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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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과 표지 그림, 그리고 홍콩을 배경으로한 사랑이야기라는 책 소개 문구는 영낙없는 로맨스 소설의 포장이다. 하지만, 작가의 글쓰기 내공이 (이 책이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착실한 공부와 사전 준비작업을 걸쳤고, 오 년이라는 집필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 물론 그 사이 자녀를 넷이나 두셨다는) 마음이 끌리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열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이런 저런 나의 견제랄까, 깔보는 (그것 있지 않은가, 한인 2세 작가라는 포장 속에 의례 들어 있던 정체 불명의 한국인 정신 운운....그리고 내 동포랍네 끌어안아 주던 ... 좀 어색한 뜻뜻함) 눈길 속에서 이야기는 착착 시작되고, 중반부에는 나도 조마조마 허겁지겁 이야기를 쫓아 가다가, 엄마나 하는 진실도 밝혀지고, 책은 강한 여운을 남긴채 끝났다.

밤 깊은 시간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저자의 사인과 함께 내게 선물해 준 친구에게 전화라고 걸었으련만!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 

시대는 일본이 홍콩을 침공하는 1941년과 전시, 그리고 10년후에 나누어서 벌어진다. 홍콩이라는 곳의 특성상, 그곳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여러 인간들, 또 그보다 더 다양한 가식들 속에서 한 남자 윌과 매력덩어리 이자 독특한 이력의 트루디가 만나서 사랑을 한다. 그리고 잔혹한 전쟁이 시작되고, 전쟁 통에 사람들의 진실들이 하나, 둘 드러난다. ... 10년 후, 전쟁 중의 비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새로운 여인 클레어와 윌이 만나 전쟁 속에 사라진 트루디의 진실을 알게 된다. 

생각보다 길게, 세세하게, 또 긴박하게 펼쳐지는 전쟁신 덕에, 이 소설이 여느 사랑 이야기로 분류 되지 않는다. 작가는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 홍콩에 거주하면서 홍콩의 화려함, 다양함, 그리고 그 속에 가려진 가식과 어려운 얼굴들 (그리고 물론, 역사)을 썼다. 크라운 컬렉션 (물론, 이런 이야기는 분분하지만 책 중의 이 부분은 작가의 창작물이란다) 을 둘러싼 영국과 중국의 보물 분쟁, 애국심 논쟁은 우리 나라의 경우를 떠올리게도 했는데, 과연 빅터가 작가의 문장 속에 묘사된 그대로, 그토록 악인이었나는, 확신할 수가 없다.  

뭔 독후감이 이리 길어질까나....어쨌거나, 나는 전혀 있을것 같지 않은, 그리고 너무나 상투적인 매력녀 트루디가, 이야기 속에서 점점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꼈고, 그에 비해 철저한 촌녀인 클레어 역시 차차 성숙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 속에서 성장하는 인물들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느꼈다. 

많은 나라에서 번역되었다는데, 역시나 일본군의 만행이 적잖이 묘사되는 내용 탓에 일본에서는 번역되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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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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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아이, 결혼 스무해가 넘도록 애가타던 아이가, 그럭저럭 정 붙이려고 노력하던 덩치 좋고 뚝심 좋은 마나님의 뱃속의 생명이, 자기 씨가 아니라면!!! 이책이 극소심 생원 나으리의 탐정 수사록....이라면 조금 과장이겠고, 뒷 표지의 당찬 발언 "당신 자식이 아닙니다" 가 이 책의 중심 내용이라면, 것도 조금 설명이 더 필요하겠다.  

모르는 말, 낯선 단어들이 있다고 해도 책장 넘기는 속도는 늦춰지지 않는다. 불륜을 깔고 시작하는 소설인데도, 우리의 꽁생원은 꽁한 심사로 "끄응"하는 소리만 낼 뿐 뭐라 댓거리도 못하고, 다른 인물들도 그리 불량스럽지 않다. 공생원에 비해 품도 크고 친구도 많고 두루두루 사람들을 챙기는 우리의 마나님은,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니 이 책은 마나님 넷트워크 위에 짜여진 그 시대의 여러 삶이다. 280일 (임신기간이렸다?) 동안 타는 속으로 버텼을 마나님을 대신해서 그 놈의 꽁생원을 꼬집어 주고는 싶지만, 워낙 콤플렉스가 많은 인간이라 용서하기로 했다. 

위화의 허삼관도 생각나고, 익숙한 전래동화 (특히 박씨부인) 도 떠오르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결말도 작가의 입심 덕에 "재미지게"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 마따나, 나도 "노는 마음으로" 끝 장까지 따라갔다. 꽁생원에겐 안 된 마음이지만, 그의 노심초사야 내 상관할 바가 아니고 책장을 넘기면서 "허 허" 하면서 나도 모르게 옛스런 웃음소리로 박자도 맞췄다. 첫 번은 노랫자락 처럼 읽어 냈으니, 두 번 째는 그 맛난 말들을 찾아 가며 읽어야겠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이런 저런 조선시대 모습들을....어디까지 역사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조금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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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니, 이디시
명지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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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한 느낌마저 주는 제목에 끌렸다. 장편 1Q84의 2권이 나오지 않아서 쉽게 1권을 다 읽어버릴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단편을 중간에 읽어줘야 내 흐름을 늦추겠다 싶어 단편 <이로니, 이디시>를 시작했다.

