르자면, 현실속에서 종이와 펜을 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누구보다도 돈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였다.

무거운 돈과 생존의 이야기를 작품들의 친절한 "축약" 설명과 더불어 깔끔 명료하게 이야기 하는 책은 어렵지 않게 읽힌다. 하지만 가난의 심리학, 빈자의 위선이 이토록 잘 이해되는게 조금은 섬찟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자신이 상대적 빈곤감에 몸을 떨고 있고 되먹지 않은 자존심때문에 이런저런 변명으로 내 주위에 벽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있다면, 누군들 좋지 않을까. 더러운 돈이 아니라면, 누가 마다 할까. 저 미운 시누이가 부자가 아니였다면 내가 좀더 이해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을까. 

돈이 궁해서 글을 미친듯이 써 제꼈다는 도스토예프스키. 그 왕성한 창작력이 감탄스럽다. 천재는 어느 상황에서도 천재인가보다. 그가 돈으로 많은 굴욕을 겪었다지만, 그는 돈을 알아보았고 그래서 시대를 앞선 천재라고 평해지는 것이리라. 

 "돈은 자유다" "돈은 시간이다" "돈은 자식을 낳는다" 라는 무서운 명제들은 지나친 비약이며 어거지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어느정도 사실이다. 그 사실의 틈바구니에서 자존심, 빈자의 자존심 지키기가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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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다빈치 art 18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신성림 옮김 / 다빈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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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미술관의 라틴미술 전시회를 놓쳤다. 지방으로 이사를 오고나니 이런 저런 문화생활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마침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끌레지오가 쓴 프리다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책이 눈에 띄었다. 

예술이 인생이고, 혁명이며 투쟁이었던 두 사람의 인생과 사랑의 이야기이다. 시기별로 의미 있는 디에고의 벽화나 처절한 프리다의 자화상들을 둘러싼 결코 포기 하지 않는 삶의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절대 가볍지 않고, 단순한 도록이 아니다. 건조한듯 담담한 어투는 그만큼 이 두 사람의 별난 사랑이 도드라지게 한다. 그래도 내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거두의 천재 예술가와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희생해 마지 않았던 여인이라는 이미지이다. 물론 이 둘은 프랑스 커플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너무도 솔직하고 엽기적이며, 넘쳐 흐르는 상징의 프리다 그림은 사실, 좀, 거리를 두고 싶어지게 한다. 하지만, 그녀 처럼 열일곱에 대수술로 척추를 잃고 그림 밖에 살아갈 이유가 없이 침대에 묶여 하루 하루 연명한다면, ... 그 정도는 정말 온화하다고 이해할 것이다.  

온 영혼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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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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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책>이 들어가는 제목, 청소년 섹션에 진열되어 있던 영문판 때문에 큰아이 용으로 살까 생각했었는데, 점원 말씀에 (열세살 주인공이지만 열세살에게는 좀 이를거라고) 내가 읽었다. 낯설게도 화자는 죽음의 신이다. 하지만 서양 전설에서처럼 두건에 긴 낫은 들지 않았다고 화자는 우기고 있다 - 그래도 표지에는 책속에서 문 열고 나서는 쬐끄만 두건과 낫이 그려져 있다.  

이 책 안에는 모든 것이 살아 있다. 죽음, 말, 글, 불, 재, 눈, 구름....모든 것이 살아서 움직이고 말을 건다. 그리고 맹목적인 선전용 애국심도 살아 날뛰며 사람들을 죽인다.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을 둘러싼 모습을 보여준다. 잔인하게도 몇달후, 몇년후 다가설 죽음까지 몇 페이지 앞서서 예고까지 한다.   

2차대전 영국에서는 아이들을 시골로 피신시켰고, 나니아로 위로했다. 하지만 나찌는 암스테르담 다락방의 유대어린이를 몰아대다가 죽였으며, 독일 아리아 어린이는 죄책감으로 몸을 떨게했다. 이것은 2차대전 독일 뮌헨에 살던 소녀를 둘러싼 죽음과 말과 책의 이야기이다. 유대인이 아닌 독일소녀도 죄책감에 서서히 죽어갔고 그 와중에 성장하며 자신의 내부에 "온통 뒤 섞여 썩은 냄새를 풍기는 세상"을 저주한다. 

청소년용 책 답지(?) 않게 정성스레 펼쳐지는 이야기가 무겁지만 좋다. 막스가 리젤에게 선물하는 우화 "말을 흔드는 사람"은 최고다. 말을 흔들고, 마음을 흔드는 사람. 그저 심심풀이로 훔치는 책 이야기가 아니다. 흔한 <책>시리즈 속에서 단연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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