잘 모르겠다. 극중 두 아씨들이 저마다의 '이론' 으로 설명을 하지만 화자인 몸종 여자애처럼, 난 잘 모르겠다. 얼핏 이 두 아씨들의 농이나 별난 처지가 불쌍하기도 하고, 이 아씨들은 바로 명작가의 문학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렵기만하다. 책 말미에 실린 복도훈 문학 평론가의 설명 대로, 명작가의 소설은 그냥 읽기에는 뭔가가 계속 걸린다. 책을 읽고나서 의미를 혼자 가만가만 곱씹는다. 씹을 수록 맛이 다르다. 씁쓸한 그 맛이 그윽하다. 어쩌면 내가 잘못 아는게 아닐까, 하지만, 정답도 없는 듯하니 마음이 놓인다. 

낯선 소재, 샴 쌍둥이, 인육 조리, 내 몸 속의 벌레, 변신 (벌레가 아니라 물고기), 동성애, 배신남에 대한 육탄 복수, 리얼돌(이런 단어는 이번 기회에 배웠다. 헉), 그리고 장기 이식,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낯선 이야기, 엽기 설정에 온다 리쿠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명 작가는 이런 설정 으로, 물질적인 우리들 몸을 통과하면서, 다른 이야기를-내 생각에는 문학론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단편들은 판타지로 읽히지 않고, 비유적 (어쩌면 시적이기 까지 한) 이야기로 읽혔다. 짧디 짧은 내 혓조각으로, 내 무딘 손가락으로는 풀어 쓰질 못하겠으니, 명 작가 표현을 빌자면 칼로 썰어 내야할 판이다. (흐미....) 

표지 처럼 하얀 상태로, 아무 것도 미리 듣거나 읽지 말고, 명 작가의 단편들을 만나길 바란다. 모든 평이, 리뷰가 스포일러다. 그리고 다 읽은 후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을 오래 오래 곱씹기를 바란다. 문장은 메마르고 이야기들은 불친절하다. 하지만 역겹지는 않고 소설 속 불쌍한 인간들, 그들의 몸뚱이가 내 몸뚱이 같아서 덩달아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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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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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라는 작가의 글로는 두 번 째, 소설의 형태로는 첫 만남이다. 다섯 단편 소설의 묶음과 저자의 말, <나의 문학의 길>이 실려 있다. 전에 읽은 수필집도 작가가 편집에 공을 들인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 그는 각 나라의 번역서 마다 새로운 저자의 말을 쓴다 - 이번 <나의 문학의 길>도 그런 배려가 보인다. 

각기 다른 단편들이 (배경이 항상 여름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의미의 원제 <炎熱的 夏天>의 오늘날 중국을 사는, 또 한국을 살아 내는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 마다 메마른 일상 속, 범부들이 두려워하는 (하지만 동경도 하는) 흔들림이 찾아온다. 소심한 속물들을 비꼬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다행히 그 시선이 잔인하거나 매섭지 않다.

 

간결한 문장은 독자의 시선과 상상력을 편안하게 다그치지도 않고 마냥 늘어지지도 않는다. 구질구질하게 감정에 호소하거나 끈적거리는 미사여구가 없다. 이 무더운 여름 날, 읽고 나니 내 마음 속 시원한 바람이 분다. 당연히 아직 못 만났던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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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무렵
정양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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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의 시간, 책 읽는 짬짬이, 살림하는 짬짬이, 아이들 커가는 속도에 놀라고, 내 늙은 몸에 놀란다. 그리고 한결같은 세월과 계절에 놀란다. 겨우 마흔에, 허, 하고 시인 정양 선생님은 웃으실지도 모르겠다.

첫 부분에는 세시풍속을, 뒷 부분에는 잘 여문 인생의 시간에 대한 명상을 담았다. 무거운 인생의 시인데도 수월하게 소리내어 읽을 수 있고 여러번 읽을 적 마다, 그때 그때 다른 감동으로 남는다. 한 동안 내 가방 속, 잠드는 배게 속에 품어야겠다. 내년 복날 때 까지 일년 동안 두고 읽으면서 세월 속에 나를, 아직 철이 덜 들어 나잇값 못하는 나를 다독이고 싶다. '입추'에서 시인이 말했듯 나도 '한평생 헛것에 매달려 산다는 걸 나는 영영 깨닫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뭐 어떠랴, 곧 단풍으로 온 산이 물들고, 온몸이 성감대 였다는 그 불타는 산을 바라보면서 '상강2'를 읊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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